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조건부 사랑 그리고 예수의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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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수의 조건부 사랑 그리고 예수의 콤플렉스

손오공 0 2,027 2005.07.04 16:46

수많은 종교 ,철학, 이데올로기 등이 사랑을 설파한다. 이에 뒤질세라 소설,시,음악,미술 등 예술 작품들에서도 사랑은 가장 중요한 테마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대중가요도 사랑이 빠지게 되면 작사가들은 밥을 굶게 된다. 연속극,영화,연극,만화도 마찬가지....

 

우리네들은 가히 사랑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사랑이란 단어가 동사로 사용될 때는 당연히 보어가 필요한 바, 그 대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가,민족,사회,이웃,가족,친구,연인,마누라,자식....등등...그리고 나자신....그외 자연과 신적인 존재도 포함되겠다.


사랑이란 관념적 단어는 이렇게 이곳 저곳에서 무차별 출몰하는 존재가 되다 보니 이 단어를 믿천으로 먹고 사는 집단도 당연히 발생하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기독교를 들 수 있겠는 데, 문제는 그들이 분명 조건부 사랑을 주장함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음모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게다.


예수가 선언한 그리고 체험한 사랑의 정체에 대해 정리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하자.

 

1)마태문서에서의 사랑과 그 조건

<<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마태 22:37~39) >>

 

예수는 분명히 선언했다.
보어로서 사랑의 첫째 대상은 자신의 신앙의 대상인 야훼임을 그다음은 이웃이라고.

여기서 우리는 조금 혼란이 발생하게 되는 데, 이웃의 범위를 과연 어떻게 한정 혹은 단정지어야 할까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는 뜻이다.

 

국가,민족,사회,가족,친구,연인,자식 등은 이 이웃에 포함된다고 하자 그러면 나자신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되나.....그것은 포기해야만 하나?....등

그리고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우선 순위는 없을까?..등

 

예수는 보충 설명으로서 그 우선 순위에 대해서 조금더 설명하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

 

원수도 사랑해야만 하는데, 사랑의 대상에 무슨 우선 순위가 필요한가....라는 주장이 되겠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이 지구촌은 정말 사랑의 홍수사태에 빠지게 된다.
불가능한 그리고 예수 자신 조차 실천하지 못한 공허만 말장난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귀절에서 그 우선 순위에 대해 명쾌하게 단정하고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마태 10:37) >>

 

예수의 사랑관이 극명하게 표현되어 있는 귀절이다.
이웃을 사랑하던, 부모나 자식을 사랑하던 그것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자신을 모든 것에 우선하여 사랑하라고 하는 게 예수의 주장이란 의미가 되겠다.

 

조건부 사랑을 이렇게 강조한 예수는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던지 자신의 제자가 되는 조건도 분명히 밝혀 두었다.

<<그런데 한 율법학자가 와서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읍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8:19,20) >>

 

율법 학자 혹은 서기관은 당시의 중산층 계급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예수의 제자되는 조건은 그 안락함을 포기해야 된다는 뜻인데, 예수 자신처럼 떠돌이 생활에 대한 각오가 없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 다음 조건을 보자.

<<제자 중 한 사람이 와서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8:21,22) >>

 

그 두번째 조건으로서 가족관계의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어쨋던 예수 사랑하기 혹은 제자되기는 이렇게 가혹하기만 하다.

 

결국 예수의 제자가 되거나 예수를 사랑할려면, 집 등 소유를 포기하고 게다가 보편적 인간 관계도 단념해야만이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기독인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기로 하겠다....그대는 진정 예수를 사랑합니까?
자,그러면 이 질문에 예라고 말할 수 있는 기독신도는 과연 몇명쯤 될까?


그러하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정작,예수가 주장하는 그 사랑의 정체와 조건은 너무나 가혹하기만 하다.


한편,예수는 지구촌의 종말을 예언하여 지금 현재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사랑의 종말에 대해서도 어처구니 없는 예언을 하였다.

 

<<또 세상은 무법 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마태 24:12) >>

 

결론적으로, 마태문서에서의 예수는 사랑에 대해 지극히 절망적인 사고관을 가졌다고 추측된다.


2)요한문서에 그려진 야훼의 조건부 사랑
           
마태문서에서의 예수는 사랑에 대해 몇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반면 요한문서에서는 가히 폭포처럼 사랑이란 단어를 쏟아냈다. 그러나 조건부 사랑이란 그 기본 맥락은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우선 예수가 왜 인류를 사랑했다고 주장하는 지 그 연유를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첫째:야훼는 인간을 사랑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16) >>

 

두번째:인간은 야훼 혹은 예수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요한 3:19) >>

 

세번째:야훼는 아들인 예수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요한 3:35) >>

 

네번째:야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나는 나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요한 10:17) >>


이 정도로 자신의 사명감에 대해 설명하였는데,여기서도 우리가 분명 알아야 될 것은 예수가 인류를 위해 혹은 인류를 사랑하다는 그 명분으로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야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예수의 선언을 기억하시란 뜻이다.


즉 야훼 역시 그 자신의 외동 아들에게 조건부 사랑을 요구했고, 그 조건에 따라 예수는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스토리가 요한문서의 줄거리라는 뜻이다.

물론,인류가 야훼의 그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어야하다는 구체적인 조건도 명시하였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라고.

 

한편, 자신의 목숨을 저당잡힌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한가지 주문을 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

 

마태문서에서 예수가 선언했던 계명하고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도 어째 좀 간단하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5) >>

 

그러나 기본 맥락은 마찬가지로 보여지는데, 즉 내가 야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저당바칠 예정인 바.....너희들도 그처럼 나를 사랑하라는 숨겨진 뜻이 있지 않나하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이러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 귀절을 함께 읽어 보면 이해되리라 확신한다.
<<내 계명을 받아 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 (요한 14:21) >>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들려 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 14:24) >>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우선일까? 아니면 예수 사랑이 우선일까?

 

그러하다.
당연히 예수 사랑이 우선임을 예수는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게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의 말 즉 서로 사랑하라는 말 자체도 지키지 않을거라고 단정하고 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위험한 사고관인가?


예수가 결론적으로 선포한 내용을 인용하겠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요한 15:10) >>


3)사랑을 구걸하는 예수

 

예수는 공생애 기간 내내 사랑에 대해 설파를 하였다.
가끔은 설득을 때로는 협박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는 지에 대해 목놓아 외쳤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살아 생전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서글픈 사실이다.
사랑...사랑....하면서  그렇게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암시도 주었건만, 가끔은 직설적으로도 표현하기도 했건만, 정작 제자들은 예수에게 사랑한다고 표현을 하는 이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죽어 귀신이 되어서 까지 베드로를 협박했을까?
소위 부활 사건 이후 예수가 베드로에게 협박 혹은 애원하는 그 장면을 함께 보기로 하자.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요한 21:15) >>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요한 21:16) >>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읍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요한 21:17) >>

 

사실 사랑에 대한 기술은 당연히 표현이 중요하다. 그리고 행동으로 증명하는 게 또한 필요하다.
어떠한 행동도 없이,입술로도 표현없이....그저 마음 속으로만 그대를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하면 그 누가 알아 주겠는가?


예수는 살아 생전 제자들의 행동에 실망했음에 분명하다.
게다가 입술로만이라도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자는 그 어느 누구도 없었다.

 

한이 되었을까?
죽어 귀신으로 나타난 예수는 소위 수석 제자라는 베드로에게 확인을 한다. 그리고 애원을 한다.(필자는 당연히 예수의 부활 사건을 믿지 않으므로 ....죽은 예수가 환상  속에 베드로에게 현신했다고 표현했음을 인지 하시길 요망함)..무려 세번이나 같은 말을 했어야만 하는 예수의 그 처참함, 그대는 이해가 되시는가?


예수의 첫번째 콤플렉스는 제자들에게 조차 사랑을 받지 못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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