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시문학의 태동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안티바이블은 기독교 비평에서 활동하시는 적 그리스도님의 글입니다.

▶ 묵시문학의 태동

적 그리스도 0 5,885 2006.07.08 01:20

▶ 묵시문학의 태동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조로아스터교에 의하면 지금의 세계는 짜라투스트라 이후 3000년에 엄청난 세계화재 속에서 멸망할 것이고, 이 세계심판은 초월적이고 종말적인 구원자를 통해 일어난다. 그런 후에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 의로운 자들은 고통 없이 불바다를 통과하지만, 불신자들은 정화되거나 불에 타 없어진다. 의로운 자들과 정화된 자들은 세계화재 이후에 정화된 새 땅에서 살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두 세계의 이원론과 함께 몸과 영혼,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도 있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지금의 세계에 속해 있고, 영혼으로서 다가올 세계에 속한다. 자연은 사라질 지금의 세계의 형태이다.

 

포로기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여호와의 해방의 도구, 메시야로 환영 받을 때(사 45:4), 이런 사상세계가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 유형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수용되었다. 그때는 어떤 의미에서 페르시아인과 유대인간에 상호적인 동정이 생겼을 때였다. 고레스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양자는 정치적으로 바빌론에 적대하고 있었고,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전통적인 죽은 자 예식과 풍산(출산) 제의를 배격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포칼립스(Apocalypse: 묵시)로 알려진 문학형식이 유대인들에게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특히 제 2,3 이사여서부터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드러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사야 43장 18~19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 할 것이라." [이사야 65장 17절]

 

조로아스터교에서 비롯된 묵시문학은 유대교에도 전파되어 신 구약의 중간 기에 해당하는 BC 2세기~AD 1세기에 유대인들도 묵시문학을 기록하게 된다. 그 문서들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비롯된 영지주의 사상처럼 하나의 강력한 이원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곧, 선과 악, 신과 사탄, 빛과 어두움은 서로 충돌하고 있어 도무지 화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은 교정이 불가능한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미련이 거의 없으며, 이러한 면에서 비관주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 속에 신의 부재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신이 역사의 무대에서 활동하지 않고 오히려 이 세상을 방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신의 나라의 수직적인 도래를 통한 역사의 파국을 희망한다. 이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던 모세오경에서는 찾기 힘든 점이다. 오경 속의 여호와는 유대민족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이방인들을 멸한다.

특히, 유대인의 묵시문학 속에는 강력한 이방민족들 사이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느껴야 했던 민족적인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묵시문학이라고 인정하는 최초의 독립문서(獨立文書)는 다니엘서(BC 2세기 중엽)이지만 훨씬 이전에 비교적 짧은 같은 종류의 문서가 구약의 다른 부분에 포함되었다. 이사야 서, 스가랴 서 등이 그것인데, 최근에는 제3이사야 55∼66장의 주요 부분을 초기 묵시문학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사야서의 저자는 여러 명으로 후대에 많은 내용이 덧붙여 졌다). 이 소 문서들은 대부분이 상징적인 서술로 일관되어 있고 한편 BC 5∼BC 3세기의 유대역사에는 불분명한 점이 많기 때문에 그 내용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시키는 실마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현실에 순응하는 예루살렘 귀족 또는 제사장들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쓰여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 점은 다니엘서에서 명백히 볼 수 있는데, 일반신자들에게 다니엘서는 BC 6세기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BC 2세기경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의 유대교 탄압과정에서 전통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새로 등장할 마카비 왕조를 찬양하기 위해 쓰여졌다. 당시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가와 알렉산더 치하의 통치는 시간이 갈수록 제국주의적인 형태로 변해갔다. 그것은 정복한 백성들을 완전히 헬라화하려는 의지를 관철했다. 그리고 백성들의 종교적, 사회적, 민족적 전통을 폭력으로 해체시키려는 시도도 이에 드러나게 된다. 이로 인해 유대 땅에서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페르시아에도 동일한 묵시문학적 저항운동이 일어났고, 디아스포라화 된 수많은 유대인들이 율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도 헬라화의 과정에서 일어났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묵시적 희망표상을 가진 두 종류의 집단이 두드려졌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성스러운 사람들'을 뜻하는 하시딤(Hasidim or Chasidim)운동자들로 자신을 '경건한 자'로 의식 하여 헬레니즘의 사상을 배격하고 유대인의 옛 전통을 지키려고 전전긍긍했다. 예루살렘의 성소 제사장 무리들 중에는 그들을 강력히 추종하는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바리새인'이 파생되어 나왔다. 바리새인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같은 묵시문학적 사상체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다른 묵시적 저항 가들은 마카비인들(유다 마카비, 요나단, 시몬)에 의해 주도된 무리들로서 폭력혁명으로 억압적인 헬라화 정치에 대항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유대교내에 영지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쿰란의 에세네파는 예루살렘의 성전제의를 거부하며 이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종교관은 이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보는 이원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신 구약의 중간 기에 등장한 묵시문학들은 악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에 종말이 온다는 철저하게 영지주의적인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나중에 기독교가 등장한 뒤 이 세상을 창조한 여호와가 제작자인 데미우르고스에 불과하고, 예수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현재의 기독교가 아무리 영지주의를 배격한다고 해도 기독교안에 잠재된 종말론 그 자체가 강력한 이원론이다. 이 세계는 구제불능의 세계이니 필연코 멸망해 버릴 것이라는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세계관이다.

 

러셀의 설명에 의하면 묵시문학은 삶이 평안하고 정상적일 때에는 결코 번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 핸슨(Paul D. Hanson)의 설명에 의하면 묵시가들은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유래하는데, 이 집단들은 권력에서 소외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고 지적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국 분열, 외세의 침공, 남북왕조의 멸망, 이스라엘인들의 헬라화등의 고난을 겪었던 유대민족에게 종말론적인 묵시문학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상의 위대한 일들은 미래에 있을 종말의 시기(세상 끝날)에 재현되리라는 묵시문학적 희망으로 바꾸어지게 되었다. 묵시문학적, 종말론적 희망은 이 세계와 역사가 일단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오는 새 기원을 전제로 하고 기대한다. 여호와의 통치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은, 이 세계가 탈 역사화하여 초월적 실제로서 나타난다는 기대로 바뀌어졌다. 이처럼 종말론적, 초월적 희망이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구약성경의 다니엘서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정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유대교 묵시문학으로서 에티오피아 에녹서(1-107장, 혹은 에녹 1서), 슬라브 에녹서(1-73장, 혹은 에녹 2서), 히브리 에녹서(1-48장, 혹은 제 3에녹서, 세가지 종류의 에녹서는 쓰여진 언어를 따라 분류해 놓은 것이기도 하지만, 저작 연대 역시 크게 차이가 난다), 에스라 제4서, 시리아어 바룩 계시록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비추
105 서론. 나는 왜 성경을 우롱하는가? 댓글+10 적 그리스도 2006.07.19 31610 1 0
104 1장. 근본주의 교리에 대한 고찰 댓글+3 적 그리스도 2006.07.19 16149 0 0
103 ▶ 참을 수 없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가벼움 댓글+18 적 그리스도 2006.07.19 25045 2 0
102 ▶ 믿음이 우선인가? 사랑이 우선인가? 댓글+11 적 그리스도 2006.07.19 16298 1 0
101 ▶ 기독교는 불가지론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댓글+4 적 그리스도 2006.07.19 19320 0 0
100 ▶ 죄를 포맷(Format) 하기를 반복하는 기독교인 적 그리스도 2006.07.19 11475 0 0
99 2장. 지옥에서 올라온 여호와 댓글+11 적 그리스도 2006.07.19 11993 0 0
98 ▶ 여호와 산신령의 어원과 기원 적 그리스도 2006.07.19 10522 0 0
97 ▶ 복수와 저주의 신 여호와 댓글+1 적 그리스도 2006.07.19 10442 0 0
96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의 여호와 적 그리스도 2006.07.19 9547 0 0
95 ▶ 여호와는 유일신이 아니었다 댓글+2 적 그리스도 2006.07.19 11195 0 0
94 3장. 엽기적인 성경 적 그리스도 2006.07.18 10993 0 0
93 ▶ 여호와가 내려준 사악한 율법 댓글+2 적 그리스도 2006.07.18 9793 0 0
92 ▶ 여성인권 유린하는 성경 적 그리스도 2006.07.18 9683 0 0
91 ▶ 성경 속에서의 근친상간 적 그리스도 2006.07.18 14976 0 0
90 ▶ 삼손에게 씨인 여호와 귀신 적 그리스도 2006.07.18 8762 1 0
89 ▶ 성기껍질을 전리품으로 챙긴 다윗 댓글+1 적 그리스도 2006.07.18 10738 0 0
88 ▶ 마누라를 상납한 아브라함 적 그리스도 2006.07.18 10162 0 0
87 ▶ 모세는 폭군인가? 적 그리스도 2006.07.18 8687 0 0
86 ▶ 기독교인이 모르는 두 번째 십계명 적 그리스도 2006.07.18 11780 1 0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134 명
  • 오늘 방문자 3,513 명
  • 어제 방문자 4,469 명
  • 최대 방문자 5,411 명
  • 전체 방문자 1,465,196 명
  • 전체 게시물 14,414 개
  • 전체 댓글수 38,036 개
  • 전체 회원수 1,663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