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바이블도 외면하는 기독교의 교리

안티예수를 방문하신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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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0 5,174 2005.03.07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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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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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제2계명이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은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일게다.내 앞에서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제1계명과 연계해서 생각해 보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절대화시키지 말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보여진다.

과연 그러한가?

오늘날 교회 내외에서 절대적 존재가 그들이 신봉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외에는 정말 목격할 수 없는가. 우상숭배는 진실로 거부되고 있는가.
필자는 너무나 많은 절대적 존재들을 교회내에서 발견하곤 하는데
기독인 여러분은 이러한 견해에 거부할 논리가 과연 있는가.....

본인은 기독교 교리의 문제점을 논하기 전에 보편적 기독인 대개가 그들의 첫째 둘째 계명을 범하고 있음을 먼저 인식시켜 주고 그 다음의 얘기를 하고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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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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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도 엄연히 율법이 있고 교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율법을 지키길 거부하며 오히려 경건함을 경멸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변명을 지켜주는 게 혹 기독교의 교리는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현 기독교의 모든 문제는 율법으로 부터 도피하고자하는 교리로 부터 출발했다고 추측해 본다.

그러면 예수는 어떻게 말했을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 5: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 22:37~40)

최소한 예수는 두가지 정도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율법 내지 계명은 교리라는 변명 앞에서 실종하게 된다.

그러면 기독교의 근본 도그마를 제공하는 교리의 뿌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렇다

기독교의 교리는 오직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가 강권한 최소한의 율법 마저도 실종된게 기독교의 교리가 아닌가 한다.

이점에 대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역시 같은 궤를 함께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도그마의 기본 이데올로기는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가 제공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겠고...

그러면 이쯤에서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기독론(탄생,대속,부활,재림)
*삼위일체론
*원죄론
*창조설

*그리고 이신칭의론

이정도가 되겠는데 다시 언급하지만 그들의 교리에는 율법이 없다는게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 율법을 폐하고 믿음만을 강조하는 종교...

그러한 도그마에서 오히려 우상만을 양산한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가 한다.

다음으로 기독인이 가장 우상화하고 있는 바이블
그 바이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의 교리 및 제도를 분석해 보자.



[첫번째로는 목사제도라고 보여진다]

우리가 기독인과 대화할 때 그들은 모든게 바이블에 기록된 바 대로
행해야 하며 모든 의문은 바이블을 통해 해결해야 된다고 주장들 한다.
이는 교회의 종파를 떠나 근본주의 자 혹은 비유로 해석하는 자유주의신학 계열이든 신천지 같은 사이비 교파를 막론하고 오직 바이블을 외친다. 과연 그러한가.


여기서 우리는 커다란 맹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조직 또는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도그마가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즉 교회라는 집단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바이블의 해석 등을 무시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우선 교회의 정치 행태를 살펴 보기로 하자

1)감독정치(Episcopalism):영국 성공회,천주교회
2)회중정치(Congregationalism):침례교회
3)장로정치(Presbyterianism):장로교회

등 세가지의 형태로 대별 되겠는데
오늘 우리는 장로교회의 직분을 중심으로 그 직분의 타당성을 살펴보겠다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들)로, 혹은 선지자(들)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들)로, 혹은 목사(들)과 교사(들)로 주셨으니.>>

상기 바이블 내역을 근거로 하여 교회에서의 직분에 대한 근거를 삼고
있는바 조직신학에서는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 이들
세가지 직분은 오늘 날 폐한 직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 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다음 목사의 정의,자격,임무 등으로 들어 가면 그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바이블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들만의 도그마에 빠져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살펴 보기로 하자.

<<목사(牧師, pastor, minister, reverend)는 넓게는 감독 혹은 장로 안에 포함되며, 그 중에서 특히 교사 혹은 `가르치는 장로`라고 표현된다. 에베소서 4:11, "목사(포이멘, 목자, shepherd)와 교사(디다스칼로스)"--헬라어 원문 성경에서는 하나의 정관사 뒤에 목사와 교사라는 두 단어가 나오므로 한 직분을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디모데후서 2: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목사의 임무는 앞에 언급한 명칭들이 보이듯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고 교인들을 보살피며 감독하며 다스리는 직분이다. 이것은 지교회의 담임목사가 가지는 임무이다. 당회가 있는 조직교회의 담임목사는 또한 치리장로들과 함께 교인들을 보살피며 감독하며 다스린다. 설교는 목사에게 위탁된 전문적 일이며 따라서 목사만이 신학교육을 받지만, 행정은 치리장로들과 함께 행해야 할 일이다. 또한 담임목사는 자신의 목회의 일을 도울 부목사와 전도사 등의 조력자들을 둘 수 있다. 부목사나 전도사 등의 목회 조력자들은 교인들의 초청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담임목사의 초청과 당회의 승인으로 오기 때문에, 교회의 치리권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담임목사의 목회 사역을 돕는 위치에서 충성해야 한다.

목사의 자격은 디모데전서 3:1-7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 내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교사라는 직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헬라어 원문에서의 정관사 운운 함으로 합리화를 기하고 있으나
우리 말 성경,영어,일어 바이블을 살펴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개역) >>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읍니다(공동) >>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회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표준) >>


pastors and teachers(NIV,KJV,NASV)

牧師また 敎師(신개역)
牧師, 敎師(구어역)


등으로 번역 된 바 이는 두 가지 중의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즉 조직 신학에서 주장한 바가 맞다면 상기 바이블의 번역이 오역되었단
게 되겠고 그렇지 않다면 조직신학에서 자의로 직분을 창조했다는 반증이 되지 않은가 한다.

다음 목사의 임무에 대해서는 바이블 어디에서도 그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겠고 목사의 자격을 논한 디모데전서 3장 1절에서 7절을 보면

감독(개역,공동,표준,일본어)
overseer(NIV,NASV)
bishop(KJV)

등 감독의 임무로 기술되어 있는데 어떻게 목사의 임무로 둔갑을 해
버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더우기 장로교를 포함한 기존 개신교는 감독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던가.

바이블에서는 감독과 집사의 직분과 그 임무 등에만 기술되어 있다.

분명히 밝혀 두지만 목사 그리고 권사 등은 바이블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직분이다.


즉 개신교가 만든 이데올로기일 따름이겠다.

사실 기독인들은 바이블 바이블하고 그들의 경전을 우상화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 달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들이 속한 조직 그리고 도그마를 설파하는
소위 주의 종이라고 믿고 있는
그 목사라는 직분 자체가 유령의 직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지....

[두번째는 십일조 제도의 근거 없음이 되겠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에서 가르침은 율법을 폐한 것으로 보지 않고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가령 예수는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 또 문둥병자를 고쳤을 때 제사장에게 율법을 따라서 알리고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다.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 마태 복음에 나타난 십일조
<<마태복음 23장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누가복음14장42절 참고) >>

우리는 몇가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원래 짜투리 땅을 이용하여 생산한 소산물은 십일조에서 제외되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그러한 소산물로 알려져있다. 여기서 바리새인의 철처한 율법의 준수는 성경에서 명시된 이상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둘째, 예수는 그들을 책망하였다. 율법의 본래의 뜻인 의와 인과 신을 무시하였다는 것이다. 율법을 능가하는 실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지 껍데기 신앙으로 비판을 받는다.

마태복음의 이 구절은 현대교회에서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의무적인 십일조 찬성론자들은 이 구절을 이유로 신약의 교회가 십일조를 내야한다고 주장한다. 의무적 십일조의 반대자들은 위의 구절이 십자가 사역 이전의 사실이며 또는 위 구절이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일 뿐 십일조를 내야한다는 명령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마태복음의 구절은 그리스도 십자가 이전의 가르침으로 십일조의 교훈을 주지만, 교회에게 주어진 명령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율법의 정신이 강조되어 가르쳐지는 등의 사례는 있으나, 율법을 폐하여 말하신 적은 없다. 예수 자신이 율법에 완전하게 행하였으며, 따라서 예수가 율법을 해석 한 것은 십자가 이전의 사실로서 보아야 한다.

율법의 폐지는 십자가 사역 이후이기에 예수는 태어나심부터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다. 누가복음을 예로 1장부터 살펴보면 태어난 후 8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절기를 따라 성전에 갔다. 문둥병자를 고친 후 율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명령하기도 하였다.

 

이런 내용은 4복음서에서 매우 많이 증명되기에 일일이 열거 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금식이나 안식일 문제에서 그 제도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다만 참된 금식과 안식일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본받아 할례를 받아야 하며, 절기를 따라 성전에 가야 하며, 문둥병이 낳으면 제사장에게 찾아가 예물을 드려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유독 마23:23 한 구절만은 지켜야 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그런 근거는 없고, 단지 히브리서에서 폐지된 근거를 볼 수가 있으며, 율법의 폐지 속에서 제물에 속하는 십일조의 폐지를 볼 수가 있을 뿐이다.

예수에 의하여 십일조 폐지를 증거하는 결정적인 구절이 있다. 그것은 "성전을 헐어버리라, 내가 삼일만에 다시 세우겠다"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십일조는 성전에서 드려져야 하며, 만일 제물이 운반하기 힘들면 돈으로 바꾸어서 성전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러므로 성전을 헐겠다는 말은 십일조를 드릴 방법을 하나님이 스스로 제거하신 것이다. 또한 성전이 제거되면 레위지파가 그 임무가 종결된다. 이 경우 십일조의 가장 큰 수혜대상이 없어져 버린다.

아래의 인용된 마태복음을 보면 성전을 헐어버리는 적극적이고 주체자는 바로 예수임을 알 수가 있다.
성전에 의한 신앙을 폐하는 것은 예수의 뜻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인 성전과 예배당 중심으로 가는 신앙이다.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성경의 그런 말은 종종 무시된다. 왜냐하면 그런 구절은 자신들의 행한 멋진 신앙을 평가절하 하거나 의미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무너뜨린 것은 예수 자신이다.

<<마태복음 24장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


<<마태복음 27장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


히브리서의 가르침


히브리서 7장을 보면 2절에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십일조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으며, 참 대세사장인 예수를 증거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내용은 율법에 의한 그림자 로서의 제사장은 페하여지고 참 대제사장인 예수가 나타났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며, 예수의 사역 이후 제사장의 직분은 교회(성도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십일조의 의무를 나타내는 것은 으며, 굳이 관련하여 해석한다면 교회 즉 성도들은 오히려 십일조의 혜택을 받아야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살펴본 바 성도에게는 십일조의 의무는 없지만 자발적인 헌금에 대하여 자유롭지 않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장 2절에서 십일조를 의무와 관련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율법의 하나의 조항인 십일조 폐지의 근거에서 히브리서 7장 5절에 의하면 십일조가 율법인 것이 분명하게 증거되며 10장 8절 이하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폐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물론 예수 사역의 결과로 말미암는다.


<<히브리서 7장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


<<히브리서 10장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

위에서 살펴본바,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에서 십일조의 실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다만 예수의 언급에 나타난 것뿐이다. 이처럼 십일조는 예수의 십자가 사역이후 언급되어지지 않고 있다. 예수의 언급은 십일조를 교회에게 명령한 것으로 볼 수가 없으며 히브리서, 갈라디아서 등의 여러 구절은 오히려 십일조가 폐지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십일조 의무론자들에게 십일조의 근거를 요구하는 경우, 제시받는 것은 구약의 성경구절 뿐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 의하여 폐지된 조항으로 나타났다.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을 헐어버리라는 말이 바리
새인들에게 참담하게 들렸듯이, 십일조 의무론자들에게는 십일조 의무폐지가 참담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십일조 의무론자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로마서 10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인간이 보기에 닭의 3초 기억력은 매우 우습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은혜와 믿음을 입으로 증거하면서 율법이나 도덕적인 행위로서 나아가려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징벌이나 저주를 받을까 우려한다. 값없이 받을 것과 단지 그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라는 성경말씀은 입으로 증거하면서도 마음에서는 무시된다.

 

값없이 받은 것을 반드시 되돌려 주겠다는 비성경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웃에게 줄 것이 하나님에게 주어졌으니 당연하다는 비성경적인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가 값없이 받았으니 너희 이웃에게 값없이 주어라......]

뿐만 아니라, 예수에 의하여 허물어진 성전(구약에 의하면 율법에 의하여 오직 하나뿐인 성전)을 현대교회는 이 지구상에 수천 수만개를 세워놓고 십일조를 드린다. 하나님은 헐어버리라고 하였고, 교회는 성전을 건축하려고 한다. 성경은 참된 성전이 그리스도이며 그 몸체는 교회라고 한다. 교회는 성도의 연합된 모습이며 건물은 예배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십일조는 자기가 소속한 교회(실제는 예배당)에 내야 한다고 가르쳐진다.

또한 성경은 십일조의 대상을 토지와 가축의 산물로 정하였으며, 그것을 운반하기 어려운 경우 돈으로 바꾸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성경에 근거없는 모든 것의 십일조를 강조하다가 마23:23 의딜레마에 또 다시 빠졌다. 장학금은 십일조의 대상인가? 창녀가 번돈은 십일조의 대상인가? 등의 논쟁을 일삼고 있다. 마23:23의 현대판 재현이다.


[다음으로 삼위일체론을 살펴보기로 하자.]

기독교의 가장 근본되는 신관이라면 결국 <<삼위일체설>>이 아닌가 한다.
사실 이 교의에 대해서는 기독인들도 잘 모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 기독신학의 태두로 불리는 박형룡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것을 믿음은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는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신 때문이다"고 하였다(교의신학, 2권, 202쪽)."

이해는 안되지만 바이블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그냥
믿으시라..... 그러나 사실은  바이블에 그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 운운....

여기서 우선 신의 정의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보통 [신(神)] 이라고 하면 우주를 지었거나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는 최고의 존재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는 그 신이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가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

철학적으로는 보통 3가지 정도의 신 개념(신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점)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이신론(理神論)적 신

-------이 세상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을 있게 한 근본적인 이유나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이유나 원인이 신이라는 주장이다.
역사적인 이신론자들은 17 ~8 세기에 주로 영국의 자유 사상가와 과학자들에 의해 제창되어 뒤에 프랑스; 독일의 계몽 사상의 기조인 합리주의적/ 자연주의적 태도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들은 기독교를 근대 정신에 합당하게 변용시키려고 기독교의 비이성적,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제거하려 했다.

(2). 인격신론(人格神論)적인 신----

신이 이 세상과 만물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신이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며 사람처럼 감정이 있어서 복을 내려주거나 ? 저주를내린다고 한다. 소위 신앙이라는 것은 이 신을 믿는 것을 말하며 기독교의 여호와나 이슬람교의 알라, 과거 우리 나라에서 하느님이라고 부르던 것은 이 인격신이다.

(3). 범신론(범신론)적인 신-------

신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만물 자체가 신이라는 주장. 나도 신이며 너도 신이요, 바위나 시내도 모두 신의 한 부분이라는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불교는 보편적 존재를 상정함에 의해 세계를 이론적으로 통일하려는 경향에서 범신론적이다. 또 신과 자아(自我)의 일치를 추구하려는 고대 인도의 베에다나 브라흐만 사상도 일종의 범신론이다.
근현대의 대표적인 범신론자는 스피노자이다.>>

결국 무신론자가 아니라면 위 세 가지 신관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 기독교는 틀림없이 인격신을 숭배하는 종교이며 유일신을 숭상하는 일신교를 주창하면서도 기독인들도 이해 못 하는 삼위일체를 신봉하는 기묘한 종교라 아니할 수 없다.(물론 그 원인은 예수라는 미확인 교조 때문이 겠지만...)

그러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이 교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아 보자.

<<제6문: "하나님의 본체 안에 몇 인격들(persons)이 계신가?" 답: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세 인격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신데, 이 셋은, 본질(substance)에 있어서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

즉 이 삼위일체설이라는 교의는 그들의 교리문답에 정의되고 있는 도그마인바 물론 그 당위성에 대해 바이블의 여러 내역을 인용하여 그 합리성을 기하기 위하여 서글픈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결국은 윗글 박형룡 목사의 고백이 정답이 되어 버렸다....

종교개혁 당시 왜 이 도그마를 버리지 못했을까? 하는 개인적 안타까움을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마다 버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차라리 초대 교회 시절 융성했던 영지주의를 채택하였더라면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은 정말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들고.....


결국은 속죄(대속)와 중생이라는 교리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채택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교의 삼위일체설의 진실된 정체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 바이블에 적혀 있는 삼위일체설의 부당함을 증거하는 귀절을 살펴 보기로 하겠다.

<<(마 3:17) (막 1:11) ...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시는데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17:5) ... 변형의 산에서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의 방문을 받으실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덮으며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라사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 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요 12:28-29) ...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한복음 17:20~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요한복음 17:24)...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예수와 아버지를 한 인격체라고 가정하면 예수는 자신에게 기도를 했으며, 또한 창세이전부터 자신을 사랑하였다는 점을 인정해야 되는데 논리가 성립되는 말인가?

<<(요한복음 14:28)...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


**예수 자신보다 큰 존재를 설파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 한 귀절만
으로도 삼위일체의 허구성이 다 증명된다고 아니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원죄론에 대해 바이블은 어떻게 증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기독교에서도 구약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나 예수의 대속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근거되는 창세기를 인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겠다.


즉 원죄,사망,대속,구원으로 이루어지는게 기본교리인데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이해할 수 없는 교리의 허점을 얘기하고자 한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불복종이라는 원죄를 행한 후 여호와의 사후처리가 서술되어있다.
그 귀절을 다시 정리해보면

첫째:뱀에게 저주를 내린다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그다음에 여자와 원수가 되고 그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리라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냥 인간과 원수가 되리라하면 ! 될 것을
무엇 때문에 여자와 원수가 되리라는 말을 먼저 했는지 모르겠다.
바로 그 다음 문장에 여자의 후손 운운 할 거면서...
남자는 여자의 후손이 아닌가...)
(물론 뱀에게 흙을 먹을거라는 얘기도 황당하고....만일 바이블
그대로 흙만 먹고 살 수 있는 존재라면 틀림없이 그것은 또하나의
축복이 아닌가....)
(물론 비유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다음 귀절은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던가...)


둘째:여자에게 다음 차례의 저주를 내린다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세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오늘의 관점으로 볼 땐 출산시의 고통
이외에는 저주라고도 할 수 없는 것 들이다)
(마누라 눈치보며 사는 남편분들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출산시의 고통도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무통증분만,제왕절개
라는 과학의 개가로 인해 선택사항이 되었지 않은가...)


셋째:그다음으로는 엉뚱하게 땅에게 저주를 내린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무생물인 땅에게 저주는 어떤 의미! 인가요?....)


넷째:마지막으로 아담에게 저주를 내린다.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그런데 오늘날 노동을 하지 않고도 호화의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모두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으로 저주를 마감한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꼭 생각해야 할 게 있다. 즉 육체는 흙으로 만들었으니
흙으로 돌아감은 당연한데 여호와가 불어넣어준 생기는 어디로
갔는지....설명이 없다...)


(기독교에서의 풀이에 의하면 이 생기는 인간의 영혼이겠는데
영혼의 소멸 혹은 영생 등에 관한 일언 반구의 설명이 없다...
이점은 구약전체를 살펴봐도 동일한데....)


(즉 없던 영혼이나 사후세계가 갑자기 신약시대로 넘어갔을 때
생긴다....)

그외의 사후 조치로는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귀절도 너무나 많은 논란거리를 제기되는 내용이다.즉
아직도 에덴동산이 실재하는가? 그 위치는 등등....)


(세상을 창조할 때 바깥세상과 에덴동산을 왜 별도로 만들었는지..)
(창조주라는 여호와가 왜 그리 의심과 두려움이 많은지 등등...)


(그리고 그X의 생명나무는 자칭 타칭 감람나무,어린 양,보혜사
재림주 등을 양산하는 좋은 도구로 활용되고 있고...)

자 여기서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자.
죄와 벌,이 인과응보는 인간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대원칙이겠다.
그리고 바이블에서의 그 객체와 주체는 神과 人間이 틀림없지 않은가.

모든 걸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그 교리를 다 인정한다 해도 의문이 또 하나 남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 자신의 외아들을 사바세계에 보내어 그 죄를 대속했다 하는데 그말은 여호와가 인간에게 내린 저주를 모두 거두어 들였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구약에는 없는 영혼의 영생은 그렇게 주장하면서 실상 구약에서 언급한 저주(출산의 고통,노동 등등..)에대해서는 사해졌다는 그런 언급이 없는지....

예수가 죽음으로서 인간의 원죄를 대속했다는 말은
여호와! 의 저주를 소멸시켰다는 말이 아닌가....


부언하면
구약에서 서술한 그 저주는 언급이 없고
갑자기 어디에서 영혼이니 천국이니 부활이니 영생이니 하는 도그마가
태어났는가....?

이 원죄를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을 살펴보면

첫째:우선 시대를 잘 선택해 태어나야 한다.
즉 기원2000년후에 태어나야 그 은혜를 입을 수 있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약100년 그 이전에 태어나서는 원천적으로 그 은혜가
봉쇄된다.

둘째:장소 혹은 나라를 잘 선택해야 한다.
중동,파키스탄 혹은 인도 같은 나라는 극력 피해야 하며
아직 예수가 뭔지도 모르는 아프리카 오지의 경우는 절대로 안된다.

셋째:그리고 빨리 죽어서도 절대 안된다.
최소한 스스로 예수란 존재를 알게되거나
누군가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줄 때 까지 죽어서는
그 구원이라는 은혜를 절대 입을 수 없다.

넷째:그 다음엔 최소한의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
누군가 그 예수란 자의 은혜를 전할 때
그 내용에 대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육체적 기능과 지적 수준을
구비하고 있어야 그 혜택을 ! 누릴 수 있다.
즉 심각한 장애자로 태어 나거나 저능아로 태어 났다면 그저 영문도
모르고 지옥에 가야 한다.

다섯:그다음 과정은 좀더 험난하다.즉 무조건 믿어야 한다.
사람으로서의 기본 상식과 이성
그동안 교육받은 사상,과학등으로 수긍할 수 없더라도 의심해서는
그 축복이라는 것을 구경할 수 없다.

여섯:여기까지 무사히 도달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시시 때때로 그 믿어지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확인 또 확인해야만
그 구원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무사히 맛 볼 수 있다.

일곱:안심하지 마시라.
혹시 사고라도 당해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거나 불행하게도
기억상실자가 된다면 그 동안의 노력은 모두 헛일이 되어 버린다.

여덞:오래사는 것도 겁난다.
혹시 치매라도 걸리면 이역시 도로아미가 되어 버린다.

아홉:그것이 두려워 신앙 좋을 때 자살해 버리자!
물론 용납이 안된다.

열 :또 있다.
통일교나 신천지 교회 같은 소위 이단 내지 사이비의 교리가 맏다면
그냥 예수를 믿어서도 안된다.
그 교주를 믿거나 그 교파의 비유풀이란 것을 알아야만 된다 한다.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천국에도 좋은 자리 나쁜 자리가 있다 한다.
이왕이면 더 좋은 자리에 선택 받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교회에 출석하고,헌금도 남들 보다 많이 하고
길거리에서라도 예수천국,불신지옥을 외쳐야 한단다.

아시겠는가?
이러니 소위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
교만하다는 말을 듣고 지옥,사탄,마귀,짐승 등의 저주와 협박을 일삼는지 모르겠지만....

만약!만약에! 혹시라도
영혼이 정말 실재하고,천국 지옥이 있다고 할 때
그 기독교의 원죄론에 의해 심판을 한다면
아마 영혼들의 쿠테타가 일어나지 않을까!!하는게 본인의 소견이다.


인간이란 태어날 때 부터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양면성의 존재라고 믿는다.
자꾸 악인이라고 너는 죄인이라고 강조하면 정말 악인이 되지 않겠는가!


정말 진실된 종교라면 인간의 선한 면을 꺼집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향후 기독교가 없어지지않고 최소한의 자리라도 지킬려면 이 이해할 수 없고 용납되지 않는 原罪論이란 괴물을 하루라도 빨리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
맺음말
======

흔히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 한다.
과연 그러한가.

마태복음의 아래 귀절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즉 기독교인에게만 조건부 사랑을 강요할 뿐 아니라 그들이 창조주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분 마저 모든 사랑,용서까지도 조건을 붙인다.


이래서야 어떻게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 하겠는가?
세상 모든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그 귀절을 모두 삭제할 것을 감히 제안하는 바이다!!

=========
나가는 말
=========

본인은 기독교는 증오의 종교라고 정의한다.
율법이 없고 조건부 사랑만을 외치는 오늘의 기독교는 차라리 저주의 종교가 될 수 밖에 없다.

기독인들에게 다시금 제언하고자 한다.

믿음만을 강조하는 도그마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시고 차라리
예수가 요구한 두가지 계명이라도 지킬 것을 강권하고자 한다.

그대들이 우상화하고 있는 바이블 조차 부정하고 있는
*목사제도
*십일조
*삼위일체
*원죄론 등을 포기하길 진정 원하지만

최소한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의 말씀을 아전인수로 해석하지 말고
우리는 함께 사는 그 이웃들이라는
그 말씀만이라도 기억해 주시길 간곡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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