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의 저자 및 저작연도등에는 여러 학설이 있겠다.
근본주의자들은 아직까지 오해의 모자를 벗길 두려워하고 있고
자유신학계열의 신학자들은 어느정도 진실에 가까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나 그들 역시 바이블이 하나님의 멀씀이란 오해를 전제하에서
풀이를 함으로써 역시 기독교의 도그마 그 자체의 한계를 넘어 서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오늘은 바이블에서 서술하고 있는 혼인제도를 살펴봄으로써
바이블의 저작연도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음을 논거해 보기로 한다.
우선 여자의 기원과 결혼제도의 시초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자의 기원과 결혼 제도]
[창2:21]
⭕ 깊이 잠들게(*, 타르데마) - 황홀경에 빠지거나 환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잠에 든 것을 뜻한다(욥 4:13). ⭕ 갈빗대(*, 첼라) - `차라`(구부리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갈빗대`란 뜻과 함께 `한쪽 편`이란 뜻도 지닌다.
[창2:22]
⭕ 만드시고(*, 바나) - `수선하다`, `세우다`, `짓다`는 뜻이다.
[창2:23]
⭕ 여자라 칭하리라 .
⭕ 여자(*, 이솨) - `남자`를 뜻하는 `이쉬`(24절 ; 민 5:6)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자란 남자와 구별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네케바`(1:27)와는 달리 여자란 남자에게서 유래(由來)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창2:24]
⭕ 떠나... 연합하여... 한 몸을 - 본절이 최초 결혼에 관한 언급이라할 수 있겟다.
[창2:25]
⭕ 부끄러워(*, 부쉬) - 몰상식한 일을 당하여 수치심에 빠지거나 비상적인 것에 접하여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과연 성생활을 했는지 혹은 다른 짐승과 같이 성생할 자체에 그저 본능만 있었는지 많은 의문을 제시하는 구절이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정식 결혼식은 하지 않았으나 동거생활을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귀절이 되겠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한다.
첫째:인류최초의 성생활 모습은 집단혼이 좀더 자연스러웠지 않았나하는 점이다. 즉 이왕이면 아담도 여러명 하와도 여러명 제작하고...그다음엔 이들이 부끄럼없이 집단 섹스를 하는 모습을 서술했어야 좀더 우리에게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류최초의 결혼이 일부일처라...나중 일부다처제로 바뀌는 바이블의 서술을 보면 너무나 부자연 스럽기만 하다.
둘째:아담 다음에 하와는 아무래도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확립된 신석기 시대 이후의 사고관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는데 아담의 신체 일부분을 차용하여 하와를 만들었다....이왕이면 아담을 만들 때 그 옆의 흙을 쬐끔 더 사용하여 같이 만듬이 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좀더 정당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다.
이 한귀절을 유추해봐도 바이블의 저작연대는 일부다처제 혹은 일부일처제가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잡고 난 뒤 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확신한다.
다음으로 구약에서 서술하고 있는 결혼제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1)축첩 제도(출 21,7-11): 이스라엘인들은 본처 이외 다른 새 여자를 들여 사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일을 제도적으로 설정했다. 결혼 절차를 밟아야만 여인과 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가 싫어져서, 상관하지 않을지라도, 생활비는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여자 아버지에게 주었던 보상금은 받지 못하고, 그 여자를 해방시켜야 한다(출 21,7이하). 축첩 제도는 법적으로 공식적이었으며 일면 인도적인 측면도 있다. 현재 이른바 사적인 원조교제보다는 매우 공식적인 제도인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축첩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는 일부다처와는 다른 것 같다. 여인이 성교를 위해 남자에게 팔리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여인이 사회적으로 "여 성 성"이라는 조건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불평등함이 문제로 대두되는 사례이다.
2)일부다처제: 창세기에서 족장들은 여러 부인들을 거느렸고, 혈연적으로 사촌 또는 외사촌 누이들과 결혼했다. 일부일처제와 근친 결혼 금기를 위반한 사례이다. 족장들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군주로서(예: 기드온 사사의 아들 70명[삿 8,30]; 다윗의 첩들[삼하 5,13]; 솔로몬은 공식적인 아내 700명과 첩 300명[왕상 11,3]을 두었다고 한다) 여러 부인을 두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족장들은 근친결혼을 통해 족장 지도 체제를 이었다. 근친혼은 레위기 18장으로서 보다는 이집트 왕가의 왕권적인 배경에서 풀어야 할 사례로 보인다. 이는 구약의 예언자 모습과 대립되는 왕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하겠다. 고대 이집트(주전 16세기)에서 아모제는 자기 누이 노프레타리와 결혼했다. 또 아모제와 노프레타리의 부모는 서로 남매간이었다. 왕의 아내들은 "신의 아내"로서 왕(오빠)과 혼인할 수 있었다. 이런 근친혼은 중단되었다가 주전 330-30년에 다시 부활되었다. 팔레스틴 지역을 장악했던 히브리인의 군주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은 정치적으로 이집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재난 때마다 이집트로 가서 원조를 구하려고 했던 일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족장 시대 때 지도층의 결혼이 이집트의 왕권(왕실)의 근친혼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창세기 족장들의 근친혼과 일부다처제는 그 시대의 특수성으로 제한시켜 보게 된다. 아무튼 처첩의 수는 왕의 신분과 걸맞는 품위의 과시였다. 그러나 왕조 시대 평민들은 처첩이 많지 않았다(삼상 1,2참조). 축첩과 다처제는 한 남편과 여러 여자의 관계라는 등식 속에서 남녀의 평등과 동등함을 깨뜨리는 결과를 주는 것이다. 그 외에도 1) 자녀들의 고통 문제, 2) 여성들끼리 자녀들에 대한 질투 문제, 3) 자녀들의 상속 문제, 4) 두 여인이 한 남편으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문제를 안고 있다.
3)시형제 결혼 제도: 이는 창세기부터 예수 시대까지 계속되었던 것같다. 신 25,5-10에 시형제 결혼 제도가 나온다. 법적으로 과부와 결혼해서 사는 것이나, 이는 대가족에서 형제의 혈연, 즉 장자의 후손을 이으려는 결혼 제도이다. 레 18,6-25, 특히 16절에 "너는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는 규정이 있다. 시형제 결혼은 "과부된 형제의 아내와의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한다. 장자의 후손을 존속시키는 목적이 상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결혼은 선택의 여지도 있었다("신 벗긴 자의 집": 신 25,8-9 참조). 창 38,1-11에 최초의 동서결혼(Schwagerehe)이 언급되고 있다.
4)근친결혼: 위에서 족장들의 결혼(창 24,7-67: 리브가는 아브라함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 이삭은 작은 어머니의 아들의 딸과 결혼; 창 29,16-18.20: 라헬은 야곱의 외사촌 누이가 됨)은 이집트의 왕가처럼 친형제와는 다른 사촌형제이상의 형제들과 인척관계를 맺었다. 고로 족장들의 근친결혼은 레 18장의 가족 공동체의 성윤리를 해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삼하 13,1-15는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성폭행한 것은 다말의 입을 통해서 "추행"으로 거절되었었다(삼하 13,12). 이는 레 18,11 "네 계모가 네 아비에게 낳은 딸은 네 누이이니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법을 어긴 것이다.
대체적으로 네가지의 혼인형태가 구약에서 찾을 수 있는 관습으로 볼 수 있는데 인류의 기원을 서술한다고 하는 창세기가
집단혼 그리고 일처다부제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역시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은 바빌론 유수이후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시점...그 언저리에서 저작,편집되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