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테지안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안티의 밥이다. 공부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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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칼테지안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안티의 밥이다. 공부좀 해!

몰러 0 2,231 2005.06.17 21:01

칼테지안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안티의 밥이다. 공부좀 해!


르네 데카르트는 라플레셰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 곳에서 그는 수학의 확실성과 정확성에 감명을 받았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였고 또 군인으로서 생활한 그는 나중에 네덜란드에 정착하였다.
데카르트는 회의주의로 출발한다. 하지만 그는 인생에서 어떤 확실성을 찾고자 하였다.
그런 결과 그는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의 이성적인 힘으로 확실성의 기초를 찾게 되었다.
신, 교회,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이전의 모든 철학자들과 고대의 문헌은,
안정된 지식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이성적 원리들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모두 팽개쳤다.
즉, 그는 과거의 모든 철학이 확고한 토대가 결여되어 있고, 이것은 그 전제들을 검토하고,
그 전제들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때까지 결여점이 보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대목이다)
결국 그는 1619년 11월 겨울 초입에 꾼 꿈으로부터 참된 지식은 오로지 인간이성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의 중요한 두가지 저서는 "방법서설"과 "성찰"이다. 데카르트는 어떻게 그가 조금씩 자신의 "데카르트적 의심"이라는
전반적인 체계에 이를 수 있었는지를 독일에서 그가 군인이었을 때 난롯가에서 보낸 어느 하루를 중심으로 말한다.
우선 그는 네가지 규칙을 세웠다.
    ㅇ 명백하고 판명한 생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말 것.
    ㅇ 각 문제는 그것을 푸는 데 필요한 만큼 많은 부분으로 나눌 것.
    ㅇ 생각들을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정리할 것.
    ㅇ 빠뜨리고 놓치지 않나 항상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
이 규칙하에서 그는 난로를 안고 사고를 전개한다.
    1. 우리의 감각은 때때로 우리를 속이기도 한다. 즉 눈에 보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가정하자.
    2. 여기 난롯가에 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3. 내가 꿈을 꾸고 있는지 허깨비(팬텀)를 보고 보고 있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어떤 사악한 악마가 나를 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4. 내가 의심할 수 없는 단 한가지는 내가 뭔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생각들 즉, 내가 꿈을 꾸고 있든가,
        골탕을 먹고 있든가, 아니면 내가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 생각에 불과할 지라도 말이다.
    5.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존재의 본질은 사고하는 것이며 정신은 육체와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갖고 있던 것이라고는 사고하는 존재에 대한 그의 관념뿐이었다.
그는 그것이 바깥세계에 관하여 알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이 속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그는 밀랍 덩어리 하나를 가지고 깊이 생각한다.
밀랍에는 여러가지 성질이 있다. 맛, 냄새, 색깔, 모양, 크기 등이다. 또한 딱딱하고, 차고, 쉽게 다룰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불 옆에 놓으면 모든 것이 변하고 만다. 밀랍은 계속 존재하지만 달라진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정신을 통해 밀랍을 아는 것이고, 상상력이나 감각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말해 외부적인 대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정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 후대의 철학자들에 의해 이 결론이 바깥세계의 존재증명이 아니라 자아존재의 증명일 뿐이라고 공격당한다. 그리고 이 공격은 정당하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던 까닭이다. 왜냐하면 신은 다음 두 가지를 보증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1. 우리의 명백하고 판명한 관념들은 참된 것이다.
    2. 우리는 사악한 악마에 의해 놀림감이 되고 있지 않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의 한 해석을 원용한 것에 대하여 데카르트는 대단히 만족하였고,
완전한 신에 대한 관념을 갖는데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만이 신이 지닌 완전성에 관한 관념의 원인일 수 밖에 없었다.

    * 결국 데카르트는 순환론에 빠진 것이다. 다음을 보시라
  나는 존재한다 → 고로 신은 존재한다 → 고로 바깥세계에 관한 우리의 관념은 참된 것이다. → 고로 우리의 육체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비록 정신과 다른 것일지라도 → 고로 나는 존재한다 → ..........

이런 논의로 인하여 정신과 육체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는 서로 분리된 것이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이 두 가지가 완전히 통일성 있게 움직이는것 처럼 보이는 지에 대해 설명해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논리적으로는 명료하지만 약간 이상한 결론을 내렸는데,
정신과 육체는 정확히 시간을 지키는 두 개의 시계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은 데카르트의 모든 사상에 들어 있으며, 그것은 사고와 연장간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그는 생각하는 것이 그 자체의 운동원리를 지니고 있고 사물은 별도의 물리적 개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물은 자동기계와 같은 것이고 인간의 육체는 기계적인 방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의 논리는 후계자인 호이링크스에 의해 결정론으로 발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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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이 무엇인지는 본문에 다 있으니 섣불리 신의 존재가 증명되었다는 착각을 하지 마시길...
결론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은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과도기에서 양쪽을 절충하기 위해 심신이원론, 물심이원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칼테지안의 폐해가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 환경파괴, 전제주의, 공산주의 등을 낳은 것이다.
그리고 원인을 더 파고 들면 기독교의 독소가 근간에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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