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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을 정죄할 자격이 있는가?

--- 0 4,576 2005.06.14 06:07
▶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을 정죄할 자격이 있는가?(by 몰러)


이단 판정은 일종의 기독교 분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전세계에는 사람의 성씨만큼 많은 종류의 종교와 미신이 있지만, 그 중 기독교계열(엄밀히는 기독교에서 파생된)에서 가장 많은 수의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생성되었다. 유일신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기독교에 비해, 다른 종교는 다원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자기 종교에 악영향을 끼치지만 않는다면 아류종교를 이단이나 사이비로 규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교의 경우 사이비를 정의하는 경우는 있으나 이단판정은 공식적으로 거의 하지 않는다.
소위 기성종교라는 그룹에 스스로를 편입시킨 기독교 교파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이단과 사이비들, 가톨릭,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말일성도회), 제7일 안식일교, 안상홍교, JMS, 영생교, 만민교회, 다미선교회 등에 대해 타종교를 대할 때보다 더 극단적인 반감/적개심을 보이고 또 매도하고 있다. 자체정화 차원으로 보자면 일순 타당한 자세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을 살펴볼 때 누워서 침뱉기식의 억지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 사전"에는 사이비종교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이중, 삼중교리 및 교리의 무분별한 혼합
2. 교주의 신격화
3. 시한부 종말론(심판설) 주장
4. 반사회적, 반윤리적 성격
5.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
6. 운명/숙명론 강요/유도



기독교인들은 위의 사이비 종교의 특성 정의에 대해 토달지 말자. 개신교나 가톨릭의 통일된 정의이기 때문이다. 웃기는 것은 위의 사이비 종교에 대한 특성이 기독교에게 적용하면 기독교도 사이비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순서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강조해둘 것은 이 글에서 기독교라 함은 개신교의 기성교파, 즉 장로, 감리, 성결, 침례, 순복음 등 한기총 소속 교파라고 잠정 정의한 점이다.



1. 이중, 삼중교리 및 교리의 무분별한 혼합

이, 삼중 교리로 치자면 기독교는 이단이나 사이비들보다 더 심한 양태를 보인다. 일부 이단들의 경우 기독교보다 성서에 더 충실한 경우도 있다.

신약과 구약에서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구약에서는 저주하고, 질투하고, 몰살시키고 하던 양반이 갑자기 사랑의 신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협박은 남겨두었다. 안 믿으면 구원 못받고 지옥의 심판을 받으리라고.

이방전도에 대한 문제는 어떠한가? 유대인과 영원한 언약을 한 신이 갑자기 무슨 이유로 만민족을 돌보겠다고 나서는가? 예수조차 이스라엘의 어린 양만을 돌보러 왔다고 호언하고는 부활 후에 말을 번복한 이유는 무엇인가?(물론 이방 전도에 대한 예수의 명령은 후대의 조작이다.)

율법의 해석과 적용문제, 특히 일상생활 적용문제에서는 일관성이 완전히 결여되었다. 야훼는 영원한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받도록 하였다. 지금 할례를 받은 기독교인이 있는가? 돼지고기가 든 음식을 먹는 기독교인은 어떤 근거로 율법을 어기는가? 안식일 문제로 넘어가면 제칠일안식교인들의 논리에 어떻게 항거할텐가? 그리고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삼위일체와 관련된 논쟁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이기는 기독교인을 필자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에게 기독교는 일관성 있는 종교라고 선전/광고하고 있다. 사실 성서를 살펴보면 창조에서부터 타락, 대속, 부활, 종말, 심판, 영생과 영사(영원한 지옥)로 이어지는 일관성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창조의 사실성, 타락과 원죄의 합리성, 대속의 수용성, 부활의 의미, 심판과 영생의 불공정성 등에 대한 회의를 잠시 접어두고 본다고 해도, 이. 삼중교리성은 일관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교리의 혼합문제로 넘어가 보자. 모세오경만 봐도 벌써 4가지 이상의 전승이 나타난다. 성서 전체적으로는 어떤가 보라. 구약의 여러가지 전승, 선지자(예언자)들의 행적, 짜라투스트라적 요소, 바빌론 유수에 의한 영향, 여러차례의 유대인 분산, 마카베적 요소, 에세네와 그노시스적 해석, 헬라철학의 접목과 나아가 아예 헬라화되어 버린 것들, 바울의 혁명적 교리해석과 전파사역, 교부들의 억지 섞인 해석 등등...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 중에서 한 두 가지를 제거했을 때 과연 기독교가 존립할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기독교인들은 위에 열거한 것들에 대해 이중, 삼중의 교리가 아니며, 또한 교리의 혼합도 아니라고 우기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바이블의 다른 구절을 예로 들면서 갖가지 변명을 늘어 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명을 하는 순간 그 변명 자체가 바로 이중 교리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2. 교주의 신격화

비록 비율로 보았을 때는 일부일지 모르지만 상당한 수의 목회자들이 내심 조용기 목사 같은 성공이나 JMS 같은 절대권력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아니 어떤 때는 일부 정도가 아닌 대다수가 그러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제대로 된 신학교 출신이라면 분명히 삼위일체의 문제점을 알 것이다. 나아가 삼위일체의 문자적 의미를 부정하고 예수의 신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목사가 부지기수일 것이라 판단된다. 이 자리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교인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고 얼버무리는 것을 탓하지는 않겠다. 다만 예수의 신성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신격화된 사이비 목사(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목사들)들은 예수가 신이 아니면서도 신격화된 과정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차용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심적인 목회자(또는 후보자)라면 예수의 신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더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간,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신(神)이라 자처해도 이를 반박할 근거가 사라질 것이다.

삼위일체의 일부로서 성부와 성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니케아 공의회의 강령은 신앙을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통일시키고자 하는 강박감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다. 유일신을 강조하려니 예수는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반대로 하면 유일신 기조가 깨져 버리니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리만큼 좋지 않았다. 삼위일체를 부정했다가 화형 당한 이는 몇이며, 교회의 분열 후 생긴 반목과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얼마인가?

이러한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예수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교주는 신격화되었다. 종교개혁이라는 불길을 지핀 부싯돌들 중의 하나인 오캄의 윌리엄 수사가 주장한대로 신앙과 이성을 분리했었으면 이러한 억지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억지로 논리적 완성을 추구하다가 더 웃기는 비논리를 만든 것이다. 삼위일체 문제에만 한정하면 통일교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이 더 합당하다 할 것이다. 삼위일체를 가지고 이단판정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이단임을 인식하지 못한 소치일 뿐이다. 기독교에게 있어서 "교주의 신격화"는 이단과 사이비 판정의 잣대가 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는 신이 아니니까. 각 복음서에서 예수가 말한 아버지는 누구며, 유대인들의 공격에 예수가 불교의 교리를 차용한 듯한 발언(요한복음 10장 34~38절을 보시라)을 한 것은 무엇인가? 4복음서의 엉터리에다 억지 섞인 구약인용을 맞다고 인정해 준다 해도 예수는 "신의 아들"이지 신은 아니다.



3. 시한부 종말론(심판설) 주장

기독교는 종말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다만 시한부 종말론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종말론은 그것이 시한부이든 아니든 간에,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불합리하다. 우선 종말은 심판, 구원 및 상벌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지만 심판이란 개념은 죄의 성격부터 제대로 정의되기 전에는, 그 의미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논할 것이 못 된다. 또한 천국과 지옥으로 표상 되는 사후의 상벌체계라는 것도, 믿음의 유무 같은 아주 저급한 기준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창조주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가 된다.

기독교가 이단판정에서 시한부 종말론만 거론하는 이유는, 바이블에 나타난 예수와 그 제자들은 반복적으로 종말을 언급했는데, 종말론 전체를 부정한다면 예수의 위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그때는 아무도 모르며, 도둑같이 온다"는 경구(마태24:36)와 혼인잔치의 비유(마태22장)로써 무시한적인 종말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상 종말론이 대두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종말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 일반 신자들이나 회의적인 사람들이 불평/항의를 하면 좋은 핑계거리를 바이블에서 인용하여 제시한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베드로후서3:8-9)

성경... 참 편리하고 좋은 책이다. 어떤 항의가 있어도 그에 대한 핑계 거리를 얼마든지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위 인용 구절을 살펴보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종말은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곧바로 다음절에서 주님의 날은 도둑 같이 온다고도 말한다. 도무지 논리하고는 담쌓은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할 기독교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의 손을 빌려 성경을 썼다는 것인데,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을 쓰게 하신 분을 두고 공의로운 하나님이라 칭할 수 있는가. 논리적 일관성이라도 있었다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바이블의 내용을 오인하여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이쯤에서 기독교인들은그것은 비유이다, 모순을 통해 진리를 감추신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와 같은, 신을 위한 변론이 나타나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바이블의 수많은 논리적 모순들이 혼란을 주는 것 이외에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함정을 파놓고 거기에 빠졌으니 영원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공의라고 할 수가 있는가?


또 다른 예를 보자.

내가 진정으로 너희(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23:36)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제자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누가9:2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마가13:30, 누가21:32)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습니다.(로마서13:11)

여러분께서도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야고보서5: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베드로전서4:7)

자녀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적그리스도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요한1서2:18)


제자들이 했던 말은 일단 제쳐놓고 보자. 예수가 공언한 종말의 임박론과 베드로(베드로가 쓴 것인지도 불분명하다)의 서술 중 어느 것에 더 권위를 둬야 하는가? 예수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기 전에 종말이 와야 하는가, 아니면 제자에 서술에 따라 연기되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예수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한 실없는 인간이 될 것인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예수는 분명히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 논의가 여기까지 이르면 기독교인들은 "세대"라는 단어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미와 다르게 제시한다. 한 세대(a generation), 즉 통상 30년을 뜻하지 않고, 한 시대(an age)를 뜻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구원(salvation)을 구조(relief)나 구출(rescue)의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도 기독교인들은 아무 말도 말아야 할 것이다.



4. 반사회적, 반윤리적 성격

어떤 종교가 반사회적인가, 반윤리적인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 종교 집단과 관련하여 나타난 역사적 사실과 현상, 그리고 그 종교의 교리를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기독교 집단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현상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순결한가? 일제시대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류 기독교가 보인 자세를 보면 아주 정권 친화적이다. 지금 정통을 자처하는 주류 교단 중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던 주기철 목사가 최근에야 목사직분으로 복권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기독교가 반일의 선봉이었던 것마냥 호도하기 위해 그러한 이미지에 걸맞는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이 바로 주기철 목사였던 것이다. 신사참배 이외에도 많은 기독교단들이 부일 협력을 담보로, 선교의 자유를 확보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1980년 8월, 개신교 지도자들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라는 행사를 하였다. 이는 바로 당시 전두환 장군의 헌정질서 훼손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오늘날 개신교계에서는, 대형교회의 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목사의 여신도 강간과 비행 등은 타종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물결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된 가운데서도, 한기총을 비롯한 개신교계는 "붉은 악마"의 개명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이를 "성급한 일반화"라고 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이런 현상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성급한 일반화"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계는 자정노력이 미비했으며,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기독교계의 주류가 되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주류들은 성경에 입각하여 비행을 저질렀고, 자정의 목소리는 바로 교리 때문에 사그라들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기독교의 교리를 살펴보자. 버틀런드 러셀은 기독교의 반사회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의 출현과 더불어 세상에 퍼지게 된 편협성은 기독교의 가장 기이한 특징의 하나로서, 그것은 유대인의 정의관과 유대인의 신만이 실존한다는 그들의 신념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어쨌든 그것은 유대인, 특히 그들의 예언자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정의관과 종교 이외에 다른 종교를 관용하는 것은 사악한 일이라는 관념을 강조하게 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관념이 오리엔트 역사에 지극히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

"복음서에 나타난, 가족을 반대하는 부분은 마땅히 받아야 할 만한 주의를 받지 못하였다. 교회는 예수의 어머니를 존경하기는 하나, 예수 자신은 이러한 태도를 별로 보이지 않았다. 즉 여자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한복음 제2장 4절)란 것이 예수가 그의 어머니께 한 말이었다.
또한 예수는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태복음 제10장 35 37절)라고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은 교리를 위하여 혈연 관계를 끊을 것을 뜻하는 것이니, 이것이 즉 기독교가 전파됨에 따라 이 세상에 생겨난 편협과 깊은 관계가 있는 태도인 것이다."
- Bertrand Russell, <Why I am not a Christian>중에서

러셀의 말대로, 기독교의 특성은 "공존과 배려"보다는 "편협과 배타"에 가깝다. 이 사실은 역사가 증거한다. 한편 가족간에 종교적인 불화가 생기면 십중팔구가 기독교인에 의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어느 결혼 정보회사의 조사 결과, 연인간의 종교간 불화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은 단연 개신교였다. 실제로 많은 개신교 여성들이 배우자의 조건으로 "크리스챤"을 꼽는 것도 이 경우의 단적인 예이다. 심지어는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을 마치 악마와 타협하는 것처럼 불경스러운 사람으로 매도하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어느 목사는 기독교 방송을 통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기독교인은 지옥간다"라고 설교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그 자체를 애국심이나 가족애, 인간에 대한 믿음보다 우선 순위로 두어야 할 것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위에서 보듯이, 예수는 자신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제자로서 합당치 않다고 말한다. 기독교의 원죄설은 인간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모든 책임을 돌림으로써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강조하면서도 기독교의 신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찬양을 강요한다. 이런 무자비한 교리를 뒷받침해 주는 호교론적 변증은 결국 로마서 9장의 옹기장이의 비유로 귀결된다. 그릇 빚는 옹기장이가 귀하게 쓸 그릇을 만들든, 요강을 만들든, 그릇이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그릇은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깨버리지 않은 것만으로 그릇은 옹기장이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이성, 논리, 보편적 윤리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 예를 들어,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을 범해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걸 선(善)으로 본다. 아내를 파라오에게 팔아 넘긴 아브라함도 선하게 본다. 다윗이 우리아의 처 밧세바를 빼앗아 낳은 아이를 죽이는 벌을 내린 것도 선이다. 또 다윗이 여호와가 시키지도 않은 병적 조사를 한 죄의 대가로 인해 무려 7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백성들이 죽게 된 것도 선이다. 그나마 7만 명밖에 안 죽은 것은 야훼신의 인정(仁情)이다.

이런 것들이 과연 윤리 교육에 도움이 될 수가 있을까? 바이블의 내용들이 오히려 올바른 윤리관의 형성을 방해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기껏해야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과 마찰을 일으키고 혼동을 주는 일 이외에 무슨 쓸모가 있을까?


5.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이란 이단의 정의에서 기성종교의 범위가 모호하다. 하지만 기성종교에 기독교를 포함시켜 준다고 해도,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을 따졌을 때 개신교를 따라잡을 종교는 없다. 우리의 민속 신앙, 예를 들면 장승이나 무속 신앙을 미신타파라는 명분으로 공격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개신교이다. 기독교가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면, 민속 신앙 또한 종교이다. 어째서 민속 신앙만 미신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오히려 민속 신앙은 기독교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이 땅에 뿌리 내린 진정한 의미의 기성 종교이다. 이러한 기성 종교를 미신, 기복신앙이라고 깔보고 비난하는 종교가 도대체 어느 종교인가? 성령 부흥회가 도대체 무당의 굿판과 무엇이 다른가? 안수로 병을 치료한다 하여 병자들을 꼬이고, 예수 믿고 사업 잘 된다는 간증이 판을 치는 마당에, 기복 종교를 비하하는 것은 어인 일인가?

사실 기성이란 말을 넣을 필요도 없다. 기성 종교든, 신흥 종교든 단지 타종교에 대한 적개심만을 따져 보아도, 개신교는 단연 제일이다. 천주교와 불교는 물론, 민속 신앙, 이단으로 규정한 교파에 이르기까지, 개신교파의 타종교에 대한 반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도 모자라 서로간에 다툼을 거듭하여 갈가리 분열된 종교가 바로 개신교이다. 개신교의 가장 큰 특징이 이단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6. 운명/숙명론 강요/유도

운명론, 숙명론을 강조하고 신자들을 유도하는 기독교계열 사이비와 이단들은 사실 성경의 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 기독교는?

성경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일관된 기조는 학교에서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바로 종말에 대한 기다림이다. 종말의 때에 이르러 이미 죽은 자까지 구원 받기 위해서는 살아 생전 하나님과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예수의 죽음은 부활과 재림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고, 재림은 심판과 종말과 영원한 구원의 조건이다.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역사들이 바로 예수탄생과 대속을 위한 과정이자 예언이라고 우기는 것은 바로 기독교인들이 아니던가? 극단적인 종말론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기독교 성직자와 교인들은 "나중에 받을 상위"를 위해 열심히 믿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바치도록 가르치고 또 따르고 있다. 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더 웃기는 건 구원 받을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명책" 운운하는 기독교인들이다. 다만 안 믿으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에 열심히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묵시문학인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및 이사야서의 일부분은 예정/운명설의 극치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보면 예정/운명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들이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배우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묵시문학을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정통을 자처하는 개신교파 중에 가장 많은 신도수를 확보하고 있는 장로교의 경우, 칼뱅의 예정설을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운명론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된다. 예정설이 바로 운명론이 아닌가?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자신들이 만든, 이단 판별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이단의 특성을 고루 갖춘 종교인 셈이다. 어느 것이 이단인지 정통인지 구별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이런 기준은 도대체 왜 만들어 놓은 것인가? 누워서 침뱉기 하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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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 &nbsp; &nbsp; 답변 : ▶기독교의 진짜 해악은 맹신으로부터 온다 --- 2005.06.14 4457
498 &nbsp; &nbsp; 답변 : ▶선행보다 악행에 더 많이 쓰이는 기독교의 신념 --- 2005.06.14 4546
497 &nbsp; &nbsp; 답변 : ▶예상되는 기독교인들의 반응 --- 2005.06.14 5048
496 &nbsp; &nbsp; 답변 : ▶맺음말 --- 2005.06.14 3605
495 [질문6] 안티들이 비판하는 교리는 기독교에서는 잘 가르치지도 않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인데요? --- 2005.06.14 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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