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sferatu - 뱀파이어 연대기 [2]

Nosferatu - 뱀파이어 연대기 [2]

Nosferatu 0 3,294 2006.05.26 23:44
3.
 
느릿 느릿한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흘러들어가는 사람들의 물결 가운데, 유독 거의
부서졌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처참한 몰골의 사내가 섞여 있었다. 사람들... 이라는
말보다 사람의 형체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었다. 초점없는 형체들이
이루는 초점없는 흐름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 형체, 누더기처럼 찢어진 벌거숭이 몸에
양 손목과 발에 커다랗게 뚫린 자국은,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지
단박에 알아볼 만한 특징이었다.
 
음습하고 희미한, 온통 불분명한 것 투성이인 그 길의 끝에는 가로질러 흐르지 않는 강이
있었고, 나루터가 있었다. 나루터에는 거진 부서져 가는 나룻배, 그 나룻배 위에는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는 그 초점없는 형체들을 끊임없이 구겨 싣는 장대한 사공이 있었다.
사공은 잠깐 흐름을 끊었다. 앞에 도달한 그, 양 손목과 발에 뚫린 상처가 난 누더기같은
형체를 노랗게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아무런 말 없이 쏘아 볼 뿐이었다.
 
눈동자를 마주 올려다 보던 형체는, 초점없이 몸을 돌려 흐르던 길을 되짚기 시작했다.
흐름을 거스르는 그 형체의 양 옆을, 양 손으로 부서진 다리를 질질 끌며
흐르는 형체들이 지나치고 있었다. 역시 팔목과 발에는, 누더기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뚫린 자국이 있었다. 그 중 한 형체가, 지나쳐 흐르며 울었다.
 
"약속했던 낙원이... 이것이냐?"
 
울며 질질 흘러가는 형체를, 누더기는 거스름을 멈추고 한참 초점없이 돌아보았다.

 
 
4.

온 몸이 부서져 나갈 것 같은 사나운 진동에, 사내가 힘겹게 눈을 떴다. 거룩한 도시,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성전 바깥뜰에 내동댕이쳐진 그의 눈 앞에서, 그 웅장함에서
드러나는 권능과 장엄함으로 볼 때 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성전이 마치 무너져
내릴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을 목격한 자는 절대 그냥 살려두지 않겠다는
기세로, 당장이라도 덮쳐내릴 듯 요동치는 거룩함이 내몰아치는 공포에, 사내는 피딱
지가 말라붙은 뒤통수와 이곳 저곳 부러져나간 몸이 호소하는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헐레벌떡 성전을 빠져나갔다.
 
흔들리는 곳은 성전 뿐만이 아니었다. 거룩한 도시 전체가, 점점 입을 벌려오는 지옥
밑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리기 직전이었다. 거룩한 도시를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도통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고 떤 길을 따라 어느 정도 가면
어디로 빠져나가는 성문이 나오는지는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린 채였다.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과 사방에서 튀는 돌덩이와 흙먼지에 휩싸인 거룩한 도시의
어딘가를 사내는 무작정 뛰고 있었다. 사방에서 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 비명소리 한 가운데 쯤으로 뛰어들어갔다 싶은 순간 사내는 귀청을 찢는
천둥벼락에 눌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얼마나 지났는지,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 어쨌는지조차 모를 새에 지진은 멈췄다.
서서히 초점을 찾아가는 그의 눈에 처음 비친 것은 타버렸는지 터져나갔는지 모를
두 눈구멍만을 퀭 하니 부릅뜬 채 아직도 푸들 푸들 떨고 있는 자그마한 몸집의
시체였다.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갔더라면 바로 그 자리에서 푸들푸들 떨고 있을
시체는 그 누군지 모를 자그마한 이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스카리옷 유다의 것이
었을 터였다. 사타구니가 축축해져 왔다. 다리가 풀려 일어설 수도 없었다. 지금은
한 발짝의 차이로 살아났다지만, 아무래도 이 벼락은 엉뚱한 사람이 맞은 거라고
밖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보다 더 처참한 미래가 바로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한 번 들이닥쳐 올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사내는 풀린 다리로 가까스로
일어나 성문을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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