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들의 비유와 편집 오류

안티예수를 방문하신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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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들의 비유와 편집 오류

이드 0 5,014 2005.03.14 23:29

복음서 편집자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설교시 비유로 말하길 즐겨하였다한다. 그런데 그넘의 비유 때문에 알레고리해석이니 알레고리적 해석이니....비유풀이니.....아직도 이단 삼단 논쟁으로 날밤새우고 있는 기독인들의 추악한 밥그릇 싸움의 진원지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이블 편집자들은 알고나 있을 지....만약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들은 이승에서나마 그 책임감을 통감하여야된다고 지적하는 바이다.


그 비유로 말했다는 예수의 설교 중 마태복음에만  등장하는 삽화가 있다.
소위 두아들의 비유로 알려져있는 꽤 유명한 설교가 되겠는 데 이 이야기는 출발 부터가 오류 투성이 편집으로 사료되는 바 그 문제점을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1)사본의 불일치...맏 아들인가? 둘째 아들인가?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태 21:28~30) >>....개역


<<"또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공동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맏아들은 '싫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작은 아들은 '예,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는 가지 않았다. >>....표준


주지하는 바 공동과 표준번역에서는 맏아들이 뉘우치는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나 오직 개역본만 둘째 아들이 회개하는 아들로 되어 있다.


그러면 이러한 불일치의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개역판의 기록이 참이라면 그 번역자에게만 소위 성령이 임했을까? 아니면 반대일까?


사실 정답은 간단하다.우리말 번역 시 사용했던 사본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공동과 표준번역은 시내산 사본의 것을 기본으로 한  미국의 표준 개역판(RSV)를 사용한 바이며
*반면 개역판은 바티칸 사본이 기본인 NASB를 모본으로 번역했다.
*즉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령하고는 전혀 관계없다는 말이 되겠다.
*일점 일획도 틀림없다고 어거지 주장을 하는 문자주의자들은 제발 눈도 좀 뜨고 귀도 좀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아니한가?


2)브레이크가 없는 예수의 설명 그리고 편집자의 과욕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셨다.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고 있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31~32) >>


비유로 말하고 난 뒤 다시 설명해 주는 친절은 예수의 관행이었다.수많은 천국비유를 보면 이해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기에 인용한 풀이는 예수의 그 친절함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 바이블 편집자의 무식함인지 무심코 범한 오류인 지는 모르겠으나 앞뒤 연결 고리의 일관성을 현저히 결여하고 만다.


정리를 해보자.
*맏아들은 처음에 불순종하다가 나중 회개하고 순종하였다.
*반면 둘째는 순종하는 척 하다가 결과적으론 불순종하였다....이게 주장하고 싶은 논지가 아니었던가?


이 두 가지 유형의 믿음에 대한 댓귀 글로서 세리와 창녀 그리고 대제사장과 장로를 비교해 풀이한 글이라고 판단되는 데 그렇다면 세리와 창녀가 맏아들의 역활....그리고 대제사장과 장로는 둘째 아들 역활.....사실 여기 까지는 별 무리가 없는 설정이다.


그런데 갑자기 요한을 등장시킴으로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세례 요한의 선포에 대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이점을 잘 생각해 보자.


*세리와 창녀는 믿었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하다. 글의 전개상 전제조건이 생략된 ...잘못된 비교 인용이 아닌가....
문장 구조상 올바른 흐름이 될려면


*세리와 창녀는 처음에는 요한을 부정하였지만 나중에 믿었어야했다는 설정이 되어야만 했다.
*물론 대제사장과 장로는 그 반대로 전개되었어야 했고.....


이 글은 31장에서 예수가 군중들을 위협하고 공갈치는 선에서  마감을 했어야했다.....[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마태 편집자는 23절부터 27절에서 요한을 언급함으로서 설득하는 재미를 봤다고 판단 혹은 착각을 했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다보니 편집자의 뇌리에 요한을 한번 더 인용해야겠다는 잠재 의식이 잔류되어 상기와 같은 논리에 벗어난 문장이 되고 말았다.


대제사장과 장로 등 바리새인들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이 된다.
<<모든 백성들은 물론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였으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고 자기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7:29,30) >>


마태 편집자의 의도는 상기 비유의 앞 설교...즉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21:33-46) 그리고 결혼 잔치 비유(22:1-14)와 연결되어 편집되어 회개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를 공박하고져 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32절의 잘못된 인용으로 문장 전체의 흐름이 어긋나 버렸다고 판단된다.


사실 글쓰는 사람 뿐 아니라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이러한 오류를 종종 범한다.바이블도 편집자들의 과욕이 여기저기 눈에 띄인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러한 오류까지도 야훼의 뜻 운운하며 착각 혹은 세뇌에 빠지길 즐겨하는 문자주의자들의 어슬픈 왕고집이 우리를 우울하게하는 현실이 되겠다.


3)왜 세리와 창기를 능멸했는가?
세리와 창기를 경멸하며 한편으론 예수가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까지 포용했다는게 편집자의 의도라고 생각된다.그러면 왜 세리를 천한 직업으로 단정했을까?


보편적 기독인들은 로마정권에 아부하며 민중을 착취하는 직업군으로서 세리를 정의하고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가 바이블 편집자의 바라는 바였다면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바이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22:21) >>

 

마태 뿐만 아니라 마가와 누가 복음 기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정치와 권력은 로마 황제의 고유 권한이므로 복종해야만 한다고 설파하고 있는 데 이러한 권력에의 굴종 내지 타협은 바울이 좀더 확실하게 단정을 내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세리는 누구인가?
로마 황제의 권한을 위임받은 당시의 관료가 아니었던가?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돌리게하는 직업이 세리가 아니었던가?


로마 황제의 식민 통치는 인정하면서 그 말단 조직원인 세리는 죄인취급 혹은 창기취급을 한다?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모순인가?


물론 세리 개개인은 악질로 부류해야 마땅할 자도 있었을터이다.그러나 세리라는 직업군을 공통적으로 싸잡아 비난한다는 것은 로마의 권력에 대한 항거가 아니겠는가?....불행하게도 바이블은 로마에 대해 너무나 우호적이다....아니 거의 경배하는 수준이다.(사도행전에 바울을 로마시민으로 조작해놓곤 그 편집자는 얼마나 흐뭇해하고 자랑스러워했던가를 기억하자.)


게다가 당시 로마의 세법은 식민지 혹은 속주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참고로 그 당시 유대 지역은 속주세 10%만이 의무였으며 대신 군복무는 면재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민은 2%의 물품거래세와 병역의무를 준수해야만 했고....얼마나 관대한 로마의 통치였던가?


그러하다.
세리를 죄인시하고 천한 직업으로 설정한 것은 마태 기자 개인적 견해로는 용납될 수 있겠지만 직업으로서 세리를 경멸했음은 그의 실수였음이 명백하다.


차라리 로마 황제에게도 반기를 드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면 당연히 이해가 되겠지만.....


4)창기에 대한 단상
사실 바이블 편집자들은 창기라는 몸파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인들에게 그리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상기 마태복음에서의 묘사 그리고 누가복음에 한번 고린도전서에 두번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간음에 대해선 굉장히 냉혹하게 판단하고 있다.간음에 대한 예수의 육성을 한번 들어보면 얼마나 가혹한
관념을 가졌었는 지 이해되리라 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마태 5:28) >>

 

*과거 그리고 오늘까지 예수의 이러한 폭언에 대해 자유로울 사람이 과연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남자던 여자던 성욕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나이 이후 마음속으로  간음을 한번도 하지않은 사람이 정말 있을까?
*예수의 견해에 따르면 전 지구촌의 사람들은 죄다 간음죄를 범한 죄인이 되어 버리는데 ....가히 제2의 원죄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쨋던 예수의 주장대로라면 그 어느 누구도 창기를 천하고 더러운 직업에 종사하는 죄인으로 징죄를 하지 못한다.
*상기 마태복음 21장의 비유 설정은 원천적으로 무효가 되어야한다는 뜻이다.


그러함에도 기독인들은 창기란 직업에 대해 굉장히 예민한 것같다.


청량리 오팔팔 언니들을 등장시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고 이제는 다일 공동체라는 근사한 집단의 우두머리로 까지 출세한 밥퍼 목사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최근 청량리 오팔팔에 소재한 가나안 교회의 신도들이 밥퍼 목사의 원조는 우리 교회 목사라고 주장하여 밥퍼 원조론이 제기되는 눈쌀을 찌푸리게하는 장면을 제공해 주고 있는 데 과연 누가 원조일까?


교회에 창기가 얼마나 없었으면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밥퍼원조론까지 등장하게 되었을까?
사실 교회에는 예수의 이웃이라던 거지나 창기는 전혀 없다.
아니 감추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00만명 이상의 젊은 여인들이 매춘을 하고 있다하는데 강남 압구정동이나 역삼동 그리고 논현동 거리를 거니는 여인들 중 소위 쭉쭉빵빵 걸이라면 절반 이상이 나가요라는 비공식 통계도 인정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교회에도 전업 나가요 혹은 아르바이트하는 쭉방걸들이 당연히 존재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나는 나가요예요하고 교회에 등록하는 여인들은 단 한 사람도 없음이 틀림없는 현실이다.

필자 개인의 경험으로도 강남 나가요 걸 특히 아르바이트로 종사하는 학생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였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러다보니 공식적으로 정체를 밝히고 신도가 될 수 있는 교회가 뜨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다일 공동체가 그러하며 가나안 교회가 그렇다.


한국 교회에 거지와 창기들이 떳떳하게 혹은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그러한 때가 과연 도래할까?


자...이정도로 하고 정리를 해보자.
두아들의 비유는 어떠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바이블의 사본은 너무나 제각각이다....인정하시는가?
*마태 21장 32절은 편집자의 과문함 혹은 실수였다....인정하시는가?
*세리란 직업을 경멸스럽게 표현한 것은 편집자들의 개인적 견해였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죄인시하고 천하게 묘사했음에 대해 사과를 해야만 한다....인정하시는가?
*창기도 마찬가지다.나역시 마음속으로 간음한 전과가 있음으로 그니들을 판단할 자격이 없음에도 모욕했다.정말 죄송하다....인정하시는가?


인정못하겠다고?
그대는 위선이라는 용어의 뜻에 대해 좀더 공부를 해야겠다.

 

 

 

사족:예수의 창기에 대한 견해는 일단 제외하더라도 기독인들은 그니들에게 그리 큰 소리를 칠 입장이 못 됨을 지적하고져한다. 그니들은 거래에 있어서는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비록 몸은 팔아도 마음은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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