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1부



나의 기독교 경험담

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1부

인류애 0 1,850 2003.04.28 14:41
안녕하십니까?

Secular Web에 글중 무신론자가(과거 근본주의자) 기독 중증인 연인에게 쓴 글을 읽으며 아래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저자는 자기 경험담과 함께 자신이 회의론자가 되면서 기독교적 믿음을 버린 여러 근거를 제시한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 중 먼저 경험담을 번역해 올립니다. 물론 직역이라 의미는 갖자 소화하시고요^^

워드 문서 편집기로 총 13페이지 정도 되어 나누어 올립니다.(참고로 이전 기독교 비평에 올렸던 영문, 왜 나는 더이상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영문만 45페이지 정도 되어 천천히 번역하고 있습니다.)

---------------------------------------------------------------------------------

How Questioning Has Changed Me: A Journey into Skepticism
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회의론(무신론)으로의 여행
출처 http://www.geocities.com/questioningpage/Mystory

By Merle Hertzler
멀 허츠러



멀 허츠러는 공인 전문 엔지니어이고 기독교에 대한 연구에 평생 동안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11학년 이후로 매년 성경을 통독했었고-모든 절의 한 단어도 빼놓지 않고-많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내 종교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고 배웠다. 나는 메노파(개신교파) 가정에서 자랐다.14살 때, 한 자유주의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담임했다. 나의 가족과 나는 이 교회를 떠나, 성경을 의심하지 않는 근본주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근본주의는 나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내 머리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여과되어야 했다. 나는 심각한 의심 없이 그 안에 푹 잠겼다. 나는 지옥을 몹시 두려워했으며 종종 그것을 걱정하며 밤잠을 못자곤 했다. 근본주의는 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예수만 믿으면 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내가 옳게 했나?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맞게 했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반복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횟수를 따졌으면, 아마 세계 기록을 세웠을 텐데! 결국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내 마음을 챙겨주시리라 결론 내고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다른 모든 이들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지옥에서 벗어날 이 소식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 나는 한 독립된 세례 교회에 나갔는데, 그것이 내 인생의 모든 면을 제어했다. 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놓칠 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성서지대(the Bible Belt; 미국 남부 근본주의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 현 미 대통령도 이 지역 출신임)의 거리를 활보했다. 이 교회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 승리자가 되도록 독려 된다. 목사는 록음악을 듣는 사람, 심방 저녁에 집에 있는 사람, 교회에 십일조 적게 내는 사람, 영화 극장에 가는 사람 혹은 데이트할 때 손잡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며 강단에서 힘차게 설교한다. 우리는 정확히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세뇌되었고, 순종적으로 따랐다. 그게 우리가 알았던 유일한 인생이었다.

대학 4학년 때, 그 목사는 다른 교회로 옮겼고 내가 다니.던 교회는 분열되면서 망가졌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내 삶의 전부였고 그것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교회의 부정적 측면을 보았다. 일부 교회 기능들에 대혼란이 생겼다. 한번은, 송영(altar call)으로서 있는 그대로 를 반복해서 부르고 있었을 때, 성도들이 지루해져서 찬송소리가 중간에 사라져 정말로 끝낼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세상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구원 받은” 생명들들 보면서 그것이 도대체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다가 TV방송에서 짐 존스와 가이아나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 교주의 명령에 자살을 감행한 그 불쌍한 사람들의 얘기는 나에게 너무나도 실제적으로 보였다.  이 사람들은 한 종교지도자에게 헌신했기 때문에 그들의 목숨을 바친 것이다.  나는 그들과 매우 비슷하게 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리 순종적으로 따랐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종교는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도 또한 현혹되었었나?

나를 괴롭힌 또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11학년 이후로 매년 성경을 통독했었고-모든 절의 한 말도 빼놓지 않고-많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당신은 구약에 충만한 살인, 탐욕 그리고 교만의 이야기들을 읽은 적이 있는가?그것들의 타당성을 당신은 한번이라도 의심한 적이 있는가?나는 더 이상 성경을 신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졌다.  성경에 대한 나의 믿음이 시들면서 냉담이 자리잡았다.  인생에 대한 의미 심장한 철학 없이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나의 기독교적 희망은 사라졌다. 졸업 후 첫 2년 동안 내 삶을 채웠던 절망감에 대한 설명을 시작할 수 없다. 삶의 목적이 없었다. 나는 행복하기를 원했지만, 그게 뭔 상관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부터 200년 뒤에, 유골이 행복한 사람의 것이었는지 슬픈 사람의 것이었는지 누가 상관이나 할까? 아마 아무도 신경 안 쓸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에게는 걸렸다. 나는 행복하기를 원했다. 나는 냉대, 쓰라림, 발버둥, 좌절, 분노 그리고 혼란을 알았다. 나의 기독교적 희망이 희미해졌을 때, 왜 나는 다른 어떤 것을 찾지 않았던가? 나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을 몰랐다. 나는 기독교 학교들, 주일 학교들 그리고 성경 공부들 하에서 성장했었다. 성경만이 내가 알았던 유일한 희망이었으나, 이제는 부적절하게 보였다. 다른 곳을 쳐다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그것이 바로 종교가 가질 수 있는 구속이다. 성경 없이 좋은 인생을 사는 방법을 누군가가 내게 말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해가 흐른 뒤에야 비로서 나는 배웠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나는 기독교 서적들에 의지했다. 나는 나의 근본주의적 세례교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의도가 없었다. 그러나 좀더 온순한 기독교파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읽어감에 따라 나의 영혼이 재충전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다시 그에게로 인도하시고 계셨을까? 나는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주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기독교가 나에게 냉담보다는 훨씬 더 잘 듣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따금 공원에 가서 엎드려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을 홀로 뵙기 위한 신성한 장소를 찾곤 했다. 나는 상쾌해지곤 했다. 나는 이것을 기독교가 진리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씨. 에스. 루이스였다. 그의 철학이 나와 통했다. 가장 좋은 면은 그가 자신의 요지를 확립할 때 단지 성경 구절만 인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그가 몸소 이것들에 대해 실제로 숙고하였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나는 그의 저서들과 과거에 내가 들어온 근본주의자의 가르침을 결합하여, 하나의 인생 철학을 형성하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자신과 타인을 반항적 죄인들로 보았다. 나는 내가 하나님께 거슬러 반항하였고 이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의기소침했었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내게 불친절한 것들을 행하였을 때, 나의 철학이 그것을 “설명했다”-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악한, 죄의 천성에 굴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적 죄의 천성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씁슬해져서, 때론 사람들을 잡고 그들이 얼마나 나쁜지 알게 하려 하곤 했다.  나는 종교가 내 입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분노가 내재해 밖으로 못 나오게 하도록 배웠는데, 그것은 나의 타락한 성품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전의 자아”는 나빴고 매일 이 자아에 죽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나의 기본적 필요와 욕구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오늘날의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의 가르침들과 비교되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것이 많은 교회들의 표준 생각이었을 때를 기억한다. 내 인생에서 그 당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책들 중의 하나가 씨.에스. 루이스가 지은 The Problem of Pain(고통의 문제)였다. 나는 이 유명한 기독교 작가를 인용함으로써 이 관점이 어떠한지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다.

씨.에스. 루이스는 쓰기를:
이전 죄의식으로부터의 회복은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나쁘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가 정말로 이 그리스도의 가정이 참임을 느낄 때 까지, 비록 우리는 주가 구하러 오신 세상의 일부이지만, 우리는 그의 말씀이 선포되는 청중의 일부가 아니다.

루이스는 우리가 악한(bad) 인간이고, 하나님의 우리의 매우 악함에 노하셨다고 가정했다. 루이스는 그리고나서 어떤 기독교인들이 “모든 존재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를 내시는 것은 무슨 요구를 하는 것인가?”라고 물을지 모른다고 제시한다. 루이스는 이것을 불경스러운 질문이라 부르고 답하기를,

한 인간이 참 죄의식을 느끼는 바로 이 순간에-이런 순간들은 우리 인생에서 극히 드물다-이 모든 불경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어떤 죄스런] 행위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성품이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가증스럽고 아니 가증스러워야 하고, 만일 인간을 초월한 권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가증스러운 것임을 정말로 알고 있다. 이를 완화 시킬 수 없는 혐오로 여기지 않는 신은 선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악하다고 그저 말할 때, 하나님의 “진노”는 야만스러운 교리처럼 보인다; 우리가 우리의 악함을 감지하자 마자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온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결과로 나타난다.[4]

이 관점은 우리가 죄인임을 느끼도록 부추긴다. 죄는 극히 드물다! 루이스는 단지 우리의 행위가 악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바로 그 품성이 하나님께 가증스럽고 가증스러워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우리 인간들이 아담의 죄로 인해 해충(사회의 쓰레기)이라 설명한다. 하나님이 아담의 죄 때문에 우리를  탓할 수 있나? 그의 답을 보자:  

이론적으로 내 생각엔, 우리가 “예, 우리는 해충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해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쨌던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핑계로 느껴지는 것이 결코 아닌, 우리가 해충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우리를 하도록 이끄는 특정 행위들의 그 어떤 것 보다도 더 큰 우리의 부끄러움이자 슬픔이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2284 아들 왈 - ...꼭 우리 조상님 욕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댓글+16 래비 2005.09.10 5527 5
2283 수치심을 억누르며 고백합니다. 댓글+19 가로수 2007.08.04 13922 4
2282 (펌)암튼 개독들이 벌이는 일들은 코믹이다.. 한잔 2003.07.04 1903 3
2281 제 아내도 개신교입니다 댓글+1 엑스 2003.02.19 2352 3
2280 부흥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나원 어처구니가 없서서리... 댓글+5 가운데 2007.05.06 2962 3
2279 제가 개독에 미쳤을때... 댓글+8 안간다!천당 2005.11.04 8167 3
2278 기독교는 애들한테까지 헌금을 받아쳐먹어야하나 -_- 댓글+2 기독교정말싫어 2011.07.02 4588 3
2277 나는 왜 더이상 기독교인이 아닌가? 켄달 홉스 - 2부 인류애 2003.07.03 1801 2
2276 수원역에서 생긴일... 카르마 2003.07.03 1939 2
2275 너무 짜증납니다!! 안티교회 2003.07.03 1740 2
2274 [질문]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 2003.06.30 1818 2
2273 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3부 인류애 2003.04.28 1649 2
2272 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2부 인류애 2003.04.28 1632 2
열람중 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1부 인류애 2003.04.28 1851 2
2270 [인용] 새내기 아줌마의 고민과 웃기는 리플... 오디세이 2003.04.25 2027 2
2269 기독교인들..읽어주세요.. 비탄이 2003.04.20 1978 2
2268 나는 광신도들때문에 기독교가 싫다. 광신도가싫어요 2003.03.10 1880 2
2267 평생 비 기독교인들이 받는 스트레스.. 민성혁 2002.11.12 2036 2
2266 불쌍한 기독교인들 KIKOO 2002.10.12 1802 2
2265 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다??? (by 브리트라) 댓글+1 오디세이 2002.08.08 2064 2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80 명
  • 오늘 방문자 1,063 명
  • 어제 방문자 4,428 명
  • 최대 방문자 5,411 명
  • 전체 방문자 1,527,557 명
  • 전체 게시물 14,416 개
  • 전체 댓글수 38,042 개
  • 전체 회원수 1,668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