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속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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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속의 예수

적 그리스도 0 6,526 2006.07.12 00:21

▶ 환상속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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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예수가 먼저 세상에 오고 바울이 그의 가르침을 전파 한 줄 알고 있지만, 예수 신화파 에서는 거꾸로 주장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 속의 예수는 영지주의적인 사도들이 메시아를 전파하고 난 후에 등장한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신약의 예수는 바울(Paul)과 후대 교부들의 필요에 의해 상징적인 인물로 재구성과 재포장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예수 의 12 제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 신약성경은 이들의 행적을 완전 무시 하고 있다. 자칭 정통파 기독교 측에서 정경으로 채택 하기를 거부한 외경들에 간간이 그들의 행적과 말로가 기록 되어있다.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너무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배척된 문서들이다. 오늘날의 정경에서도 베드로를 제외하고 예수의 12제자들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적 예수를 만난 적 없는 바울이 기독교를 널리 전파했으며,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은 바울 서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약 속의 바울 사상은 철학자 칸트(Kant), 피히테(Fichte), 셸링(Schelling)등에 의해 구별되어 지기 시작했고, 에른스트 카제만(Ernest Kasemann)같은 신학자들이 나타나, 기존 기독교 교단에서 절대 금기시하는 의심을 품기에 이른다. 빌헬름 네슬(Wilhelm Nestle)은 "기독교는 바울에 관한 종교다. 기독교는 예수의 복음을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대치해 놓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신약은 바울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원시 기독교 교리에 떠돌아 다니는 예수설화를 종합 했거나 아니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기독교를 창조한 장본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이나 헬뭇 쾨스터(Helmut Koester)가 신학적으로 정립했다.

 

우선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계기는 의미심장하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다마스커스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러 가는 길에 "왜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말하는 예수의 말과 환상을 경험하고 전도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바울이 예수를 알지 못했음은 그의 서신 속에서도 잘 알 수가 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 했을 때에도 그가 예수의 생가나 그의 무덤, 또는 골고다 언덕을 순례 했다는 기록이 없다. 게다가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는 서로 엇갈린 내용을 담고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의 환상을 접한 후 예루살렘에 가서 바나바의 소개로 제자들을 만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개종 후에 삼 년 동안 예루살렘에 방문한적이 없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외에는 만난 제자가 없다고 한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갈라디아서 1장 17~20절]

 

바울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1장18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 전서 15장 20절]

 

여기서 바울은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 처음으로 부활한 자로 언급했는데, 예수가 부활시킨 나사로와, 마태 복음27장 52절에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한 떼의 성자들이 살아 나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12장 16절]

 

바울은 변절자들을 경고 하면서 구약성경에서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판 에서를 예로 든다. 변절자에 대한 비유로는 은 30냥에 예수를 판 가롯 유다가 훨씬 더 적격이 아닐까? 왜 십 수년전의 배반자 가롯 유다는 무시한 채 비유로써 적절하지 않은 구약 시대로 올라 가는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공동번역판]

 

바울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주기도문도 몰랐을까? (개역한글판에는 어떻게 빌어야 할 지로 번역되어서 뜻이 퇴색해져 있다. 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은 "기도"라고 번역 되어 있다.). 또한, 예수는 즐겨 자기 자신을 인자라고 호칭했는데, 바울 서신에서는 그 단어가 나타나질 않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권력자에게 굴복할 것을 명령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 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장 1~2절]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로마서 13장 4절]

 

또한 바울은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고 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로새서 3장 22절]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디모데전서 6장 1~2절]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장 9~10절]

 

위에서 언급된 권력자에 대한 굴종과 노예제도에 대한 인정 구절은 공동번역판과 영어성경을 보면 더욱더 노골적이다. (개역한글판은 애매모호한 번역으로 부끄러운 성경구절을 감춰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권력은 하늘에서 나는 것이니 권력자에게 굴복하라"는 로마서 13장 1~5절의 바울의 말은 중세시대 왕권신수설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시절 목사들이 악용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데 오용했던 문제의 구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빌레몬서 1장 13~19절에 따르면 기독교인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가 도망쳐 나와 바울을 찾아갔다고 한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던 터라 "그(오네시모)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제가 대신 갚아 드리겠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노예제도에 순응하고 권력자에게 순응하라고 한 바울의 말은 예수의 가르침과 같지 않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누가복음 22장 25~26절]

 

위의 개역한글판의 내용이 하도 엉망으로 번역이 되어있으므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  [루가복음 22장 25~26절 / 공동번역판]

 

그리고 1 세기 당시 미신과 분파가 횡행 하고 많은 이적들이 주장되고 있던 풍토에서도, 서신 문헌들에는 예수가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 한 곳이 전혀 없다. 그토록 유행 했고, 4 복음서에도 숱 하게 기록된 병 고침의 기적, 귀신 쫓아 내기 등에 일체 침묵 한다.

 

또한 바울과 대립했던 예수의 직접적 제자인 베드로 역시 의문점이 있다. 베드로의 이름이 유래된 것은 예수가 시몬에게 "너의 이름을 베드로라 하라. 네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복음서는 기록 하고 있다. 이후로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 기초로 여겨지고 카톨릭의 초대 교황으로 추대 되었다. 이것은 베드로 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반석을 의미 하는 데서 유래 되었는데, 조금 이상한 이야기 이다. 당시의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람어(바빌론 유배 후 사용된 페르시아 언어)를 사용했는데, 예수가 실존했다면 당연히 아람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예수는 어째서 일자 무식인 제자에게 지식층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이름을 지어 주었는가?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단어는 게바 이다)

 

어째던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는 예수의 위임 선포가 정말 있었다면, 왜 1 세기의 문서들에서 그 인용이 발견되지 않는가?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사도 간의 치열한 교권다툼 때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구절이야 말로, 사도로써 베드로의 권위와 정통성 확립에 결정적 증거가 아닌가? 베드로 전서와 후서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100여년 넘도록 마태 복음이 쓰여 질 때까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고 쓰여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의 12 제자가 아니고,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chist)는 구원의 비밀을 보여 주는 영지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Rudolf Bultmann)도 12 제자 얘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후에 만들어져 낸 것 이라고 서술 했다. 도마 복음의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예수는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린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유대 사회는 몹시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요구 하고 있었다. 구세주 사상이 유행 할 수 있었던 토양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사회의 혼란상이었다. 거듭되는 전쟁과, 유대사회에 끊임없이 유입되는 이교도 사상 속에서 이교도의 신이 히브리 구약 성경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예수이다. 여기 저기에서 자칭 메시아들이 나타나고, 구약에 능통한 여러 사도들이 독립적으로 종파를 만들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교리를 비판하고 교세를 키우기 위해 경쟁 했다. 바울도 그런 사도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전인수격으로 구약 성경을 연구 통달한 영지주의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구원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 했을 것이다. 즉, 예수의 12 제자와 무관한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광범위한 곳에서 그리스도를 이미 증거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과 경쟁관계에 있던 아볼로라는 사도가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요한의 세례 까지 밖에 모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로 인정 받았으며, 경전(=구약)의 구절들을 인용해가며, 예수를 정확히 증거 한다고 서술 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사도행전 18장 24~28절]

 

위에서 인용한 개역한글판은 애매모호하고 문맥상 아볼로를 약간 깎는 듯한 이상한 번역을 했다. 공동번역판을 보면 아볼로에 대해 칭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동번역판의 동 구절을 다시 인용하겠다.

 

"한편 에페소에는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와 있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구변이 좋고 성서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도하는 것을 들은 브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에페소의 교우들은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그를 격려하며 아카이아의 신도들에게 그를 환영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아카이아에 도착하여 이미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도가 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가 성서를 근거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떳떳하게 증명하여 유다인들을 여지없이 논박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8장 24~28절 / 공동번역판]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도로 인정받고 예수를 정확히 가르친단 말인가? 또한 아폴로는 유대인에게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한다. 아볼로에 대한 사도행전의 기록은 기독교 탄생 배경의 의문을 말끔히 씻어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4절에서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라며 교단분열에 대해 한탄할 만큼, 아볼로는 베드로와 바울에 맞먹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사도중의 하나이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바울은 "나는 씨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라고 말할 정도다. 도대체 요한의 세례밖에 모른다면 사도로써 자격미달이 아닌가?

 

사도행전 18장 24절에 따르면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이다. 알렉산드리아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학문연구소와 그 부속 대(大)도서관을 설립하여 문헌학(文獻學)과 자연과학이 융성한 학문의 도시이다. 70인역의 구약성경이 만들어진 곳도 이곳이다. 특히,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시대에 이르러서 신 플라톤 철학이 융성하고 그노시스 사상이 형성되고 발전된 곳이기도 하다. 바울의 출신이라는 다소(Tarsus)는 BC 1세기에 미트라 종교 의식이 행해졌다는 실리시아(Cilicia)의 인접도시이다. 사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시의 이런 문화적인 배경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알란 시걸(Alan Segal)은 바울의 서신들이 일반적으로 야기하는 당혹감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바울은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견해들, 유대 신비주의와 묵시문학, 그리고 신생 랍비주의 뿐만 아니라 그리스적 수사학에도 익숙하다." [Alan F. Segal / Paul the Convert : The Apostolate and Apostasy of Saul the Pharisee/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Yale University Press]

 

앞서 필자가 구약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예수의 일대기에 끼워 맞춘 것을 지적한바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유대교 영지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교인 중 상당수는 그리스도의 물리적 존재의 실재를 부인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딘 밀만(Dean Milma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노시스 파는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것, 혹은 그가 죽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했다."

 

그리고 독일의 유명한 교회사가인 모세임(Mosheim)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기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니라 형상, 환상, 기적 속의 인물, 실재가 아닌 신화였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당시 사도들이 설파하고 다닌 것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 속의 예수이다!

 

보수적인 신학계에서는 공관복음 중 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빠르다는 마가복음의 기록연대를 AD 70년경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신학자들의 주장대로 4복음서들이 AD 100년 이내로 모두 형성 되었다면, 왜 90년과 130년 사이의 초기의 기독교 교부의 글들 중 그 어떤 문서도, 공관복음서들 중 하나라도 언급하거나 인용하지 않았을까?  

 

AD 90 년경 로마교회의 교부 클레멘트(Clement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는 다른 사람이다)의 이름으로 저작된 많은 글들이 있다. 그의 첫째 서신을 제외한 다른 것 들은 보수주의 신학자들 조차도 위작이라 인정하는데,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도 예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클레멘트 1서 25장에 따르면, 부활에 대해 논하는데 예수는 간데없고, 난데없이 전설의 불사조(phoenix) 이야기를 꺼내며 부활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불사조 신화는 부활의 정당성을 설명 하는데 후기의 터툴리안 및 다른 교부들도 사용 하고 있다.

 

AD 150년대에 순교자 저스틴(Justin)은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 파이어스(Antonius Pius)에게 변증서(Apology)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미트라교(Mithraism)와 기독교 의식이 유사하다고 여기는 로마인에게, 저스틴은 68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에서 61장에서 67장까지를 예배와 관련된 부분으로 할애하며 기독교를 위해 진땀을 빼고 변론 하고 있다. 예배의식에 대해 설명하는 변증론 67장에서 '사도들의 기억들'(memoirs of the Apostles)을 읽고 예배의식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서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도 없는데, 이들이 예배에 사용했다는 것은 단편적인 구전 전승들로 추측된다.

 

AD 4세기경의 유세비우스(Eusebius)교부는 현재 분실된 125년 무렵에 파피아스(Papias)교부가 기록했다는 문서를 재인용 했다. 그의 인용에 따르자면, 파피아스(Papias)교부가 마태와 마가에 의해 쓰여진 두 편의 문서를 언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파피아스 교부는 두 문서가 이야기 형식이 아닌 것처럼 (도마복음서처럼) 말하며, 그나마 "장로(연장자, 원로)에게 전해 들은 것"이라며 자신은 그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유세비우스가 옛날 편지에서 재 인용한 '마가'와 '누가'의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으로 보아, 후대의 주석 가들은 그 문서가 오늘날의 공관복음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게다가 교단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직책에 있었던 교부(敎父)라는 사람이, 그 유명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소장하고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따라서 오늘날의 복음서들은 사도들과 초대교부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 이라고 추측한다. 다만, 예수와 사도들에 대한 구전 전승과, 복음서의 초기형태에 해당되는 단편적인 문서들이 초대교인들에게 떠돌아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교정, 편집, 흡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進化)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헬뭇(Helmut Koester) 같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복음서처럼 보이는 재료들에 대한 초기의 '암시들'은 마치 복음서들이 문서화된 공관 복음서라는 항구로 자신들의 항로를 발견하기위해 표류하고 있는 표현의 선박 같다." [Helmut Koester / Ancient Christian Gospels: Their History and Development]

 

즉 헬뭇 쾨스터같은 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Q문서나 도마복음 같이 구약의 잠언과 같은 형태의 '지혜의 말씀'(예수어록 모음집)과, 초대교회에서 떠돌던 예수에 대한 구전 전승과, 복음서가 등장하기 전에 만들어진 다른 형태의 여러 문서들이 존재했고, 이것들이 나중에 4복음서로 진화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이교도들의 신화도 한 몫 했다고 확신한다)

 

이제 여태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예수가 어떻게 가공되고 만들어졌는지 필자가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겠다.

 

① 짜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종교를 창립하고,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 메시아, 종말론, 구원론, 묵시문학 등이 주변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됨. 바빌론 유수 이후 유대인들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게 됨.

② 점성학에 의거해서 물고기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함.

③ 시리아, 그리스, 로마제국의 침략을 받은 유대인들은 급속하게 헬라화가 진행됨.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부터 메시아 사상을 내포한 수많은 유대 묵시문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함. 이때, 에세네파와 같은 유대교 영지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함.

④ 미트라교가 조로아스터교를 흡수하고 중근동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 이 종교는 고대부터 내려왔던 동지축제, 춘분축제 등을 흡수하고, 그리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디오니소스 의식과 헬라철학도 흡수해버린 괴물종교가 됨.

⑤ 정치적 혼돈 속에서 디아스포라화 된 유대사회에, 사도라고 불리는 자들이 이스라엘에 구세주가 왔었다고 선포하고 다님. 예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ex: 아볼로, 바울) 구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예수를 증거함. (이들이 증거한 예수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 속의 예수일 가능성이 큼)

⑥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이 사망한 이후, 바울 서신과 사도들의 편지들이 기록되고 정리되기 시작함. 또, 그 동안 짧은 경구로서만 전해지던 예수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문서화 되기 시작함.(Q문서)

⑦ 시간이 흐르면서 토요일 안식일 같은 유대습성을 하나 둘씩 버리기 시작한 초대교회는, 서서히 헬레니즘 문화권의 태양신 신화를 차용하기 시작함. 이때쯤 전승으로 내려온 단편적인 예수이야기와 Q문서 등을 통합한 복음서들이 하나 둘씩 등장함. 헬라 철학자 첼수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기독교가 헬레니즘 문화의 신들을 표절했다고 비난하기도 함. 

⑧ 예수신화의 창조자이며 그 신화의 의미를 알고 있는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으로 배척 받음. 광신적인 자칭 정통파들은 숫자가 많았지만, 영지주의자들은 소수였기에 밀려나기 시작함.

⑨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 태양신 숭배자였던 그의 영향력 아래 기독교는 일요일, 삼위일체설, 크리스마스, 부활절, 십자가 등을 마구잡이로 흡수함. 결국, 예수는 미트라를 흡수한 또 하나의 괴물이 되 버림. 영지주의자들은 반체제적인 자유사상가들 이었기 때문에, 정치와 손을 잡은 자칭 정통파 기독교에게 완전히 밀려나 버림.   

 

이것이 우리가 얻어낸 예수 신화론의 결론이다.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바울이 기독교의 제1창립자 라면 콘스탄티누스 기독교의 제2창립자라고 평가할만한 인물이다. AD 33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유세비우스에게 소실되어 없어진 성경들을 수집하도록 명령한다. 그 때  성경 편찬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상당부분의 성경이 첨가, 삭제 또는 개정되었다. 현존하는 5천개의 초기 신약성경 사본 중 4세기 이전의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약 성경의 변형 독본들의 대부분이 이때에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의 예수상(相)은 이때쯤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니케아 공의회 1년 후에 콘스탄티누스는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서들은 물론이고, 예수에 대해 언급하는 이교도 저자들의 책도 몰수하고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교회에 고정된 수입이 할당되도록 조치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주교를 라테란궁에 취임시켰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허구 속의 가공의 인물일 따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부처가 기독교의 성자로 둔갑한 일이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이 붓다를 중세 시대의 성 여호사밧의 성격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동양적인 것이 어떻게 서양적인 것으로 변화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보기다. 중세기독교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이 유명한 사례는 카톨릭 성자인 발라암과 여호사밧(라틴명은 요아삽 또는 요사팟)의 이야기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한 왕자가 어떤 인도 왕국의 승계자로 태어났다. 왕자가 탄생하자 나라안의 예언자들이 왕위 계승자로서의 그의 위대한 미래를 예언했다. 그런데 문득 한 현자가 나타나서, 그 왕자는 위대해지긴 하지만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개종자로서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자를 보호하고, 또 왕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부친은 그를 왕궁 안에 가뒀다. 어느 날 잠시 왕궁 밖을 나갔다가 왕자는 절름발이와 장님을 목격하고는 인생의 어두운 면을 알았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발라암이라는 이름의 수도자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수도자가 변장을 한 채 왕자 여호사밧을 찾아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부친은 귀신 쫓는 마술이나 미녀들을 이용해 왕자를 세속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성장한 여호사밧은 왕궁을 떠나 수도자 발라암과 함께 광야에서 수행을 했으며, 마침내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각색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은 붓다의 탄생, 유년지, 그리고 출가에 맞춰 이야기의 뼈대를 맞추었다. 또 네 장면의 목격, 여러 가지 유혹들, 광야에서의 고행 기간 등 모두가 붓다의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파드마삼바바/ 티벳 死者의 書 / 류시화 편역 / 정신세계사 /P.52]    

 

당시에 동서양으로 뻗어나간 마니교(Manichaeism)에 의해 부처의 이야기가 서양에도 어느정도 알려져 있었다. 시중에 떠도는 부처의 일대기를 적당히 각색하여 기독교의 성자(聖者)로 둔갑시킨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카톨릭 성자 중에 전설 속의 허구인물이거나, 실존인물에 허구의 일대기를 갖다 붙였거나, 심지어 이교도의 성자를 기독교 성자로 둔갑시킨 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빌라도 총독까지 성자(聖者)로 둔갑시키고 날조문서를 만들어 내던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교인과 교부들이었다. 바로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창조해낸 사람들의 손아귀에 있던 성경이, 시간이 흘러 현재 여러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로 실존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 속의 예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다. 복음서 속의 예수는 환상 속의 예수이다! 그가 실존했던지 아니면 실존하지 않았던 허구의 존재이던 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 속의 예수는 로마 제국 당시 중근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구세주 전설과 헬라철학에 의해 덧붙여지고 가공된 인물이라는 점은 피할 수 없다! (신화를 걷어내면 유대 혁명가같은 예수가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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