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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 |
이교 신앙은 전통적으로 다신교로 분류된다.
이교도들이 여러 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교는 일신교로 분류된다.
교인들이 오직 하나인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가혹하게 이교말살 운동을 벌일 때, 그들은 소위 다신교 신앙을 원시적인 우상숭배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 미스테리아 현자들이 주장한 하나님에 대한 숭고한 철학적 이해를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도래하기 500년 전에, 크세노파네스는 이미 이렇게 썼다. ‘신은 하나이다. 신은 항상 고요하게 쉬시면서 오직 생각으로써 만물을 움직인다’ (신이 하나라는 것은 당시 철학자들에게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다. 제논, 멜리소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피타고라스 또한 크세노파네스와 생각이 같았다: 저자주).
전설적인 고대 이집트 현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고 한다. ‘그대는 여러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 신은 하나이다’.
이교도 현자인 티로스의 막시무스는 그 무렵 그리스도교인들은 유일신 교리가 이교도 교리와 반대된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하나의 교리로 온 세상이 하나로 통합된다. 하나의 신이 만물의 왕이며 아버지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조차도 피타고라스가 유일신 교리를 설교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피타고라스의 말을 인용했다.
신은 하나이다. 그리고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신 자신은 세계 밖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 안에 존재한다.
신은 만물의 순환 속에 전적으로 존재하며 모든 세대를 끌어안는 존재이고, 모든 시대를 규정하는 요소이며, 자신의 권능과 소임을 행하는 분이고, 만물의 최초 원리이며, 하늘의 빛이며, 만물의 아버지이며, 우주의 지성이자 활기찬 영혼이며, 모든 궤도의 움직임이다.
이런 개념은 피타고라스 시대에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미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인 신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존재였고, 석상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이집트의 미스테리아에서 오시리스는 그처럼 지고한 존재였고 ‘세계의 상속자이자 유일한 신’으로 선언되었다.
여러 고대 이집트 비문을 보면 이교도와 그리스도교인의 신에 대한 개념이 사실상 얼마나 유사한지 여실히 나타난다.
신은 오직 하나이시며 함께 존재하는 다른 신은 없도다. 신은 만물을 만든 분이시다 신은 처음부터 있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있었도다. 다른 어떤 것도 존재치 않을 때에도 존재했으며 신이 존재하게 된 후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도다. 신은 태초의 아버지이시다. 고대 이집트의 신 아문은 ‘하나 가운데 하나’로 불렸다. 이집트인 학자 월리스 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신은 또 ‘2인자가 없이without a second’ 존재한다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신은 하나이며 2인자가 없다고 선언했을 때, 그 의미는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그들의 신을 유일한 신으로 선언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그처럼 하나인 신God은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어서 ‘신들gods’이라고 불려 온 자연계의 힘이나 존재들의 의인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이교 신앙 또한 미신적이며 원시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다. 분명 이교 신앙에는 서로 다른 신을 믿는 많은 종파가 있었다.
그러나 버지가 설명한 대로, 소위 ‘신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는 자연의 일부 국면들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신god’ 이라고 번역하는 고대 이집트 낱말은 네테르neter이다.
네테르는 영적 본질, 혹은 원리를 뜻한다.
고대 이집트의 여러 네테르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한 존재Being의 여러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신들gods이란 하나인 지고의 하나님God의 다른 모습이나 다른 국면들이었다(이 번역서에서 ‘하나님’으로 번역한 말은 모두 ‘God’ 이다 ‘신god’ 과 혼동되지 않도록 불가피하게 ‘하나님’으로 번역한 곳이 많은데, 이 ‘하나님God’은 여성성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일관되게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필멸의 육체를 무시하고 오로지 불멸의 영혼을 중시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God은 --- 나아가 이교도 주류 철학의 God까지도--- 여성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땅님[陰, 물성]’ 이 배제된 ‘하늘님[陽,영성]’일 수밖에 없다. : 옮긴이 주).
고대세계에서 개별 신들gods은 흔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신God의 한 국면을 특별히 형언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모든신’을 뜻하는 말인 판테우스pantheus도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라틴어 비문들 가운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를 세라피스나 리베르로 나타낸 것이 있는데, 그 경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인은 곧 ‘세라피스 판테우스’나 ‘리베르 판테우스’로 불렸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교도들은 모두 개별 남신이나 여신 숭배를 통해 하나인 신을 숭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의 다른 국면을 선택한 이웃들과도 충돌할 일이 없었다. 켈수스는 이렇게 썼다.
지고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든, 혹은 그리스어 이름들로, 혹은 인도의 이름들로, 혹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이름들로 부르든, 그건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신god이었던 여호와를 제외한 다른 모든 신격의 여러 국면들을 부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인들은 위와 같은 상식적 이해에서 벗어나 배타성을 갖게 되었다. 이교도들은 그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편협하다고 생각했다. 이교도의 종교적 관용의 정신에서 볼 때 그러한 배타성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티로스의 막시무스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했다.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신성을 알게 합시다. 그리고 신은 하나라는 것을, 피디아스(BC 5세기의 조각가)의 작품이 그리스인에게 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이집트인들에게는 동물 숭배를, 다른 이들에게 강의 숭배를, 또 다른 이들에게는 불의 숭배를 떠올리게 한다면 나는 그처럼 다른 것에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봅니다.
그들로 하여금 다만 알게 하고, 다만 사랑하게 하고, 기억하게 합시다.
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다른 종교를 관용한다고 해서 미신에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동료 이교도들이 맹목적인 미신을 믿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이교도들이 우상숭배를 한다고 그리스도교인들이 비난했을 때, 사실상 그들은 미스테리아 현자들의 말을 되뇐 것에 불과했다.
미스테리아 현자들은 원시적인 믿음을 지닌 이교도들을 수세기 동안 완곡하게 조롱해 왔다.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해 이런 비판을 했다.
그들의 윤리적 가르침에는 새로운 것도, 인상적인 것도 없다. 정말이지 다른 가르침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어리석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혐오를 살펴보자.
헤로도토스가 증언한 것처럼 오래 전에 페르시아인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한 장인(대부분 가장 천시된 신분의 사람!)이 만든 우상이 신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얘기이다. 현명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상을 신으로 숭배한 사람은 벽에 대고 말을 거는 사람만큼 어리석다’.
아테네 철학자 디아고라스(BC 5세기)는 신들을 조롱한 것으로 유명했다. 디오게네스가 그랬듯이, 그는 석상에게 소원을 비는 이유를 질문 받자 냉소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거절 당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크세노파네스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묘사한 신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공박했는데, 풍자적으로 이렇게 평했다. 사람들은 신들이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고 옷을 입었으며, 자신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신이 들창코를 지닌 흑인이라고 말한다.
트라키아인들은 신이 푸른 눈에 빨간 머리칼을 가졌다고 말한다.
암소와 말이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신의 모습을 암소와 말처럼 그릴 것이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허구 인물인 모무스를 내세워, 동물의 머리를 가진 기괴한 신들이 나타난 것에 대해 제우스에게 불평한다. 제우스는 ‘신들의 그런 모습이 꼴사납다’는 것을 자기도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런 신들의 대부분은 상징일 뿐이므로 미스테리아에 입문하지 않은 자는 그런 신들을 비웃지 말아야 한다’고 해명한다.
마찬가지로 켈수스도 이교도 신들의 모습이 입문자들에게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될 뿐이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실명한다.
그런 신들은 ‘보이지 않는 관념들의 상징이며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수의 이교도 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개념이 원시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여러 국면을 ‘신들’로 의인화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지고한 하나님을 인간의 용어로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인동형동성설(신과 인간이 모습도 같고 본성도 같다는 이론)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켈수스는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이 손과 입과 목소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은 ‘하나님께서 가라사대’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 이적을 일으켰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한 하나님은 전혀 하나님이 아니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손도 없고 입도 없고 목소리도 없으며, 우리가 아는 그 어떤 특성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터무니없는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심지어 인간을 위해 창조한 동산을 걷기까지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화를 내며, 질투를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유감스러위하며, 졸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그것은 하나님이기보다는 인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고한 신에 대한 그들의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또한 천사들을 숭배하지 않는가?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은 이교도가 보기에 여러 남신이나 여신과 똑같은 천사들을 숭배할 뿐만 아니라 이교도와 똑같이 ‘신들’에 대해 얘기했다! 교부(敎父) 클레멘스는 이렇게 썼다. 영적 계몽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미래의 삶을 대비한 가르침’이라고. 계몽된 자들은 신들gods이라고 불린다고 그는 설명했다.
계몽된 자는 ‘구원자 하나님이 먼저 임명한 다른 신들과 더불어 왕좌에 앉게 될 것으로 정해진 자’이기 때문이다.
이교도 입문자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하나의 신임을 알라’. 같은 식으로 요한복음서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한 바리새(바리사이) 사람들에게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너희 율법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내가 말하노니, 너희는 신들이노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들gods이라 하느니, 이러한 <성서>는 폐하지 못하느니라.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0:34-36)
초기 그리스도교 철학자 오리게네스는 니케아 신경(信經)을 논할때 ‘두 하나님’과 같은 말을 사용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두 번째 하나님’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물론 삼위일체 교리에는 결정적으로 다신교적 교리가 담겨 있다.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개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지고의 유일한 하나님의 여러 국면에 대한 이교도 개념과 일치한다.
유대교에는 신성한 삼위일체 개념이 없다. 그 개념은 일찍이 이교 신앙에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은 피타고라스 교리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전체와 모든 것은 수 3으로 이해된다. 끝과 중간과 시작은 삼위일체인 전체의 수를 갖기 때문이다’.
수백년 앞서 존재한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한다.
‘하나인 나는 셋이 된다’. 또 다른 문헌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신은 모두 셋이다. ---아몬, 라, 프타. 그들과 같은 존재는 달리 없다.
아몬이라는 이름 속에는, 그가 라이며, 그의 육체는 프타라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는 라와 프타와 더불어 아몬으로 현시되며, 셋은 하나로 통합된다.
소위 일신교라는 것과 다신교 사이의 행간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배워 온 것과는 달리 둘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구분은 유동적이어서 사실상 구분을 한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