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지로 끼워 맞춘 예수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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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끼워 맞춘 예수신화

적 그리스도 0 7,324 2006.07.13 01:58

▶ 억지로 끼워 맞춘 예수신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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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해서 복음서들의 저자들은 물론 사도들까지 구약을 자주 인용했다. 그러나 그러한 인용들은 대부분 잘못 인용하는 실수를 저질렀거나, 고의적으로 구약을 왜곡시킨 흔적이 여실히 드러난다. 신약의 저자들은 유대교의 정경인 구약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것 같다. 고린도 교회에서 있었던 '신자의 부활'의 논란에 답하기 위해 바울은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이 구절은 초대교회의 어떻게 구약 성경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린도 전서 15장 3~5절]

 

바울의 말에 따르자면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이 모두 구약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특히, 바울은 "성경대로"(kata. ta.j grafa,j)라는 문구를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 매우 강조한 흔적이 있는데, 초대 교회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구약 성경의 해석을 통해 설명하려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누가복음에서 예수 일대기의 사건들을 구약과 관계 지어서 '예언과 성취의 모델'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난 부활의 예수는 '자신의 고난과 영광'이 필연(必然)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누가복음 24장 26절]

 

여기서 누가복음의 저자는 필연성을 가리키는 동사'dei/'를 사용하여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일이라고 강조했으며, 그 이유는 이어지는 27절에 쓰여져 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장 27절]

 

즉, 예수의 부활 사건은 "성경 전체에"(evn pa,saij tai/j grafai/j) 예시(豫示)되어 있고 그것을 예수가 두 제자에게 풀어서 가르쳐 깨우쳐 주었다는 기록이다. 여기서도 구약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상술하지는 않고 "성경 전체"가 예수의 케리그마의 사건과 부합하고 있다고 일반적 진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예언과 성취의 모티브에 대한 관점은 실제로 누가복음의 말미를 장식하면서 누가의 예수 이야기의 목적과 결론을 구성한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장 44절~49절]

 

누가복음속에서 예수 스스로가 말하길, 예수사건은 '토라'(모세의 율법), '네비임'(예언자의 글), '케투빔'(시편이 속한 성문서) 모두에 예수사건이 예언되어있다고 확언하고 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앉은뱅이를 고친 후 베드로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한 대중 설교에서,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중략)....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사도행전 3장 18~24절]

 

베드로는 사도행전 3장18절에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의 필연성을 여호와가 '미리 선포'(prokath,ggeilen)했고 그것을 이제 성취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고난이 성경의 어디에 예언되었는가는 그의 설교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도행전 3장 22~23절에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서 구약의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신명기 18장 15절의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거론하면서 그 예언된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구체적 예언의 문구나 성경의 부분에 대한 직접적 지적은 없다.

 

(1) 처녀 탄생설의 잘못된 인용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탄생을 가리켜 구약 이사야 7장 14절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장23절]

 

마태복음의 저자는 이사야 7장 14절을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70인역에는 파르테노스(parthenos), 즉 '처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인 히브리 성경(Tanakh)에는 '알마'(almah),즉 젊은 여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 어로 젊은 여인은 "ha'almah", 처녀는 "ha'bethulah"이다. [오강남 / 예수는 없다 / 현암사]. 개역한글판이나 표준새번역의 난외 주, 또는 주석성경에 보면 '젊은 여자' 또는 '젊은 여인'이라고 나와있을 것이다.젊은 여인과 처녀와의 차이는 엄연한 것이다. 또한 이사야서의 그 구절은 앞으로 올 메시아에 대한 예언도 아니었다. 예언자가 아하즈 왕에게 시리아와 에브라임이 유대와 전투를 벌이지 않게 될 것임을 확신시키면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한 것이다. 즉, 이사야는 아하즈에게 젊은 여인이 곧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정치적인 위험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구절이다. 이사야서 8장 2절에 따르면 이 예언은 이사야의 아내가 낳은 아들에게서 성취 되었다. 지금은 주석에라도 이렇게 달아 놓았지만 초대 교부들은 이 실수를 알면서도 완강히 고집을 피웠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메시아를 증거하기 위해서 구약의 내용을 위조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아퀼라역 이라는것도 내놓기도 했다. 라틴역 'vulgata를 내놓은 성 '제롬'은 이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Almah가 처녀가 아니고 젊은 여인이라고 항의하는 것에 대해 알고는 있다. 사실 처녀는 Bethulah라 불리지만, 젊은 여인은 almah가 아니고 naarah라 불린다" [Jerome, Adv. Javianum I, 32; N&PNF, vi, 370.]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 한다고 썼다면 그 당시 누가 믿었겠는가?...(중략)...수잔나와같이 간통한 여인으로 몰릴 것이 아닌가?" [Jerome, The Perpetual Virginity of Blessed Mary, N&PNF, vi, 336.]

 

카톨릭 백과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대 신학은 이사야서 7:14 절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에 대한 예언 이라는 것을 인정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 마태가 '보라 처녀가 잉태 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 한 것은 이사야 구절을 잘못 이해 한 것 으로 판정 된다." [Catholic Encyclopedia. xv, 451.]

 

또한 이 동정녀 출산 문제는 단순히 마태복음 저자의 헬라어 번역판에서 오는 번역상의 단순한 착각이라고만 볼 수가 없다. 다음 장에서 이어지게 될 예수신화설에서 언급하겠지만, 신약성경이 쓰여졌던 당시는 조로아스터와 미트라등의 태양신 구세주전설이 유대인에게 유입되면서부터 동정녀 탄생이 구세주 전설의 빼놓을 수 없는 모티브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결국 헬라 사상에 영향을 받은 초대기독교인들은 예수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신의 아들로 믿기를 원했고, 이교도적인 요소가 하나 둘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2) 유아학살과 예수의 어린 시절 끼워 맞추기

헤롯대왕의 유아학살 사건에 대해 마태복음 저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면 구약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마태복음 2장 18절]

 

여기서 우선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레미야가 라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8킬로 떨어진 마을이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으로 8킬로 떨어진 마을로 두 마을은 딴 마을이다. 예레미야 31장 15~17절을 살펴보면 라헬의 통곡은 어린 아기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장한 자식들이 적군의 땅으로 포로가 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터이니 '최후의 소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즉, 두 이야기는 전혀 상관이 없다. 게다가 예수의 탄생시 헤롯 대왕에 의해서 베들레헴 아기들이 죽임을 당한 이야기는 역사적인 허구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그러한 일은 유대인의 역사와 로마의 역사, 주변국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베들레헴이라는 그 작은 마을에 별이 그 집 위에 머물고 동방에서 박사들이 와서 경배하고 갔다는 그 큰 사건을 모를 집이 없었을 것이다. 헤롯이 염탐자들을 파견해 추적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어째서 그 지역의 2살까지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무자비한 대학살을 저질러야 했는가? 게다가 더욱이 헤롯대왕은 BC 4년에 죽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왜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 까지 헤롯의 유아학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했을까? 성공회의 스퐁 주교(John Shelby Spong)은 그의 저서 '자유로운 복음' (Liberating the Gospels) 신약속에서의 예수의 생애는 미드라쉬적(midrash) 기술방법으로 서술되어있다고 밝힌바 있다. 즉, 출애굽기 1장의 내용에서 보여지듯이 모세가 태어났을 때 이집트의 파라오가 유아학살을 자행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예수의 일대기 속에 반복 시키면서, 예수를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줄 '제2의 모세'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이집트 십장을 죽이고 파라오를 피해 피신하는 것과 같이(출2:12), 예수도 헤롯 왕을 피해 피신을 가도록 한 것이다.

 

(3) 나사렛예수 끼워맞추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를 가르켜 '나사렛 예수'라고 말한다. 누가복음에는 호적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에 간 요셉과 마리아가 원래부터 나사렛 사람들이다. 반면에 마태복음에는 헤롯 아켈라오가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요셉부부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던 중 갈릴리 지방 나사렛으로 가라는 지시를 꿈속에서 받게 된다. 그러면서 마태복음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태복음 2장 23절]

 

그런데 문제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하는 말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의 어떤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현대 신학계에선 두가지 견해를 보이고 있다. 첫 번째는 마태복음 기자가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의 이사야 11장 1절을 잘못 인용했다는 해석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 11장 1절]

 

위의 이사야의 구절 중 '가지'라는 말의 헬라어가 '네제르'(nezer)인데 마태복음 기자는 그것을 '나사렛 사람'(Nazarene)으로 잘못 읽었던 것이다. [오강남 / 예수는 없다 / 현암사]

 

두 번째 해석 으로는, 삼손을 "나지르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는 사사기 I3장 5~7절에서 가져온 미드라쉬적 기술 방법 이라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마태복음의 저자가 예수가 메시아라는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구한 삼손의 속성을 예수에게 적용시켰다는 견해이다.

 

세번째 해석으로는 점성술(astrology)에서 12궁도를 뜻하는 히브리어 'Nazaroth'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어근이 된 동사 nazar는 "둘러싸다"는 의미이며, 이 단어는 욥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욥기 38장 32절]

-공동번역판에서는 "성좌"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태음력을 사용했지만, 사해 근처 쿰란에 거주하던 에세네파들이 태양력을 사용했던 사실이나, 뒤에서 소개하겠지만 케루빔의 모습이 상당부분 점성술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구약과 관련된 예언을 억지로 찾는 것 보다 다른 방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즉, 당시의 '나사렛'은 독특한 분파적인 용어이며 어떤 지역이나 마을이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점이다. 나사렛분파는 유대교의 이단으로 취급 당하던 종파로, 뒤에서 언급할 영지주의적인 성격의 에세네파와 영지주의적인 종교들과 너무도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의 나사렛파에 대한 설명을 옮겨보자.

 

"나사렛파에는 유대교 나사렛파와 그리스도교 나사렛파가 있다. 유대교 나사렛파를 나사라이오라고, 그리스도교 나사렛파를 나조라이오니라고 한다. 유대교 나사렛파는 유대교의 이단종파로 규정되었는데, 유대교의 절기와 안식일, 할례 등은 지켰지만, 모세오경을 위조문서로 취급했고 고기를 먹는 것과 희생제사를 거부했다. 그리스도교 나사렛파는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추종자들이다. 이들은 헤브라이어로 구약성서를 즐겨 읽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할례를 행했다. 그들이 예수의 인격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예수를 인간으로 여겼는지 아니면 그 초월성을 인정하고 믿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지만 지금도 그리스도교 나사렛파 일부가 '붓소'나 남부 바빌로니아 일부 지역에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나사렛파 Nasaraei항목]

 

즉, 다시 말해서 나사렛이라는 말은 지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분파의 이름이다. 또한, 고고학적으로 예수 당시 나사렛이라는 지명은 없었고, 로마의 지도, 문서, 그리고 기록들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탈무드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복음서들보다 먼저 작성된 사도 바울의 어떤 기록 속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예수와 관련되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갈릴리의 군단들을 지휘했으며 그 지방의 마을들을 목록으로 작성한 그 시대의 가장 저명한 역사학자 요세푸스도 나사렛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나자렛은 성서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마을은 3세기 전까지는 존재한 것 같지 않다. 나자렛의 예수'는 성서 학자들이 원래 그리스의 구문인 '나자레안의 예수'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지역성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것은 특별한 종교적/정치적인 기원을 가진 특별한 단체 또는 분파 내의 회원으로서의 예수를 언급하는데 현대 전문가는 '나자레안 모임'이라고 부른다." [김원/아틀란테스/도서출판 와우/P.244]

 

우스운 사실은 오늘날 성지로 불리워 지는 나사렛이라는 마을은 로마제국시대 예수가 유명해지기 시작하한 AD 3세기쯤에 갑자기 등장한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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