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독교 경험담 |
세뇌 brainwashing 란 뇌를 씻는단 말이다. 한 신흥종교단체에선 회원들에게 뇌 안의 전두엽이나 편도체 같은 기관들을 꺼내 흐르는 맑은 물에다 씻어내는 상상 수련을 시킨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온몸이 시원해지는 기분과 함께 뇌 속에 쌓여 있던 스트레쓰와 묵은 감정이 한꺼번에 사라짐은 물론이요 아울러 업무 능력이나 학습 능력도 향상하여 나날이 생활해 나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세뇌하면 이런 그림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상상의 그림으로 소뇌, 연수 따위를 잘 꺼내 두손에 들고서 벽계수가 흐르는 시냇가에 주런히 앉아서, 자신감을 회복해보겠다고 헹궈대는 호러무비 속 한 장면이…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세뇌는 좀 다르다. 씻어내긴 씻어내는 것인데, 그 대상이 다르다. 일테면 어느 사람이 당신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하자. 그때 당신은 슬핏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지? 상대방의 머릿속에서 그 반대하는 주장만 싸악 씻은 듯이 지워낼 방법이 없을까?
세뇌란 보통 세뇌주체가 세뇌대상자의 머릿속에 있는 특정한 사고방식을 지우는 작업이다. 이때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세뇌 요령이 필요하다. 말하기 쉽게 당신이 세뇌주체인 경우라고 가정하고 그 미립을 펼쳐본다.
1. 처음부터 당신이 어떤 신념을 믿게 할 조바심에 조급하게 닥아세워 세뇌대상자를 씨까슬러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세뇌대상자는 전부터 믿어온 반대 신념 counterbelief 에 더 매달리며 그참에 완강한 태도로 아예 굳어질 위험이 크다. 첨에는 무엇보다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를 유도해내면서, 장막처럼 가로놓인 경계심이 스물스물 녹아나도록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 친밀감이 절로 피어나는 분위기 조성에 많이 신경 써야 한다.
영화나 연극, 연예인 얘기나 화제가 된 시사/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감상, 터놓고 말하기 힘든 억울한 속사연 따위 상대가 말을 많이 하게 일견 헤너른 자세를 보여주는 한편, 경청하는 그새에도 말하는 이의 태도로부터 숨은 정보들을 캐내어 앞으로 어떻게 상대를 요리할지 머리를 굴릴 여유가 있다면 당신은 세뇌꾼 소질이 있다고 봐도 좋다.
2. 당신이 일단 세뇌대상자와 이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뇌씻기‘ 작업에 들어가봄직하다.
2-1. 세뇌대상자를 익숙한 환경에서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다. 익숙한 환경은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신념들을 강화하기 때문에 거기서 작업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이 배로 들어간다. 낯선 환경에 옮아온 상대가 감정적으로 의지하게 될 사람은 그 자리에 있는 당신 밖으로는 없다. 그 의존하려는 심리를 잘 봐둬야 한다.
2-2. 그다음 이정도 친해졌으니 됐지 하고, 무턱대고 달려들어 서둘러 신념을 주입하려고 까불다간 일을 그르친다. 세뇌대상자 사이에 싹을 틔운 친밀감을 한번 더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전에 당신이 한 말을 듣고 생각해 본 건대요 또는 집에 가서 생각해 보니까 전에 얘기한 영화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라는 식으로 슬슬 맞장구를 쳐주며 말문을 연다. 친밀함이 더 깊어지게 한다.
2-3. 다음은 서서히 당신이 주입하고자 하는 신념에 관심을 보이도록 유도하는 단계다. 그러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당신의 신념을 밝히기엔 아직 때가 적당하지 않다. 주입하려는 목표 신념 target belief 을 그럴듯한 다른 말로 포장하거나 귀맛 좋게끔 꾸며 은근스레 끄집어내야 한다. 이때 전에 하던 화제를 다시 끌어내 다소 삐딱하고 삼삼하게 들리게끔 개성적인 의견을 제시하여 세뇌대상자의 반발심을 조금 끌어내는 방법도 좋다. 세뇌대상자는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차부턴 당신의 말에 주의하게 된다. 그 집중력이 높아갈 때, 급소에 해당하는 말마디깨나 흘리면 당신은 작업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2-4. 앞에서 당신은 세뇌대상자한테 듣기 좋게 위장한 신념을 은근히 제시하였다. 물론 상대는 마주이야기하고 있는 물밑에서는 밀고댕기는 어떤 일이 진행하고 있는 줄 잘 모른다. 상대는 그저 아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감탄하며 속으로 당신에 대한 부러움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이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화제거리로 자연스레 꺼낸다. 그러나 이때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 신념의 겉보매를 바꿔 짐짓 사심 없이 얘기하고 있다는 태를 보여야 한다. 이러면, 상대방은 머리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 신념에 의문을 갖게 된다.
2-5. 다음에는 무엇보다도 단어 사용에 주의할 단계다. 상대는 물론 눈치 못 채겠지만 당신이 골라 쓰는 단어들은 기실 당신이 주입하고자 하는 신념과 밀접한 의미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런 단어들을 적절히 구사하여, 세뇌대상자의 신념이 현실적이지 않고, 산불쑥하니 무용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한다. 세뇌학에서 보면 인간은 필요의 인간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이 불필요한 것이란 말은 짜증나고 불쾌한 일이다. 하물며 정신적인 신념 체계가 비현실적이고 별 소용 없다는 은근한 비난은 반발심과 더불어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당신은 신변잡기를 주절거릴 때, 신선한 견해를 제시하여 상대의 마음을 고무한 적이 있기 때문에, 당장에 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주 예민한 상대가 아니라면, 당신 입에서 인차 무슨 신기한 소리가 나올지 들어나 보자 하면서 그대로 눌러앉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상대에게 근심걱정없이 사는 삶이나, ‘대의명분’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당신이 인제 할 모든 얘기가 고통 없는 삶이나 영원한 행복, 또는 인류애나 정의감에 밀착한 말처럼 들려 한턱 보고 들어가게 된다.
2-6. 세뇌대상자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면, 이제는 세뇌대상자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곳으로 꾄다. 상대는 당신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고, 마음속으로는 당신처럼 똑똑하고 다양한 생각을 갖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또 당신처럼 정의롭게 보이거나, 이타적으로 보이기를 희망한다. 당신의 절도 있는 행동거지와 침착함은 상대를 매료하여 당신에게 몰입하게 한다. 이정도로 상대의 마음을 홀려 놓고 나면 나머지는 절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상대는 시키는 대로 다 하게 된다.
상대는 군소리없이 순종하며 자신이 현재 원하고 있는 그런 존재로 발전하고 있는지 그 증거를 구한다. 적절한 때 눈에 보이는 증거를 제시하면 상대는 황홀해난다. 어떤 거짓말을 하든, 어떤 궤변을 펼치든, 당신과 세뇌대상자 사이에 형성한 믿음의 관계 때문에 먹혀 들어가니 속 끓일 것 없다. 상대는 기꺼이 당신의 하녀요, 머슴이 되어 사고 능력 박탈자가 되어버렸다.
고문도 때에 따라선 필요하다. 덤으로 세뇌대상자가 매저키스트가 되어가면 갈수록 당신은 새디스트로 거듭나는 놀라운 체험까지 겪음하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면 박탈, 음식물 조절 따위를 실행하게끔 하여 이 단계에선 기존 사고 습관이나 몸버릇을 싹뚝 다끊도록 한다.
2-7. 세뇌대상자가 이제 심리적, 신체적으로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져 해바라기처럼, 굴광성 식물처럼 당신만 바라보게 되면,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신념 체계를 거리낌없이 낱낱이 대못 박듯 인상적으로 밝혀야 한다. 상대방은 굶주린 개처럼 당신의 생명수 같은 말을 날름날름 받아먹는 모습을 확인하면 그걸로 고만이다.
이렇게 하면 지리하던 세뇌 작업이 끝나고 꼭두각시 하나가 예쁘게 만들어진다. 상황에 따라 위의 단계들은 여러 회 반복할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생략하거나 대상에 따라 특별 처방을 끼어넣을 수 있다. 그동안 당신은 참말 수고가 많았다.
그러니까, 세뇌는 궁극적으로 '왜 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도록 왜라는 질문이 나올 여지를 막아버리는 방법'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