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십일조...
초대교회에서는 헌금을 어떻게 했을까? 이런 것에 의문점을 가지게 된 것은 전도할 때에 믿음을 갖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헌금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을 접하면서 부터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교회가 헌금을 너무나 강조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믿음을 가지기를 거부하는데 있어서 최대의 핑계꺼리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초대교회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핑계거리로 헌금문제를 가지고 있었을까 하고 의문을 품어 보았다. 그러나 교회사에서도 교회가 박해를 받은 여러 가지 이유들을 열거하고 있지만 어느 한 사람도 교회가 물질을 착취한다거나 강조한다거나 하는 이유는 제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말하자면 초대교회는 물질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헌금제도에 있어서 거의 의무시 되고 있는 십일조- 불신자들이 믿음을 거부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하고 있는- 에 대한 언급조차도 초대교회사에서는 발견할 수는 없다.
초대교회에서 십일조가 있었다면 바울이나 베드로의 서신이나 그외 사도들의 서신에서 어찌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을 리가 있었겠는가?
사도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터툴리안의 기록에 보면;
"우리 각 사람은 매달 한 날을 정하여 조금씩 헌금을 한다. 또는 각자가 원하는 날에 할 수 있는 양만큼 하기도 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드리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자선을 위한 적립금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축제나 파티, 잔치를 벌이는 데 낭비하여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자를 부양하며 고아와 핍절한 자와 집에 감금되어 있는 노인들과 해상(해상)을 입은 자 , 광부, 무인도에서 귀양살이 하는자, 죄수들을 돕고 하나님옳다고 믿고 따르면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사용하고 있다."(초대교회사 연구/by William s. Mcbirinie) 고 하였다.
헌금하는 날은 <한 달에 한번>이고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며 양도 <조금씩>이고 그 쓰이는 용도 역시 <자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증언은 실로 오늘의 교회의 헌금행태에 비교할 때 거리가 먼 것을 알수 있다.
교회사에 의하면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십일조가 강요되어 행한 것은 아니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십일조는 12세기(라테란 공회)에 들어서서야 교회에서 <강요>되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수찬정지제도>를 도입하여 절기를 준수하지 않거나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십일조를 강요하기 시작했다.(기독교사/Kenneth s Latourette)
불행히도 이 절기준수와 십일조 제도는 16세기의 종교개혁을 통해서도 개혁이 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장로교 <세례교인 문답서>에서는 십일조를 <헌금의 표준>으로 가르치고는 있으나 대다수의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성도의 의무인양 가르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한다. 만일 바울이 당시의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십일조>를 가르쳤다면 이방인들이 그처럼 많이 믿고 주께로 돌아올 수 가 있었겠는가? 물론 유대인들은 교회에 들어와서도 혹시 십일조를 했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설사 했다해도 그것은 이미 구약 율법에 의한 십일조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드린 십의 일이었을 뿐인 것이다.
오늘날 십일조로 인한 폐해가 크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지 세금을 징수하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