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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기독교는 성경의 오류를 안고 자폭할 것인가?
종교란 인간에게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심어주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독교가 내세운 사랑이라는 가치는 고귀한 것이다. 필자는 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는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막상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 가보면 무시무시한 위계질서와 복종만이 존재한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맹신을 부추기면서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고 한다. 목회자는 신자들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라는 가르침을 전해주기 보다 무조건적인 복종과 맹신을 가르친다. 목회자는 필요에 따라서 성경구절을 민법 몇 조 몇 항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용하며, 사랑보다는 맹신을, 사랑보다는 복종을, 사랑보다는 증오를 설교한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xml:namespace prefix = o />
교회는 무시무시한 비이성과 몰상식으로 가득 찬 사이비 종교의 소굴이다. 사이비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과 윤리에서 어긋나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가 사이비 종교이다. 과학을 부정하며, 민주주의와 어긋나는 절대복종을 가르치며, 민주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미신행위를 일삼으며, 증오를 설파하는 기독교는 이 땅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사이비 종교집단이며 동시에 모든 사이비 종교의 원조다. 실제로 최근에 등장한 신흥 사이비종교들의 교리와 집단체제가 기독교와 유사하다는 점은 정말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문자 그대로를 믿는 것만이 옳은 믿음이라는 문자주의적 도그마(dogma)는 주류 기독교를 아직도 꽉 붙들고 있다. 합리와 이성, 심지어 민주주의의 원칙도 망각하고 오로지 성경만이 기준으로 자리 잡힌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전설과 신화들을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며 윽박지르고, 그 많은 시행 착오 속에서 찾아낸 과학을 어떻게 해서든지 흔들어 버리려고 악을 쓴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런 작태에 어리숙한 사람은 빠져들지는 모르나 지성인들까지 현혹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신자들은 목사가 설교시간에 읽어주는 성경과 그 해석 법에만 의지하려 한다. 목사가 한마디 하면 신도들은 "아멘", "할렐루야", "믿쑵니다" 를 연실 외친다. 나중엔 자기네끼리 경쟁이 붙어서 목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고 들어가는 것이 아주 가관이다. 인간으로써 세상을 살아나가는 기본적인 매너 라든가,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지니고 있어야 할 가치관이라든가,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들 목사의 노예가 되고 싶어 환장을 한다. 이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한 한심한 모습이다.
성경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 무시무시한 모순점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그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그 모순들을 합리화 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자신을 속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자책감이 성경에서 비롯되는 것만큼 비극적인 것이 없다. 분명 성경의 말 중 의심이 들게 하는 사악한 성경 구절은 수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의문을 가진 신자들이 질문을 하면 목회자들은 "이것은 상징적인 구절이다."라고 하면서 모순을 합리화 시키고 모순과의 타협을 본다. 이쯤 되면 이것은 충분히 자기기만이라고 할만하다.
문제는 신학을 공부한 목사들이 성경의 오류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왜 목사들은 그들이 배웠던 내용을 신자들에게 솔직하게 가르쳐주지 못하는가? 기독교는 허위와 기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종교,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면 신자가 떨어져 나갈 종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성경구절을 요리조리 끄집어 내는 삯꾼목사들의 행태는 놀랍기 그지없다. 한술 더 떠서 그들은 배타행위를 하면서도 성경을 들고 나오고, 창조과학을 한다고 하면서 성경책을 들고 나온다. 성경책이 이교도를 찌르는 칼이 되고, 과학의 발목을 잡는 손이 되고, 소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강도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 기독교인은 성경의 문자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때가 이르렀다. 성경을 들고 거짓과 악을 행하는 목회자의 영혼의 노예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성경이 오류로 뒤얽혀 있다 하더라도 목회자들이 이웃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필자의 성경비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목회자는 성경으로 거짓과 악을 행한다. 타락한 목회자, 그리고 증오를 설교하는 사탄교의 교주를 물러가라고 소리쳐도 절대로 물러가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성경으로 남을 공격하고, 성경으로 그들의 거짓을 정당화 시킨다. 성경이 거짓과 악을 행하는 사탄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데에는 성경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본서는 평신도들이 성경의 문자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뜨이지 않는 광신자들도 있으리라고 본다. 광신자는 자신들이 믿는 경전과 교리의 명백한 오류 앞에 이르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광신자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변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현상을 '맹신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맹신 증후군'(true-believer syndrome)이라는 말은 사기극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에 대한 믿음을 바꾸지 않는 명백한 인지적(認知的)인 장애를 말한다. 자신이 따르는 종교나 신념이 오류와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면서도 맹신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의식적으로 거짓말하게 된다. 이런 형태의 자기 기만은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의심을 잠재우고 믿어버림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의 심리현상 중 하나이다. 맹신 증후군에 빠져있는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필자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성경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수많은 종교가 함께하는 종교다원주의 사회이다. 싫든 좋든 기독교인, 불교인, 천도교인, 무신론자, 민족주의자, 뉴에이지 등등이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다원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광신자들이 야기시키는 분란과 분쟁은 끝이 없다.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논쟁에 빠져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피 터지게 싸우는 것도 모자라서, 기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종교와 사상에까지 온갖 비방과 음해를 퍼트린다. 그리고 단순한 비방과 음해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 기독교인들은 실력행사와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다.
"단군은 허구!"라고 광신자들이 주장한다면, 우리 안티 기독교인들은 '엑소더스는 과연 실재했는지',' 예수는 실존인물인지',' 대홍수는 과연 역사적 사건인지' 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탄이니 마귀니 하면서 타 종교를 음해한다면, 우리 안티 기독교인들은 구약 속의 '여호와'가 과연 공의로운 신이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남자와 동침하지 않은 처녀가 임신했다는 등의 비현실적인 판타지(Fantasy)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어째서 악의적인 비방을 끝도 없이 퍼트리고 다니는가?
한니발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침공해 왔을 때,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본국인 카르타고를 쳐들어 갔다. 허를 찔린 한니발은 눈물을 머금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카르타고로 되돌아 갈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한니발은 참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의 뼈아픈 참패로 인해 카르타고는 망국(亡國)의 운명으로 내달리고 말았다. 이제 우리 안티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장수가 되어 한니발(광신자)의 조국인 카르타고(성경)에 역습을 가하고자 한다. 먼저 전쟁을 일으킨 것은 한니발(광신자)이었으니 그대들은 '믿음의 전신갑주'와 '구원의 투구'를 몸에 두르고 적을 맞아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맹신증후군에 빠져있는 그들을 변화시키는 건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안하무인 격의 행동은 잠재워줄 필요가 있다. 이제 광신자가 배타행위의 칼을 뽑아 들었을 때 기독교 내부에서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기독교가 행한 숱한 악행에 머리 숙여 깊이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계에서 영향력이 높지 않은 일부 진보 기독교인 몇몇이 사죄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이다. 폭주하는 광신자를 기독교 내부에서 막지 않는다면, 필시 기독교는 스스로가 갖고 있는 성경의 오류와 함께 자폭(自爆)의 길로 가는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와 같은 이유로 두서없이 성경을 분석해 보았다. 그러나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기독교를 배타하면서 자기종교를 전파하려는 시도에 안티바이블이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는 분명히 기독교 평신자들의 눈을 떠주고, 기독교의 배타행위를 잠재우기 위한 두 가지 목적으로 이 책을 기록했다. 그런데, 기독교를 배타하면서 자기종교를 전파하는데 안티바이블이 사용된다면 이는 필자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화(禍)를 불러오는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다. 그것은 기독교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을 따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끊임없이 타 종교와 사상을 짓밟으면서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려고 했다. 그것이 결국 안티 기독교라는 화(禍)를 불러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저지른 미련한 짓을 절대로 따라 하지 않기를 충고 드린다.
이제 타 종교를 짓밟으면서 성장하던 제국주의적 종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종교는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왔으며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자연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오히려 변화에 역행하고 있다. 아직도 구약 속의 여호와와 성경의 문자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서구 기독교보다도 더 급속하게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한국 기독교, 이제 깨끗하게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고 근본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도래했다. 그 얄팍한 성경구절 몇 장 몇 절 운운하면서 몰상식과 비이성을 강요하려 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빛과 소금으로 거듭나야 한다. 안티 기독교인들이 제 아무리 성경의 오류를 부르짖는다고 할지라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정녕 기독교인들 이라면 우리의 주장은 씨도 안 먹힐 것이다. 또한 사랑이 넘치는 기독교인에게 더 이상 성경의 오류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미 저 차원적인 성경의 문자로부터 해방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경의 문자에 매달리며 목회자의 타락을 합리화 하는데 성경이 쓰이고, 과학을 짓밟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데 성경이 쓰이고, 타종 교를 공격하는 일에 성경이 쓰인다면 기독교는 반드시 성경의 오류와 함께 자폭(自爆)하고 말 것이다. 타락한 목회자와, 배타성에 찌들은 광신자와, 창조과학회를 깨끗이 정리할 때가 왔다. 그들은 기독교안에 내제된 무시무시한 폭탄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절대복종만을 강요하는 설교가 언제까지 통용 될 것이며, 독재자도 물러간 이 시대에 언제까지 황제 같은 목회자가 군림을 할 것이며,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하는데 창조과학회의 사이비과학이 언제까지 먹힐 것이며, 다원주의의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했는데 언제까지 마귀니 사탄이니 하면서 싸움판만 벌이고 다닐 것인가? 이것들은 언젠가 때가 되면 차례로 폭발 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시한폭탄들이다. 목회자의 타락에 염증을 느낀 신자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떨어져 나갈 것이고, 창조과학회의 몰상식한 짓에 지성인들이 폭발을 일으킬 것이며, 반 기독교인으로 돌변한 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자신들에게 던진 수류탄을 다시 그들을 향해 되던 질 것이다. 이 폭탄들은 모두 성경의 "무 오류성" 이라는 기독교의 도그마가 만들어낸 시한폭탄들이다. 이 폭탄들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성경의 오류라는 폭탄을 끌어안고 자폭의 길로 갈수 밖에 없으리라.
END
솔직히 그런 오류 투성이인 책을 아직까지 부여잡고 있다는게 이해가 안갈 따름이죠 믿어라고 떠드는놈이나 믿는놈이다 생각이 없는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인생을 걸만큼 완전 몰입하고 살았습니다.
위에 '맹신 증후군'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어떤 식으로 믿든 상관없다는 교육의 무관심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 대한 논의가 교육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들에게는 상당한 혼란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태로 놔두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반복적인 폐단만 낳게 됩니다.
물론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수뇌부에서 그런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아주 어려운 문제 부터 풀어야 하겠지요.
아무튼 제 입장은 교육에서 부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종교를 맏든 안믿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고 세상을 전쟁 까지도 몰고가는 종교야 말로 심각한 오류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