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 여신!<?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어째서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야만 했는가? 이왕 인간의 몸을 입고 와서, 인간처럼 음식을 섭취하고, 주어진 순리대로 죽음을 맞이할 인간의 육신을 입을 것 이라면, 어째서 그렇게 부조리한 출생을 해야만 했는가? 사실, 기독교가 생겨날 무렵에 동정녀 잉태는 당시 지중해 문화권속에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디오니소스, 페르세우스, 미노스, 아스클레피오스, 밀레투스, 헤라클레스, 외 수많은 신들이 아버지인 신(神)과 인간의 여자 사이에서 탄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우스는 다나이(Danae)를 태양빛의 형태로 방문함으로써 임신시켰고, 이쉬타르(Istar)에게 바쳐진 비둘기 형태로 그녀를 임신 시킨다. (성령을 비둘기의 형태로 표현한 신약성경과 연상된다.) 이런 신화들은 하늘(신, 영혼, 남성)과 땅(물질, 육체, 여성)의 만남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즉, 동물적인 육체와 신과 같은 영혼을 가진 인간의 고뇌를 상징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동정녀 잉태'는 신화 속의 신의 아들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이름을 떨쳤던 임금들과 유명인들에 대해서도 초자연적인 출생신화가 따라다녔다. 짜라투스투라 역시 동정녀에 의해 출생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가 예언한 메시아 역시 동정녀에게서 출생한다고 말했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과부의 아들'이란 당시 활약했던 예언자들의 공통적인 자격조건이기도 했는데, 바알 신전의 신전 창부는 신전을 다녀가는 남자들의 아이를 신의 아이라고 주장해 왔다. 성스러운 동정녀는 이쉬타르 아세라의 여 사제들의 칭호였는데, 그 칭호는 신체적 동정을 의미하지 않았고 단순히 결혼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당시 이쉬타르의 여 사제들은 다산 의식과 신탁을 수행하면서 제법 짭짤한 매춘 사업도 벌였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의 매춘부들과는 양상이 다르다. 당시 이러한 행위는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행위였다고 한다. 그리스 신전에도 논다니라는 사제들이 있었는데, 이 단어는 중세시대 서양에서 매춘부를 일컫는 단어로 통했다. 이들 역시 이쉬타르의 여 사제처럼 선택 받은 자들에 한하여 매춘을 행했다.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영웅에게 논다니가 가슴을 풀어 헤치고 나와서 맞아 주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여 사제들의 아이들은 춤과 노래를 배우며 예언자로서의 길을 가게 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여 사제들의 아이들을 바툴(bathur)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배경으로 당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알마(almah=젊은 여인)를 파르테노스(parthenos=처녀)로 번역했고 초대 기독교는 70인역을 재빠르게 차용해 버렸다. 물론, 필자는 복음서의 마리아가 신전의 창부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예수의 동정녀 출생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서두에 먼저 말해둔 것이다.
한편 첼수스(Celsus)와 같은 이교도 철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의 동정녀 출생 신화를 공공연히 비난하기도 했다. 첼수스는 무사이오스(Musaeus), 오르페우스(Orpheus), 멜라니페(Melanippe), 아우게(Auge), 페레시데스(Pherecydes) 그리고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그리고 피타고라스도 이러한 동정녀 탄생의 교리들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가 이런 교리를 표절했다고 비방했던 것이다. 첼수스의 신랄한 비난에 유세비우스와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은 예수를 이교도 신들과 비교하거나 강하게 대비시키면서, 만일 예수가 거짓이라면, 미트라와 헤라클레스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 동안, 초기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이교도적 뿌리에 매달려 있었고 어째서 자신들의 신이 미트라, 디오니소스, 혹은 기타 그리스나 로마 신들과 동등하게 간주되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돋보기를 들고 복음서를 분석해 보면, 예수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존재도 신화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마리아에게서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프로이트(Sigmund Freud) 정신분석학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이름이다. (여성의 경우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이다. 엘렉트라도 그리스 신화에 유래한다). 오시리스(Osiris)는 이집트어의 우시르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으로 오시리스 신화의 중심 테마는 죽음과 부활이다.
수확기에 죽고 곡식의 배아와 더불어 다시 살아난다고 믿어지는 오시리스는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 받았다. 또한, 오시리스는 해마다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하는 나일강이나, 해질 무렵에 암흑 속으로 가라 앉았다가 새벽에 다시 빛나는 태양의 빛을 상징했다. 오시리스 신은 동생인 세트 신의 손에 죽는다.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 여신은 조각난 남편의 사체를 수습하여 마법을 사용해서 처녀 상태로 호루스를 잉태한다. 그리고 아기 호루스는 세트의 복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일강 삼각주의 갈대 숲에 숨겨졌다가, 성장해서 세트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중인 BC 1300년(제 18왕조말에서 제 19왕조초)경의 데디아의 삼신상에서 알 수 있듯이, 오시리스-이시스-호루스의 3신숭배는 고대이집트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대 이집트에서 널리 행해진 삼신숭배는 후에 삼위일체설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에드먼드 리치는 그의 저서 '성서의 구조 인류학'에서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 까지 등장하는 성경의 근친관계를 이집트의 오시리스-이시스-호루스 신화의 모티브로 분석을 한바 있다. [에드먼드 리치 /성서의 구조 인류학/ 한길사/ 신인철역]. 즉,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아내이고, 아들 호루스에게 이시스는 어머니이자 고모이다. 게다가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현세적인 부활이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호루스와 동일시 했고, 파라오가 죽으면 저승에서 오시리스가 된다고 믿었다). 이 관계는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아브라함의 누이이며, 그 아들인 이삭도 자신의 아내인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의 아내 요게벳은 그의 고모이다. (아므람은 아버지의 누이와 결혼했다). 호루스가 세트의 손길을 피해 갈대밭에 숨겨졌듯이, 모세는 어머니의 손에 의해 갈대밭에 버려졌다. 모세가 파라오의 공주에 의해 구해질 때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은 모세의 누이였다. 5장에서도 언급했듯이 모세와 유사한 출생설화를 공유하는 아카드의 사르곤 출생신화도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신과 인간의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해서 갈대밭에 버려진 사르곤은 이쉬타르 여신에게 구출되어 그녀의 밑에서 성장했다가 나중의 이쉬타르의 애인(愛人)이 된다. 여기서 이쉬타르는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이 뒤섞여있다.
복음서에는 베다니의 동생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성모 마리아 등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한다. 마리아라는 이름이 당시 매우 흔하다고는 해도,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여성들의 이름이 전부 마리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가복음10장 38~42절에는 베다니의 마리아가 등장한다. 혼자서 일을 하던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가 예수의 설교를 들으며 일을 하지 않자 불평을 터트린다. 그러자 예수는 마르다를 다그치면서 마리아를 칭찬하고 있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시 될 수도 있지만, 같은 누가복음 안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따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베다니의 일화보다 앞부분에 해당되는 누가복음 8장 2절 에서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24장 10절에서 또 한번 등장한다. (그러나 양식비평에 따르면 마리아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초대교회의 여러 전승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문서화 되었다고 볼 수 도 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베다니에 살고 있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오누이가 등장한다. (누가복음에는 나사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가 나사로의 초상집에 도착하자 마르다는 예수에게 뛰쳐 간다. 그리고 마르다는 다시 동생 마리아에게 돌아가 귓속말로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라고 일러주자,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예수에게 달려갔다[요한복음 11장 28~29절]. 그 후 베다니의 마리아는 향유를 갖고 와서 예수의 발을 씻겨준다[요한복음 12장 3절]. 요한복음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따로 언급되어 등장한다. [요한복음 20:18 / 요한복음 19:25 / 요한복음 20:1]
그럼, 베다니의 마리아에 이어서 또 다른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를 살펴보자. 일부 학자들은 예수의 아내가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 사실 이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도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간의 알 수 없는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복음서에 따르면 막달라에 대한 예수의 태도도 독특하고 우선적이었으며, 그녀는 예수 사역의 말기에 그를 따르는 여인의 맨 앞에서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점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창녀로 알려져 있지만 복음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누가복음에는 일곱귀신 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녀를 타락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동시에 모종의 종교의식이나 또는 의식적 입회식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쉬타르(Ishtar) 또는 아스타트(Astarte)의 제사의식은 일곱 단계의 입회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출신인 갈릴리의 미그달(Migdarl),또는 막달라(Magdala)라는 곳은 제사용 비둘기가 사육 되었던 곳이며 비둘기는 아스타트의 거룩한 상징이었다.
특히 나그하마디에서 발견된 마리아 복음서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은 비밀을 막달라 마리아 에게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 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이여,우리는 주께서 당신을 다른여자보다 더 사랑하셧음을 알고 있읍니다.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말해 주십시오.당신은 알고 있지만,우리는 그 말씀을 모릅니다"
후에, 베드로는 분개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가 실제로 한 여인과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우리에게는 비밀로 하엿는가? 우리는 돌이켜 그녀에게 모든 것을 들어야 하는가? 그는 우리보다 그녀를 더 좋아하셨는가?"
그러고 훨씬후에 제자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대답한다.
"확실히 주께서 그녀를 대단히 잘 알고 계시네. 그가 우리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신 것은 그 때문이지" [In Robinson , J/ Nag Hammadi Livery in English / The Gospel of Mary. P.472]
이외에도 빌립복음서에는 예수가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자 다른 제자들이 질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주의 동료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녀를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셔서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기도 했다.나머지 제자들은 그로인하여 기분이 상했으며 불만을 표시했다.그들은 그에게 왜 당신은 우리모두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십니까?라고 말했다.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왜 나는 너희를 그녀처럼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하셨다." [In Robinson , J / Nag Hammadi Livery in English / The Gospel of Philip P.138]
'예수는 결혼했는가?'라는 책의 저자에 따르면 위의 구절에 나오는 동료(companion)라는 단어는 배우자(spouse)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William E. Phipps/ Was Jesus Married? / P136]. 그러나 좀더 살펴보자면, 막달라 마리아 뿐이 아니라 다른 마리아들에게도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주와 함께 언제나 동행하던 세사람이 있었다. 곧 모친 마리아와 그녀의 누이와 예수의 동료라고 불리운 막달라 마리아가 그들이다".[In Robinson , J / Nag Hammadi Livery in English / The Gospel of Philip P.135]
예수의 동행자로 성모마리아, 마리아의 누이, 막달라 마리아가 제시되고 있다.
"늙은 히브리여인은 음경끝의 살갗을 집어들어 항아리에 보관했다. 노파에게는 주정뱅이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에게 '이 항아리는 동전3백닢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팔아먹지 마라'고 했다. 그런데 이 항아리를 죄인 마리아가 가지고 와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머리와 두 발에 기름을 쏟아 붓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준것이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제2권/ 이동진 역 / 문학수첩 P.65]
아기예수의 할례를 묘사한 위의 외경에 따르면, 예수의 양피를 보관한 항아리가 죄인 마리아의 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 외경 속에서 죄인 마리아는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를 뒤섞어 놓은 듯 하다. 예수와 이 여자의 관계는 이미 특별하게 운명 지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가 뒤섞여 있는 이 외경은 어쩌면 의미심장한 단서를 우리에게 남겨 주는 것 일지 모른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러 마리아들은 예수와 무슨 관계일까?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고 아들의 십자가 처형에 입회 했다면,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는 여자는 일관해서 막달라 마리아이다! 4복음서의 예수부활 부분에서 일치된 점이 있다면 부활의 목격자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노골적인 것은 바로 마태복음이다.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태복음 28장 1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태복음 27장 61절]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는 표현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중심으로 다른 마리아들을 하나로 묶어 버린다.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여성들의 이름이 전부 마리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와 마리아들간의 알듯 모를 듯한 관계를 신화적인 모티브로 바라본다면 모든것이 확실해 진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러 마리아들은 모두 성모 마리아의 변이(變異)들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서 속의 마리아들은 신화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세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죽음에 입회하고, 누이는 부활에 입회한다. 예수 이야기에서 성모 마리아는 죽음에 입회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에 입회한다. 또 다른 마리아인 베다니의 마리아도 예수와 막역한 관계로 그려지고 있다. 이 모든 마리아들은 바로 이시스 여신의 구조적 변형일수 있다.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여성들의 이름이 전부 마리아라는 것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들 모두 이시스 여신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부활에 연관되고 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오빠의 부활을 목격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부활을 증언하는 주된 목격자가 되고,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탄생시킨다. 어머니, 아내, 누이의 이미지가 뒤섞인 이시스와 이쉬타르의 이미지가 각각의 마리아로 변이한 것 이라고 추측 할 수 도 있다.
성모 마리아의 모티브가 된 것은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유물들이 암시적으로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집트는 물론, 로마의 지하무덤과 팔레스타인에는 동정모 이시스의 품에 안긴 아기 호루스의 그림과 석상들이 무수히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마돈나와 아기의 원형이 되었다고 말한다.
두산세계대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고 이시스의 아들로서의 '유아(幼兒) 호루스'는 아기 예수의 원형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호루스 Horus항목]
개신교인들이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하늘 황후 운운하며 카톨릭의 마리아 숭배를 비난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마리아는 분명 신화속의 여신(女神)이요 하늘황후임이 분명하다. 마리아는 처녀 상태로 신의 아들을 낳았으며,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로 순환(循環)하여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신화(神話)속의 여신(女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