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일장은 물질을 창조하는 과정을 기록한 설화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그 신은 자신이 창조해낸 물질들의 형상에 대해 "좋았다"하고 감탄하는 신이라한다.
창세기에서의 神은 둘째날 하루를 빼먹기는 했으나 자신이 창조해낸 천지 만물을 보고 혼자서 자아도취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서 "좋다"라는 말은 "선하다"라는 말과 동일한 개념으로 봐도 된다.
그러면 그 반대어인 "나쁘다" 혹은 "악하다"라는 개념도 창조주라는 그 신의 의식에 내재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
창세기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물질세계를 거론하고 있다.
즉 엘로힘이 모든 자연계를 창조했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 창조주의 의식에 좋았다는 관념이 내재되어 있는 사실이다.
만약 나빴다면 언제든지 그 창조를 철회 혹은 파괴할 수 도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기독인들은 여기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든다.
그러나 자연은 이미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대상물이 아닌가?
만약 그 신의 자연 혹은 물질에 대해 변심을 한다면...
창세기 일장은 언제나 이러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 신이 "좋았다"하고 자족하는 대신 "아름답구나"하고 감탄하는 신이었다면?
하고 생각을 해본다.
창세기의 신은 인간을 창조한 후 몇가지 주문을 한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그러나 근본적인 자연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즉 빛과 어둠,물과 우주....
언급하지 않은 물질에 대해선 창조주의 권한이란 뜻이 되겠다.
문제는 그 신의 인식 세계엔 창조와 파괴라는 개념이 언제나 공존한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 인류는 언제나 불안에 떨어야한다는 말이 되겠다.
즉 최고신의 관념에 창조와 파괴라는 두 극단적인 관념이 언제나 대립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관념의 뿌리가 결국은 종말론으로 이어져 이사야,다니엘 그리고 최종적으로 요한에 이르러 인류의 종말론을 성립시켜 말세 신앙론으로 발전했다고 보여 진다.
천지를 창조하고 난뒤 그저 아름답다고 했으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진실함을 모르는 신
아름다움을 모르는 신
그저 좋고 나쁨만 아는 신
그 결과 오직 파괴와 증오의 신으로 야훼가 자리매김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고대 유대인 창세기 기자의 한계이겠지만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