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의 교황권과 고해성사

이상훈님이 저술한 바이블의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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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의 교황권과 고해성사

※※※ 0 3,910 2005.02.23 06:59

▣ 천주교의 교황권과 고해성사


천주교의 그 위대한 '전통' 중 교황권과 고해성사 문제를 살펴 보자.

[마태복음 16장]

+ 16절]"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17]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베드로의 세 가지 특권은 첫째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는 권리(18절), 둘째는 천국의 열쇠(19절), 셋째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푸는 특권(19절)이다.

베드로가 받은 이 세 가지 특권이 제2대교황으로, 현재의 264대교황까지 내려오고 교황은 이 특권을 각국의 주교들에게, 주교들은 다시 주교수하의 모든 신부들에게 전승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신부는 베드로가 받은 세 가지 특권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 중에서 풀고 맬 수 있는, 세 번째 특권 때문에 고해성사에서 신도들의 죄를 사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자, 그러면 이 문제의 구절을 살펴 보자.

예수가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마태16:16)이라고 대답하자 예수가 그 비밀을 지킬 것을 명하며 베드로에게 이러한 상급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배경은 마가8:27-30 누가 9:18-22 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반석 위의 교회 및 천국의 열쇠 운운 구절은 유독 마태에만 나타나고 있다.)

과연 이 예수의 신분 즉 그리스도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베드로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을까? 베드로의 대답이 이러한 상급을 받을 정도로 그렇게 획기적인 것이었을까?

예수가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베드로의 대답 이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예들을 보자.

1)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일러줌

2) 의심하는 요셉에게 꿈에서 계시됨

3) 하늘 문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하고 세상에 선포 됨.

4) 귀신의 군대조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이까?' 라고 말함.

5) 베드로 및 다른 어부들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나이다'하며 경배.

6) 예수와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장면에서 예수가 베드로를 구해주자 배에 있던 제자들이 모두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나이다'하며 경배.

7) 베드로가 제자가 되기 이전 그의 형제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와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메시아를 발견하였다' 라고 함.

8) 다음 날 '나다니엘'이 예수에게 ' 선생이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나이다' 라고 함.

보다시피 베드로의 대답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후기 베드로를 숭상하는 자들의 문서 변조, 즉 가필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구절은 베드로 전후서를 포함한 1세기 모든 문서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는다. 베드로가 천국의 수문장이라는 정보는 AD 211년 교부 터툴리안의 저술(Scorpiace, x; ANF. iii, 643.)에서 보이기 시작할 뿐이다. 마태 16장 19절은 예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초대교회에서 베드로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후일 기자가 삽입했다고 뜨루대학 신학교수 데이비스(Davis)도 주장하고 있다.

만약 문서변조가 아니라고 치자. 마태복음 18장 18절에는 풀고 매는 특권을 베드로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라고 하여 제자 모두에게 준 것으로 나와 있다.

+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8:18]

바클레이 주석에는 이 특권은 기독교인 모두가 받은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기독교인 모두는 죄를 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인가?

조찬선 목사는 아람어에서 '맨다'는 '금지'를 뜻하고 '푼다'는 '허락'을 뜻하며 '맨다'는 교회법을 위반한 신도를 교회에서 '출교'시킬 때 사용한 말이고, 푼다는 '입교'할 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즉 그것은 당시 율법의 두루말이를 실이나 끈으로 매고 풀 때에 사용하던 통상적이 용어로 즉, 백성들을 위하여 복음의 두루말이를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 복음이 전파되게 할 것이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맨다라는 의미이고, 풀고 매는 특권은 기독교인 모두가 받은 것이라고 매튜 헨리도 주석서에서 해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신부가 고해성사에서 신도들의 죄를 사한다는 것은 전혀 성서적 근거가 없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특권이 2,000년간 264대의 교황에게 대대로 상속 계승되었다는 것은 천주교가 아무리 강력하게 주장해도 성립될 수 없는 궤변이다.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지 결코 교황이 아니다. 교황은 사람들(추기경들)이 모여 선출한 교회의 대표자일 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천주교의 교황을 수장으로 임명하셨다면, 그런 엉터리, 난봉꾼, 매독환자 교황들을 임명하셨겠는가? 교황직을 돈으로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임명하신 것이라고 우길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일국의 왕이 교황을 교체시킨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왕이 하나님이 된 것인가? 또 유부녀와 간통하다 발각되어 그 남편에게 맞아 죽은 교황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천주교의 수장인가? 사람들이 모여 교회의 대표자를 선출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임명으로 허위 가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종교악이 아닌가? 또 천주교는 264대의 하나의 교회, 교황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단이란 죄명으로 얼마나 많은 신도들의 고귀한 생명을 처단하였는가? 이는 무죄한 자들의 피 위에 세워지고 유지된 부끄러운 제도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고해성사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범죄를 무죄화 또는 정당화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살인을 하고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으니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은 순간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열 번 살인을 하고도 열 번 고해성사만 하면 만사를 용서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범죄를 장려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고해성사를 해준 신부가 마치 그가 사람의 죄를 사하는 신권(神權)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이며 기만이고 위선인가? 그 위선과 죄악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한 위선을 천주교는 약 2,000년 가까이 계속해 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해성사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신도들의 수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그 위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해성사 제도의 문제점은 T.R 이바라의 저서 <기독교인>에서 "기독교인이란, 토요일에 한 일을 일요일에 회개하고, 월요일에 또 하려는 사람이다"라고 한데서 더욱 더 분명해진다. 그리고 고해성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는 용서가 주어지지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강간하고는 성직자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한다면 그 성직자는 그에게 아주 값싸고 단순한 처방을 준다. "당신은 강간을 했으니 연보통에 10달러를 넣고 아베마리아의 기도를 다섯 번을 드려라. 그러면 그대의 죄는 말끔히 사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토록 자비로우시다." 그 남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어떻게 되는가? 범죄자는 용서를 받지만 그 피해자는 어떻게 되는가? 기독교전체에서 그 사람의 범죄 때문에 고통 당하는 피해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단 한마디도 없다. 그 사람이 또 죄를 저지르면 그에게 필요한 일이란 다시 성직자에게 가서 고백하고 약간의 돈을 기부할 것이고 그러면 성직자는 그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다. 그는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듭 용서받을 뿐이다.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 대한 언급도 없다. 죄를 저지르고 고백하면 용서해 주는 자비로운 하나님일 뿐이다. 그 사람이 저지른 죄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자에 대한 언급이 일언반구도 없다. 아마 하나님은 범죄자의 편이지 피해자의 편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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