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series 15 : 필기가 문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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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15 : 필기가 문제라구요?

(ㅡ.ㅡ) 2 3,835 2003.10.07 16:34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5월28일(토) 06시34분35초 KDT
  제 목(Title): 의대 series 15 : 필기가 문제라구요?


요즘 학생들, 너무 게을러.

내가 본과 다닐 땐 오른손으로 받아적고

왼손으로 그림 그렸는데...

                  - 서울 의대 박모 교수님의 말씀...


암기의 비중이 클수록 필기는 중요해진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우선 신나게 받아

쓰기에 바쁜 곳이 의대 강의실이다. (근데 나중에 생각을 할 틈이...)

요즘은 강의 교재를 교수님들께서 직접 제작하여 나누어주시기에 부담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후배들을 보면 필기하느라 비명을 올린다. 더우기 교재라곤 거의

없이 모든 강의 내용을 필기해야 했던 staire 세대의 의대생들은...


믿거나 말거나...  staire가 악필이 된  이유는 절반은 노트 필기  때문이다. 하긴

staire가 우리 학년 3대 악필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설득력이 거의 없지만...


  1. 해부학


본과 1학년이 거쳐야 하는 가장 큰 난관이다. 차중익 교수님의  Head and Neck

강의는 수업 후의 '암호 맞추기'로 악명이 높다. OHP를 쓰시는데... 스크린에는

제목만 나열되어 있고 설명을 받아적을 틈이 없다. (제목만 다 써도 시간이 달랑

달랑하니...) 그래서 본과 1학년들은 팀워크의 위력을 이때 배운다. 3명 정도 팀을

이루어 한 명은 그림만 그리고 한 명은 필기. 한 명은 설명을 받아적는데... 수업

후에 세가지를 합쳐서 노트를 만드는 게 큰일이다. 실제로 어떤 팀(?)은 한 칸

어긋난 노트로 시험 공부하다 망한 역사가 있다. 제목 따로, 내용 따로, 그림

따로...


장가용 교수님의 복부 강의도 압권... 심한 날은 OHP 2개를 동원하실 때도 있고...

애들이 그림 그리느라 설명을 안듣는 것같으면

"그거 그리면 뭐해. 책에 다 있는 그림인데..."

(이 말씀을 믿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사실 그 '책'이란 교수님께서 보시는,

우리가 모르는 책임에 틀림없으니까.)


위(stomach)를 강의하시던  날... 교수님께선  검은 선으로  그려진 위장  그림을

OHP에 올리셨다. 윤곽뿐인... 그 다음엔 다른 필름을 한 장 겹친다. 붉은 색의

동맥 그림이 위의 윤곽과 겹쳐 나타난다. 그 다음엔 파랑색으로 그린 정맥 그림...

'음... 그림이 좀 복잡해지는군...'

그다음엔 노랑색으로 그려 잘 보이지도 않는 자율신경계...

'휴... 이거 어떻게 공부하나... 선들이 다 겹쳤네...'

(선만 있는게 아니라 한 줄 한 줄 이름까지 붙어 있다.)

그러나 교수님의 칼라 필름은 아직 반도 넘게 남았다. 녹색으로 그린 임파계,

갈색의 위벽 근육 섬유 방향, 이름도 모를 우중충한 색의 위벽 소화샘 분포...

교수님께선 한 장 치우고 새것을 덮으면 끝이지만 학생들의 노트는 오색찬란한

추상화가 되어간다. (의대생들이 12색 볼펜이나 색연필을 애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생리학


생리학 교수님들께선 꽤 부지런하셔서 교재를 일찍부터 제작하셨다. 특히 김우겸

교수님의 여유만만한 수업은 본과 1학년의 휴식시간이다.

"... 따라서... 이때... (약 3초의 침묵)...체내의... 소듐량이... 감소... 아니...

아... 그래... 감소하는데... (5초)... 참으로... 이상하게도... (3초)...

포타시움과... 그... 뭐냐... 중탄산염은...


그 와중에 등장하는 실험동물은 빼놓지 않고 흑판에 그리시는데, 두루미가 나오던

날, 마치 화투장에 그려진 바로 그놈처럼 생긴 것을 정성껏 그리시는 거다.

"이녀석의 다리가... 그냥 긴 게 아니고... 얼음장 위에... 서 있을때... 발바닥은

0도지만... 허벅지는 (허벅지를 정말 탐스럽게 그리시며) 체온을... 유지하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고하니..."

학생들은 하나라도 더 그리시게 하려고 마치 두루미를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생각하면 그정도 연세에, 좀 느려서 그렇지 정말 명강의였다고 생각된다.)


3. 조직학


백발이 성성한 장신요 교수님의 넘치는 정열이 강의실을 메운다. 어느 토요일,

4시간 연강을 맡으셨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강의가 시작된다.

"Fibroblast는 그 기원으로 볼 때..."

화들짝 놀란 애들이 서둘러 노트를 펼치는 동안 교수님의 강의는 총알처럼...

그러시면서 교단으로 걸어오시고, 강의 노트를 펼치시고... 그러나 강의는 1초도

끊어지지 않았다. 더우기 그때로부터 4시간동안...

staire는 집에 가서 어깨를 찜질해야 했다.


4. 생화학


박상철 교수님의 강의는 종이 많이 잡아먹기로 소문이 나 있다. 우선 복잡한 화학

구조식을 그린 후 애들이 '휴... 다 그렸다...'하는 순간 한 귀퉁이를 지우시고는

조금 변형시킨다. (예를 들면 OH를 COOH로...) 도저히 다시 그릴 수가 없어 화학

구조식의 몸체는 찐빵처럼 휙 그려치우고 바뀐 부분만 대충 표시한다. 이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노트에는 찐빵이나 뭉게구름만 가득할 뿐 글자라곤 몇 개 없는

유치원생 노트가 되고 만다.


교수님께서 대사 과정을 강의하실 때에는 더욱 요주의... 복잡한 화살표와 관계된

효소 이름이 이리저리 가지를 뻗는데 주의할 점은 반드시 노트 중앙에서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 가지가 어디로 뻗을지는 교수님만 아시는 일이기에... 한귀퉁이

에서 시작했다가 20가지 아미노산 대사과정을 반페이지에 다 그린 불행한 친구가
 
있었다. (결국 그 노트 보는 것을 포기하고 남의 노트를 복사하고 말았다.)


5. 미생물학


장우현 교수님의 강의는 항상 포카를 칠 때처럼 죄는 맛이 있다.

"Klebsiella... 이 균의 endotoxin 구조는 대장균의 그것과 같..........습니다."

같다는 거야, 다르다는 거야? 모든 학생들의 펜끝이 '같'자에 멈춰 있다가 교수님의

끝마디를 듣고서야 일제히 책상에 펜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참았던 숨을 내쉰다.

"... 이 균은 100도에서 30분간 끓이면 죽...........습니다."

휴...
                                                     

최성배 교수님은 일명 Mister Jawetz. 야베츠 책을 그대로 복사해 오셔서 읽으신다.

학생들은 편한 자세로 앉아 책에 줄만 치면 된다. 복사기가 좀 시원치 않은지 가끔

더듬으시는데 이때는 앞자리의 학생이 책임지고 가르쳐드려야 한다. 진도가 늦으면

반드시 보강이 있으니까...


간혹 책에  없는 말씀을 하시더라도 긴장할 필요는 없다. Treponema pallidum

(매독균) 강의 때 책에는 'dark field microscope로 관찰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다크 필드 마이크로스코프로 관찰할 수 있어요. 다크 필드 마이크로스코프가

뭐냐 하면... 균을 담은 슬라이드를 다크 필드 현미경 위에 놓고... 보는거에요..."

책에서 이 이상 벗어나셨던 예는 생각나지 않는다.


6. 약리학


성함은 잊었는데... 당시 조교였던 어느 분은 철자에 자신이 없으신 것도 아니면서

(우리가 노트와 책을 대조해 본 바로는 100% 정확함) 오른손에 분필, 왼손에

지우개를 들고 쓰시면서 슬슬 지우시는 거다. 도대체 짧지도 않은 약 이름을 3분지

2 이상 흑판에 남겨두지 않으신다. 약리는 철자가 틀리면 감점이라는 설이 있어

학생들이 극도로 예민한데도... 'acetyl salicylic acid' 정도 길이의 약 이름을

쓰실 때면 아세틸... 은 벌써 지웠고, 살리실릭.... 은 몸으로 가리시고... 빤히

아는 acid만 보인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요게 바로 아스피린...)


왕년의 인기 DJ 박원웅씨의 형(동생?)이신 박찬웅 교수님께서 하루는 '이 부분은

필기할 필요 없다'고 하시며 무슨 약품의 제조 공정을 적으시는 거다. 적으라는

것도 다 못받아쓰는데... 다들 펜을 놓고 편한 마음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마침내

한 칠판을 가득 메우신 후에야...

"이건 암페타민의 제조법입니다. 아시죠? 히로뽕..."

윽... 그렇다면 저 제조법은 황금알을 낳는... 허겁지겁 펜을 들었으나 이미 교수님

께서는 한 쪽 귀퉁이부터 지우고 계시다...


7. 필기의 달인들


의대생들의 필기 동작은 일견 일사불란해 보인다. 누구나 펜을 대여섯 개 이상

움켜쥐고 (색색으로... 같은 것을 2개씩... 왜냐면 펜을 떨어뜨렸을 경우 허리를

굽혀 주울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약간 앞으로 굽힌 자세로 잔뜩 긴장해 있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라는 말씀이 떨어지면 '딱딱딱딱...'소리가 강의실을

울린다. 12색 볼펜을 쓰는 애들이 색을 바꾸느라고...

'음, 이거 잘못 썼네... 철자가 틀렸어요...'라는 말씀 뒤엔 좀 둔탁한 '툭툭

툭툭...' 200여개의 화이트를 일시에 흔드는 소리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빠짐없이 받아쓰는 '옵세'들이 있게 마련... 

옵세란 'Obsessive personality'의 준말인데... 필기든 공부든 유달리 집착해서

부지런떠는 애들을 약간 비꼬는 말이다.


(잠시 딴 얘기... 후배 중에 공부 안 하기로 유명한 녀석이 있는데... 어느날 그

녀석의 별명이 '건달'에서 옵세로 바뀐 걸 알았다. 후배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
 
드디어 녀석이 마음을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구요... 그애가 옵세라는 소리 한 번만 들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러길래... 그렇게 불러주기로 했어요...")


잡담까지 받아적는 옵세가 있는가 하면 부지런히 (쓸데없는) 그림을 그려넣는 옵세,

시험에 나올 리 없는 "일설에는 이렇게 저렇게 주장하는 정신나간 학자가 있는데...

난 개인적으론... 그런 거 안 믿어요..."라는 말씀까지 '일설에는 이렇게 저렇게

주장하는 정신나간 학자가 있음. 김용일 교수님은 개인적으로는 안 믿으심...'

이라고 쓰는 hyperobse까지 다양하다.


끝으로... staire의 여섯째 딸 지현이 이야기. 지현이는 글씨가 예쁘면서도 무지

빠르다. 그리고 중요한 곳에는 '폼폼'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그림을 하나씩 그려

두는 버릇이 있는데... 어느 후배가 전하는 이야기,

 "제가 반도 못 받아쓰고는... 할 수 없이 옆자리의 지현이 노트를 넘겨다
 
봤더니... 그새 다 받아쓰고 벌써 폼폼이를 그리고 있더라구요. 그것도 3마리째..."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4-07 16:23:58 횡설수설(으)로 부터 이동됨]

Comments

청소년들의 좋은 친구로 나날이 인기를 더하던 〈별밤〉이 나락을 겪게 된 것은 지난 1972년. 
유신의 여파로‘불건전한 프로그램’이라고 낙인 찍혀 특유의 톡톡 튀는 방송을 하지 못했던
<별밤>은 1973년 박원웅이 다시 진행을 맡게 되면서 청소년 프로그램의 대표 주자가 된다.
"의대생들의 필기 동작은 일견 일사불란해 보인다. 누구나 펜을 대여섯 개 이상

움켜쥐고 (색색으로... 같은 것을 2개씩... 왜냐면 펜을 떨어뜨렸을 경우 허리를

굽혀 주울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약간 앞으로 굽힌 자세로 잔뜩 긴장해 있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라는 말씀이 떨어지면 '딱딱딱딱...'소리가 강의실을

울린다. 12색 볼펜을 쓰는 애들이 색을 바꾸느라고...

'음, 이거 잘못 썼네... 철자가 틀렸어요...'라는 말씀 뒤엔 좀 둔탁한 '툭툭

툭툭...' 200여개의 화이트를 일시에 흔드는 소리다."

햐! 머리속에서 그려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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