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의 발전사] 그 두번째의 장, 철학과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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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ncrow님의 칼럼입니다

[영지주의의 발전사] 그 두번째의 장, 철학과의 결합

ravencrow 0 3,716 2004.09.14 02:08
2. 철학과 융합한 종교의 사상이 미친 파장: 후대의 범신론과 신지학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리스의 철학적인 부분은 유대 그노스로 부터 신성을 해석할 좌상장치라는 부분을 허락 받습니다. 헌데, 이는 다른 종교적인 부분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 좌상장치는 고대 다신주의에 의거한 것이기도 하나 기이한 특징이 있죠. 바로 절대적 승리자 입장의 좌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사상적인 부분에 있어서 조로아스터교나 혹은 수메르/바빌론 신화와의 접점, 칼데아적인 부분이 많이 제기 됩니다. 헌데, 이들은 어찌보면 다 유대인들의 지배 민족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유대교는 이들의 사상과 여러 해석들을 받아 들이고 기존의 종교적인 면과 합쳐 재해석을 가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적인 잔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승리자의 입장에서의 해석기법은 패배자 입장이 되었던 그들에게 있어서는 약간은 불합리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새로운 부분에 대한 전승의 해석이 필요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타협에도 이용이 되었고 선행이 되었습니다.



이 유대교적인 해석법은 승자와 패자의 입장 모두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승자의 입장과 패자의 입장의 해석법은 점점 중화가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후대에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해석법으로 적용이 됩니다.



바로 동등한 입장에서의 범신론적인 관점이라는 것이죠.



범신론적인 부분에 있어서 나타난 이런 특징들의 경우는 후대에 있어서 더욱 보강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지학이라는 것이죠.



이를 보고 저는 해석장치와 철학적인 사고가 빚어낸 승리라고 평하겠습니다. 중세 기독교 역시도 어찌보면 편입성 해석을 하고 타협을 가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들은 후대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판테온의 해석과 편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진 부분이라는 것이죠. 바로 신들의 존재는 이런 부분들로 한해서 판테온 안의 한 존재들로 인식이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당연히 승리자 입장에서만 전제되는 타협은 아니었습니다.



켈트신화의 기독교적인 부분의 편입을 보더라도 이것은 바로 드러납니다. 지배민들의 봉기와 반란을 누르고 통제성이 강한 일신교로의 편입을 위해서 판테온의 편입들이 이뤄진 것이죠.



그러나 이때까지는 아직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점적인 범신론주의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좀더 발달한 것은 스피노자를 거친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타난 것이 바로 신지학입니다.



저울을 생각해 보면 간단할 것입니다. 패배와 승리자 입장의 노하우는 스피노자 때부터는 서서히 균형을 맞추기 시작을 했습니다. 비록 분파적으로 볼때 철학적 사변을 가진 그노스주의는 기저 사상들만 남긴채 스러 졌으나, 후대에 있어서 이것은 복원이 된 것이죠.



왜 신지학이라는 부분을 언급하는지 의외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신지학과 그노시즘의 연관..... 이게 없다고 보는 부분들은 신지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지학은 철학적으로 볼때 범신론적인 부분에 있어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 신지학이라는 이름으로 재해석이 된 것들이 바로 장미십자회와 황금의 새벽회등의 기존 오컬티즘 사조들이었고, 또한 그 세력도 컸죠.



원래 이 둘은 쉽게 융합이 되지 않는 부분에 한했습니다. 그러나 신지학회 자체가 범신론적인 부분이 강했기에 이 둘의 경우는 융합이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죠.



또한 이 흐름도 고대의 흐름을 그대로 전합니다. 장미십자회의 경우는 실천적인 오컬티즘보다는 알케미적인 속성에 기인한 사변적인 오컬티즘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황금 새벽회는 실천적인 부분이 상당히 강했죠.



그러나, 신지학에 있어서 이 두 단체가 크게 남았을 지언정, 이 둘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실 범신론주의라는 것은 이 신지학을 기점으로 해서 다시금 재해석되고 그노스적인 사상이 재조명을 받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이죠...



현재의 오쇼 라즈니쉬 역시도 이런 영향성들 사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근간이 되는 부분들을 이전에 그노시즘에 입각한 사변을 가진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었죠..



신지학을 단순한 오컬티즘정도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아마 의외의 말이었을 것입니다만, 사실 이것은 뉴에이지 운동등과도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뉴에이지적인 범신론은 신지학적인 부분을 그대로 빼다 박는 경우가 태반이죠.



철학이라는 부분역시도(사실 인정하지만, 제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다분히 황금새벽회 과에 속하기 때문에....^^;;) 그노스의 성립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나 사변적인 그노시즘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실상적으로 볼때 크리스챤 그노스에 해당됩니다. 유대 그노스는 다분히 폐쇄적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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