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를 벗겨낸 예수의 정체 (2) ?

▶ 신화를 벗겨낸 예수의 정체 (2) ?

적 그리스도 0 9,278 2006.07.13 01:14

▶ 신화를 벗겨낸 예수의 정체(2) ?

 

(4) 독선적인 예수!

예수의 언행 중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독단과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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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마가복음 9장 42절]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장 43절]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장 45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장 47절]

 

예수의 말에는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덧붙여서 마가복음의 9장 44절과 46절은 "없음"이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 '개역한글판', 'NIV'등은 그 외에도 마태17:21, 마태23:14 ,마가11:26 ,마가15:28,누가17:36 ,누가23:17 ,사도8:37 ,사도15:34 ,사도28:29 ,로마서16:24등에도 '없음'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KJV에는 이 모든 부분이 전부 기록되어있다.어쨌든 이 문제는 12장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예수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자.)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33절]

 

세계 4대성인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예수의 언행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장 41~42절][마태복음 13장 5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5장 30절]

 

예수는 사랑과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오만과 독선으로 넘쳐나는 인물 같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가복음 11장 12~14절]

 

무화과가 열릴 철도 아닌데 예수는 열매가 없다고 저주를 내려 나무를 죽여 버렸다. 도대체 예수는 언행과 행동들은 배타와 독선으로 철철 넘쳐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는 그 시대에 심판의 날이 임박한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복음 9장1절]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장 2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누가복음 9장 27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32~33절]

 

"분명히 말해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6절]

 

예수는 공공연히 추종자들이 죽기 전, 그 세대에 심판의 날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마치 1992년 종말론을 내세우다 부도난 사이비 교주의 언행을 보는 것 같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행위는 혁명적 메시아운동 집단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복음서만 보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성전에서, 멀리서 온 순례자들을 농간하는 악덕 환전상들을 습격했다. 더욱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방식이 바로 '왕권을 주장하는 유태인 왕의 입성 방식' 그대로이다. 의도적으로 구약 스가랴(Zechariah)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인데, 이는 스스로도 자신이 유대인들의 왕임을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스가랴 9장 9~15절]

 

구약 속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하는 사람은 분명 전쟁의 메시아이다. 병거와 말을 탄 대적들을 복종시키고 기를 꺾기 위해 일어선 다윗의 후손이었다. 그런 이유로 민중들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독립만세!"에 해당하는 "호산나!"(Hosanna)를 외치며 예수를 환영했던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사정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유발시킨 이런 선동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의 의미를 예수가 몰랐다면 그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5) 세례 요한과 예수는 어떤 관계인가?

복음서를 아주 유심히 살펴보면 기이하게도 세례 요한과 예수는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복음서 속에서 등장하는 세례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행한다. 일반적으로 안수 세례는 영적 지도자가 밑에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요한의 세례는 회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은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웠노라"[마태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3:3, 마태 3:11,누가3:1,마가1:4]라고 말하며 세례를 행했는데, 신의 아들이며 성 육신이라는 예수가 무슨 이유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까?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강력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세례 요한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그는 빛이 아니다"[1:9], "그는 예수보다 앞서 있지도 않았다."[1:15,30], "예수는 흥해야 하고 그는 쇠해야 한다."[3:30]는 부정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공관복음서에서의 세례요 한에 대한 구절은 짤막하게 나오는데, 요한복음 만큼은 세례 요한과 예수를 계속해서 비교한다.

 

또한 마태복음에 나와있는 세례 요한에 대해 언급한 예수의 말을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한복음 1장21절] 세례 요한에 대해서 "당신이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하는 질문에 아니라고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요한복음의 이러한 기록은 예수가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말한 마태복음 17장 10~13절,마태복음 11장 11~15절 의 내용과 상치되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특이한 진술을 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하는 말을 바리세인들은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한복음 4장 1절]

 

요한도 세례를 주고 있고 예수도 세례를 주고 있는데 예수에게 사람이 더 많이 몰리게 됐다고 바리세인들에게 소문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라도 요한의 추종자였다가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요한복음 1장 40절]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와 요한은 서로 각자 독립적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가까운 애논에세 세례를 주니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복음 3장 22~23절]

 

분명 세례 요한은 자신이 직접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노니 나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치 못하리라"라고 했으면서, 예수를 만난 후 계속해서 세례 주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이분이 그리스도"라고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를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에 요한의 제자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레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요단강 저편에 있던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복음 3장 25~26절]

 

좀더 뜻이 명확한 공동번역판의 동 구절을 올린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 예식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읍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 가고 있읍니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복음 3장 25~26절 / 공동번역판]

 

그러자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답변한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장 27~29절]

 

오늘날 기독교 측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니"라는 말을 근거로 세례 요한의 겸손함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례 요한의 말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있다. 세례 요한의 말을 살펴보면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라는 말로 보아 '신부=예수의 추종자', '신랑=예수', '결혼식을 보고 기뻐하는 자=세례 요한' 이라는 비유를 든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따져보자면 세례 요한은 분명히 구경꾼의 사명자가 아닌 직접 그 신부 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일 것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신부로서 짝이 되지 못하고(=예수의 추종자) 신랑의 친구(=또 다른 선지자)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말은 세례 요한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지어내거나 덧붙인 이야기가 아닐까? 요한복음 외에도 마태복음에도 세례 요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치부를 트집잡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태복음 11장 2~5절]

 

이 구절은 참으로 세례 요한 답지 않은 말이다. 감옥에 갇혀서 크게 낙담한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에 "당신이 그리스도가 정말 맞는가?"하고 회의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예수를 칭송했던 자기가 감옥에 갇히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리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며 회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는 매우 불쾌한 듯이 자신이 행한 기적에 대해 말했고, 세례 요한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장 6~12절]

 

예수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실족한자', '흔들리는 갈대', '천국에서 작은 자', '침노하는 자'등으로 비하를 하고 있다.

 

요한은 요세푸스의 저술에도 나타나고 있고, 또한 그가 에세네 파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 설도 있다. 혹시, 세례요한의 종파가 예수의 추종자들의 라이벌이 아니었을까? 세례 요한 역시 범상치 않은 방법으로 태어났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제사장인 사가랴와 사가랴의 부인 엘리사벳은 지식을 낳지 못한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였고 나이가 많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나 천사의 계시를 받고 아이를 잉태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역시 타락한 헤롯일가를 비난하다가 살로메에 의해 은쟁반에 목이 잘리어지는 범상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기독교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예수를 거짓선지자로 몰아붙이고, 세례 요한을 참 메시아라고 규정한 영지주의 종파가 있었다. 이러한 종파로는 요한파와 만다교가 있었다. 이들 종파는 초대교회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만다교는 이라크 남부 및 이란 남서부(후지스탄 지방)에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명칭은 아람어(語)의 방언 만다(mand?:靈知)에서 유래하였다. 교리는 지극히 절충적 ·혼합주의이나 세례 ·성찬예식 등에는 엄격한 제례(祭禮)가 따른다. 특히 세례는 반드시 흘러가는 물에서만 갖는다. 전통적 분리주의를 견지하며 현재까지 남아 있으나, 근대교육, 생활의 기계화, 교역 등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중세의 근동 여행기에 이미 '성 요한의 그리스도자'라는 이름으로 이 교파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데, 이들이 세례자 요한을 자기 종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노시스적(的) 유대교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교도의 수는 약 2,000명 정도로 추산되며, 경전은 1세기경에 성립된 '긴자(보물이라는 뜻)가 대표적인 것이다.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만다교 Mandaism항목]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행적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성격을 나타냈다고 보여진다. 즉 헤롯과 자신의 형제와 이혼한 여자 헤로디아의 결혼을 비판했고 이에 괘씸죄에 걸려 죽임을 당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6) 정치 혁명가 예수

앞선 절에서 예수 시대에 예수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았다. 복음서는 당시 유대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너무도 무시하고 있다. 당시 유대민중들은 과중한 세금의 부담과 관리들의 부패, 공물징수와 노동징발 등으로 신음했다. 소작인들은 25%의 농산물세를 로마에 바쳐야 했고, 대제사장과 아들들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했으며, 토지세는 토지 평가액의 1%에 달하였다. 로마에 바치는 세금은 시저(Julius Caesar)가 BC 47년에 내린 법령에 의거한다. [Robert Grant/ 초기 기독교와 사회 Early Christianity and Society / 김쾌상 역 /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 P.54]. 특히 경제적인 곤궁 때문에 세금, 특히 십일조를 정확하게 내지 못할 때 율법학자들은 경멸적인 의미에서 '암 하레츠'라고 불렀다. [Willabald Bosen/ 예수시대의 갈릴래아 Galilaa als Lebensraum und Wirkungsleld Jesus / 황현숙 역 /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8 / P.308]

 

따라서 갈릴리 농민들은 로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귀족들에 대한 증오심도 그에 못지 않았다. 로마가 유대땅을 지배하던 시기에 이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회현상은 바로 광신적인 메시아 신앙이었다. 유대인들의 무장투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로마나 유대지배계급은 이 독립운동의 주체들을 강도(lestai)라고 불렀으나, 이 강도들은 단순히 강도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지주들과 로마 세리들에 항거하려는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은 유대 민족을 로마의 식민통치에서 구출해 낼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싹트기 시작했다. 메시아에 대한 희랍어는 '크리스트' 또는 '크리스토스'이다. 히브리어와 희랍어에서 메시아라는 용어는 단순히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 일반적으로 왕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따라서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메시아' 또는 '크리스트'가 되었으며, 다윗 가의 모든 왕들은 바로 그 명칭으로 알려졌다.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기간 동안에조차도 로마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은 '제사장적 메시아' 또는 '제사장적 그리스도'로서 알려졌다. 하지만 열심당원들 및 로마를 적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꼭두각시 제사장은 말할 것도 없이 '거짓 메시아'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참 메시아'는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에서 구원해줄 다윗가의 알려지지 않은 후손을 의미하였다. 예수의 시대에는 그러한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극에 달하여 병적인 상태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예수의 죽었다는 후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기까지도 메시아 신앙은 더욱더 강해졌다. 실제로 AD 66년의 폭동은 주로 메시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열심당의 선동에 의하여 촉발되었다.

 

복음서는 이 시대의 상황을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로마제국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로마인에게 세금 바치는 물음에 관한 예수의 답변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였다. 갈릴리 유다가 세금거부로 항쟁의 불길을 일으키던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가 남긴 그 말은 매국노가 남길만한 말이기도 했다. 친 로마파인 요세푸스 조차 매우 비열하고 포악한 인물로 평가하는 빌라도를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처형 문제로 고뇌하는 소심한 인물처럼 묘사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경우는 빌라도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예수를, 그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며 갈릴리의 허수아비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넘겼다. 예수를 넘겨받은 헤롯 안티파스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예수에게 고문을 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준다. 사도행전에서 스테판을 돌로 쳐죽였다고 하는 산헤드린 공의회는,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처형할수 있었던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뒤 예수를 제발 죽여달라고 부르짖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빌라도는 예수를 어떻게든지 살려주려고 노력하고, 사형이 선고되자 예수의 피는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부르짖으며, 그 피의 대가는 자신들이 질것이라고 외친다!

 

복음서의 이런 경향에 대해 S. Brandon은 다음과 같이 평가 하기도 했다.

 

"마태, 누가, 요한복음의 저자들은 예수의 박해를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는 데 관심했다. 그들은 대체로 마가의 이야기를 따랐으나, 일차적인 것은 예수를 친로마적인 인물로 그리는데 주안점을 두었기에, 예수의 평화주의의 주제를 발전시킨 것이다."[S. Brandon/ The Trial of Jesus of Nazareth / New York: Dorset Press, 1988, P.76]

 

4복음서가 쓰여진 것은 AD 1세기부터 4세기 무렵이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의 복음서 중에서 우리가 지금 접하는 것은 로마인들의 입맛에 맞게 제작된 복음서가 아닐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의 생애 상당부분은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을 차용한 것이라고 다음 장에 설명을 할 것이다. 필자는 그 점을 의심치 않는다!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예수가 실존인물이라면 그는 무장독립혁명가였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복음서는 당시 유대(특히 갈릴리)의 사회의 정치적 대 혼돈과 역사적 정황을 무시하고 있다. 불트만(Bultmann)의 지적대로 복음서는 예수시대에는 만들어 지지 않았으며, 초대교회의 신자들 사이에서 예수의 이야기가 다양한 구전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다가 문서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예수에 대한 수많은 전승들이 초대교회에서 복잡한 모습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할례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유대율법 문제로 초대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났던 상황을 고려하면, 초대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예수의 전승은 복잡한 양상을 띠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구약의 오경이 여러 가지 전승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거나, 율법이 서로 대치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전승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이 흘러 들어와서 또 다시 복잡하게 뒤섞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수에 대해 떠돌던 여러 전승들이 드디어 문서로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로마제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유대인을 악역으로 만들고 당시 혼돈스러웠던 유대사회를 침묵으로 일관하는 또 다른 왜곡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시간이 오래 흘러간 뒤에 문서화 되었기에 역사적 사실과 점차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다.

 

필자가 한가지 덧붙여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고 판단되는데, 그것은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다빈치 코드'와 그 원조라고 말할 수 있는'성혈과 성배'같은 책이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와 관련된 비밀결사 조직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면서 무엇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그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세시대에 시온교단과 성당기사단을 비롯한 여러 비밀결사가 존재했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비밀결사 조직이 예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저자는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영지주의자들의 비밀조직, 아니면 반기독교 조직, 그렇지 않다면 교황청에 반감을 품은 종교개혁가들의 비밀조직, 또는 신지학(神智學)과 관련된 조직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런 음모론에 찬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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