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거대한 사막을 홀홀단신으로 몇 달에 걸쳐 횡단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사막 횡단에 대해 칭찬을 하였습니다. 한 신문 기자가 그에게 사막을 횡단하는 데 무엇이 가장 어려웠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아마 사막 특유의 뜨거운 태양이나 한밤의 차가운 추위, 아니면 긴 여행 속에서 오는 고독이나 외로움일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기후나 외로움이 아니라 사막 길을 걸을 때 털어도 털어도 계속해서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모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의 전도 행위는 이러한 모래알 같다고 생각합니다.
털어도 털어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모래알 처럼 그들은 반복적으로 예수사랑을 외칩니다.가끔은 예수천당 불신지옥 등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기독인들에게 묻겠습니다.
님들이 그렇게 목놓아 외치는 소위 진리란게
왜 타인에겐 신발 안으로 들어 오는 모래처럼 귀찮게만 느껴질까요?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이 있지요.
님들의 주장이 옳다면 한국 사람 특성상 믿지 말라고 해도
배가 아파서라도 님들의 신앙을 흉내내고자할겝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모래알이 아니라
오아시스라면 강요하지 않아도 그 샘에 모두들 달려가리라 생각합니다.
사막을 횡단하는데 필요한 것은
한모금의 물 그리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동행자와의 따뜻한 대화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확인되지 않는 진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그 진리에 대한 치열한 번뇌가 차라리 필요하겠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겐 함께 살아간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인 여러분
여러분의 그 강요가 왜 오아시스처럼 달콤하지 않고 모래알처럼 귀찮기만 한지 다시 생각하시길 부탁드립니다.
知信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