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
영적 재생 |
예수는 카탈렘나katalemna, 곧 동굴에서 태어나 어머니 마리아 품에 안기고 죽은 후에는 동굴에서 부활하여 세 마리아 앞에 나타난다.
이러한 ‘순환적’ 신화 주제는 미스테리아에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일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에서, 그의 기적적인 탄생과 기적적인 부활은 동일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희생양으로 죽은 그는 곧바로 다시 신성한 아기로 태어난다.
그가 태어났고 그가 죽어서 묻힌 동굴은 자궁과 무덤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리스도교인 작가 미누키우스 펠릭스의 글에 따르면, 오시리스 수난극에서 사제들은 죽은 오시리스를 위해 이시스를 애타게 찾았다. 결국 작은 소년의 출현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는데, 그것은 신인의 재생을 상징한다.
재생한 신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해마다 찾은 것을 잃고, 잃은 것을 찾기를 그치지 않으리라’.
부활의 신화를 이해하는 열쇠는, 미스테리아 신화에서든 예수 이야기에서든 죽음이 곧 재생을 뜻한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팔린게네시스palingenesis, 곧 ‘재생’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한다.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가 ‘자발적인 죽음’이라고 부른 것을 행하는데, 그런 행위를 통해 그들은 영적으로 재생했다.
예수가 사도들에게 ‘재생’ 할 기회를 준 것과 마찬가지로 오시리스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두 번째로 태어나게 하는 자’이며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는 자’였다. 오시리스의 낮은 수준의 자아가 ‘죽으면’ , 미스테리아 입문자 또한 진통을 겪으며 높은 수준의 자아로 태어난다. 진통을 하는 여인들에게 주는 쓸개즙을 디오니소스의 대역인 히에로판테스에게 주었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게 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며 죽음과 탄생을 동일시한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진통을 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 16:19-22).
낮은 수준의 자아가 죽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재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에 암호화된 비밀 가르침의 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 이야기 또한 하나의 신화일 수 있을까?
그 신화 또한 동일한 영적 가르침을 암호화하고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