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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보다 악행에 더 많이 쓰이는 기독교의 신념 by 분석가
기독교는 이 세상의 종교들 가운데 가장 최악의 전적을 가지고 있다. 전쟁과 타종교에 대한 박해, 대량 학살의 분야에서 그 어떤 종교도 기독교를 따라갈 종교는 없다. 도대체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에서 타종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빈번히, 극악무도한 짓들이 자행되는 원인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그 원인을 기독교와 분리시켜 왔고 그 분리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원래 좋은 것인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역사상 수많은 박해와 전쟁, 학살 같은 불행한 일들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의 욕심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독교라고 해서 굳이 이러한 이론에 예외가 된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기독교에 관련한 많은 불행한 일들이 단지 ‘인간의 욕심’이라고 여기고 지나치기엔 너무 미심쩍은 사실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일단 첫째로, 기독교 발흥 이전에는 유대 민족을 제외하면,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끈질긴 저항에 대한 박해이지, 종교에 대한 박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도들은 로마보다 더 심하게 이단과 유태인을 핍박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모두 사악하다는 관념이 퍼지게 된 것은 기독교인들이 정치적 권력을 확보하면서부터라는 사실이다.
둘째로,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보았을 때, 기독교 만큼의 배타성과 독단은 같은 뿌리를 가진 이슬람교 이외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도 종파가 꽤 다양하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싸우는 일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살육이나 박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주류가 되면서, 불교의 사찰이 산으로 쫓겨나기는 했지만, 불교를 믿는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같은 시대의 유럽에서는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것도 화형을 당할 만한 죄였다는 사실을 비교해 본다면 충분히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중세 유럽에 끼쳤던 해독으로도 모자라서, 지금 우리나라에도 기독교로 인해 그와 상당히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공장소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심지어 2002월드컵 때, 경기장 앞에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꼴볼견을 연출해 냈다. “붉은 악마”에 대한 과민 반응은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경찰서에 불상을 놓아 두는 곳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3,000명이나 되는 기독교인들이 경찰서에서 강경시위를 벌이는 작태를 과연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으로 돌릴 수가 있는가? 문화재와 불상, 심지어 단군상도 파괴하는 짓들이 왜 기독교에 집중되어 있는가?
이 세 가지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기독교를 굳이 좋게 봐줄 이유는 없다. 나는 기독교와 관련된 많은 불행한 일들이 바이블과 예수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원인이 있다고 본다. 기독교 집단 지도층이 제시하는 명분은 거의 대부분이 그들의 종교적인 신념에서 온 것이다. 단군상 훼손 및 철거 요구 같은 경우 외부적으로 헌법의 종교의 자유 조항을 내세우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들 내부적으로는 배타적 유일 신앙에 대한 신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즉 외부적 명분과 내부적 명분이 일치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교리는 ‘종교의 자유’와 상충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중성은 그들에게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도 모자라, 기독교 신념의 집약체인 바이블은 기독교 광신자들이 벌이는 온갖 정신병적 행위에 대한 충분한 명분이자 방어논리로서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잘 생각해 보자. 이것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주류인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이것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한 것이, 예수는 자신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바이블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기 위해 최소한 갖추어야 할 요건이 바로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공공 장소에서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이는 더 없는 명분이 된다.
이런 것을 믿는 사람은 당연히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전도를 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릴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다. 목적이 크면 잘못된 수단도 인정될 수 있는 법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타인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막는 일은 당연히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병든 자를 돌보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단군상의 목을 자른 목사는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 개신교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한 것이다.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 그들은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그러한 신념은 바이블에 잘 나타나 있다.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신명기 7:5)
붉은 악마라는 명칭에 대한 과민반응도 바이블에서 그 정당성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중음악에 대해 사탄과 악마의 계략이라고 몰아 붙이는 과잉반응을 유도한 것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서 명분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의 경우, 가령 불교계의 치부인 조계종 폭력 사태를 보도록 하자. 도대체 그 폭력 사태를 불교의 교리와 연관 지을 만한 것이 있을까? 불교는 폭력과 살생을 금하고 무소유를 강조하는 기본적인 교리가 있다. 그 사태에서의 행위를 효과적으로 정당화시킬 만한 불교의 교리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만일 억지 해석을 덧붙여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해도 대다수 신도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불교의 교리는 기독교의 신념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타종교를 박해하거나 극악무도한 대량 학살의 명분으로 이용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요약하자면, 기독교인들의 몰지각한 행위에 효과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야말로 타파해야할 대상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의 말은 종교적 신념이 몰상식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인데, 종교적 교리를 좋은 방향으로 쓰지 못하고 몰상식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한 사람이 가장 나쁜 것이 아닌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악인을 개과천선시키지는 못할 망정, 나쁜 짓거리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핑계거리만 제공하는 종교적 신념은 그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
기독교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 결코 예수가 가르쳤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니다. 또한 예수가 사랑이 좋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해낸 사람도 아니다.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사랑을 깨달았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기독교를 독실하게 믿고도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악랄한 짓을 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텐가? 기독교가 극소수의 훌륭한 사람을 배출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독단과 배타성을 심어 준다면, 그것은 없느니만 못한 것이다. 극소수의 훌륭한 사람들을 위해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배타와 독선에 빠지게 만드는 종교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예수가 정말 기독교인들 말처럼 사랑의 화신이라고 치자. 바이블이 정말로 진정한 사랑을 가르치는 책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그것을 잘못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예수의 가르침의 정수가 사랑이라면 어째서 일생을 신앙에 바치고 바이블에 목숨 걸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가 있는가?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단박해,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30년전쟁, 계속 되는 종교 분열, 유대인 박해, 인디언 및 남미 원주민 학살, 노예제도 폐지반대, 갈릴레이 종교재판, 진화론에 대한 끊임 없는 공격.. 어떻게 기독교를 열심히 믿고 바이블을 통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려면 인간의 죄를 강조할 도리 밖에 없을 것이다. 끝없이 죄를 양산해 놓고서는 그것을 인간의 본성 탓으로 돌리는 기독교에 과연 존재 이유가 있는가? 예수의 가르침의 본질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그것은 그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쉽게 이해시켜도 될 가르침을 오해하도록 가르쳐 놓고, 그 죄를 영원한 고통으로 심판한다는 것을 어떻게 공명정대한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것이 이성의 마비 현상이 아니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