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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대에 조작된 구약의 예언
구약의 묵시문학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주로 저자들의 이름을 숨기고 과거의 유명한 사람들(에녹, 에스라, 다니엘과 같은)의 이름을 빌려서 위명(爲名: Pseudonym)으로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미래시제로 조작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을 인터폴레이션(Interpolation: 수정 어귀를 가미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오래된 예언서들이 이러한 형태를 띄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노스트라다무스의 모든 세기라는 예언서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상당히 상징적으로 암시되어 있어서 해석하기가 난해한데, 그 중에서 현대인이 읽어보아도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예언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대혁명의 예언이다. 1999년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구절도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상스럽게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예언은 아주 자세하게(왕이 사로잡히는 내용까지) 서술되어 있다. 오늘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중, 히틀러의 등장, 프랑스 대혁명 등의 예언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고 주장하면서 혹세무민하는 사람이 있는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연구하는 학자들 역시 많은 부분이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덧붙여 진 것이라는데 합의를 보고 있다.
구약의 예언들 역시 이러한 인터폴레이션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구약의 예언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기록해 놓았지만,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과거의 일이 된다. 예를 들어, 안티오코스4세라는 시리아의 왕이 유대 땅을 약탈하며 유대교를 탄압 했다가, 반란이 일어나 그를 축출하고 다시 유대인이 왕권을 잡게 되었다고 하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새로 들어선 마카비 왕조의 왕권확립을 위해, 왕을 지지하는 세력의 누군가가 그 모든 것이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되어있던 일이었다고 거짓문서를 작성한다. 그는 시중에 존경 받는 다니엘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 시킨다. 책의 저자도 다니엘로 발표 한다. 그런데 다니엘은 BC 600년경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전설적 인물이다. 따라서 책은 BC 6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간주 된다. 다니엘로 위장한 익명의 저자는 책 속에서 앞으로 닥칠 일들을 경고 한다. 하지만, 익명의 저자에게는 바빌론제국의 몰락과 유대인의 귀환, 헬라제국의 분열, 안티오코스의 유대교박해와 몰락에 대한 사건들은 이미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다니엘의 이름을 빌린 저자는 그것이 마치 미래에 일어날 일인 것처럼 기록한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할지 못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사실이다. 다니엘서에는 후기의 헬라어 단어가 3개(3장에 악기들의 명칭으로 등장)나 들어 있으며, 후기의 페르시아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다니엘이 바빌론에 끌려간 BC 6세기에 쓰여졌다면 이런 현상은 일어날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쓰여진 문체, 언어, 문법 역시 그 시대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또한 BC 190~180년에 쓰인 집회서의 이스라엘 예언자 명단(집회 48,22; 49,7-8.10)에 다니엘이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 후의 BC 134년과 BC 104년 사이에 저술된 마카베오 상권의 저자는 다니엘서를 언급한다(1마카 1,54 = 다니 9,27과 11,37). 그리고 70역의 다니엘서는 BC 145~140년경의 로마 신탁 집에서도 이용된다. [주교회의성서위원회편찬 /임승필번역 / 구약성서새번역17-다니엘, 토비트, 유딧, 지혜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주석中 다니엘서 입문]
또한 다니엘서의 역사적 출처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 현재의 다니엘서를 바탕으로 다니엘 예언자의 전기(傳記)를 쓴다는 것은 옳지 않다. 다니엘이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본디 서로 관련이 없었다. 다니엘서의 최종 저자는, 이 이야기들을 전통적 방식에 따라 느부갓네살(1~ 4장), 그의 아들 벨사살(5장과 7~8장), 그리고 메대 사람 다리우스와(6장과 9장) 페르시아 사람 고레스(10~12장) 등 여러 임금의 통치 시대에 배치시켰다. 다니엘서는 BC 606년에 유배를 간 한 젊은 유대인이 세 동료와 함께 선택을 받아 왕궁의 시종이 되는 과정을 그려 나간다(1장). 이 젊은이는 해몽을 잘 함으로써 벼슬에 오르게 된다(2장). 그 뒤에 그와 세 동료는 일시적으로 생명까지 위협받는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3,6.14), 페르시아 제국이 시작될 때까지 출세 길을 달린다. 유배 간 유대인들이 벼슬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정승(6장) 또는 지방 장관, 그리고 현인들의 총 감독관이 되었다고 말함으로써(2,48-49; 4,6; 5,11), 저자는 그 가능성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다. 이는 그의 의도가 역사적 설화와는 다른 차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것이다. [새 번역성서 주석中 다니엘서 입문. 1992. 분도출판사]. 따라서 다니엘서는 안티오코스의 유대교 박해와 마케베오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다니엘서는 그 책이 왜 쓰여 졌는지에 대한 저자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다니엘이 바빌론 왕들의 꿈을 해몽해주는 앞부분 이야기를 제외하고, 후반부의 예언들은 거의 다 안티오코스4세의 몰락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티오코스에대한 예언은 날짜와 시기까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또,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끝 날은 종말이 아니라 안티오코스가 몰락하는 그날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다니엘서가 바벨론 시대에 쓰여진 것이 BC 2세기경의 안티오코스와 마카베왕조의 시기에 기록된 것이라는 것은 이미 학자들은 잘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바빌론에 끌려 간 다니엘이 바벨론의 몰락과 새로 등장할 왕조를 예언했다고 하지만, 안티오코스 시대에서는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니엘서의 위명의 저자는 이미 지나간 사실을, 미래에 일어날 일처럼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역시 다니엘서에 아래와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성립연대는 BC 6세기에 다니엘이 바빌론에서 기록한 것이라고 했으나 오늘날에는 BC 2세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박해 당시 다니엘의 이름을 빌려 기록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시 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다니엘서 Book of Daniel항목]
가톨릭백과 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계시록적인 집필의 구성을 마카비왕조 기간 동안의 미지의 저자의 일로 여기고, 정확하게 안티오코스4세(에피파네스, 기원전 175~164년)라고 지목한다."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ume IV / Book of Daniel 항목]
'숨겨진 성서'의 저자 윌리스 반스토운은 외경인 이사야의 승천을 설명하면서 성경의 묵시문학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그 환상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묵시록의 저술 자는 사도나 구약의 선조 등 성서상의 저명한 인물들을 그 저술 자로 내세운다. 또한 예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 내용을 일반적으로 과거에서 끌어낸다. 미래의 역사에 대한 예언이 적중한다. 묵시록의 내용은 이미 과거에 발생한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 성서 3권 / 이동진역 / 문학수첩 P. 22]
다니엘서의 저자와 기록연대에 대하여 최초로 비평을 가한 것은 AD 3세기 시리아 사람으로 헬라 철학자인 포르피리(Porphyry)였다. 그는 AD 233년 시리아의 두로에서 태어나 잠시 가이사라에서 오리겐(Origen)교부(敎父)문하에서 공부한 후, 로마에 가서 신 플라톤주의 대표 철학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철학자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항하여'(Against the Christians)라는 제목으로 15권의 책을 썼는데, 그는 그의 책 제 12권에서 다니엘서에 대해서, 다니엘서는 다니엘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BC 2세기 시리아의 왕이었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시대에 유대 땅에 살던 어떤 유대인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다니엘서는 장차 올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일을 미래 시제(時制)를 써서 예언인 것처럼 위장했을 뿐이며 저자가 알 수 없는 장래 일을 추측으로 그럴싸하게 기록한 것 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8,19세기를 직후 해서 유럽에서 중세기적 신학을 배격하고 합리주의적인 새로운 신학의 조류에 의한 고등비평이 일어나면서 다시 이사야서와 다니엘서와 같은 문헌들이 비평의 도마 위에 올려졌고 그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구약의 예언서가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한 권의 문서 뒤에 자신의 책을 붙여서, 전체가 연결된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사야서의 저자는 한 명이 아니다. 이미 학계에서는 오늘날에는 이사야서를 제3의이사야까지 분리해놓고 있는 상태이다. 두산세계대백과 역시 아래와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예언자 자신이 직접 쓴 것은 아니고 제각기 복잡한 절차를 거쳐 형성되었는데, 특히 '이사야' '예레미야' 등은 후대에 많은 가필이 이루어졌음이 인정되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예언서 豫言書 prophets항목]
특히 모세 오경과 달리 예언서의 가필이 심했던 것은 그 책의 공인과정에서도 알 수가 있다. 토라(Torah), 즉 모세 오경은 바빌론 유수 이후에 여러 가지 전승들이 하나로 묶어졌고 가장 빨리 경전으로 인정받았다. 반면에, 예언서인 네비임(Nebiim)과 성문서(聖文書)인 케투빔(Kethubim)은 마카비 혁명시대(BC 2세기)와 예루살렘 멸망(AD 70년경)시기에 유대교의 경전으로 공인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예언서의 내용들이 바빌론유수 이후에 등장해서, 유대교의 경전으로 공인 받기 전까지 계속해서 수많은 내용이 덧붙여졌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예언서의 내용이 기가 막히게 맞았던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특히, 구약의 예언들은 마카비 혁명이전의 사건에 대해서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예언을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 즉 헤롯대왕과 로마의 등장, 예수의 등장, 유대인들이 유대 땅에서 추방되는 사실에 대해서 구약의 예언서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카비 혁명 이전에는 위명의 저자가 예언서를 마음대로 조작 할 수가 있었지만, 유대교의 경전으로 자리잡아 가면서 함부로 손을 대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예수에 대한 예언이 구약에 있다고 주장하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7장의 억지로 끼워 맞춘 예수신화에서 신약의 기자들이 아무런 상관없는 구약의 구절을, 고의적으로 예수의 생애에 끼워 맞추기 했다는 것을 밝혀둔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