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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과 대화할 때 그들의 첫번째 무기는 당연히 바이블이겠다.
그러나 바이블은 구약과 신약이 기본적으로 신관 그리고 영혼관 자체가 다르고 신약에서도 예수와 바울의 지향하는 바가 많은 부분에서 상치되고 있다.
바이블에서 주요한 등장 인물로서는
*모세
*예수
*바울 등 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세사람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주창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맹신 광신에서 벗어나는 열쇠이며
바이블의 우상화로 부터 벗어나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신약 27권을 읽다 보면
4복음서를 제외하면 대체로 바울의 영향하에 저작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그러나 야고보서는 극히 예외적인 작품이 아닌가 한다.
야고보라는 이름은 신약 안에 매우 많이 나타난다.
즉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이요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마4:2110:217:1,1:19293:175:37,
9:2,10:35,41,13:3,14:33,눅5:106:148:519:2854,행1:1312:2),
주의 형제 야고보(마13:55,막6:3,행12:1715:1321:18,고전15:7,갈1:192:912,유 1),
알패오와 마리아의 아들 야고보(마10:327:56,막3:18,눅6:1524:10),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눅6:16등)을 들 수 있다.
이중 누가 야고보서의 저자인지는 많은 이론이 있으므로 일단 논외로 하자.
<<누구든지 계명을 다 지키다가도 한 조목을 어기면 계명 전체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야고보 2:10) >>
<<당신도 알다시피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 2:22) >>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 2:22) >>
이상 몇몇 귀절을 보면 바울의 주창하는 바와 너무나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겠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주장했는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로마서 6:14) >>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로마서 10:4) >>
<<성서에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꾸준히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율법을 지키는 것에 의존하는 사람은 언제나 저주의 위협을 받고 있읍니다.
그러니 율법을 통해서는 아무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살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읍니다 (갈라디아서 3:10~11) >>
이제 정리를 해보자.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절규하는 바울
(그런데 묘한 것은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만 강조했지
바울의 모든 서신 기록을 검토해 봐도
역사적 예수의 실존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되겠다)
*아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야고보
(야고보도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음은 똑같다)
이 두가지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나?
비유니 상징이니 또는 바이블은 전체 맥락을 봐야 한다느니..
이런 변명은 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렇다.
바이블은 고대 유대인 그리고 로마 교부들이 민족 혹은 집단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여러 전승을 기록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다시 한번 주창하지만
바이블의 우상화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바이블을 볼 때
아...이 사람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구나
그리고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구나....
되었지 아니한가?
바이블은 성령의 감화에 의해 기록된 신의 말씀은 절대로 아님을 확인하는 증거로 아직도 부족하신가..
사족:필자 개인적 생각으론 기독교는 바울 보다는 차라리 야고보를 선택함이 좀더 건전한 종교로 유지하는 한 방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