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1장을 보면 말세에 재앙을 받으리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부터 예수시절을 거쳐 오늘날 까지 지긋지긋하게 그리고 꿋꿋하게 주장하는게 기독인들의 말세 운운 하는 협박이 아닌가 한다. 물론 기독교의 말세론은 구약의 저자와 신약의 저자간 현격한 견해 차이점 때문에 두가지 관점으로 분리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첫째가 이스라엘의 종말이 되겠고 두번째로는 지구 즉 인류의 종말을 들 수 있겠다. 즉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주지한 바 이스라엘의 종말과그 반대 급부로 메시아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인들은 지구의 종말을 예수의 재림과 함께 기다린다는 뜻이 되겠다.
이 종말론의 주인공이라할 수 있는 예수는 어떻게 생각하고 설명했을까? 예수는 재림이라는 약속 때문에 이 종말관의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는바 그러면 예수는 종말에 대해 어떤 사고관을 가졌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예수의 말세관에 대해 상세히 묘사되어있다. 두 복음서 내용은 상당히 유사하므로 오늘은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예수의 종말관을 분석하기로 하겠다.
<<그들이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읍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읍니까?" 하고 물었다. >> 제자들이 종말시의 징조에 대해 질문을 하는 장면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는 여러가지 징조의 예를 들어 준다.
1)소위 적그리스도를 경계하라는 당부를 하며 2)전쟁과 반란의 소문이 먼저 일어난다 한다. 3)민족간의 전쟁을 예언하고 있고 4)지진 그리고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으며 하늘에는 무섭고도 굉장한 징조가 있을거라고 주장한다. 5)상기 서술한 징조 전에 박해를 당하며 감옥에도 갇힐 것을 강조하고 있다. 6)이 때야 말로 복음을 전파할 호기라고 설교하며 7)부모 형제 친척들이 고발할 것을 예언함과 동시에 몇몇은 죽음을 당하리란 끔직한 공지도 덧 붙인다. 8)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오히려 세상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을 거라는 저주도 내리고... 9)웃기는 것은 조금전에 몇몇은 죽을 거라고 공갈해 놓고 이제와서는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을거라고 예기한다.더우기 끝까지 참으면 생명을 얻을 거라고 호언 장담한다.
자 정리를 해보자. 우선 적그리스도가 창궐할게다 두번째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수많은 환란을 겪게 될게다 세번째는 민족간의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게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참고 복음을 전파하면 생명을 얻게 될게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쬐끔 힘이 빠진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 도시가 파멸될 날이 멀지 않은 줄 알아라 >> 신명기 31장의 재탕이 아닌가.... 역시 이 때의 예수는 인류의 종말이니 구원이니 등 전인류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게다가 무화가 나무의 비유를 들어 좀 헷갈리게 해놓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온 줄 알아라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가 멸망할 지라도 자기의 예언은 꼭 이루어지리라고 강조하며 이 설교를 끝낸다.
역시 복음서의 전체 흐름을 살펴 보면 예수는 타 민족의 구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음이 틀림없었다고 확신된다. 부언하면 예수의 말세관은 이스라엘 자기 민족의 종말에 국한되었음이 틀림없겠다고 하겠다.
지구의 멸망이니 인류의 종말이니 하는 것은 후일 바울의 이방선교와 맞물려 성립되어진 도그마로 보는게 바이블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그 당시의 주류 명제의 하나인 메시아관에 크게 모순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되겠다. 첫째:예수가 구약에 따른 메시아라면 왕으로서의 권능을 자기 생존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여 줘야만 했다 둘째:상기 글을 근간으로 예수가 두번째 환란을 주장했는데 이 역시 유대인의 사고관에는 전혀 부합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왜 메시아가 두번이나 와야 하는가?... 셋째:예수가 전 인류의 메시아로 설정하면 더욱 많은 문제가 나타난다....복음서 전반에 걸쳐 이방인 전도를 금하고 있는 사실과 더불어 예수의 말세관 역시 이스라엘에 한정 되었을 뿐이라는 이 사실을 기독인들은 어떻게 변명해야만 할 것인가?
그렇다! 예수(복음서의 기자)는 이스라엘 자기 민족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가 정답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