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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분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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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96년경 요한이 밧모섬에 귀양가서 환상 가운데 기록했다는 요한계시록은, 외적인 모습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일종의 편지양식을 띠고 있다. 저작 년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오늘날 대부분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 A.D. 90~96)의 통치 시대로 본다. 당시의 기독교 핍박은 조직적이고도 전체적인 것으로 아주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로마의 황제 숭배가 로마에서뿐만 아니라 전 지역으로 확대한 시점으로 보인다. 로마의 황제 숭배는 네로로부터 시작했지만, 황제 숭배가 가장 강성했던 때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시대라고 한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신격화시킨 황제예배를 통해 제국내의 정신계를 통솔하려 하였다. 왜냐하면 약화된 로마제국의 질서와 통일을 황제예배를 통해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황제숭배를 전국적으로 강요하고, 황제를 '우리의 주와 신'(Dominus et Deus noster)으로 숭배케 한 것이다
신약성경 가운데 요한계시록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책은 없다. 요한계시록에는 환상과 상징과 숫자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4,7,12,24,666등 특별한 수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구약의 예언서를 모르고 있다면 이런 상징들을 알 수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구약의 상징들을 모방했다. 그 동안 계시록의 예언의 배열 순서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어왔다. 하나는 연대기적으로(chronological) 보는 견해와, 반복적으로(recapitulative or topical) 보는 견해이다. (Liddle, Lund Farrer, Lohmeyer, Rissi, Bowman) 전자는 계시록의 계시 배열이 역사 가운데 일어날 순서대로 배열되었다는 것이고, 후자는 저자가 메시지 전달을 위해 한 번 나왔던 주제들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7가지의 인, 나팔, 대접재앙이 차례로 떨어지면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다음과 같은 재앙들이 일어난다. 백마 - 적마 - 흑마 - 청황마(1/4 죽음, 온역) - 순교자(핍박) - 천체의 변화 - 그리고 7번째 인을 떼면서 나팔재앙으로 전환된다.
나팔재앙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피 섞인 우박 (땅1/4) - 불붙는 큰 산(바다 1/3)-떨어진 별(물1/3) - 해 달 별 어두워 짐(1/3) - 황충 - 유브라데 전쟁(1/3사망) - 그리고 7번째 나팔 재앙에서 대접재앙으로 전환된다.
대접재앙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독한 종기(땅 전체) - 바다 생물 사망 (바다 전체) - 물이 피가 됨(물 전체) - 해가 사람을 태움(전체) - 고통스러운 종기와 어두움(짐승의 보좌) - 아마겟돈 전쟁(유브라데 강) - 바벨론 멸망(공기)
여기서 계시록의 재앙들이 반복적임을 알 수가 있다. 그 외에도 7인의 일부 내용은 7나팔과 7대접을 통해 반복되고 있으며, 신자들의 인내의 주제는 2장 10절, 3장 10절~11절, 12장 11절, 13장 10절, 14장 12절에서 계속 나타나며, 낙원에서의 회복 주제는 7장15~17절, 14장1~5절, 21장 3~4절에 계속 보이고 1장 7절에서 자세하게 설명된다. 7장 9~14절에 제시된 교회의 승리는 12장 11~12절에서 다시 보여지고 12장 5절, 14장1절, 15장 22절, 21장 2절에 계속 나타난다.
그러나 계시록의 배열은 반복적이면서 연대기적인 면이 있다. 인 재앙의 경우 그 피해 면적은1/4인데 비해(6:8), 나팔 재앙의 경우는 1/3이며(8:7-12), 대접 재앙의 경우엔(16:1~11) 그런 표시가 없다. 이것은 인 재앙 보다는 나팔 재앙이 종말에 더 가까우며, 나팔 재앙보다는 대접 재앙이 더 가까운 것임을 보여준다. 첫째 인에서 다섯째 인까지는 지상에서의 자연계 인간계의 재앙을 보여주나(6:1~11), 여섯째 인에서는 전체의 이상과 지구의 파멸이 나타나고 있다(6:12~17). 나팔 재앙에서는 수목과 하수와 바다와 인간이 재앙을 당하지만(8~9장), 대접 재앙에서는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재림하는 어린 양의 군대가 지상의 왕들과 싸우는 아마겟돈 전쟁이 언급되고 있으며, 바벨론의 멸망이 나타나고 있다. (16장) 재림에 가까울수록 재림에 가까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19장), 재림에 멀수록 재림에 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4장). 구약에서도 나팔은 경고를 의미하고, 대접은 심판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의 재앙은 점진적 평행주의(progressive parallelism)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즉, 계시록의 계시 배열은 반복적이면서도 연대기적인 하나의 나선형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며, 다시 말해 종말을 향한 점진적이고도 반복적인 주기성(나선형 주기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 삽경(揷景, interlude)군을 파악 해야만 한다. 삽경이란 본 계시(本啓示)와 본 계시의 막간에 나오는 중간 계시(中間 啓示)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내용을 본계시라고 할 때 이들 범주에 들지 않으면서 이들과 전후 관계를 가진 독자적인 계시들이 여러 번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삽경에서는 앞에 나온 본계시 혹은 뒤에 나올 본계시의 어떤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전체적 구조에서는 이렇게 본계시와 중간 계시가 서로 번갈아 나오는 가운데 진행되어 간다. 예를 들어, 6장에서 여섯째 인을 떼었으니, 7장에서는 이어 일곱째 인을 떼어야 하겠지만 일곱째 인은 8장에 가서 떼어지고, 6장과 8장의 중간 장인 7장에서는 일곱 인의 순서와는 관계가 없는 장면인 중간 계시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7장의 삽경 즉 중간 계시는 본계시와 연속되는 순서에 있어서는 관계가 없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깊은 관련성이 있다. 즉 7장은 6:17의 해답을 주기 위한 것으로, 6:17의 질문인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한 답이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동시에 앞으로 8장에서 있을 일곱 나팔 재앙을 면할 자는 어떤 자인지를 미리 알려 주는 것으로 그들은 신(神)의 인 맞은 자들임을 보여 준다. 이런 점을 볼 때 삽경은 보충 계시(補充 啓示)라고도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적어도 3개의 큰 삽경군이 나온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7:1-17),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10:1-11:14), 일곱째 나팔과 일곱 대접의 계시 사이(12:1-14:20)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살펴보자. 5장에서 인봉된 책을 가리켜 천사가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5장2절)고 말했으나, 아무도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때, 유대 지파의 사자이며 다윗의 뿌리이고 이기신 자인 어린양이 등장하여 인을 뗀다. 물론, 어린양은 예수를 말한다. 인봉한 책은 생명 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인을 하나씩 떼자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시된 책에 대한 소개는 이미 유대 묵시문학, 특히 에스겔 2:9-3:3에서 여호와가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펼치라고 명령한 것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가 있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 2장 9절~3장3절]
특히, 에스겔에게 책을 먹게 하는 부분은 뒷부분의 장에서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모방을 했으니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6장에서 인을 떼자 재앙을 일으키는 말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스가랴서의 홍마, 자마, 백마, 흑마를 모방한 것이다.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스가랴 1장8절].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스가랴 6장 1~8절].
첫 번째 인을 떼자 등장한 흰 말은 국제적인 전쟁으로 해석된다. 역사적으로 특히 흰말 군대는 당시 로마제국이 제일 무서워하였던 팔디아 군대를 암시하는데 그들은 활 쏘기의 명수로 A.D. 62년에 로마에 대해 전무한 승리를 거둔바 있었다. 그러나, 흰말을 탄 자에 대해서는 해석이 극단적으로 달린다. 흰말을 탄 자가 적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흰말을 탄 자가 직접적으로 재앙을 불러오지는 않고 승리한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인, 나팔, 대접을 떼면서 닥치는 것은 재앙이었기 때문에 필자는 흰말을 탄 자가 예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붉은 말의 붉은색이 전쟁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인데 흰 말이 국제적인 전쟁이고 붉은말이 국내적인 내란을 말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어서 등장하는 검은 말의 검은색은 기근(렘14: 2)의 상징이다. 저울은 든 것은 흉년 때의 표식으로 배급을 주기 위해 무게를 다는 광경이다. (겔4: 9-16, 레26: 26).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에스겔 4장10~11절]
위의 개역한글판의 뜻이 애매모호하므로 공동번역판의 동 구절을 올린다.
"너는 그 음식을 저울로 달아 하루에 이십 세겔씩 시간을 정해 놓고 먹어라. 물도 되어서 마시는데 하루에 마실 분량은 육 분의 일 힌이다. 그것도 시간을 정해 놓고 마셔라."
[에스겔 4장10~11절 / 공동번역판]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레위기 26장 26절]
당시 1데나리온으로 평상시엔 밀 1말을 그리고 보리는 3말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근으로 평균물가가 엄청나게 인플레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6절)는 말에서 보듯이 기근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화사치를 하는 자가 있음을 나타내준다. 아마도 극심한 빈부의 격차를 말해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네 번째 청 황색 말의 청황 색은 시체의 색깔로서 질병과 죽음을 상징한다. 이 재앙으로 인류의 4분의 1을 죽을 것을 가리킨다. 특히 사망은 온역이란 뜻도 된다. (계2: 23, 눅21: 10-11). H. Kraft의 국제성서주석(1983 p. 191)에서는 첫째 말 탄 자는 사자 궁, 둘째 말 탄 자는 처녀궁을 상징하며, 저울 궁이 저울과 일치하며 전갈 궁이 죽음과 역병을 지배한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다섯째 인을 떼자 순교자들의 호소가 현세의 심판과 복수를 재촉한다. 여섯째 인을 떼자 천지의 변동과 지진이 나타난다. 7장에는 구원받을 신자의 수가 144000명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12×12,000이다. 계시록에서는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신의 인을 친다고 했는데, 12는 점성학의 12궁도(하늘의 완전수), 뒤의 12,000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수인 12에 1000(땅의 완전수인 10의 세 제곱)을 곱한 수이다. 유대인은 무한하고 끝이 없는 수를 표현할 때 10을 곱하는 것으로 나타내곤 했다. 마태복음 18:21이하에서 70×7, 10,000 달란트, 100등의 비유적인 숫자가 나타난다. 따라서 이 숫자는 수비학에 기초한 상징일 뿐이지 직접적인 숫자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이 지나간 후에 7번째 인을 떼자 재앙은 나팔재앙으로 바뀐다. 나팔을 분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경고의 의미이다. 스바냐1: 15-16절에서도 여호와의 큰 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나팔로써 경고를 내린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스바냐 1장 15~16절]
이렇게 나팔은 경고의 의미를 갖는다. 나팔의 또 하나의 의미는 여호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출애굽기에서 시내산에 여호와가 임재 할 때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제 삼 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출애굽기 19장 16~19절]
또, 구약 성경에 보면 백성들이 모이고, 행진하고, 전쟁을 알리고, 절기를 표시하기 위하여 은(銀)나팔 또는 양각(羊角)나팔을 사용했다. [민10: 3~10, 수6: 1~20] 필자는 나팔의 세가지 의미 중 스바냐의 경고의 나팔이 가장 합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저자는 구약의 묵시문학에서 상징들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무저갱의 열고 메뚜기 떼(황충)가 나오게 된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무엇인가? 사이비 종말론자들이 핵폭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새벽 별은 성경에서 사탄, 즉 루시퍼를 뜻한다. 예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눅10: 18)고 말했고, 구약 이사야서에서도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는고"(사14: 12)라면서 하늘에서 떨어진 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계명성은 영어로 루시퍼(Lucifer)로 샛별, 금성(Venus)의 이름임과 동시에 마왕(Satan)의 이름이다. 특히 11절에 의하면 무저갱의 사자(무저갱으로 떨어진 천사)인 임금의 이름을 히브리어로는 아바돈(Abaddon)이고 헬라어로는 아볼루온(Apellgon)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아바돈은 멸망, 파괴 등의 의미이고(욥26:6, 31:12) 아불루온은 분사형으로 파괴하는 자, 죽이는 자 등의 뜻이다.
무저갱 속에서 황충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메뚜기 떼를 말한다. '개역한글'에서는 황충이지만,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판'은 메뚜기로 번역되어있다. 닥치는 대로 곡식을 먹어 치우는 메뚜기 떼는 구약에서 재앙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특히 요엘1장과 2장에는 메뚜기 떼가 여호와의 재앙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사이비 종말론자중에는 메뚜기 떼가 헬리콥터나, 현대적인 병기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어리석은 해석이다. 메뚜기 떼는 이마에 신의 인 맞지 않은 사람들만 해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것도 죽이는 것이 아니라, 5달 동안 괴롭히기만 하는 능력만을 가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대적인 병기와는 거리가 멀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큰 유프라테스강에 매여 있는 4천사를 풀어 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며, 2억명의 기마병(마병대)들이 불과 연기를 뿜는 말을 타고 전쟁을 치른다. 이들 네 천사는 7장에 등장하는 바람을 붙잡고 있었던 4천사임이 분명하다. 특히 이 부분의 2억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세계 1,2차 대전 때에 참가한 모든 병력도 수천만 명 정도인데, 2억명 가량의 군대라는 숫자는 실로 엄청난 숫자이다. 계시록의 대부분의 숫자들은 구약을 통해서 그 상징을 알 수가 있는데, 여기 등장하는 2억이라는 숫자만큼은 이렇다 할 해석이 없다. 따라서, 이 구절에 등장하는 2만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한 나머지, 사이비 종말론자들은 중국의 군사력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2억명의 기마병에 대해서 70년대에 조용기목사, 할 린드세이(Hal Lindsey)등은 중공(중국공산당)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라면 2억명 가량의 군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오늘날 현대전에 있어서 보병, 탱크, 포등은 그 가치가 거의 상실되었다.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현대전에서 가장 큰 효력을 갖는 것은 미사일과 비행기이다. 현대전은 1,2차 대전과는 달리 그 다지 큰 인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전투기 1대가 1개의 보병사단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을 을 숙지하라. 앞으로 세계3차대전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숫자의 군인들이 떼거리로 모여 전투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첨단병기들이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할 것임을 알아 두어야 한다. 따라서 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들에 집착한 나머지, 숫자놀음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10장에서는 천사가 요한에게 작은 책을 주면서 먹으라고 했고, 그을 먹자 입에서는 꿀과 같이 달았지만 배에서는 썼다고 한다. 이것과 똑같은 내용이 에스겔서 2장8절 ~3장3절에도 있다. 12장에는 12개의 별이 달린 면류관을 쓴 여자가 모든 국가를 다스릴 자를 낳는다. 그녀는 광야에서 1260일동안 지냈고(1260의 의미는 위의 다니엘서 분석에서 언급했다). 7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이 달린 용이 그 여자가 낳을 아이를 죽이려고 했으나 천사 미카엘의 도움으로 용(사탄)은 추방되었다. 그녀는 광야에서 독수리의 도움으로 한때와 두 때, 반 때를 숨어 지낸다. (한때, 두 때, 반 때의 의미도 위의 다니엘서에서 언급했음). 그녀가 낳는 아이는 예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이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12별의 면류관은 다분히 점성학적인 냄새가 풍긴다. (예수의 12제자나 구약의 12지파도 점성학적에 기인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13장에는 짐승이 나온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3장 1~2절]
여기 등장하는 짐승은 다니엘서를 언급한 윗글을 먼저 읽으신 분이라면 짚이시는 것이 있을 것이다. 즉, 위에서 언급한 다니엘서 7장의 꿈 속에서 다니엘은 사자, 곰, 표범 그리고 열 뿔을 가진 짐승을 보았는데, 이 각각의 네 짐승이 요한 계시록에서는 첫 번째 짐승 하나로 모아져 묘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묵시문학의 이러한 짐승들은 당시 통치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자는 바빌론을, 곰은 메데파사를, 표범은 그리스를, 열 개의 뿔을 가진 동물은 시리아(수리아)를 상징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열 개의 뿔을 가진 짐승은 다니엘서의 모든 짐승이 하나로 합쳐진 모습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이 짐승은 이 모든 지역을 전부 통합한 로마 제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일곱 머리는 제국들을 상징한다. 일곱 머리는 바벨론 제국, 메데 파사 제국, 헬라 제국, 그리고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데, 헬라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이후 네 개의 왕국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들은 마게돈, 소아시아, 셀루키드 제국, 그리고 이집트이다. 따라서 이들 모두를 합한 머리가 일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짐승을 오늘날의 강대국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사이비 종말론자들이나 할 짓이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상징들은 전부 구약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구약을 무시하고,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을 오늘날의 강대국에 대입시키는 자가 있다면, 그가 구약이나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해보라. 로마로 해석되는 짐승이 나타난 후에 두 번째 짐승이 나타난다. 두 번째 짐승은 기적과 이변을 행하며 첫 번째 짐승을 우상숭배하게 만든다.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여버리고 사람들에게 이마나 오른손에 짐승의 인을 받게 한다.인을 받지 않은 자는 매매(賣買)를 금지시켰는데, 짐승의 인을 받은 사람은 666명이라고 한다. 이 부분이 수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던 문제의 구절이다. 짐승의표 666을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지 못하면 매매를 금지시킨다는 계시록의 내용을 토대로 '세계정부와 666', '컴퓨터와 짐승의 표 666'같은 책들이 나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 책의 내용을 받아들인 극단적 사이비 종말론자들은 666표가 신용카드를 대신해 인간의 몸에 바코드를 새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웃지 못할 비화도 있다.
우선, 첫째로 두 번째 짐승이 사람들을 미혹하여 첫 번째 짐승을 우상숭배하게 만든다는 것은 당시 전국적으로 강제된 황제 숭배를 암시한다. 쥴리어스 시져, 아우구스투스, 클라우디우스, 베스파시아누스, 그리고 디도가 사후 로마 상원에 의해서 신으로 선포되었으며, 요한계시록이 등장할 당시에 황제숭배가 가장 극심했다. 그리스의 주화(Coin) 드라쿠마(Drachma)에는 그리스 신화의 신, 성조 올빼미, 지배자 모습, 곡식의 이삭 등을 새겨 넣었으나, 로마의 주화에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이래 황제마다 '신성한'(DIVUS)이라는 찬양 문구와 함께 자신의 초상을 주화에 새겨 넣었다. 또한 로마에서는 매매계약 때 요즈음의 인지 같은 인장(황제의 인)을 찍었다. 짐승의 표(황제숭배)를 받지 못한 자가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 것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666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암시하는가? 가장 많이 알려진 해석 법은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수비학(numerology)적 계산법이다. 당시에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의 알파벳은 각각 고유한 수(數)로 표시 되었는데, 여기에서 단어의 알파벳을 수치로 환산하는 궤변론이 유행했다. 게마트리아방식에 의해 많이 지적되는 것은 로마의 폭군 네로의 이름이 666과 관련 있다는 주장이다. 네로 황제(Neron Caesar)를 히브리어로 쓰면 네론 카사르(NRON KRS)가 되는데, 숫자를 계산해보면 N(50) + R(200) + 0(6) + N(50)+K(100)+R(200)+S(60)=666이 된다. 그러나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을 왜 하필이면 이 대목에서만 히브리어로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또 다른 주장은 로마를 가리키는 라테이노스(lateinos)의 헬라어 숫자라는 것으로 즉 L(30)+A(1)+T(300)+E(5)+I(10)+N(20)+O(70)+S(200)=666이 된다. 그러나 신약의 아무 곳에서도 로마를 라틴이라고 부른 곳이 없다. 이외에도 수많은 숫자 풀이들이 있으나 그 어느 것도 만족한 해답이 못 된다.
또 한가지 해석은 6이라는 숫자의 불완전성, 부족성이다. 성경전반에서 7이라는 숫자는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도 7일에 행해졌으며, 예수도 7의 70번이나 용서하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계시록 6장 15절에서는 일곱 가지 계층의 인간들을 나열하고 있는데(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 자주자) 일곱은 만수로서, 이는 인간 사회의 모든 조직을 뜻한다. 또, 구약에서 6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즉, 골리앗은 6척 장신이며(삼상 17:4), 느브갓네살이 세운 동상은 고가 60규빗이고(단 3:1), 어떤 거인은 6손가락에 6발가락이 있었다(삼하 21:20) 등이다. 따라서 완전수7에서 무엇인가가 부족한 6으로 짐승의 세력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해석도 있다.
또 한가지의 해석으로는 수비학의 창시자라고 볼 수 있는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해석 법이다. 피타고라스의 주장에 따르면 3과 7은 첫 번째 소수이며 1과 자신의 수를 제외하고는 어떤 인수도 포함하지 않는 수라고 하면서 3과 7을 신비적 숫자로 해석했다. 3과 7이 합해진 숫자로는 37과 73이 있는데 이 두 숫자는 각각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37을 3의 배수로 곱했을 때 얻어지는 숫자들은 다음과 같다. 37×3=111, 37×6=222, 37×9=333, 37×12=444, 37×15=555, 37×18=666, 37×21=777, 37×24=888. 73을 역시 3의 배수로 곱했을 경우의 값들은 다음과 같다. 73×3=219, 73×6=438, 73×9=657, 73×12=876, 73×15=1,095, 73×18=1,314, 73×21=1,533, 73×24=1,752. 위의 나타난 값들을 보면, 1자릿수의 숫자가 9, 8, 7, 6 ......2로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예수의 이름이 888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헬라어 예수(Iesous)를 게마트리아로 환산하면 I(10)+E(8)+S(200)+O(70)+U(400)+S(200)=888이 된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예수의 이름이 8을 세 번 십진법으로 증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증폭을 '세 번 위대한'이라는 뜻의 트리스메기스토스(trismegistos)라 칭한다고 한다. [조철수 / 유대교와 예수/ 도서출판 길, 2002 / P. 345~346]. 초기교회 교부들은 주일(안식일)을 '제8일째 날'이라고 불렀던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Justin, Dialogue with Trypho, 41:4.]. 예수의 이름이 888이라면 요한계시록의 666도 이것과 관련 있으리라고 보여진다. 예수보다 뭔가 부족한 짐승의 숫자로 666을 선택했던 것이 아닐까? (7은 성스러운 숫자이기 때문에 짐승의 숫자로 777을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참고 삼아 666이라는 게마트리아 때문에 얽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미가엘 스티펠(Michael Stifel)이라는 대수학과 정수론 에 달통한 독일인 수사가 교황 레오 10세의 이름에 게마트리아를 적용해 보았다고 한다. 레오 10세의 라틴어는 LEO DECIMVS인데, 여기에 포함된 로마 숫자는 L, D, C, I, M, V 이다. 이 로마 숫자들의 합을 계산해 보면 L(50) + D(500) + C(100) + I(1) + M(1000) + V(5) + X(10) = 1666 이었다. 그는 1000을 나타내는 M은 신비(mystery, 라틴어 mysterium)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M을 제거하였더니 정확히 666이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교황옹호자들은 스티펠(Stifel)을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1522년에 루터에게 피신한 뒤 그 후로 16세기 독일의 유명한 대수학자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게도 666의 낙인을 찍은 사람이 있었다. 700쪽이나 되는 수의 신비(Numerorum Mysterium)라는 책으로 유명한 피터 버거스(Peter Bungus)는 루터의 라틴어 이름인 MARTIN LUTERA를 666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A부터 I(또는 J)까지는 1부터 9, K부터 S까지는 10부터 90, T부터 Z까지는 100부터 700의 값을 주고 난 후에 루터 이름의 숫자 값을 구하면, M(30) + A(1) + R(80) + T(100) + I(9) + N(40) + L(20) + U(200) + T(100)+ E(5) + R(80) + A(1) = 666이 되었다고 한다. 졸지에 마틴 루터가 666이 돼버린 어처구니 없는 이런 일화들에 대해 '666 적그리스도'라는 기독교 서적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적 그리스도는 다니엘이 예언한 '작은 뿔'의 여덟 가지 특성들이 다 발견되어야 하는데, 루터에게는 그와 같은 특징들이 전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이름의 수치가 666이 산출된다고 해서 누구든지 적그리스도로 간주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석근 / 666 적그리스도 / (주)임마누엘, 1992 / P. 139]
666에 얽힌 더 황당한 일이 있다. 성경을 뜻하는 영어 HOLY BIBLE을 컴퓨터 ASCII Code 로 번역하면 H(72)+O(79)+L(76)+Y(89)+B(66)+I(73)+B(66)+L(76)+E(69)=666라고 번역된다고 한다. 성경이 666이 된다니 이 글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황당해 할까? 예수의 이름이 888이고 요한 계시록에 666이 나온다는 점을 봐서 우리는 기독교를 창시했던 사람들과 초대교인들이 이런 궤변론(詭辯論)에 빠져있던 사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비학은 궤변론일수 밖에 없다. 기독교인들은 성경(HOLY BIBLE)이나 마틴 루터가 666이라는것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666에 관해 찾아보니 MS-DOS 6.21이나 컴퓨터의 대부 빌게이츠도 666이 된다는 황당한 내용들도 찾을 수 있었다. 더 황당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500원, 100원, 50원, 10원, 5원, 1원짜리 동전도 666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태생 붙어가 이런 황당한 궤변에서 발생 되었음을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