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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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똘레랑스

손오공 0 1,311 2004.05.09 07:38
홍세화

1947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 졸업.

1966년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입학, 67년 10월 그만둠.

1969년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 입학.

1977년 졸업.

2002년 귀국

현재 한겨레 기획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BS 시사프로그램 <똘레랑스> 진행



이 약력만 보면 소위 KS출신으로서 정말 잘나가는 인생이구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그러나 중간에 생략한 이력서를 보자.



1969년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 입학.

문리대 연극반 활동.

72년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

1977년 졸업.

77∼79년 ‘민주투위"‘남민전’ 조직에 가담.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감.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

파리에서 이방인(에뜨랑제) 택시 운전사로서 생계를 유지함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겠다.

정말 사연이 많았구나...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운전사"란 책을 다시 한번 읽었다.

비슷한(필자보단 9년 연상이지만) 세대를 산 한 선배의 암울했던 과거 이야기가 엊그제 쯤

피를 토하던 기억으로 다가선다.책을 읽으면서 던져주는 몇가지 화두와 함께...

*미래를 모르면 불안할 수는 있어도 불행하지는 않다.그러나 과거를 잊으면 불행의 그늘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똘레랑스



이 책에선 동 시대를 같이 아파했던 많은 지식인 그리고 행동인들이 등장한다.

*김지하,이재문,박형규,이철,유인태,임진택,류홍종 등등...



이제는 과거의 그늘이 되고 있는 일부는 훈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건들도 함께하고...

*민청련

*남민전



잊었던 용어들도 기억나게 하고..

*위수령,삼선개헌,유신

*최류탄

*중앙정보부,대공분실...



우선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이 작품은 70년대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15년이란 세월을 빠리에 망명하여 살게된 홍세화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울의 명문 대학교에 입학하여 장래가 촉망되던 한 젊은이가 자신의 파란많은 가족사를 알게 되면서 방황하다가, 그로부터 우리 민족의 분단 현실과 정치적 억압상황의 본질을 깨닫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던 중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우연히도 이국만리 빠리에 망명자로 남게 된다.

이야기는 빠리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홍세화의 기구한 현실과 고국에서의 그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동족상잔의 6.25전쟁 와중에서 한마을 사람의 반이 몰살당한 어떤 사건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대학에 들어와 청춘과 사랑을 구가하던 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에 빠져 방황하던 일, 반독재 투쟁운동에 동참하다가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빠리에서 망명 허가를 받기 위해 허둥대던 일,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는 갖가지 에피소드들, 성장한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고민, 갈 수 없는 고국의 현실을 지켜보며 갖는 온갖 회한등이 교차되어 표현된다.



그리하여 그가 찾아내는 결론은 "똘레랑스"라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서로 다른 사상과 생각이 서로 존중되고 이해되며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그러한 사회를 말한다. 이 작품은 분단이 빚은 반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우리의 정치 사회 현실을 극복하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자유와 복지를 누리는 그러한 사회를 함께 염원하는 작품이다.]



정치 이야기는 일단 생략하고 저자 홍세화씨가 피력하고 있는 "똘레랑스"란 개념에 대해 한번 고찰해 보고자 한다.



[※ 똘레랑스 ;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에서 온 똘레랑스라는 말은 16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다. 그 뒤 5세기 동안 이 말의 정의는 끊임없이 확대되었다. 처음에 똘레랑스는 종교에 대한 군주의 구체적인 태도를 가리켰고 오늘날에는 남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정신자세를 가리키는 의미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관용이란 뜻으로 스펠링은 tolerance 입니다~(불어로 여성명사이고 e위에는 l"accent aigu("왼쪽으로 삐친...)를 붙입니다 )남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프랑스인 특유의 정서라고 할 수 있음]



[똘레랑스, 우리말로는 "아량"이나 "관용"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동양적 의미의 너그러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똘레랑스"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

자신의 이념과 신념이 귀중하면 남의 것도 똑같이 귀중하며 자신이 존중받기 바란다면 남을 존중하라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의 요구이다.



결국 똘레랑스는 "타자, 타자성, 차이에 대한 존중과 서로 다른 가치, 믿음, 생각을 가진 개인 및 집단들 사이의 평화적 공존을 의미한다.



관대함이나 허용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여유를 암시하고 자비가 "가엽게 여김"의 의미를 지닌다면 관용은 다양성, 이질성, 복잡성을 존중할 줄 아는 정신적 태도와 지적 능력을 의미한다.



한국의 정이란 단어가 외국어로 번역되기 쉽지 않듯이, 프랑스의 "똘레랑스"도 우리말로 옮기기 쉽지않다.

우리의 "정"이 감성의 표현인데 반해 "똘레랑스"는 이성의 소리로서 "다른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자신의 이념과 신념이 귀중하면 남의 것들도 똑같이 귀중하며 자신이 존중받기 바란다면 남을 존중하라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의 요구이다.똘레랑스가 강조된 사회에선 강요나 강제대신 토론하고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한다.

똘레랑스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주장과 주장, 사상과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해, 똘레랑스가 없는 사회에서는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 자체를 미워하여 결국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미워하게 된다.

"똘레랑스"의 두번째 말뜻은 "특별한 상황에서 하용된 자유"이다. 약자에 대해 똘레랑스를 요구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



우리는 어릴 때 부터

*침묵은 금이다라는 오해의 교육을 받고 살아 왔다고 본다.

*그러나 이 침묵보다 더욱 무서운게 일방적인 주장 즉 한 방향만 주장하는 언어의 폭력이 아닌가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지 결코 무덤이 될 수 없다.



결국 토론 문화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대체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다가 결국은 그 토론 상대자가 자신과 의견이 다를 시 그 개인에게 화살을 겨누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기독교는 똘레랑스란 개념이 아예없는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소위 선민 의식이란 착각과 오해 속에 그들은 일방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고 믿는 소위 삼위일체 그 신이 다른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그들은 왜 외면하고자할까?



볼테르가 한 말을 다시 기억해 보자.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본인은 기독교에 대해 아래와 같은 관념들을 갖고 있다.

*야훼니 예수니 성령 등은 절대로 궁극적 실재인 초월자가 아니다.단지 털파일 뿐이다.

*바이블은 신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아니고 단지 고대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일 뿐이다.그리고 로마인들이 편집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는 바이블과도 상당히 거리가 먼 오직 일부 기득권 층의 강요일 뿐이다.

*즉 원죄론은 사악한 도그마일 뿐 아니라 바이블에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말은 일부 귀절만 인용하면 합리화되지만 다른 귀절로 반대론을 펼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삼위일체론도 마찬가지

*천국과 지옥은 예수 재림 후 심판시 필요한 관념이지 과거의 선인들 그리고 예수 재림전 사후의 상태는 그냥 음부(낙원)에서 잠잔다고 해야 바이블에 맞는 해석이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바이블에 적혀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가 성경에 근거한 사상이다.

*목사제도는 바이블과 전혀 상관없는 제도라고 본다.

*십일조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러한 허접한 교리와 악서라고 판단되는 바이블에 근거한 그 기독교란 종교를 믿어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에게 그리고 내 이웃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는다면 왜?무엇 때문에?

반대의 주장을 목소리 높여 설파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가족간 그리고 이웃간의 분란과 단절을 요구한다면

나는 강력히 반발할 것이다.



타인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토론과 행동을 통해 설득하던가

*아니면 그들의 소위 신을 모셔 오던가

두가지 중의 하나는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기독인들은 이 똘레랑스란 개념을 허용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서 소멸되어야할 대상이라고 본다.



사실 이 똘레랑스란 언어의 개념은 안티들에게도 유효하다고 본다.

안티 각 개인들도 개념과 관념이 차이가 많을 수 밖에 없다.그게 자연스러운 게다.

*온라인 활동으로 만족하는 사람

*오프활동에 부담을 느끼고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

*공부 자체에 흥미를 갖는 사람(사실 안티활동을 하면 지적 호기심을 상당히 만족시켜준다고 본다)

*기독교 뿐 아니라 교인 각 개인에게도 증오를 느끼는 사람

*그저 취미 활동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오로지 기독교 박멸을 외치는 사람

등등 안티들도 성향과 목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이 모든 상이함을 모두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의견이 다르면 토론과 대화를 통하여 극복해야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안티 기독교를 외치면서 주장이 그리고 관념이 다르다고 그 개인을 배척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행위 자체가 벌써 아집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고 본다.



올해는 안티들의 여러 생각과 관념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볼테르의 금언를 다시 인용하겠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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