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성경을 제거하자!
그럼, 구약은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구약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학계에선 그 동안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서 구약의 의미를 보전시키기 위하여 억지논리를 만들어 왔다. 이런 보수적인 신학 계의 대표적인 모델 세 가지만 추려서 그 의미와 한계점을 간략하게 검토하기로 한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첫 번째는 약속(Verheissung)과 성취(Erfuellung) 모델이다.
특히, 신약은 구약을 약속이라는 개념으로 특징 지운다 (롬 4:13-25; 15:8; 갈 3:14; 참조. 마 1:22-23; 요 19:24-25 등). 이 모델은 신약을 중심으로 구약과 연결시킨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여러 약속들은 신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박해 받고 있는 유대민족에게 축복을 내려주겠다는 것을 제외하면 예수에 대한 예언이 전혀 없다. 다만,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을 왜곡시켜서 인용했기 때문이다.(8장의 억지로 끼워 맞춘 예수신화 참고) 또 다른 문제점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 왜곡시켜서 사용한 구약의 일부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구약들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두 번째는 모형론(Typologie) 모델이다.
구약의 사건, 인물 그리고 제도들은 모형들(模型, Typos)으로 간주되고, 그 모형들과 상응하는 것이 신약의 원형(原型, Antitypos)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서 5장에서 아담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표현하며(롬 5:14), 고린도 후서 3장이나 히브리서 3장에서는 모세와 그리스도를 모형과 원형으로 대조시킨다. 또한, 모세의 출생 시에 일어났던 유아학살과, 예수출생 시에 일어났던 헤롯대왕의 유아학살은 미드라쉬적 서술법으로 연관성이 있다. 즉, 예수의 출생을 모세의 출생과 비슷하게 기록하여, 그가 모세처럼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는 유대인들의 구원자라는 전형적인 모형을 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전부를 이렇게 모형론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또한 한 사건의 본래적 의미를 넘어서서 그 사건이 본래 가지고 있지 않은 미래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도 생긴다.
세 번째는 기독론 모델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을 예수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행했던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흔한 구약 해석 방법이다. 이러한 해석의 대표자 중의 하나인 피셔(W. Fischer)는 예수가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지만 구약의 선포에 담겨 진 사상과 구약에서 설명된 사건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는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베커(J. Becker)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편바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구약성경에서 예고되었고, 미리 묘사되었으며 (이미) 현존한다." 그리고 그는 "구약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단정 짓는다. 이는 오래 전에 자콥(E. Jacob)이 "구약신학은 오직 기독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방법의 창시자들은 바로 영지주의자들 이었다. 이것은 앞뒤 문맥이나 사건의 내용 등은 고려하지 않고 아전인수격으로 구약에 주석을 다는 일이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위한 구약의 의미를 파악하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구약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배타적인 고대 유대인이 남긴 문서이다. 특히 구약이 저질스러운 이유는, 이방인들에 대해서 전쟁과 폭력을 명령하는 여호와, 이방인들에 대한 저주, 죄를 지은 사람과 관계없는 엉뚱한 사람에 대한 여호와의 혹독한 벌, 사소한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도 죽여버리는 여호와, 불합리한 율법 ,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를 요구하는 여호와, 종교와 정치의 직접적인 연결.......등등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기독교 정경으로부터 구약을 제거하자는 마르시온적 태도는 중세기부터 종교개혁과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제기되어 왔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성경이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어린이 금서목록에 올릴 것을 주장하는 변호사도 있었다.
"토픽 - 獨 변호사, 성경은 어린이에게 불량도서 "
독일 변호사 2명은 성경이 끔찍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런 내용이 삭제되지 않을 경우 어린이 금서목록에 공식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청원서를 크리스티네 베르크만 가족장관에게 2일 제출. 이들은 일부 학부모를 대리해 제출한 청원서에서 성경이 섬뜩한 일부 내용을 신의 뜻이라고 미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량학살, 인종차별,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 간음 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잔인한 처형, 자기 자식 살해 및 기타 외고집 행위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 한편 뮌헨 가톨릭교회 관계자는 성경을 어린이 금서목록에 올려야 한다면 역사책이나 신문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며 이들의 요구를 터무니없다고 반박하고 이런 문서를 제출한 변호사들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논평." [뮌헨 AFP=연합뉴스]
참, 재미있는 기사가 아닌가? 성경이, 특히 구약이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가득 찬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르낙은 개신교에서 구약을 여전히 정경의 문서로 보존 하고 있는 것은 종교와 교회가 불구가 된 결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은 구약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구약이 제거되었을 때, 기독교의 케리그마(kerygma)가 상당히 빈곤해질 것이며, 창조신앙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흔들리게 되면서, 어느 종교를 믿어도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종교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이슬람교도 이런 교리를 갖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복음전파의 걸림돌이 되며 신자들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 치고 발버둥 쳐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신교는 아직도 구약에 미련을 두고 성경의 무오성을 교인들에게 가르치면서, 구약 속의 유대 민족신 여호와의 배타성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째서 유대인 제일주의의 선민사상, 즉 배타성으로 무장한 구약성경에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또한, 비과학적인 창조주의 신앙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구약을 버린다면, 다윈의 진화론도 신의 창조섭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필자는 충고하고 싶다. 필자는 본서에서 예수의 존재자체에 허구성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가 허구의 인물이던 실존 인물이던 간에 기독교가 배타적이지만 않다면 무엇을 믿던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약의 내용도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자는 대체적으로 좋게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정말로 마음에 와 닿는 모든 이들 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훌륭한 가르침을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구약을 읽고 있자면 역겹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기독교인들이 구약에 대한 미련을 버릴 때, 기독교는 배타성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세계종교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