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2부



나의 기독교 경험담

의문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2부

인류애 0 2,187 2003.04.28 16:06
1부에서 이어집니다.  올리는데 자꾸 딴지가 걸려 혹시 국/영문 혼합일지도 몰라 국문만 올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잘못을 통해서가 아니고 아담이 한 것 때문에 해충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루이스는 비록 우리가 그렇게 태어났지만 우리가 해충인 것은 부끄럽고 슬픈 것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루이스는 계속하기를,

이제 피조물의 타당한 선은 그 창조자에게 복종하는 것이다—그의 피조물이라는 사실만으로 주어지는 관계를 지혜롭게, 자유의지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제정하기 위하여. 우리가 아는바 세상에서는 문제는 어떻게 이 자발적 순종(self-surrender)을 회복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개선이 되어야만 하는 불완전한 피조물들이 아니다: 우리는, 뉴먼이 말했듯이, 항복해야 하는 반항아들이다.[6]

그는 결론짓기를,

따라서 매일 죽어야 하는 필요성: 우리가 아무리 자주 불순종의 자아를 꺽어도 여전히 그것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 정신은 만사가 형통일 경우 자기 의지를 결코 포기하는 시작 조차도 안한다.[7]

여러분은 감이 오는가? 루이스는 기독교도나 불신자 둘 다를 사회악(해충)으로, 하나님과 싸움을 멈춰야 할 필요가 있는 간악한(nasty; 영국인이 미국인을 빗댈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형용사들 중 하나, 나머지는 ugly, stupid, fat) 반항자들로 묘사하고, 고난은 하나님이 이 변화를 달성할 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이 책이 그 당시 나의 인생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 천박한 인류애의 관점을 지지하는 수많은 성경 구절들을 찾을 수도 있었다.(예를 들어 욥기 42:6, 이사야 64:6, 누가복음 17:10, 로마서 3:10-19)

지금 그것을 보고 내가 그다지 건전한 관념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철학이 내가 탈퇴한 독립 세례교 전통과 비교하면 온순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무관심보다는 더 잘 작용했다. 이 견해가 내게 살아야 할 이유를 부여했다. 나는 그것이 옳기 때문에 작용(worked)했다고 가정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작용한 이유는 그것이 내게 목적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것이 나의 믿음을 지지하는 한 큰 기둥임을 알았다—기독교는 적어도 나에게는, 작용하기 때문에 진실임에 틀림없다.

내 믿음이 근거하는 두 번째 큰 기둥이 있었다. 이 기둥은 절망적이던 시절에도 굳게 서 있었다. 나는 헨리 모리스와 젊은 창조주의자들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지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가장 논리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지구가 약 6000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논증했다. 노아 시절에 대홍수가 추측컨대 지구를 덮었다. 이 홍수가 많은 동물들을 묻었고 이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석들이 되었다고 들었다. 나는 이쪽 편만 듣고 확신했었다. 성경에 있는 다른 것들도 믿기엔 어려웠었으나 나는 이 두 큰 믿음의 기둥들을 갖고 있었다—기독교가 내가 아는 바 작용했다는 믿음, 그리고 창세기가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한다는 믿음.

1987년에 나는 필라델피아주 근교로 이사했고 한 흥미로운 복음 교회를 발견했다. 나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을 만났고 곧 여러 활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나는 본향(a home)을 찾았고 행복했다. 나는 하나님께 매일 이야기 했고 그와의 개인적 관계에서 발전했다.

이 교회에는 폭 넓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건 내게 새로웠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해하는 기독교와 의견을 달리했다. 몇 몇은 진화론을, 혹은 적어도 지구가 수백만 년이 되었다라는 것을 믿었다. 다른 이들은 내 종교철학이 틀렸고 다른 철학들이 더 잘 맞다고 내게 말했다 큰 차이들이 존재했다. 나는 우리가 사악한 내적 자아를 경멸해야 된다고 배웠다—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우리가 사악한 분노가 내재하여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그들은 악이 내재하는 이유가 우리가 분노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며 모든 분노가 단지 밖으로 나오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가르쳤다. 나는 우리가 내적으로 악하다고 가르쳤다—그들은 우리가 내적으로 선하며 우리가 악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가르쳤다. 나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과신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가르쳤다—그들은 자부심이 낮아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큰 문제라고 가르쳤다. 나는 우리가 스스로 죽을 운명이라고 가르쳤다—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자아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쳤다. 나는 많은 혹은 우리의 생각이나 욕구가 악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가르쳤다—그들은 이러한 욕구들이 자연스러운 감정들이며 우리가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마귀라고 가르쳤다. 나는 하나님이 사람들이 우리를 학대하는 것을 허락하셨고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성품을 연단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죽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배웠다—그들은 학대란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상담을 요할 정도로 우리의 정신을 손상시켰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나에게 내 철학이 남을 낙담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이 약이 왜 내가 삼키기에 어려웠는지 이해하는가? 이것이 내 기독교 믿음의 한 거대한 기동이었다—나의 성경이 뒷바침하는 철학이 들어맞는 믿음. 이제 여기에 그것이 않 들어맞는다고 내게 말하는 기독교도들이 있었다. 나로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하나님이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거스른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의 경험과 기도들이 내 철학이 더 잘 들어맞는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들의 경험과 기도들은 그들의 철학이 더 잘 들어맞는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누가 옳은가?

나는 곧 가장 잘 들어맞는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다른 철학들에 내 눈을 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몰몬교, 이슬람, 바하이, 유대교, 위카 그리고 무신론을 믿는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가 자신의 방법이 잘 들어맞으므로 자기 종교가 최고임을 증명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자기 것이 다른 어떤 기술보다도 더 좋다고 주장하는 간증과 함께 많은 심리적 해결책들에 대해 듣고 다녔다. 스스로의 경험이 자기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 상태를 보고 물었다, “’모두가 이기고 상을 타야 한다’는 것이 진실입니까?”[8] 라고.

나는 여러 종교들을 가진 이 사람들을 인터넷 그룹들의 선행 주자인 컴퓨서브 논쟁 포럼에서 만났다. 나는 종교란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과도 이 주제들에 대해 활발히 논쟁했다. 이것이 나의 영적 인생의 초점이 되었다.

이 논쟁들 중에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논쟁거리를 어떻게 만드느냐 였다. 제이 아담스, 씨.에스. 루이스 혹은 토마스 자스가 특정 관점에 대해 나와 동의하는 어떤 것을 썼다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 충분지 못했다. 결국, 사람은 그가 표출하는 거의 모든 종교적 관점에 동의하는 누군가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더 효과적인 논지가 필요했다. 내가 즐겨 찾던 소스는 마틴과 데이더 봅건의 정신이단 인식 사역이었다. 그들의 철학이 내 것과 거의 일치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심리학적 실험들을 언급하였고, 종종 과학 학회지들도 인용하였다. 나는 내가 실험들을 설명할 때, 사람들이 대개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하며, 내가 쓴 글에 대해 덜 공격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과학적 실험들과 그것들을 다루는 과학 학술지들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기적으로 필라델피아 공립 도서관 그리고 나중에는 펜실바니아 대학교까지 일련의 여행을 시작했다. 내 입장에 호의적인 글들에 대해 목록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내 쪽을 지지하는 더 많은 공격 수단을 얻으려고 도서관을 가곤 했다.

이 여행들이 시간 소모적이 되어감에 따라, 1992년에 나는 내가 호감 갖은 학술지인 인성과 사회 심리학 학술지를 정기 구독하였다. 연간 247달러에 이 가입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근본 희구를 나타냈다. 헌신을 한 후 나는 각 호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기사들을, 그들이 나의 주장에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큰 변환이었다. 나는 단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읽고 있었다. 나는 배우려고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곤혹스러운 몇 개의 기사들을 읽었다. 나는 사고를 억압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그것들을 강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읽었다.[9] 나의 참 생각들을 제어하려는 내 노력들이 그 억압된 사고들을 더 강력하게 만들고 있나? 나는 자부심의 기능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 자신을 악한 죄인으로 보는 내 관점이 해로운 것이었나? 서서히 내 믿음의 첫번째 큰 기둥에 미세한 균열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건 느리고 미묘했지만, 균열들은 시작되고 있었다.

한 운명의 낮선 왜곡이 나를 창조-진화 논쟁의 한 가운데에 놓았다. 이건 내가 원하지 않던 곳이었다—이러한 싸움들은 종종 매우 추잡했다. 갑자기, 내가 거기 한가운데 있게 되었다. 나는 해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유전자들의 복잡성이 진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진척을 보았으나, 누군가가 그러한 모든 화석들이 수억년 간의 진화가 없었더라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나는 그것들이 노아의 홍수때문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나의 주장은 한판에 깨졌다. 나는 지표면 아래 있는 모든 암석들 중에서 어떻게 우리가 바람모래로 만들어진 암석들을 발견하는지 설명하라고 요구되었다. 바람은 확실히  홍수위 하에서 모래를 날렸을 리가 없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내가 관건들에 대해 익숙치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홍수 주제는 피했다. 나는 이 간단한 문제나 노아의 홍수와 관련된 다른 많은 어떤 문제들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만족할 만한 답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인식하고 있던 진화 작용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나는 이 애씀을 다른 곳에서 설명하고 여기서는 반복할 필요가 없다(그 이야기들을 읽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하라). 18개월이 지나 먼지가 가라앉은 후 나는 진화론 쪽으로 전환했다. 그것은 완전한 변화였다. 내 믿음의 한 큰 축이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한 축—보수적 기독교 철학이 잘 맞는다고 하는 것—이 심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 상태를 위한 모든 종류의 심리적 치유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떤 연구가들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치유의 특정함이 아니고 희망을 세우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다정한 도우미와의 돌봐주고 먹여주는 관계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주장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내게 기독교가 맞게 작용하는지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기독교 내에서 성경의 특정함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돌봐주는 사람들과 양육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았다. 내 자신의 주장에 걸려들었고 답이 없었다. 나는 차이를 만든 것이 기독교인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더더욱 큰 문제점을 발견하고 있었다. 나는 토론회에서 성경이 대량 학살(즉, 사무엘상 15장) 명령하고, 폭력주의(즉 시편 137편)를 칭찬하고 노예제(즉 출애굽기 21장)를 허락했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회의론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논지에 대항해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그런 것들이 성경에 있었다는 것을 수년 전 성경을 읽은 이래로 알고 있었으나, 그 잘못들에 대해 무시하라고 배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내 믿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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