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
해외언론평 - 일러두기 - 역자서문 |
해외 언론평
<예수는 신화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복음주의자들은 혐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분명히 이 책을 사악한 것으로 돌릴 것이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의식들은 상당 부분 이교도 전통에 기인한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논쟁적인 명제는 많은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거부당할 수 있겠지만 고대와 현대 문헌을 두루 망라한 꼼꼼한 주석 등을 보면 요즘의 새로 쓰는 역사서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 영국 아마존 치밀한 역사 탐구 명료한 사고, 탐정소설 식 스타일이 탁월하게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책은 수세기 동안 학자들이 밝혀낸 것들을 집대성해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풀이한 역작이다.
그리스도교의 은밀한 비밀이 상아탑을 벗어나 우리에게 환히 드러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비밀을 이 책은 용감하게 웅변적으로 밝혀낸다.
-로저 휴스든 <근대세계에서의 신성한 아메리카와 신성한 여행>의 저자 이 책의 명제가 더욱 널리 알려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수용되기 시작하면 분명 혁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 책의 명제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종교적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세실리 테일러 (<월간 퀘이커교도>지) 생생하고 열정적인 문체로 쓰여진 이 책은 소위 ‘고대의 뉴 에이지’ 라 불리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모호한 기원에 대한 진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학자들은 수백 개의 각주와 철저한 문헌고증 동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 앨바 엘리거드 교수 (<예수 : 그리스도 이전의 100년>의 저자 일러두기 미스테리아 Mysteries: 영어 Mysteries, 그리스어 Mysteria 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11세기 이상 성행한 신비한 의식이나 비밀가르침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우리말로는 보통 ‘신비의식’으로 번역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렇게 번역하면 문맥이 통하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다.
의식 이상의 한 종교, 혹은 교리를 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이 명사에는 기본적으로 ‘신성한 비밀’ 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미스테리아’로 음역했다.---좀더 정확히 음역하면 ‘미스터리야’ 지만.
그리고 경우에 따라 문맥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의식’ 이나 ‘종교’, 혹은 ‘신앙’이라는 말을 ‘미스테리아’ 뒤에 덧붙였다.
---영문 원서에서도 그런 경우가 꽤있다.
한편, <성서>에서는 ‘mysteria’ 가 신성한 ‘비밀’ 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신약 복음서에는 이 말이 세 번 나온다.(마태복음13:11, 마가복음 4:11, 누가복음 8:10)
그리스도교 Christianity, 그리스도교인 Christian : 대중적으로는 ‘그리스도교’ 보다 ‘기독교’ 라는 말이 우리에게 더 친근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리스도’를 ‘기독’ 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독’ 이라는 말이 죽었는데도 기독교 라는 말을 쓰는 것은 다소 얄궂다.
번역어로 채택한 ‘그리스도교’, 혹은 ‘그리스도교인Christian’ 이라는 용어가 발음하기엔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스도 Christ’ 는 그리스어 ‘Christos(크리스토스)’를 음역한 말로, 메시아 곧 구세주를 뜻한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호칭에 있어 ‘하느님’과 ‘하나님’이라는 두 가지 표현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개신교에서 쓰는 ‘하나님’으로 표기 했다. <성서> 인용문은 대부분 우리말 개역 <성서>대로 옮겼지만, 명료한 의미 전달을 위해 다소 번역을 바꾼 곳도 있다. 이때, 저자가 인용한 <성서>와 번역이 다른 을 참고 했다.
중요 용어와 인명, 도서명에 대한 영문자는 ‘찾아보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영문 원서 : (Harmony Books, NY, 1999.) 역자서문 인식의 전환을 위하여 지구상에서 한반도만큼 온갖 이질적 종교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 샤머니즘, 명리학(사주팔자 등)은 물론이고 원불교, 동학에서 파생한 종교, 단군 신화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 신앙 등 온갖 종교가 모두 활성화되어 있다.-이슬람교의 교세가 비교적 약할 뿐이다.
단일 교회로는 그 규모와 신도 수가 세계 최대인 순복음교회가 한반도에 있다. 한반도는 통일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는다는 사람이 꽤 있다.
게다가 고대 그리스-로마신화도 여간 인기가 높은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종교적으로 그만큼 성숙해 있을까?
이 책은 현대에 밝혀진 결정적인 여러 증거를 기초로 해서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추적하여 여러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일단 가벼운 충격부터 짚어 보자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그리스-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물론 이것은 옮긴이의 과장 어법이다). 올림포스의 제신 숭배는 권력자들의 국가 체제 유지용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들은 과연 어떤 신을 믿었는가?
오늘날 그리스-로마 신화를 유포하는 신화학자라는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아는 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열렬히 믿은 신화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신화를 얘기해 주는 그리스-로마 신화 서적을 역자는 본 적이 없다(과문한 탓이겠지만).
이 책의 두 저자는 증거에 입각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4세기에 로마 제국의 권력을 등에 업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이교 신앙을 철저히 말살하고 중상 모략했다고.
현대의 대다수 신화학자들조차 진상을 모를 정도로!
어쨌거나 그리스-로마 신화는 문학적으로 탁월한 데가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로마의지식인들은 올림포스의 온갖 신들 이야기를 경멸했다.
그런 사실도 모르면서 그 신화를 유포하는 것은 당시의 참된 종교상을 말살하는데 은연중 동참하는 행위일 수 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너무나 유치하다. 변덕스럽고 끼리끼리 파벌을 만들고, 걸핏하면 인간을 강간한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고대 그리스인들이 고작 그런 신들을 믿었다고 보는 것은 우리 인류의 정신사를 자기 비하하는 것일 수 있다.
이교 신앙은 원시적이고, 미신적이며, 비도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신앙에 비하면 그리스도교가 더 뛰어난 종교이므로, 로마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시사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교 신앙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문자주의)보다 영적, 도덕적으로 훨씬 더 뛰어난 신앙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들은 과연 어떤 신을 믿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가? 그들이 믿은 신의 이름은 사실 중요치 않다. 그들은 여러 신이 아니라 하나인 신을 믿었고 그 신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 신의 화신인 신인(神人)의 이름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우시르),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로마 시대에는 바쿠스나 미트라스등으로 불렸다.
저자는 이 모든 이름을 오시리스-디오니소스로 묶어서 얘기한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12월 25일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결혼식 때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 냈으며, 영성체 의식으로써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혹은 나무에 매달려) 죽었으며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했다! - 예수 이야기와 똑같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런 신인(神人)을 믿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부터였다! 이 신앙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미스테리아 Mysteria(영어로 Mysteries)이다.
이 미스테리아에 대한 언급은 역사의 아버지로 통하는 기원전 5세기의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플라톤의 저술 등 여러 곳에 나온다.
문자주의자들이 미스테리아를 말살했지만 100퍼센트 말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미스테리아는 조지프 캠벨(1904~1987) 등의 연구를 통해 비로소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
두 저자는 주장한다 - 그리스도교는 고대 미스테리아에서 기원한 것이다! 역사에 느닷없는 단절이란 없다.
변화의 연속이 있을 뿐이다.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인 유대인들은 예수 미스테리아를 만들었다.
이 예수 미스테리아를 그리스도교로 발전시킨 핵심 인물은 바울이다.
그런데 바울은 사실상 영지주의자였다.
바울은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예수는 디오니소스와 동일한 신화적 인물이었다!
저자가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문자주의자들은 바울의 편지를 위조하고 첨삭해서 바울을 문자주의자로 날조했다. 저자는 정동 혹은 가톨릭(보편적) 그리스도교라는 말 대신 문자주의 Literalism, 그리스도교라는 말을 사용한다.
정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다 하더라도 예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문자주의가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들 문자주의자들은 예수의 탄생과 부활의 신화를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믿으라고 강요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편협하게 변질시켰다. 또한 광범위하게 <성서>를 위조하고 변조했으며, 이교 신앙과 영지주의를 철저하게 말살했고 중상 모략했다.
이 책에는 그것에 대한 증거가 폭넓고 깊이 있게 제시되어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이단으로 치부되는 그노시스파, 곧 영지주의자들의 그리스도교가 원래의 그리스도교이다! 그렇다면 과연 영지주의 그리스도교는 어떤 종교였는가?
두 저자는 다음에 펴낼 책에서 깊이 있게 다루겠다고 했지만, 이 책에도 영지주의의 핵심이 충분히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영지주의의 가르침이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이 믿은 이교 신앙의 가르침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진짜 종교는 미신적이고 원시적인 게 아니라,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고등 종교였다.
이교 신앙에서 발전한 영지주의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본문을 잠깐 인용해 보겠다. 이미 너는 부활했다 너 자신이 이미 부활했음을 깨닫도록 하라. 너-참된 너-는 타락한 것으로 보이는가?
너 자신을 살펴보라, 그러면 너는 이미 부횔 했음을 알리라(이미 부활을 했다는 생각은 나그 함마디의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 저자 주. 이런 생각을 비롯해서 영지주의의 여러 핵심 사상은 선(禪) 사상과 놀랍도록 흡사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너는 이미 부처다! 육조 혜능이 이런 깨달음을 얻은 것은 7세기 중반이었다. 그런데 나그 함마디 문서의 집필 시점은 줄잡아 3~4세기니까 몇 백 년 앞서 있다 : 옮긴이 주)
선불교에서 육조 혜능과 신수화상의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혜능의 동문 사형인 신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썼다.
몸은 곧 깨달음이 자라는 나무이며, 마음은 깨달음이 비치는 밝은 거울이다. 때마다 부지런히 마음거울을 털고 닦아, 먼지가 앉는 일이 없게 하라 이 게송은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아야 한다는 인간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게송을 반박한 혜능의 게송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깨달음이 자라는 나무가 따로 없으며, 깨달음이 비치는 마음도 따로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本來無一物), 어디에 먼지가 앉겠는가.
이 게송은 몸과 마음을 닦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이 곧 불성 자체, 부처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깨달은 부처, 이미 부활한 그리스도라는 인식의 전환만이 필요할 뿐이다.
혜능이 본래무일물을 말하듯이, 영지주의자들은 오직 하나님만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나의 참된 정체성은 ‘육체적인 나’가 아닌 불멸의 영혼 이라는 것을 깨달은 영지주의 입문자들은, 나는 곧 하나님 God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나님 혹은 부처만 존재할 뿐 본래무일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영지주의와 선 사상의 경지는 너무나 흡사한 데가 있다.
이러한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이교 신앙의 가르침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교 신앙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
물론 고대 그리스-로마의 주류 철학은 동양사상과 큰 차이가 있다.
동양사상이 땅과 하늘의 조화 곧 음양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서구 주류 철학은 땅, 곧 육체를 경시했다.
그래서 서구사상이 이성적 진리를 추구했다면 동양사상은 심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차이 등이 발생한다.
아무튼 원래의 그리스도교, 곧 영지주의는 지극히 합리적이며 개방적인 종교였다.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가르쳤으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입문자에게 불합리하게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무조건 믿기만 하면 천국이 보장된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역자에게는 항상 궁금했던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예수를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 치고, 예수는 왜 다른 성자들보다 500년이나 뒤늦게 출현했을까 하는 것이다.
기원전 5, 6세기는 경이로운 시대였다.
이때에 공자와 노자, 인도의 석가와 마하비라(자이나교의 시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등의 성자, 혹은 현자들이 대거 출현했다.
역사상 위대한 천재가 출현할 때에는 항상 집단으로 대거 출현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예수만이 5, 6세기 늦게 홀로 출현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명쾌히 설명한다. 예수 이야기는 기원전 5, 6세기신화의 연장 선상에 있다.
이 책을 이해하면 서구 종교사의 문맥이 제대로 보인다.
이 문맥을 끊어 놓은 것이 문자주의자들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두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해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교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아마도 저자의 주장이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견강부회한 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으며, 예수가 다만 신화적 인물일 뿐이라는 증거는 압도적이라고 말하며 증거를 제시할 뿐,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큰 맥락에서 저자는 오로지 인류의 영적 진화를 돕고 싶다는 일념에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리스도교가 편협성을 버리고 영지주의의 열린 자세를 회복함으로써 종교적 진화의 흐름을 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저자는 바울의 잊혀진 가르침을 회복하고자 한다.
바울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보편적 영혼, 곧 하나님의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바울이 가르친 그리스도교의 핵심 비밀은 다음과 같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다!(골로새서 1 :27) 그리스도는 우리의 바깥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곧 그리스도(구원자)이며, 우리 모두가 곧 부처이다. 다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승영조(문학평론가) |
이책은 (Harmony Books, NY, 1999.)를 승영조씨가 번역하고 동아일보사에서 2002년 6월에 출판한 책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반기독교적이라 하여 기독교측에서 출판을 못하도록 동아일보사에 압력을 가했고(신문 불매운동 등), 동아일보사가 이에 굴복 출판을 취소했다.
그래서 지금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독자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이책을 읽어보는 것은 서양문화를 이해하고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넷 버전을 만들기로 결심했고, 두달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이책을 만들었다. 원본책과 똑같이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나, 약간의 부주의와 실수로 더러는 오자가 있을수 있다. 이점 양해를 구하며, 원본에 있는 어느 목사님의 추천의 글과, 찾아보기는 생략했다. 조금이라도 읽는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책의 판권 소유주인 동아일보사와 승용조씨께 무단복제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사장되는것 보다는 이렇게라도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낫다고 자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