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series 19 : 생쥐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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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19 : 생쥐와 인간(?)

(ㅡ.ㅡ) 2 3,434 2003.10.07 16:37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6월21일(화) 21시40분21초 KDT
  제 목(Title): 의대 series 19 : 생쥐와 인간(?)


"왕께서는 언젠가 소를 구해주신 적이 있다면서요?"

"아.. 그 일... 밖에서 구슬픈 소 울음 소리가 나기에 내다보니 제사에 쓸 소를
 
끌고 가는 중이었소. 그 처연한 울음소리가 가슴을 저미는 듯하여 사람들에게 일러

소를 살려주라 한 적이 있소."

"그럼 제사는 제물 없이 지냈습니까?"

"그럴 수야 없는 일... 소 대신 양을 쓰도록 했소이다."

"소 대신 양을 쓰도록 하신 이유는 소 값이 양보다 비싸기 때문에 소가 아까와서

그러신 것은 아니지요?"

"아니외다. 소의 가련한 울음소리를 듣고 측은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오."

"그럼, 왕께서는 소는 가련하고 양은 가련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허어... 이치가 그렇군...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소."

"아닙니다. 부끄러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소를 측은히 여기셨으나 양을 헤아리지

못하신 것은 소의 울음 소리를 들었으되 양의 울음 소리는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치와 사리를 논하기 이전에 눈앞에 있는 것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곧

어짊(仁)인 것입니다."

                                  - 맹자 (맹자와 어느 왕의 대화)


85년의 어느 화창한 봄날, 본과 1학년이던 staire는 실험실 앞을 지나다 실험실

앞뜰에서 흰 쥐 한 마리를 발견했다. 몸길이 약 10cm 정도(꼬리  빼고)의 귀여운

mouse. Rat은 몸길이가 거의 20cm에 달하고 징그러운 느낌을 주지만 mouse는

귀엽기만 하다.


녀석은 풀숲 사이를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움직임이 굼뜨고

비실대는 느낌. 쥐란 동물은 상당히 재빠른 녀석들인데...

'뭔가 사연(?)이 있어...'

staire는 손을 뻗어 쥐를 안아 올렸다. 쥐는 순순히 손에 올라 앉았다. 가까이 놓고

보니 더 귀엽다. 새하얀 털빛, 빨갛고 큰 눈, 약간 풀이 죽어 처진 흰 수염, 그리고

분홍빛 발...


'이걸 집에 데려가 길러 볼까? 하지만 혹시 미생물 실험실에서 폐렴균이라도 잔뜩

먹여둔 쥐라면? 아니면 어느 실험실에서 실험 도중에 도망쳐 나온 녀석일지도...

만일 그렇다면 실험실에선 이 쥐를 애타게 찾고 있겠지?'


그래서 쥐를 데리고 생리학 실험실로 갔다. 생리학 조교들은 그 쥐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했고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괜히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말고 그거 사육실에 맡겨. 거기서 관리하게 돼 있거든."

무표정한 사육실 직원에게 쥐를 건네주며 왠지 섭섭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새 꽤

정이 들었는데... 몇 번이나 돌아보며 문을 나서는 staire를 빤히 바라보는 녀석의

힘없이 처진 수염과 울먹한 느낌의 빨갛고 맑은 눈... 그 눈빛을 한동안 잊을 수

없었다.


1년이 지났다. 어느 새 그 쥐에 대해선 까맣게 잊은 staire는 2학년이 되었다. 아마

녀석을 만난 지 꼭 1년이 되는 무렵이었을 거다. 그날은 약리학 실습이 있었다.
 

그날의 실습은 한마디로 '죽음의 제전'. 두 가지 실험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rat을 이용하는 것으로 병에 마취제(halothane이던가?)를 넣고 rat을 한마리씩 집어

넣어 죽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는 것이고 또 하나는 800마리의 mouse(mice?)를

40마리씩 20조로 나누어 마취제 농도를 달리 하며 주사해 30분 간격으로 죽은

mouse 수를 세는 실험.


Rat 들은 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저항을 했다. 녀석들도 그 병이 아우슈비츠(?)

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걸까? 실험은 쥐들과의 실랑이로 지지부진했다. staire의

실험조만 빼고...


이상하게도 실험 동물들은 staire의 말을 잘 들었다. 아마 staire에게 짐승스런
 
면이 많이 남아 있어 그런 것일까? 다른 조에서 한 마리를 집어넣지 못해 끙끙거릴

때 이미 staire는 네 마리째를 처리하고 있었다. 배를 왼손으로 감싸고 오른손으로

등과 머리를 쓸어주며 병주둥이로... 그런데 이 녀석만은 staire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필사적으로 허리를 뒤틀어 staire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조교가

달려와 쥐를 붙잡았다.

"이거 보라구. 이런 쥐는 조심해서 다뤄야 할 거 아냐..."

쌀쌀맞기로 유명해 KGB라 불리는 약리학 조교가 손가락으로 쥐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쥐의 배에는 두 줄로 젖꼭지가 나 있었다. 암컷이다. 그런데 평소에 비해

젖꼭지가 크고 선홍색을 띠고 있었다. 임신한 것이다... 방어 본능이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staire는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상처는 깊었다. 두 줄로 찢어져

피가 솟고 있었다. 준비실로 달려가 소독하고 붕대를 감았다. 실험실로 돌아와보니

KGB가 애들을 야단치는 중이었다.

"또다시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우면 전부 0점처리할거야..."

staire를 보고도 많이 다쳤느냐고 묻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KGB는...

'잘 됐어. 이참에 좀 쉬자....'

창가에 앉으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창밖은 화창한 봄날. 비쳐드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두 번째 실험이 시작되었다. 할당받은 40마리의 쥐에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이번엔

조그만 mouse여서 애처로움이 더했다. staire의 조는 비교적 농도가 낮은 편이라

반 이상 죽지 않는다고 한다. 벌써 쓰러져 굳어가는 녀석들을 골라내며 숫자를

기록하느라 다들 바쁘다. staire만 창가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물린 손이

쓰리고 욱신거려 도저히 실험에 참가할 수 없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쥐는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해치워야지. 제한 시간(3시간) 되면 숫자 기록하고 살아남은 놈들은

치사량을 주사해서 전부 죽여버려..."

비정한 KGB... 하긴 살려둘 의미가 없다. 이미 약물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실험용

동물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이다. 살려 두어도 며칠을 넘기지 못하리라. 하지만 꼭

저렇게 표현해야 할까... 해치워... 죽여버려... KGB는 학생이나 쥐나 똑같이

대하는거야...


비실대는 쥐들 중에 제법 똘똘한 녀석이 있다. staire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눈빛... 그랬다... 1년 전에 만났던 쥐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이제 알

것같다. 스스로 달아날 수는 없는 일이니 누군가 쥐 한 마리를 도망시켜 준

것이리라. 녀석이 왜 비실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때 만났던 쥐는 며칠

안에 죽었겠지.


KGB는 통계 처리 방법을 강의하고 애들은 필기하느라 바쁘다. 아무도 창가에 앉은

staire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테이블에는 유리병 속에 이미 죽은 rat들이 뒹굴고

있다. 임신한 쥐도 퉁퉁 불은 젖꼭지를 드러낸 채 죽어 있다. 어미 쥐의 필사적인

저항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단지 죽기 위해 동원된 쥐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생명은 소중한 것일까?  목숨을 걸고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쥐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모성애와 같은 것일까... 1년 전 staire를 바라보던 눈빛은 공허함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 staire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저 쥐의

눈빛은..


staire는 슬그머니 일어나 철망을 열고 쥐를 꺼냈다. 틀림없이 살아남을 녀석이다.

쥐를 가운 주머니에 넣고 창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녀석을

창밖의 뜰에 내려놓았다. 쥐는 비틀거리면서도 풀숲을 헤치고 기어간다...

봄볕이 내려쬐는 창틀에 턱을 괴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뒷모습이 가물가물

해질 무렵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뜻밖에도 KGB였다.


"쉬잇..."

KGB는 뭐라고 말하려는 staire를 제지했다. 그리고 쥐가 사라진 풀숲 그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자네인가... 난 본과 1학년 때 실험실에서 도망친 쥐를 발견한 적이

있지. 너무 귀여워서 집에 데려다 길렀지만 며칠 못 가 죽고 말았어. 1년이 지난

후에야 그게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았지. 그리고 마치 자네처럼  나도 한 마리를

살려주었어. 벌써 4년 전 일이야... 내가 도망시켜 준 그 쥐가 어느 마음씨 고운

사람을 만나기를 빌었더랬어. 그리고 나서 그 일은 까맣게 잊었지. 살벌한 의대

생활 속에서 그때의 쥐에 대한 기억을 잊고 냉정하게 살아왔는데...

아직도 의대생들은 내 어릴 적의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군..."


그럼 그 쥐를 발견한 사람도 실험 때 다른 쥐를 살려 주었고 또 그 쥐를 만난 사람,

또 그 다음 쥐... 그렇게 오늘까지 계속되어 온 것일까? 아니, 그럼 KGB가 만났던

쥐를 도망시킨 사람은 또 누구였을까?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일이었을까?


물론 실험 규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며 도망시킨다 해서 쥐에게 무슨 대단한 것을

베푸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 의대를 들를 때면 실습실 앞의 작지만 화사한 뜰을 거닐 때가 있다.

어디선가 귀여운 흰 쥐 한 마리가 기어나올 듯한 착각에 빠져...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4-07 16:23:58 횡설수설(으)로 부터 이동됨]

Comments

햄스터를 길렀었습니다. 백과사전에 있던 햄스터가 어찌나 작고 귀여운지...

그 당시에도 엄청 엄마를 졸랐었는데 ㅎㅎ 어느 순간 허락을 받았지요.

2가지 종을 길렀었습니다.

하나는 갈색에 조그만한거였고, 하나는 밤색에 조그만한(종명:캠프벨러시안)암튼 흔하고 이쁜 종이었는데...

이름도 참으로 촌스러웠죠
(일순이,이순이,삼순이,찍찍이,찍순이,아가...)
.
(중간에 참 할말도 많지만...)
.
제가 유일하게 묻어줄 수 있었던건 이순이인가 찍순이인가 그랬을겁니다.(아니면 둘 다)

어느날, 두꺼운 종이로 필통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이순이의 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지요.

그 필통에다가 이순이의 시체를 휴지로 돌돌 만 뒤(임신상태일 가능성이 컷음;그래서 죽자마다 배를 쨀려다가, 차마 못째서 아마 뱃 속에 새끼들이 다 죽었을꺼임;;) 해바라기 씨 약간과 비문을 써서;;;

뒷산에다가 묻어주었지요;;;

쥐 야그...하면 눈물이 나올라합니다.
(물론 제가 쥐띠이기도 하고요;;)

아~여담으로 제가 고양이도 좋아하는데, 고양이랑 쥐랑 같이는 못 기르겠지요?
(고양이 뱃속에다가 넣어서 기르라는 말은 사양합니다 ^^;)
어질다.  여태 "어짐"으로 쓰고 있었네요!..ㅋㅋㅋㅋ...

 "어짊(仁)", 흠, 무식하면 손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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