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오해와 오류는 <바이블의 우상화>라고 본다.인간이 결코 증명할 수 없는 신존재 증명을 바이블에 근거하여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신도의 우민화를 겨냥하는 음모일 따름이라고 강력하게 지적하는 바이다.
자유주의 신학자 A.리츨은 인간이 아는 것은 현상뿐이나, 신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주장하여, 신학은 종래의 형이상학과 같이 신을 존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매력있는 이상(理想)으로 다루어,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시키고 기독교는 도덕면에서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하다. 바이블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라는 말을 폐기하고 <바이블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수 있다>라고 수정해야 된다고 믿는다.
바이블 뿐 아니라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문화..... 그리고 대자연에서 신의 숨길 한자락, 향기 한모금 정도 훔쳐 볼 수 있으면 족하지 않을까하는게 필자가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고 불가지론을 주창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되겠다.
불가지론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어떠한 존재나 관념에 대해 자신의 사유를 고정시키고 멈춰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유보적으로 그 대상에 대해서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하려는 자세가 불가지론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미 궁국을 알았다. 다 이루었다... 라고 단정을 내리면 그 순간 행복하고, 그 어떤 지적 혹은 감성적 충족감의 흥분이 그 사람을 감싸안게 될지는 모르지만 불가지론자들은 일단 그 만족감을 유보한다. *불가지론자는, 쉽게 자신이 안 것이 전부라고 믿어버리지 않는다. *신앙인들은 많이 알아야 10%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80-90% 알고 있는 것 처럼 믿고 행동하고 싶어할 뿐이나 불가지론자들은 10% 알면 10%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신봉한다.
이 정도로 하고 Thomas.H.Huxley의 잠언 한 귀절을 인용하겠다. ["Irrationally held truths may be more harmful than reasoned errors." "비합리적으로 신봉되는 진실들은 분별에 의거한 오류들 보다 더 큰 해악이 될 수 있다." - Thomas.H.Huxley ]
바이블 역시 여러가지 관념에 대한 편집물임을 인정하면 근본주의 기독인들이 강요하는 편집증적 오해에서 벗어나 신에 대한 불가지론 혹은 이신론의 견해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전도서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주지하는 바 전도서는 기독교 내에서도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작품이다.
*숙명론(7:13) 염세주의(4:2)등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으며 *빈민의 압제에 대한 묘사(5:7,8) *특히 죽은 후의 생명에 대한 묘사는 정통 기독교의 영생관과는 전혀 다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 전도서에 기록된 불가지론(이신론 포함)에 대해 그 흔적을 찾아 보기로 하겠다.
1)신의 존재에 대해 애매한 표현 일단 전도서에는 야훼(여호와)라는 표현이 없음을 확인하자.이것은 전도서의 기록자가 이스라엘 부족신인 야훼신앙 신봉자가 아니라 보편적 신인 엘로힘을 신앙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은 전에 있던 일이요, 앞으로 있을 어떤 일도 전에 있던 일이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마냥 그 일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전도서 3:15) >>
*인류의 행위에 일일이 간섭을 하는 신임을 강력히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즉 인격신 임을 배재하며 오히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신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2)신의 역활에 대한 이중 잣대 <<하늘 아래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아 보아 지혜를 깨치려고 무척 애를 써 보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키신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다.(전 1:13) >>
*존재에 대한 의문을 추구한 결과 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표출함으로서 인간 지식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글인데 저자의 기본적인 사유가 본질적으로 불가지론적임을 알 수 있겠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만 바라시니,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전 5:19) >>
*상귀 귀절과 배치되는 글귀인 바 *신은 인간의 행불행에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해야 무리가 없을 듯하다.
3)인간과 동물의 존재에 대한 견해 <<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다를 바 없어 사람도 짐승도 같은 숨을 쉬다가 같은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이렇게 모든 것은 헛되기만 한데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 다 같은 데로 가는 것을! 다 티끌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 가는 것을! (전 3:19,20) >> <<사람의 숨은 위로 올라 가고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 간다고 누가 장담하랴!(전3:21)>>
*영혼 및 사후 영생관이 정통 기독교의 관념과는 너무나 틀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도서의 저자는 영혼의 없음을 주장하고 있으나 불가지론적 입장은 모른다가 좀더 확실한 정답이 되겠다.
4)부정주의(Nagativism) 대상이나 관념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부정적인 태도는 불가지론자의 출발선이라고 사료된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도서의 기자는 훌륭한 불가지론적 관점을 가졌음이 분명하다고 판단된다.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전 1:2) >>
*바이블의 다른 책들에 서술된 종교적인 확신과는 크게 대조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도서 기자는 서두 부터 지혜와 부,노동,명예,여자 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신의 여러 경험을 예로 제시하는 데 단 한가지 신의 존재와 그의 권세의 불가사의한 점만을 가정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즉 인간의 체험과 신존재의 불가해함이 전도서 기자의 기본 인식이라고 보여 진다. * 이러한 관점은 불가지론자와 동일하다.
5)신은 인간과 대화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서 하시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찾아도 그것을 알 사람은 없다. 이런 일을 안다고 장담할 현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 8:17) >>
*기독교의 기본 사상을 전면 부정하는 글이 되겠다. *여기서 현자를 예수 그리고 모세,바울로 대입하면 저자의 뜻하는 바가 인격신을 주장하는 기독교와 얼마나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전도자는 결코 신을 대화하시는 분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신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전도자는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조심스러운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현명한 처신은 신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6)신의 사역을 알 수 없는 인간 <<뱃속에서 태아가 어떻게 숨을 쉬게 되는지 모르지 않는가? 그처럼 조물주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전 11:5) >>
*신의 존재를 모름과 동시에 종의 기원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을 주장하는 데 이역시 정통 기독교와는 상이한 견해가 되겠다. *모든 의문은 불가지론의 출발임을 기억하자.
7)자연에 대한 견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전 1:4) >>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말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전 1:10) >>
*전도자 이전의 지혜자들은 하나님이 도덕적이며, 세상은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한 반면 *전도자에 의하면 자연현상은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즉 어떠한 질서에 의한 현상일 뿐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이 또한 기독교의 사상과 전혀 다르다. *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사이비들은 필히 음미해야 될 귀절이라고 사료된다. *전형적인 이신론적 주장으로 사료된다.
8)사후 세계에 대한 환상을 거부함 <<그러니 제 손으로 수고해 얻은 것을 즐기는 것밖에 좋은 일이 없다. 그것이 사람마다 누릴 몫이다. 죽은 다음에 어찌 될지를 알려 줄 자 어디 있는가! (전 3:22) >> <<그렇다. 사람이란 산 자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희망이 있다. 그래서 죽은 사자보다 살아 있는 강아지가 낫다고 하는 것이다. 산 사람은 제가 죽는다는 것이라도 알지만 죽고 나면 아무것도 모른다. 다 잊혀진 사람에게 무슨 좋은 것이 돌아 오겠는가? (전 9:4,5) >> <<무슨 일이든 손에 닿는 대로 하여라. 저승에 가서는 할 일도 생각할 일도 없다. 깨쳤던 지혜도 쓸 데 없어진다. (전 9:10) >>
*불가지론자들은 천국에 대한 달콤한 유혹을 거부한다. *사후세계의 영생이란 미끼로 장사하는 기독 성직자들이 상기 귀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유일 인격신을 신봉하는 기독교가 전도서를 아직도 그들의 경전으로 인정하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기독인들은 전도서 기자의 허무적인 인생관을 인정하면서도 이 책의 결론은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12장 13,4절을 인용하며 야훼 신앙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유도할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이 그 글귀의 첨삭을 인정한 사실과 관계없이 전도서 기자의 주장하는 바는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서 하시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음을 깨달았다....>>라는 내용에 이미 다 표현되었다고 본다.
전도서는 염세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존재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솔직하게 제시하며 그 해답을 추구하고자한 고대의 불가지론자의 글이라고 판단된다. 전도서 기자의 신에 대한 관념,사후 영생에 대한 거부감,자연의 질서에 대한 순응,영혼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등을 종합해 보면 이신론을 신봉하는 불가지론자였음에 틀림없다고 사료되며 필자의 신에 대한 관념과 너무나 유사함에 많은 생각을 하겠끔한다.
마지막으로 전도서 기자가 신에 대한 논란을 경멸하는 귀절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 하느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전 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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