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 酒님<?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를 분석함에 있어서 포도나무와 포도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4복음서에서 '포도'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포도나무와 포도주로 검색되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말라", 라는 유명한 비유를 비롯해 최후의 만찬에서 까지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는다.
포도원 일꾼에 대한 예수의 비유도 두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늦게 도착한 포도원의 일꾼도 같은 급료를 받는다는 마태복음 20장의 내용이다. 또 하나의 포도원 일꾼 비유는 마태 복음 21장에 등장한다. 포도원의 지주가 포도즙 짜는 장치를 해놓고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떠나갔다. 수확철이 되자 주인은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으나 소작인들이 종을 살해 했다. 그러자 주인은 아들을 보냈는데 소작인들은 포도원의 상속자인 아들마져 살해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한 포도원의 주인은 곧 신(神)이고 살해당한 아들은 예수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요한복음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15:5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누가복음 7:34]
예수는 스스로를 '포도나무', '포도원 주인의 아들', '포도주는 나의 피'라고 말한다. 복음서에는 왜 이렇게 포도나무와 포도주가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 포도주를 논함에 있어서 빠지지 않을수 없는 것이 바로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이다.
로마에서는 박카스(Bacchus)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신화속의 디오니소스(Dionysos)는 포도나무, 포도주를 관장하는 술의 신이다. 아테네의 민주제가 시작되는 BC 6세기경, 디오니소스 축제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제가 주관하는 행렬,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노래와 춤에 이어 5~6일간에 걸친 축제의 마지막 날 연극이 공연되었다. 이것이 극장의 시초가 되었으며, 여기서 공연된 디오니소스의 연극이 비극(悲劇)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디오니소스 신화는 각지로 퍼져나갔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BC 405년경 무대에서 상연되었다는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희곡 바카이(Bacchae)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디오니소스 축제는 본능적이고 사람을 끝없이 취하게 하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신과 인간여자 세멜레(Semele)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의 신(半人半神)이다. 디오니소스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서, 새의 뼈속에, 사자 뼈속에, 당나귀 뼈속에 한 번씩 넣었다 뺏다. 그 나뭇가지를 낙소스라는 섬에 심게 되는데, 이 나무가 최초의 포도나무가 되었고 여기서 최초의 포도주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도에까지 여행을 하면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신앙을 전파했다.
요한복음 2장에 등장하는 가나에 혼인잔치에서 예수와 성모마리아는 손님이 아니라 잔치를 주도하는 사람들처럼 묘사되어 있다. 포도주가 부족하다고 다그치는 마리아에게 예수는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라며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마음이 바뀌지 않자, 결국 예수는 물로 포도주를 바꾸는 초능력을 행사한다. 마리아와 예수는 그 집의 하인들을 자신의 하인들 다루듯 명령을 내리고 있으며, 포도주를 만든 것이 예수가 행한 최초의 초능력이다. 결혼 잔치에 참석한 두 명의 손님들이 음식장만의 책임을 졌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것은 주인의 책임이 아닌가? 게다가 이 포도주의 맛이 훌륭하자 손님들은 신랑을 불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칭찬받은 신랑이 누구라고 명확히 나와 있지 않고 애매모호 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 결혼잔치의 신랑은 다름아닌 예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요한복음의 애매모호함은 다름아닌 영지주의적인 색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서 기독교인을 신부로 표현하고 예수를 신랑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이 가나의 혼인잔치는 하나의 영지주의적인 상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와의 신성한 결혼식을 거쳐 '포도밭'(Ampelos), '포도나무'(Staphylos), '술 마시는 사람'(Oinopi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을 낳는다. 따라서 예수가 행한 최초의 초능력은 결혼식에 참석하여 포도주를 만드는 일일수 밖에 없다. (다른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의 아들이 4명으로 나온다. 여기서도 아들의 이름이 술과 관련되어 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 포도주를 관장하며 모든 속박으로 부터의 해방키는 도취와 쾌락의 신이다. 마이나데스(mainades)라고 불리는 이 종교의 여성 추종자들은 사슴가죽옷을 입고 담쟁이 덩굴 관을 쓴 차림으로 제례 때 외치는 소리인 '에우오이!'(Euoi)를 소리치며 열광적인 입신(入神)상태에 들어갔다. 그들은 티아시(성스러운 무리)를 이루어 티르소이(회향나무 가지에 포도덩굴의 잎을 엮어 매고 끝을 담쟁이덩굴로 장식한 것)를 흔들면서 피리와 팀파니의 반주에 맞추어 장작불 옆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춤을 추었다.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은 예수의 피와 육체를 상징하는 포도주와 빵을 받아 먹었다.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 숭배자들은 디오니소스가 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몸으로 화한다는 믿음에서 '날고기 먹기'축제에 탐닉했다. 신화 속에서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질투심 때문에 양으로 변신 했던 적이 있으며, 그 외에도 동물로 변신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날고기 먹기'(omophagia)축제에서 디오니소스교도들은 제물로 바쳐진 살아있는 동물을 '브로미오스'(외치는 자), '타우로케로스'(소의 뿔을 지닌 자), '타우로프로소포스'(소의 얼굴을 한 자)라는 이름으로 찬양하며 디오니소스의 현신(現身)으로 여겼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고 만취된 상태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디오니소스(?)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 뒤, 피가 뚝뚝 흐르는 상태의 날고기로 먹으며 열광했다. 보수적인 그리스인들에게 디오니소스교를 따르는 무리들의 이러한 광란적 일탈행위는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급기야 마이나데스가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악 소문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저스틴의 변증서에 따르면 초대교회 사람들도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악소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하늘의 신과 인간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의 역설적인 이중성을 암시한다. 하늘로 상징되는 불사의 존재, 그리고 땅으로 상징되는 사멸하는 존재간의 모순적인 화해가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디오니소스의 이중성을 인간 실존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반쪽신(半人半神)으로 태어난 디오니소스의 운명은 이미 비극(悲劇)을 예고하고 있었다. 다른 신(神)들과 다르게, 디오니소스는 자신이 신(神)임을 증명하면서 끝없는 방랑생활을 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비롯하여 그를 적대하는 신들과 왕들에게 죽임과 박해를 받았으나 디오니소스는 다시 부활한다. 니체는 세상을 아폴론(Apollo)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누었다. 제우스의 또 다른 아들인 아폴론은 절제된 태도와 엄격한 성격을 가진다. 그에 반해 디오니소스는 무절제하고 방종한 인간과 흡사해 보인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태양빛이 작렬하는 정오처럼 강렬하지만, 디오니소스는 술잔을 들고 나타나는 몽환적인 달의 모습이다.
디오니소스를 표현한 그림들에 거의 함께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를 뒤따르던 신도들이었다. 이 신도들은 도시국가라는 틀과 관련된 여러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했다. 신과 인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격, 귀족과 하층민간의 간격, 여성에 대한 차별, 도덕적 인습...등등의 아폴론적 질서로부터 단번에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신이 디오니소스라고 할 수 있었다. 디오니소스교도들의 입신(入神)상태를 뜻하는 'ekstasis'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속박당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디오니소스 신도가 되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세속적 굴레에서 벗어나 철저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특히, 한(恨) 많은 여인들과 평민들이 온갖 질곡에서 벗어나게 되는 일탈(逸脫)속에서 환희를 맛보게 된 것이다. 격식에서 벗어난 여자들은 모처럼 자유롭게 뛰놀면서 춤도 추고 술도 마실 수 있는 자유로운 디오니소스 신앙에 열광했고, 그 때문에 그리스 남성들은 디오니소스를 혐오했다.
예수의 삶 또한 디오니소스와 같이 포도주로 귀결된다. 4복음서 모두 십자가에서 매달린 예수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신 포도주를 먹이자, 다음순간 바로 사망했다고 일치되게 기록한다. 학자들의 따르면 당시 십자가 형을 받은 사람은 며칠 동안 고통스러운 상태로 생존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예수가 몇 시간 만에 사망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포도주를 먹자마자 사망했다는 것도 의아스럽다. 신 포도주는 탈진해 있는 사람에게 힘이 나게 해준다고 한다. 이것은 오류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먹자마자 바로 죽었다면 신 포도주에 무엇인가 약을 탄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한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는 포도주의 신이므로 그의 최후도 포도주로 귀결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 유대사회의 하층민들은 로마의 식민통치와 숱한 전쟁으로 피폐해졌다. 거기에 숨막히는 유대율법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죄어왔다. 헬라사상과 이방종교의 영향아래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숨막히는 유대율법에서 해방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야말로 율법조항으로부터의 일탈(逸脫)을 강하게 꿈꿨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을 위한 유대인 디오니소스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예수는 유대인들의 진정한 酒님이었다. ( "酒님이시여, 내잔을 가득 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