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주의 용사, 십자가 군병들

용감한 주의 용사, 십자가 군병들

몰러 0 4,548 2005.06.20 18:55

용감한 주의 용사, 십자가 군병들    
  
 
 
작성일: 2002/12/17
작성자: 몰러
  
 

중세 이교도들에 대한 십자군들의 테러와 학살에 비하면 빈 라덴은 오히려 온순한 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퀴나스는 후대의 사가들이나 철학자들에게 ‘천사 같은 학자’로 불리고 있지만 그가 내뱉은 “한손엔 코란, 한손엔 검”이라는 말 때문에 십자군들이 무어인들에 대해 과도하게 가지게 된 공포감과 적대감은 사태를 아주 악화시켰고, 지금도 무슬림에 대한 관념이 그리 좋게 바뀌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아퀴나스는 학자로서도 영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바티칸은 그에게 부여된 성인의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

피사로는 중부 아메리카 정글을 지나다가 부하들과 함께 탈진했다. 이들은 인디오들이 먹여준 쓰디 쓴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원주민 황제를 인질로 잡은 다음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원주민들을 차례차례 죽여서 찬란한 문명을 말살했다.

캡틴 쿠크는 오세아니아 주변을 지날 때 어떤 섬에 토인들이 보이면 조타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곳으로 뱃머리를 돌려라. 괘씸한 토인들에게 정의의 힘을 보여주자.”
그리고는 해변에 환영 나온 토인들을 도륙했다.

한국말로 추수감사절로 번역되는 Thanksgiving Day는 사실 그냥 감사절로 불려야 했다. 필그림스 파더들은 추수시기에 먹을 것이 떨어져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그때 주변의 친절한 인디언들이 먹을 것과 땔감을 구해주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줬다. 이듬해 농사가 그럭저럭 잘 되어 추수를 하였는데, 이들은 수확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였지만 인디언들에게는 그리 감사해 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인들은 엉뚱한 곳에 감사해 하고 있다. 하긴 인디언들은 하나님이 잠시 온순하게 만들어 필그림스들에게 보내준 것이고, 볼짱 다본 후에 하나님이 손길을 거두자 인디언들은 사람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야만인으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과거에 비해 덜 사납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잘못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계몽주의자들의 노력 덕택이며, 또한 민주주의의 발달로 정경분리 원칙이 성립되면서 그들이 권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이성이 중시됨에 따라 종교가 사람들에게 주는 매력이 감소되어 이탈자가 많아진 것이 선행된다.

하지만 십자가 군병의 정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비록 적대해야 할 대상에 대한 호칭이 이교도에서 사탄, 마귀 같이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것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이교도를 사탄의 무리로 매도하여 인식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여기 영어 찬송가 하나를 직독직해 해본다.

‘성도들아, 너는 그들이 성스러운 땅 위에 있는 것을 보았느냐?
어떻게 아랍군대가 감히 주위를 배회하며 노릴 수가 있는가?
성도들이여, 떨치고 일어나 그들을 쳐부숴라, 지지 말고 이겨라.
성령의 십자가의 힘으로 쳐부숴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쟁에 나간다, 빛나는 면류관을 얻기 위해...
피에 젖은 깃발은 멀리 흘러갔지만, 누가 그의 뒤를 따를까?’

어디서 많이 본 찬송가 아닌가? 한국어 찬송가에서는 아랍군대가 악한 마귀의 군대로 바뀌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물론 나도 산상수훈을 여러 번 읽었지만 거기에서 수소폭탄을 고무하는 말은 한 단어도 찾을 수 없었다.”고 비아냥댔지만, 기독교도들의 잠정적으로 감춰진 호전성은 언제 발현될 지 모른다. 사실 성서에서 산상수훈은 기독교인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챕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위/대/한 대테러 전쟁을 시작했을 때 종교계가 보인 태도는 100여년 전 사상가들이 지적한 것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종교 지도자들 대부분은 평화주의를 표방한다. 평화시에는 그렇게 평화주의자일 수 없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거나 적대해야 할 대상이 생기면 그들은 항상 전쟁을 지지한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신이 그들 편에 있다고 고무한다. 이때는 무신론자인 병사들마저 막연하게나마 용기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의 이런 태도는 2차 대전 때처럼 홀로코스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예수를 채찍질하고 유대인들에게 넘겨준 뒤에 손을 씻은 빌라도처럼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항변한다.

기독교인들은 억측이 심하다고 나를 몰아세울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내 말을 적용하기 힘든 경우가 있는가? 오늘 ‘어느’ 한 녀석이 베트남전을 생각해 보라고 내게 말했다. 반전운동을 하고 결국 베트남에서 손떼게 만든 세력들이 유럽이나 3세계가 아니라 바로 미국 안에 있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이 친구가 착각한 것이 있다.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이끈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과 히피, 그리고 아들을 정글에서 잃고 싶지 않아 했던 어머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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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생각을 이끌어오면서 나는 우울해졌다. 요즘 김정일 패거리들은 바보처럼 부시의 농간에 말려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자신들은 벼랑끝전술을 구사하여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북한이 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면서도 아예 북한 더러 핵을 만들라고 부추기고 선제폭격의 빌미를 만들려는 대북한 정책이 부시의 의도일까? 부시는 외교력에 있어서 침팬지에 다름 아니다. 남북이 전쟁을 벌이되 전장이 뉴욕과 LA로 되었을 때 부시가 과연 저따위 외교정책을 펼 수 있을까 하는 가당찮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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