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series 16 : 의대생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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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16 : 의대생의 사랑

(ㅡ.ㅡ) 0 3,167 2003.10.07 16:34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6월01일(수) 07시45분03초 KDT
  제 목(Title): 의대 series 16 : 의대생의 사랑


  그에게서는 늘 비누 냄새가 났다...

                  -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어지게 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오랜 시간을 요하는지

나는 모른다. 에반젤린처럼 평생을 쫓아가기만 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만 4년이 걸린 어느 의대생 커플의 경우는 오히려 행복한 편에 속하는 걸까?

staire가 점을 치기 시작한 지 7년째를 맞던 90년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경희(가명)는 밝았다. 한 마디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의예과 90 학번

신입생 중에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늘 없는 그애에게 호감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집이 유복한 탓에 그렇다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지도 모르지만...

경희는 SNUMO에 가입했고 4월 들어서부터는 제 키만한 첼로를 메고 다니기 시작

했다.


정현이(가명)는 무거웠다. 어두웠다고 해도 좋다. 같은 90 학번 신입생이면서도

다른 애들보다 두어 살 더 들어보이는, 글씨가 참 멋있을 듯하고 눈길이 서늘한
 
녀석이었다. 정현이는 어릴 때부터 다루던 바이올린을 들고 남들보다 좀 늦게,

5월에야 SNUMO에 들어왔다.


이들이 어떤 식으로 1년을 보냈는지 staire로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90 학번
 
신입생은 자그마치 28명이었고 요란스러웠다. 정현이와 단둘이 소주집을 찾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가을이 지나며 경희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지만 그게 무어 대단한 뉴스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그들과의 의미 있는 첫 만남은 1년이 지난 SNUMO 겨울 캠프부터였다.

캠프 마지막 날 저녁, (SNUMO 겨울 캠프는 졸업생 환송회를 겸한 훈훈한 자리가

마련된다) staire는 1년 후배들의 졸업을 보고 모처럼 감상에 젖어 꽤 마셨다.


많이 취한 상태에서 누가 staire 앞에 다가와서 앉는 걸 알았다. 경희였다.

"한 잔 주시겠어요?"

경희는 소주를 생각보다 잘 마셨다. 전에 알던, 그저 가볍기만 하던 모습이 아니다.

이제는 좀 성숙한, 즐거움과 함께 아픔도 알아버린 그런 얼굴...

"점을 치러 왔구나?"

"예, 해주실 수 있어요?"

"글쎄, 난 지금 좀 취해서... 아마 제대로 칠 수 없을 텐데..."

"부탁해요..."

그래서... staire는 경희와 함께 조용한 빈 방을 찾았다. 악보와 악기, 보면대가

어지럽게 널린, 연습실로 쓰던 작은 방. 펼쳐진 악보는 보로딘의 현악 4중주

2번...


물론 취해서 보는 점이 잘 될 리가 없고 staire는 카드를 노려보며 무척 많은 땀을

흘렸다. 클로버 퀸.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걸까? 경희의 얼굴을 바라보다

staire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야. 경희의  모습에서 느껴진다. 아무리 취했

다지만 그런 문제일 리 없다는 것... 그렇다면 이건 staire가 점장이 생활 8년만에

처음 만난 'stop signal'이다.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틀린 점괘. 그런 

경우엔 점을 다음 기회로 보류해야 하는 거다...


"경희야, 이건 stop signal이야. 더 이상 점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일종의 경고와

같은..."

"그럼 어떻게 해요?"

"캠프 마치고...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니? 그때 다시 처음부터..."

그러나 서울에서 경희를 쉽게 만날 수 없었고 시간은 흘러 5월이 되어서야 공대

식당에서 경희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경희와 지난 가을부터 소문이 있던 같은 학년의 혁이(가명). SNUMO는 아니지만

인사성이 밝아 staire도 웬만큼 아는 녀석... 두 사람의 패는 밝지 못했다. 혁이

에게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경희의 부모님께선 결코 이들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으실 거다. 그리고 경희는 그걸 뛰어넘을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혁이는 가난해요.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 줄은 몰랐어요."

이들은 어느 새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 거다. 그리고... 물론 결혼은 소꿉장난이

아니다.

"이런 여건에서도 맺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아무리 패를 읽고 또 읽어도, 최대한 좋게 봐 주려 해도...

"1%도 안되겠는걸..."

경희는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와 같은  담담한 표정에 아무런 구김 없이 무표정

하게 흘러내리는 눈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헤어질까요?"

이쯤 되면 이미 점의 단계가 아니다. staire는 카드를 한편으로 밀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계속되다가 결국 떠밀려서 헤어진다면

상처가 더 크겠지요..."

"그래서... 헤어지고 싶어?"

경희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헤어져야겠지요. 한 일주일 울면 될까요? 아니면 한 달?"


staire는 마음 속으로 경희의 부모님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그럼 헤어지지 마. 헤어지자고 다짐은 몇 번이든 할 수 있겠지만 넌 지금 그애와

헤어질 수 없어... 네가 원하는대로 해. 언젠가 네 말대로 떠밀려 헤어질망정 미리

겁먹고 물러서지는 마. 지금 너희들의 사랑은 그렇게 마음대로 맺고 끊을 단계를

넘어섰어... 물론 너희들이 끝까지 지금의 감정을 지켜나갈 수 있다면 언젠가

커다란 벽에 부딛히겠지. 그건 그 때의 문제야... 그보다는 네가 이런 어려운

가운데 너의 사랑을 얼마나 결연히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봐. 넌 아직 어려. 부모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너희들의 사랑이란 언제

깨어질 지 모르는 약한 거야."

경희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말없는 부정의 빛...


"그렇게 생각하니? 결코 변하지 않을거라고? 그렇다면 물러서지 마. 본과를 가게

되고 공부에 시달리고 세상을, 그리고 인생을 보는 눈이 더 깊어지면 아마 다시

오늘과 같은 선택의 순간이 올거야. 그 때가 되면 스스로 선택하는거야. 스스로...

지금  물러서면 언제까지나 후회만이 남을 거야...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이 얼마나 큰 지 안다면 물러서서는 안 돼..."


경희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여자애들의 얼굴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 것일까?

눈물자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이 저렇게 밝을 수 있다니...

"고마왔어요. 전 해낼 거에요..."

경희를 보내고 담배 한 대를 꺼내어 물었을 때 멀리서  정현이의 옆모습을 발견

했다. 점치는 걸 보고 있었을까?

                          (계속)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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