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와 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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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라와 하갈

손오공 0 1,619 2004.05.09 08:39
사라와 하갈



사라의 뜻은 공주 혹은 왕비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한다.

이스라엘 첫 족장 아브라함의 처라는 지위가 그리고 그들의 선조인 이삭의 모친으로서 그러한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 같은데 우선 신약에서 묘사한 사라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사라가 바로 그런 부인이었읍니다. 사라는 자기 남편 아브라함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복종했읍니다. 여러분도 선한 일을 하고 어떤 놀랄만한 일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사라의 딸들이 될 것입니다. (벧전 3:6) >>

<<그의 아내 사라도 이제 나이가 많은 여자인데다가 원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받았읍니다. 사라는 약속해 주신 분을 진실한 분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히 11:11) >>



경건한 아내요 믿음의 본보기로서 사라를 예로 들고 있는데 대부분의 기독인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이제 구약으로 돌아 가기로 하자.



사라의 일생은 하갈과의 투쟁의 역사로 봐도 별 무리가 없다고 보여 진다.

결국 모든 승리와 영광은 사라의 것으로 귀착되어 지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브라함의 사라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신뢰가 되겠다.

늙고 질투심 많은 본처를 끝까지 선택한 아브라함의 신뢰의 뿌리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바이블은 명확히 서술하고 있다.

즉 사라의 미모를 이용해 물질을 획득한 아브라함의 콤플렉스가 그 근간임을 보여 준다.쉽게 얘기해서 마누라 팔아 목숨을 유지하고 치부한 자가 아브라함이 되겠다.

거기에 적극 동참한 음탕한 여인이 사라가 되겠고....



<<"나는 당신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오.

에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당신의 남편이라고 해서 나를 죽이고 당신만 살려 둘 것이오. 그러니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 덕으로 죽음을 면하고 대접도 받을 것이오." (창 12:11~13) >>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들어가기 전 부터 마누라의 미모를 이용하기로 작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그리고 모든 게 순조롭게 되었고



<<아브람은 그 덕분에 대접을 받고 남종들과 여종들, 양떼와 소떼, 암나귀와 수나귀, 그리고 낙타를 여러 마리 받았다. (창 12:16) >>



마누라 팔아 치부한 아브라함의 모습이 되겠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악신 야훼의 음모로 인해 이집트 왕은 재앙을 받았고 그 뒤

아브라함은 마누라도 돌려 받고 취득한 재물도 챙겨 네겝으로 이주 한다.



아브라함은 목숨을 부지하고 재물도 얻었지만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았나 한다.그 콤플렉스가 일생 동안 그를 괴롭혔다고 보여 진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한다.

아브라함은 마누라 팔아 챙긴 그 재물을 믿천 삼아 부유한 족장이 되었으나

바람 한번 피우지 못하고 어언 85세가 되었고 사라는 75세가 되었는데 이해가 되시는가?



돈많은 아브라함

그러나 마누라 눈치가 보여 기 죽고 사는 아브라함...



이때 쯤 사라도 자신의 불임에 대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으로 보여 진다.

남편의 재산을 물려 줄 자식은 있어야 할 터인데...

아무나 첩을 들여났다가는 내 위치 마저 흔들릴 터이고...

그래 내 몸종을 주자.설마 그년이 날 배반하겠는가?



아부라함은 얼씨구나 하면서 하갈을 소실로 들였고 그 즉시 하갈은 임신하게 되었다 한다.

사람 맘은 아무래도 변하게 마련

하갈 역시 이제는 첩이라는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하갈은 아브라함에게 배갯머리 송사를 하지 않고 사라에게 직접 대항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하갈의 판단 착오라고 보여 진다.



사실 이 부분은 필자의 견해론 바이블과 좀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즉 사라의 맘이 전적으로 변한게 아닌가하고 생각되어 진다.

하갈이 정말 교만한 맘을 가진 여인이었다면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험담하는 등...여러가지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그러나 바이블은 이에 대해 전혀 기록이 없지 않은가?

결국 사라의 변심이 원인이라고 보여 진다.

첩실로 자기 몸종을 선택해 아브라함에게 주기는 했으나 막상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질투와 분노 등의 여러가지 감정을 이기지 못 해

아브라함에게 하갈의 처분을 자기에게 맏겨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나 한다.

은근히 옛날 일로 협박도 하면서....

당신 누구 때문에 이렇게 잘 살게 되었지?



하갈은 사라의 박대를 견디지 못 해 결국은 임신한 상태로 도망쳤다고 바이블은 말한다.얼마나 못 살게 굴었으면 돈 한푼 없이 몸만 갖고 피신했을까?

아...가여운 하갈....



야훼의 설득으로 다시 아브라함의 곁으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하갈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갈은 인내의 여인 그 표상으로 보여진다.

사라의 그 혹독한 질투의 그늘에서도 꿋꿋이 참아 결국은 이스마엘 즉 아랍인의 어머니로 자리매김 되는데 야훼는 결국 사라의 아들 이삭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 주는 심술을 부렸으나 이스마엘의 자손은 오늘 날 까지 건재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들의 어머니 하갈의 인내 덕분이 아닌가 한다.



기독인들은 대체로 오해하기를 즐겨한다.

*표독하며 질투의 화신인 사라를 경건한 여인의 표상으로

*인내의 여인 하갈을 교만한 여인으로....



바이블은 머리로 읽어야 함을

다시 한번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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