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은폐

거대한 은폐

가로수 0 2,661 2007.07.14 18:10
거대한 은폐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설명이 터무니없는 말로 들린다면, 그 이유는 오직 기존의 견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구를 더욱 밀어붙이자 전통적인 그림이 완전히 해체되기 시작했다.
종교적 분파와 권력 투쟁, 위조 문서와 허위 인물들, 편집되고 추가된 편지들, 역사적 증거의 대대적인 말살의 세계에서 우리는 허우적거렸다.
결국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에만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추리소설 속의 범인을 알아내기 직전에 있는 탐정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배달 착오로 알려지지 못한 고대의 정의(justice)를 밝히기 직전에 있는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진짜 증거가 무엇인지를 몇 번이고 거듭해서 엄밀히 검증하는 동안, 우리는 로마 교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진실을 총체적으로 왜곡한 것임을 알아냈다.
실제 증거에 따르면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가 전적으로 옳았다.
우리는 기만을 당해 왔으며, 영지주의야말로 원래의 그리스도교였고, 그들의 무정부적인 신비주의는 제도권 당국자들에 의해 말살되었으며 이윽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은폐 행위가 잔혹하게 자행되었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이토록 거대한 은폐 행위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은 유세비우스(AD 263-339)라는 인물이다.
그는 AD 4세기 초에 전설을 수집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이고 날조해서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그리스도교의 초기 역사를 집필했다.
이후의 모든 역사는 유세비우스의 의심스러운 주장을 토대로 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인용할 다른 정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죄다 이단자로 낙인 찍혀서 제거되었다.
이런 식으로 4세기에 편집된 거짓 문서가 우리에게 확고한 사실로 전해 내려왔다.

유세비우스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에게 고용되었다.
이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고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자에게 권력을 부여해서 이교도와 영지주의자들을 말살하게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주장인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를 원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신조인 니케아 신경(信經)을 만들게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이라는 이 신조에 동의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인은 제국에서 추방되거나 침묵해야 했다.

로마 제국의 재건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 ‘그리스도교인’ 황제는 니케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아내를 목졸라 죽였고 아들을 살해했다.
그는 임종할 때까지 일부러 세례를 받지 않았다.
잔혹한 행위를 계속하다가 최후의 순간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용서 받고 천국의 자리를 보장 받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교회 박사’인 유세비우스로 하여금 아첨으로 가득한 자기 전기를 쓰게 해서 자신을 미화시켰지만, 사실상 그는 앞서의 로마 황제와 똑같은 괴물이었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역사’가 로마인 폭군에게 고용된 한 사람이 지어낸 것이고, 그것이 온통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정말이지 놀라운 일 아닌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일레인 페이절스는 이렇게 썼다.



역사를 쓰는 자는 승리자들이다.
그들은 제멋대로 쓴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 설명에서 자기들은 ‘정통’이고 적들은 ‘이단’이라고 정의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가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고-종교적 용어로 말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었다고-선전했다.
그들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그 함마디에서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발견됨으로써 근본적인 의문이 다시 제기되었다.



역사는 철저히 승리자에 의해 씌어진다.
적절한 역사를 꾸며 낸다는 것은 항상 정치적 조작을 위한 병기를 제작하는 것과 같았다.
2천여 년 후 할리우드에서 ‘서구가 어떻게 졌는가’가 아니라 ‘서구가 어떻게 이겼는가’를 말하기 위해 ‘카우보이와 인디언’ 이야기를 꾸며 내는 것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로마 교회는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승리의 역사를 꾸며 냈다.

역사는 단순히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너무도 빈번하게 역사는 단지 현상을 정당화하고 찬양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역사는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감추는 게 많다.

받아들여진 역사에 감히 의문을 단다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실이라고 들이 왔던 이야기가, 알고 보니 날조된 허구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친절한 ‘우리 아저씨’ 스탈린 이야기를 들으며 커 온 러시아인들이, 사실은 스탈린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탈린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은 스탈린이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영웅들을 실제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주장도 전혀 믿기지 않았다.
스탈린이, 심지어는 정적들의 이미지를 아예 말살시켜 버렸고 역사적 사건들을 완전히 날조했다고 주장했을 때에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실 아닌가!.

다른 모든 사람이 믿는다면 그것은 진실임에 틀림없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을 감히 의심함으로써만 밝혀 질 수 있다.
너무나 널리 믿어져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도 의심해 봐야 한다.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는 그처럼 열린 정신의 산물이다.

처음 우리에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것은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명백하고 평범해 보인다.
로마 교황청은 고대 이교도의 성지에 세워졌다. ---새로운 것은 항상 옛 것 위에 세워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자체도 앞서 존재한 이교도의 영적 신앙을 토대로 삼고 있다.
끊이지 않은 역사적 연속체의 형태로 그리스도교가 고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비롯함으로써, 영적 아이디어가 점진적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것보다 더 그럴듯한 가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이단적이고 충격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오직 역사적으로 너무나 오래, 너무나 널리 믿어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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