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관련된 나의 인생 경험---3편 (태극과 음양 2부)



나의 기독교 경험담

기독교와 관련된 나의 인생 경험---3편 (태극과 음양 2부)

자호 2 1,364 2006.07.27 13:31
아래의 그림은 책에 실려있는 그림을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 제가 그림판으로 그린 것입니다.
 
 
복희는 남신이고 여와는 여신입니다.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으며 몸이 서로 무한대로 꼬여 있어서 분리 불가능함을 나타냅니다.
 
해와 달은 밝음과 어두움,남성성과 여성성 등 모든 대비되는 쌍을 나타냅니다.
 
이 그림은 한(漢)나라 때의 화상석(건축에 사용된 돌에 새긴 그림)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태극 그림이 흰 올챙이(검은 눈)와 검은 올챙이(흰 눈)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도는 것으로 보입니다.
 
 
카프라의 그림은 순환 운동이 음극과 양극 사이의 직선운동(낮은 차원)으로 투영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말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도)가 음과 양으로 논의가 가능해 집니다.
 
저는 이것이 그래도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그 중 바른 길이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물론 태극은 도와 음양이라는 차원들을 동시에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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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천론'의 시작이다.
 
 
天行有常, 不爲堯存, 不爲桀亡. 應之以治則吉, 應之以亂則凶.
 
천행유상, 불위요존, 불위걸망. 응지이치즉길, 응지이난즉흉.
 
彊本而節用, 則天不能貧. 養備而動時, 則天不能病. 修道而不貳, 則天不能禍.
 
강본이절용, 즉천불능빈. 양비이동시, 즉천불능병. 수도이불이, 즉천불능화.
 
 
하늘의 움직임은 일정함이 있다. 하늘이 성군 요 임금을 흥하게 한 것도 아니고, 폭군 걸 임금을 망하게 한 것도 아니다.
 
하늘의 움직임의 일정함에 따라 다스리면 길하고, 그에 따라 혼란되면 흉해지는 것이다.
 
근본을 튼튼히하고 아껴 쓰면 하늘도 가난하게 할 수 없고, 기르고 준비하고 때에 맞춰 움직이면 하늘도 병들게 할 수 없다.
 
도를 닦고 어긋나지 않으면 하늘도 화를 내릴 수 없다. 
 
 
'천행유상'의 '천(하늘)'은 전국시대 말(2200 - 2300년 전; 예수나기 수백년 전)에 천지의 법칙성을 이해하게 된데에 자신감을 얻은 '자 
연'이라는 뜻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천'은 당시 일반인의 종교적 의식에 남아 있는 하늘이다.
 
순자는 예(禮)에 따른 인간 행위에 의해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는 면에서 유가(儒家)지만, 당시의 도가나 음양가(陰陽家)의 자연 
관을 흡수하였다.
 
순자는 "하늘은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문제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순자의 유학이 동양의 전통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다른데로 빗나갔다.
 
다시 음양론으로 돌아가자.
 
 
3. 검은색과 흰색의 두툼한 부분은 상대쪽을 향하여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다.(운동성과 순환)
 
음과 양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것으로 서로 바뀌며 순환하는 것이다.(상호전화; 相互轉化)
 
 
4. 검은 색과 흰색의 두툼한 부분에는 각각 조그마한 흰 원과 검은 원이 들어 있다.
 
이것은 음과 양이 자체 내에 대립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완전한 음이나 완전한 양은 실제 세계에는 없는 것이다.(연속성)
 
이것을 '양중유음, 음중유양 (陽中有陰, 陰中有陽; 양중에는 반드시 음이 있고, 음중에는 반드시 양이 있다)'이라 표현한다.
 
 
태극의 그림은 음양론을 이상적으로 조화롭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실제 세계는 언제나 음과 양의 불균형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의 지적 활동은 대체로 이러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노자가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과 '무위(無爲; 함이 없음을 함)를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런 성향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음양에 대한 이러한 논의와 표현이, 실제의 다차원적이고 순환적 실상을 가능한 한 사람들간에 전달이 가능한 형식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주역(周易)>과 음양론
 
 
<주역>은 음양론에 대한 최고의 언어적이고 기호적인 표현이다.
 
<주역>은 고대로 부터의 점서(占書)로 생각되는 경(經)과 후대의 해설인 10편의 전(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10편을 십익(十翼; 열개의 날개)이라 부른다.
 
십익 중 '계사전(繫辭傳)'은 <주역>의 철학적 의미를 해설한 것이다.
 
'계사전'은 다음과 같이 웅장하게 시작된다.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 動靜有常, 剛柔斷矣.
 
천존지비, 건곤정의. 비고이진, 귀천위의. 동정유상, 강유단의.
 
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 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
 
방이유취, 물이군분, 길흉생의. 재천성상, 재지성형, 변화견의.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곤이 정해진 것이다.
 
낮고 높은 것이 펼쳐져 있으니 귀하고 천한 것이 제자리에 있다.
 
움직임과 고요함에 항상됨이 있으니 굳고 부드러움이 나뉘는 것이다.
 
성향이 같은 종류가 모이고 만물이 서로 무리지어 나뉘므로 길흉이 생긴다.
 
하늘에서는 모습을 이루고, 땅에서는 형체를 이루니 뭇 변화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자연(천지; 天地)에 대해서 가치 판단의 단어(존비; 尊卑)를 쓰고 있고, 귀하고 천한 것이 고정되어 있다(귀천위의)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이 유가와 도가를 구분짓는 특징이며, <주역>이 유가의 성경(聖經)이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귀하고 천함에 대한 도가의 말을 들어보자.
 
 
<장자>'추수' 편에 황하(黃河)의 신, 하백(河伯)과 북해(北海)의 신, 약(若)의 대화가 나온다.
 
대화 중 졸지에 '우물안의 개구리(정중지와; 井中之蛙)가 된 하백은 정신이 버쩍 들어 '귀함과 천함, 크고 작은 것을 어떻게 아는가?'하고 가르쳐달라고 하자 북해약이 대답한다.
 
귀하고 천함에 대한 부분만 짧게 인용해 보자.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이도관지, 물무귀천; 이물관지, 자귀이상천; 이속관지, 귀천부재기.
 
 
도라는 면에서 보자면 사물에는 귀천이 없다.
 
그러나 사물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귀하다 하고 상대는 천하다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귀천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종법적(宗法的) 혈연 사회에서는 귀천이 나면서부터 정해져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장자는 이 불가능한 귀함을 얻으려면 최고 권력자의 치질을 빨아야 할 정도로 자기를 죽이고 아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나는 음양론적 사고 방식이 처음에는 자연에 대한 관심과 관찰에서 생겨났다고 본다.
 
자연(천지)에 대한 관심이 전무(全無)한 공자와 맹자의 유학에 음양론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전국시대 중기 이후 도가(道家)와 음양가(陰陽家)의 영향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때 이후에 정치상의 실천이라는 실제적 목적으로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의 종합과 절충이 일어났다.
 
그 결과 <주역>이 현재의 모습과 비슷하게 성립된 것은 전국시대 말부터 한(漢) 나라 초기라고 생각한다.
 
 
공자로 대표되는 유가는 예(禮)를 기초로 한 종법적 질서를 확고히 유지함으로써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한다.
 
 
나는 <주역> '계사전'의 '건곤정의'와 '귀천위의'의 부분은 새로운 한(漢)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귀족층(제후; 諸侯)의 이
 
익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전의 종교적 배경(예; 禮 / 제사; 祭祀)에 철학적 배경을 추가한 것으로, 대립하는 음(陰)과 양(陽)의
 
상호전환(相互轉還)이라는 대원칙을 위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편 끝
 
 
 
 
 
위의 글은 예수나기 몇 백년 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논의의 합당성의 문제는 있으나 21세기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2천 수백년 지난 지금 세상에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수백만의 사람이 예수니, 성경이니 하는게 어처구니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의 90% 이상, 아니 대부분이 종교적 근본주의자라니....
 
 
저는 과학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세계관을 포함하지 못하는 종교는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쓰레기 속에 폐지 몇 장이 들어 있다고, 그걸 재활용하자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사람들이 개혁파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쓰레기통 뒤지다 묻은 오물 닦느라 멀쩡한 종이 수십 장 버리는지는 생각도 못하는....
 
 
 

Comments

스스로 2006.07.29 01:28
책에 있는 그림을 그대로 옮길려면

아래한글 워드프로세서에 스캐너로 뜨서 옮겨 놓을 수 있습니다.
그걸 그림 화일로 지정하든지해서 여기 글 쓸 때 화일로 올려서 나타나게 할 수 있는데
알아보세요.
스스로 2006.07.29 01:31
한단고기에 여와가 흙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나오던데

그 여와가 여기에 나오는 걸 첨 알았습니다.

여와가 누군지 몰랐거든요. 우연히도 여호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둘 (한단고기와 성경) 중에 하나는 표절했나 생각햇엇는데
여기에 근거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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