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
5장 영지주의 |
최근의 조사 결과 전통적인 견해, 전통적인 결론, 전통적인 ‘사실들’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되었다.
아직은 소수겠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다수가, 열렬히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유난히 어리석고 방탕한 이단이 어떻게 교회 안에서 부상할 수 있었는가의 질문이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그토록 대단했던 영지주의 운동을 뿌리치고 부상할 수 있었는가?
영지주의의 역동적인 생각이 어떻게 독단으로 치부되고 말았는가?- 램플러그(목사)
그리스도교에 대한 영지주의자들의 견해는 훗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세운 문자주의자들의 견해와 정반대되는 점이 너무나 많다. 문자주의자들은 엄격한 권위주의자였다.
반면, 영지주의자들은 신비를 중시한 개인주의자였다.
문자주의자들은 모든 그리스도교인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신조를 강화하고자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다양한 믿음과 실천에 관용적이었다.
문자주의자들은 수많은 복음서 가운데 넷만을 <성서>로 채택했고, 나머지는 악마적인 이단으로 간주해서 불길 속에 던져버렸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은 서로 다른 수백 가지의 복음서를 썼다. 참된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주교가 설교한 대로만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문자주의자들은 가르쳤다.
참된 그리스도교인 이라면 그노시스, 곧 신비한 ‘앎’을 스스로 체험해서 스스로 1명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고 영지주의자들은 가르쳤다!
영지주의자는 혹독하게 억압을 당했다. 그래서 최근까지 우리가 그 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전부가 그들을 비방하며 그들의 기록을 말살한 사람들의 저술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문자주의자들은 영지주의가 그리스도교 사상을 곡해한 것---이교도 교리를 동원해서 예수의 원래 가르침을 혼란시킨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정통 그리스도교는 2천여 년 동안 그런 생각을 고수해 왔다. 성공적으로 반대파를 제거하고 모든 증거를 말살함으로써, 그런 생각은 널리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45년에 이집트 나그 함마디 인근의 한 동굴에서 영지주의 장서가 발견됨으로써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영지주의자들은 스스로 변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장서는 영지주의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한 우리의 기존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영지주의자는 오늘날 이단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스스로를 진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생각했다. <베드로 계시록>이라고 불리는 영지주의 복음서에는, 부활한 예수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거짓 교회imitation church(모방 교회)’라고 질타하는 대목이 나온다.
영지주의자가 보기에 참그리스도교를 곡해한 것은 문자주의자들이었다.
원래의 그리스도교는 모든 입문자가 신비한 앎, 곧 그노시스를 개인적으로 체험케 하는 영적 종교인데, 문자주의자들은 맹목적 믿음을 요구하는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이 보기에, 문자주의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공개적 미스테리아 ---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에게나 맞는 ‘세속적 그리스도교’ --- 만을 가르쳤다.
반대로 영지주의는 참된 ‘영적 그리스도교’였고, 소수의 선택된 사람에게 그리스도교의 은밀한 미스테리아를 가르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의 말은 이단 영지주의자가 한 말이 아니다. 초기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스도교인 두 사람---알렉산드리아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교리 학교를 운영한 클레멘스와 그의 후계자 오리게네스---의 저술에 나오는 말이다.
두 사람은 평생 대단히 존경을 받았고, 오늘날에도 초기 그리스도교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두 사람은 현대의 주류 그리스도교보다는 영지주의를 훨씬 더 닮은 그리스도교를 가르쳤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가톨릭 교회의 성자로 존경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영지주의에 대한 책을 썼고, 영지주의자를 참그리스도교인이라고 불렀다(클레멘스의 저서 <스트르마타stromata> 7장 1절에 이렇게 적혀 있다.
‘영지주의자만이 진정으로 경건하다.…. 참 그리스도교인은 영지주의자이다’ : 저자 주).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처럼 영향력 있고 존경을 받는 지성인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믿어 왔던 것과 달리, 영지주의자가 그리스도교의 변방에서 어슬렁거린 이상하고 하찮은 이단자였던 게 아니라는 증거이기에 충분하다. 반대로 영지주의에는 폭넓고 역동적이고 세련된 영성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 영성은 AD 첫 몇 세기의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 지성인들을 매료 시켰다.
이단자로 낙인 찍혀서 거의 잊혀진 발렌티누스나 바실리데스와같은 위대한 성자들뿐만 아니라, 명성에 전혀 금이 가지 않은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 같은 사람들까지도 영지주의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