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와 바울의 교권 다툼

▶ 베드로와 바울의 교권 다툼

적 그리스도 0 8,995 2006.07.08 07:26

▶ 베드로와 바울의 교권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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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예수신화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의 12 제자가 아닌 자들이 독립적으로 구약 성경을 통달한 영지주의자들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그들 중에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은 바울이었다. 당시 바울은 쌍벽을 이루던 라이벌이었던 아볼로와 함께 수많은 사도들과 교세다툼을 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헬라어로 베드로)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린도 전서 1장 11~12절]

 

개역한글판의 해석이 희미하므로 공동번역판의 동 구절을 올린다.

 

"내 형제 여러분, 나는 클로에의 집안 사람들한테 들어서 여러분이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저마다 나는 바울로파다 나는 아폴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하며 떠들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1~12절 / 공동번역판] 

 

이미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아볼로파, 베드로파, 바울파로 나뉘어진 교인들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고린도 전서 3장 4절]

 

역시 번역이 애매하므로 공동번역판의 동구 절을 올린다.

 

"여러분이 세속적인 인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나는 바울로파다 라느니 나는 아폴로파다 라느니 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 전서 3장 4절 / 공동번역판]

 

베드로, 아볼로등의 사도들은 모두 바울의 라이벌이었던 것일까? 나그하마디문서를 비롯한 금 세기 발굴들로, 그 어느 때 보다 도 초기 기독교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게 된 오늘 날, 모든 학자들이 한 가지로 공통되게 찬성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초기 기독교의 극심한 다양성일 것이다. 오늘 날의 기독교는 이 초기의 다양성을 극복하고 훨씬 통합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초기 기독교의 분열상은 적어도 현대의 기독교계의 분열상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날의 분열상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현재는 그래도 정립된 유사한 범주의 정경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독교 초기 시절의 다양한 분파의 난립 와중에, 바울 분파(Pauline Faction)과 베드로 분파(Petrine Faction)간의 대립과 갈등의 흔적이 보여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울은 할례파 사람들에게 굴복한 베드로와 바나바에게 위선자라고 비난한적도 있었다.

 

고린도 후서 10~12장에 나오는 바울의 라이벌 사도들은 누구인가? 바울은 고린도 후서 11장 13~14절에서 그들에 대해서, 거짓 사도, 가면 쓴 자들로, 천사의 탈을 쓴 사탄으로 매도한다. 특히 고린도후서 11~12장 전체는 주목해 볼만하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을 비방하면서도, 바울 자신이 저들보다 내가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고후 11:5), 다른 교회에서 돈을 받아 고린도 교회에 봉사했으므로 고린도교회에는 피해가 아니라 득을 주었다고(고후 11:8) 항변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1장 21~30절에서 바울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히브리인 이며, 모진 핍박과 힘든 일을 당한 사람이라고 동정을 호소하고 있으며, 12장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그리스도로부터 환상과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2장 17절에는 자기가 어느 누구를 착취한적이 있냐고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서신이 쓰일 당시 고린도에서 바울의 권위가 상당히 위태로웠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가 있다. 12장 16절에는 고린도교회의 어느 사도가 바울을 해코지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을 위기에 빠뜨린 그 사도들은 누구인가? 여기에 하나의 단서가 있다. 아래의 베드로 후서에서 베드로는 바울서신에 대해서 언급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 15~16절]

 

베드로는, 바울도 그리스도에게 지혜를 받은 한 형제지만, 그의 서신은 내용이 어려워서 무식한자들이 잘못 해석하면 멸망에 이른다고 한다. 얼핏 보면, 바울서신을 함부로 해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같지만,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면, 베드로의 숨은 의도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 베드로는 복음서의 베드로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종말론에 치중해서 수많은 묵시문학이 등장했으며, 구약의 예언서들에 심취하는 자들이 많았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상징들로 가득 찬 묵시록을 함부로 해석하는 자들에 대해 베드로가 경고를 했다면 당연히 이해가 가지만, 도대체 바울서신이 어떤 면에서 내용이 난해하다는 것인가? 바울서신에서 내용이 난해하다고 할 만한 내용이 있는가? 아마도 베드로는 위의 고린도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 바울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 것 같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할례파에게 굴복한 베드로와 바나바를 위선자라고 한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린도서에서 바울이 비난하는 다른 사도란 베드로, 혹은 베드로의 추종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로마서에서부터 히브리서 까지 바울 서신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불평은 바로 사도권에 관한 것이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 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고린도 전서 9장 1~2절]

 

이러한 베드로분파와 바울분파의 마찰은 외경 속에서도 드러난다. 초대교부(apostolic fathers)인 저스틴은 기독교의 사조 바울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으며, 바울의 서신들에 대해서도 침묵 한다. 사도 행전도, 바울의 행적이 주된 내용이 되어야 할 성질의 글이었으나 그의 순교하기까지의 기록은 싣고 있지 않다. 바울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 침묵 했듯이 베드로 분파의 바울에 대한 침묵이라는 현상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바울에 관한 침묵 내지는 암시적 공격의 극치를 보여 주는 문서를 보자. 초기 교부인 클레멘트는 베드로의 후계자로 알려진 구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이 클레멘트의 이름을 저자로 빌린 유사 클레멘트 문서, 설교(Homily: 설교, 훈계)가 우리의 관심 거리이다. 이 문서는 클레멘트가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의 이름만을 빌린 위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허멀리I(Homily I)에서 저자는, 클레멘트 본인이 쓴 형식을 취해, 클레멘트의 어린 시절 영혼의 구원 문제에 고심한 것, 유대 지방에 신의 왕국을 선포하는 한 목소리가 전파 되기 시작한 것, 로마에 기쁜 소식(gospel)이 전 해진 것, 본인이 이를 듣고 로마를 떠나 유대로 가던 중 풍랑으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 하는 것, 그 곳에서 바나바의 노상 전도 설교를 듣게 되는 이야기, 이후 유대로 도착 해서 먼저 떠났던 바나바에 의해 베드로에게 소개되는 경위, 베드로 가르침에 심복하여 이후 그와 동행하며 베드로의 행적을 기록하게 되는 경위를 쓰고 있다. 작자는 미상이고 2 세기 중반 내지 3 세기 중반의 문서로 추정 되고 있다. 물론 역사적 얘기가 아닌 가상의 드라마 임이 분명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 문서인 것 이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제목과 내용에서도 얼른 알 수 있는 것이 이것은 베드로 분파의 작품 이라는 것이다.

초기 이방 선교 상황을 묘사 하는 문서인데 바울에 대해 일체 침묵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위에서 언급한 다른 사도들과 관련된 외경에서도 나타난다. 독일 튜빙겐 학파의 바우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문서는 베드로 분파의 바울 분파에 대한 공격을 암시 하고 있다고 해석 한다. 즉 글 중에 나오는 베드로의 적 이자 경쟁자 시몬은 사실 바울을 빗댄 인물 이라는 것이다. 글 중, 줄기차게 베드로 따라 다니며 공격하고 비판하는 시몬, 그는 누구인가? 사도 행전 8장 9절 이하에도 나타나는 시몬은 마술사이며 동 구절이 성경 상에 보여지는 그에 관한 정보의 전부이다. 저스틴 교부(First Apolog. xxvi)에 의하면, 시몬은 사마리아의 깃타 지역 출신으로, 스데반과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왔을 때, 그들에게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진짜 목적은 그의 마술의 힘을 키우는 것에 있었다고 한다. 후에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사마리아에 왔을 때 그들의 능력을 보고 돈으로 사고자 했음은 사도 행전에 기록 되어 있다. 잘못을 빌고 베드로의 축도 받기를 원했으나 그 후에도 그의 행실은 여전했으며, 최초의 이단자 또는 이단의 아버지라 명명 되었다고 한다.

 

허멀리XVI(Homily XVI)에서 시몬은 줄기차게 베드로에게 언쟁을 걸어온다. 베드로가 시몬에 빗대서 바울을 공격하려고 했다면 무슨 공격이 가장 필요 했을까? 성경 속에서는 사도직의 권위 다툼 와중에서도, 어떤 측에서도 나사렛 예수의 친제자임을 들어 기득권을 쟁취 하려 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즉, 베드로를 포함한 어느 사도도 예수를 옆에서 목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신화파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제 바울서신과 복음서들이 쓰여진 지 적어도 100년 뒤에 허멀리(Homily)의 저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100 년 전의 침묵에 대해 보완하는 것이다. 즉 베드로는 예수를 옆에서 목도한 사도이니만큼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난 사도보다 우월한 사도임을 설파하는 것, 바로 그 것이다!

 

베드로는 "환상을 통한 경험을 토대로 한 자가 선생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시몬을 공격 하기 시작 한다. 허멀리XVII(Homily XVII)에서 베드로는, 육체적 감각 기관으로 체험한 것이 초 자연적 환상의 경험보다 더 확실 하다고 주장 한다.

 

"여호아가 진노 중 아론과 미리암에게 하신 말을 보라. '선지자가 너희 중에 일어 나면, 내가 그에게 꿈과 환상들로 나타내 보이겠으나 모세에게는 그러히 아니 하리니, 모세에게는 내가 친히 내 모습을 보이리라. 꿈이 아닌 마치 친구에게 얘기하듯......(중략)...... '진노 중 에는 환상과 꿈으로 보이시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나 친구에게는 얼굴 마주 대 하듯이 하시느니라. 적에게는 꿈과 환상을 통 하지만......"

 

즉, 주의 진정한 종에게는 육체적으로 만나 주지만 꿈과 환상을 통해 본 자는 필경 주의 진노하심으로 말미암음 이라는 이야기이다. 허멀리XIX(Homily XIX)에도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만약 예수께서 너에게 환상을 통해 나타나서 말씀 하셨으면, 그는 필시 너를 적대하여 분노 중에 나타내 보이셨음이라.....(중략)......몽환 중에 예수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가 어디 있는가? (중략)......만약에 그럴 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중략)......왜 예수께서 우리와 친히 섞이셔서 일 년을 지내시며 가르치셨는가? (중략)......너희가 진짜로 환상을 통해, 한 순간 만 이라도, 예수의 제자가 되었더라면, 그와 현실에서 동행까지 했던 나를 적대하지 말라. 너희가 교회의 반석을 적대하게 됨이라."

 

이 문서에서 베드로는 환상적인 메시아를 접한 시몬을 적 그리스도로 묘사 되고 있는 데,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의 환상과 접하게 된 바울을 비아냥거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바울의 가르침은 복음서 보다 앞서 이미 유행 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는 역사적 예수를 목격하지 못했다. Homily에는 다음과 같은 암시가 있다. 베드로는 거짓 선지(적 그리스도)가 나와 거짓 복음을 먼저 전파 하리라 하고 예수가 설파했다고 주장하며, 진짜 복음은 이단(적 그리스도)의 방해를 피해 숨겨져 있었다고 설명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바우어등의 학자들은, 초대 교회의 베드로 분파(Petrine faction) 와 바울 분파(Pauline factions)의 대립의 증거로 비추어 지고 있는 것이며, 이 두 양대 산맥의 통합이 오늘 날의 구교, 더 나아가 기독교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 하게 되는 실마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즉,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바울과 다른 사도들 간에 투쟁은 할례라는 유대 율법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바울서신들이란,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교회의 유대주의 자들의 측에 서서 바울을 배척하자, 위기에 직면한 바울은 서신들을 통하여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바울의 노력이 갈라디아교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바울이었음을 오늘날의 신약에서 당연히 알 수가 있다. 오늘날의 신약의 4/1을 차지하는 바울서신들로인해 진정한 최고의 사도는 바울처럼 비춰진다.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예수의 나머지 12사도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행적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외경을 다룬 책인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에서 다른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외경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베드로 복음, 베드로계시록, 베드로행전, 요한행전, 도마행전, 안드레아행전, 에비온복음(12사도의 선택), 등등이다. 이것들이 버림을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바울 분파가 득세하면서 많은 것들이 정경으로 채택되지 목하고 버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물론, 예루살렘에 근거지를 둔 정통적인 베드로 분파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추인 되었고 천국의 수문장으로 숭상되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바울 분파였다.갈라디아서2장에서 베드로는 히브리민족에게,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직을 부여 받게 되었는데,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된 곳은 유대 땅이 아닌 로마제국이었다. 무 할례자 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바울의 영역이었던 것이다.따라서 베드로 분파는 로마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바울분파가 정통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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