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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시문학은 아무것도 예언하지 못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유대사회에 미미하게 영향을 끼쳤던 시기에 제작된 구약에서의 여호와의 심판은 인류의 종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약의 스바냐, 나훔, 하박국, 예레미야, 에스겔의 예언자들이 말한 다가올 심판은 불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경고일 뿐이다. 그들은 다가올 '심판'을 예고했다. (습 1:14-16, 3:9-20) 이전에는 항상 구원과 축복의 날로 기대되었던 '여호와의 날'이 아모스 이후로 불충실한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심판은 이방인들의 침입이나 유형의 형태였다. 심판 후에는 회개하여 충성을 끝까지 지킨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위한 새로운 구원이 주어 진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 하리라 하셨나니." [미가 4장 6~7절]
위의 '개역한글판'의 뜻이 애매모호해서 '공동번역판'의 동 구절을 올린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절름발이들을 모아 오리라. 야훼의 말씀이다. 흩어졌던 것들을 모아 들이리라. 적잖이 고생을 시켰지만, 그 절름발이들, 비틀거리는 것들을 씨앗으로 남겨 강대국을 만들리라. 이제부터 영원토록 이 야훼가 시온 산에서 다스리리라." [미가 4장 6~7절 / 공동번역판]
유대민족을 여호와가 강대국(강한 나라)으로 만들겠다는 이 말은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는 세계종말과 거리가 멀다. 스가랴 14장의 종말 역시 보편적인 종말관과는 달랐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중략)......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 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스가랴 14장 12~19절]
역시 여기에서도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자들을 여호와가 직접 심판하고 유대나라가 존귀해진다는 내용이다. 이집트를 비롯해서 외국인 들에게 유대율법을 지키게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유대국가를 강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불신자를 영원한 지옥에 떨어뜨려 버린다는 요한계시록의 예언과는 차이가 난다. 또한 이런 구약의 예언에는 메시아 적인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여호와가 직접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사야서에 이르러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인 매우 강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 대 이방인이란 도식(圖式)도 조로아스터교의 보편적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차츰 의인과 죄인의 구조로 약간 바뀌어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메시아적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호와가 직접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신 구약의 중간 기에 들어서는 인류종말, 구세주 도래, 부활 등의 영향이 뚜렷하게 등장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신 구약의 중간 기에 해당되는 문서를 외경으로 버렸기 때문에 종교가 진화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현재에도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의 무오성과, 종말론에 심취하게 되는 광신자가 찾게 되는 책이 묵시문학이다. 난해한 상징들로 가득 찬 묵시문학을 함부로 해석해서, 오늘날의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필자는 묵시문학에 대해, 영적인 능력이 없는 평범한 자들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위조한 해로운 문서라고 생각한다. 구약이 예언서들이 그렇다. 유명한 옛 선지자의 이름을 가장하여 지나간 사건을 미래의 예언인 것처럼 써내려 갔다. 그런 예언서들이 유대교의 경전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자, 그 이후의 사건들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전혀 예언하지 못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은 조금 특별하다. 지나간 사건을 예언인 것처럼 위조했던 구약의 예언서들과 달리, 요한계시록은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글로써 남겨 놓았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정말로 미래를 예언했는가? 만일 필자에게 미래에 대한 환상이 보여진다면 어떻게 기록을 했을까? 아마 미래의 사람들은 금속으로 된 말을 타고 다니고(오토바이), 금속으로 된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비행기), 말이 끌지 않아도 자동으로 굴러다니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자동차), 달에 가서 깃발을 꼽고, 멀리 떨어져서도 작은 상자를 통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전화기)라고 예언했을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보면 거기엔 그런 예언들이 등장한다. 물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조작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한계시록 속의 예언은 아무리 상징적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미래의 역사 전개에 대한 예언도 없다. 붉은말을 탄 사람이 전쟁을 일으키고, 검은 말을 탄 사람이 기근을 불러온다는 둥의 뜬구름 잡는 예언일 뿐이다. 전쟁과 기근은 어느 시기에나 있었다. 이런 예언은 어느 시기의 누구든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속의 상징 역시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구약의 예언서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요한계시록의 상징을 알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 속의 상징은 구약의 예언서 속의 상징들의 총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상징의 정체를 파헤치고 보면 별다른 내용도 없다. 지금도 묵시문학의 내용을 멋대로 해석하여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쉬지 않고 등장한다. 다미 선교회의 1992년 종말론 파동은 우리에게 악몽과도 같다. 그러나 그런 자들을 키워낸 것은 기독교이다. 헛되기 그지없는 묵시문학을 정경에 포함시키고, 성경의 무오 성을 신자들에게 세뇌 시켰으며, 요한 계시록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 이다.
전쟁과 기근, 자연재해, 경제공황 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때문에 중세시대부터 종말을 주장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000년 왕국 때문에, 예수가 이 땅에 온지 1000경이 된, AD 999년에는 유럽각지에서 군중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탐관오리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AD 1000년이 되도록 종말이 오지 않자, 다시 예수부활 후 1000년으로 종말이 수정되었고 예루살렘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1033년이 되어도 종말이 오지 않자, 종말은 1186년으로 수정되었으며 켄터베리 대주교는 종말에 대비해 영국전역에 3일금식령을 내리기도 했다.1254년에는 프레드릭 황제가 인노선트 4세 교황의 라틴 이름의 합이 666임을 들어 그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 그리스도 임을 주장 하기도 했다. 신교와 구교가 분리돼서 싸우고 있을 때에는 같은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666이라며 비방했다. 기독교가 자리잡았던 유럽의 역사 속에서 종말을 주장했던 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수 도 없이 많았다. 주로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을 그 당시의 현실에 적응 시키거나, 전쟁이나 전염병 자연 재해 등이 닥쳐 살기가 힘들어지면 종말론이 고개들 들고 일어섰다.
종말론자들은 항상 묵시문학을 그 시대에 반영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조용기 목사는 그의 저서 요한계시록강해(1976) P. 152~154에서 계시록 6장의 붉은말이 공산주의라고 주장한적이 있었다. 책이 출판된 시기는 70년대 냉전의 시기, 그러나 공산주의는 현재 몰락했다. 요한계시록의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상징적 해석으로 사탄의 재림으로 해석한다. (이것이 정통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 때는 전염병이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주장한다. 혜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갈 때는 혜성이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주장한다. (중세에는 혜성이 지나가면 흉년이 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과학문명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핵폭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닌가?
요한계시록을 현재에 대입시키는 종말론자들은 계시록의 나오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을 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족이나 모슬렘의 침입 사건으로 해석한적도 있었으며, 천사가 요한에게 준 작은 책을 루터나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개신교 광신자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을 로마 카톨릭으로 보고, 짐승의 멸망을 로마 카톨릭의 멸망으로 해석 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종말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시대는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종말이 다가 왔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많다.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인가? 예수는 종말의 시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6절, 마가복음 13장 32절]
예수도 모른다는 종말의 때를 자신이 알기라도 한단 말인가? 자기 자신이 예수에 버금가는 존재라고 착각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한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종말을 말하는 사람의 인생엔 종말이, 희망을 말하는 사람의 인생엔 희망이......
종말을 주장하는 종교의 미래에는 종말이, 희망을 주장하는 종교의 미래에는 희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