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의 원조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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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안티의 원조 볼테르

몰러 0 2,431 2005.06.20 16:37
안티의 원조 볼테르    
  
 
 
작성일: 2002/04/01
작성자: 몰러




* 이 글은 리처드 오즈번의 “철학입문”, 하원의 “한쪽 뺨 맞고 성질내신 예수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의 짜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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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뉴턴과 데카르트, 그리고 존 로크의 수고로 이성의 시대는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 수백년간 이어져 온 기독교적 신본주의의 그늘을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와 유모가 심어준 가치관, 성장기뿐만 아니라 성년이 되어서도 느려터진 변화속도를 가진 사회의 패러다임 때문에 나름대로 격변한 사상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기저에 깔린 기독교의 흔적은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로크가 주장한 인간의 권리만 해도 그렇다. 생명에 대한 권리, 자유에 대한 권리, 재산에 대한 권리, 그리고 부당한 통치와 악법에 대한 저항의 권리가 있는데, 이 권리들은 남성 백인 기독교도에게만 해당되는 권리였다. 여성과 유색인종, 그리고 이교도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인디언 학살(생명), 노예제도 묵인(자유), 협잡과 강압에 의한 토지갈취(재산) 등이 개척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었고, 이것들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때를 벗지 못한 서구사상이 가진 정의였다. 조지 워싱턴이 (카스트로에 대한 체 게바라의 그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혁명동지 토마스 페인을 막판에 외면해 버림으로써 그의 말년을 비참하게 만든 이유도 자유주의에 대한 해석과 적용범위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 8세기로 이어진 계몽의 시대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대한 기독교적 패러다임을 붕괴시키는 파도를 일으킨 돌멩이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리적·진보적·자유주의적·과학적 사상의 확산은 당시의 제도권이자 주류였던 기독교가 그들이 가진 도그마를 살짝 위장하여 변신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기독교는 뉴턴과 라이프니츠를 인용하여 예정설/숙명설을 증거 하려 했으며, 데카르트를 이용하여 이성이 제기하는 의문들을 모두 무시하고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도피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그 첨병노릇을 함으로써 결국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비극적 분쟁들의 씨앗을 뿌렸다. 비록 70여 년간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그러한 분쟁의 소지들을 잠시(그래도 70년은 길기는 하다) 덮어두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사상의 기저를 본격적으로 뒤흔들기 시작한 사람은 볼테르(1694-1778)였다.
그는 흔히 급진적 자유주의자, 지독한 반 기독교주의자로 표현된다. 그는 1726년부터 4년간 영국에 머물면서 로크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공부하고 나중에는 로크의 해설가를 자처했다. “구체제를 향해 발사한 최초의 폭탄”으로 불리는 “영국에 관한 서한”에서 그는 영국 정치철학의 급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확산시켰다. 또한 70여 권에 이르는 시, 희곡, 역사, 논문, 번역, 소설 등을 통해 프랑스를 홀로 계몽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주된 철학적 공헌은 자연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종교에 칼질을 시작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에피소드를 겪은 때문이었다.

1761년 아직도 가톨릭이 꽉 잡고 있던 프랑스에서 어느 신교도 집안의 아들이 자살했다. 이 집안의 딸은 가톨릭으로 개종(아마 결혼하면서 남편의 종교를 따른 듯 하다)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지방에는 자살자를 사후교수형에 처하는 풍속이 있었다. 이러한 불명예를 면해 보고자, 자살자의 아버지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아들이 자연사했다는 증언을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누군가가 자살이 아닌 살인이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딸에 이어 아들까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것을 아버지가 막으려다 살해한 것이라는 소문으로 확대되어 아버지는 체포되었다. 죄를 자백하지 않은 아버지는 고문을 못 이겨 죽고 말았으며, 남은 가족들은 볼테르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 1765년에는 겨우 16세된 소년이 십자가상을 파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고문을 이기지 못한 소년은 죄를 자백했고, 결국 군중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소년의 목은 잘리고 몸뚱이는 불에 던져졌다.

이런 일들에 분개한 볼테르는 교회에 대항하여 프랑스인들을 선동했다.
“광신자와 무뢰배들을 쓰러뜨리고, 하찮은 열변과 가련한 궤변, 거짓 역사... 무수한 부조리를 파괴하자. 지각 있는 자를 지각없는 자에게 복종시켜서는 안된다.”
교회의 생각보다 이 소요는 너무나 확산되었고, 초기에는 볼테르를 체포하고 탄압하려 했던 교회는 결국 추기경의 지위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볼테르는 거절했으며, 수많은 저작들을 통해 교회를 조롱하고 비판했다. 성경의 확실성과 신빙성에 대한 주장들을 오히려 성경으로써 반박하고 조롱했으며, 구약과 연대학의 불일치점을 폭로하고, 구교와 신교가 다툴 때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조소하기도 하고(전에 몰러가 썼던 은행강도에 관한 우화는 볼테르의 것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임을 밝힌다), 구약의 예언을 예수에게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실로 현재 안티들이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기독교 태클걸기 방법들을 볼테르는 250년 전에 행하였던 것이다.

볼테르의 기독교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날카로운 조소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기독교는 틀림없이 신성하다. 온갖 범죄와 협잡(넌센스)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1700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 * *

볼테르가 말하고자 했던 자연은 신의 작품이며, 인간은 단순히 신의 창작물이 아니라 자연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즉 볼테르는 정통적인 기독교적 관점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님을 자인하였고, 더더구나 예수를 성현 중의 성현으로 묘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찬양까지 하였다. 결국 그는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상적 동료로부터 절교 당하기도 했다.

계몽주의자로서 볼테르는 신앙이 무지의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보았다. 즉, 가진 자들과 지배하는 자들이 못 가진 자들과 피지배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사탕발림이 바로 기독교라고 본 것이다. 교회는 그런 사기행위의 정점에 있는 불한당들의 모임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종종 이런 농담으로 그러한 견해를 피력했다.

"나의 변호사, 나의 재단사, 나의 아내가 신을 믿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도둑을 맞거나 사기 당하는 일이 줄어들 테니까...“

성직자들의 기만과 부패를 간접적으로 비꼰 이 말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작 자신은 신을 믿지 않으면서 맹신을 주장하고 강요하는 성직자들(성경에서 말하는 “가라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을 교회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무지몽매한 신자들은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소위 “신앙고백”의 문구들은 이러한 맹목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 * * *

볼테르는 무엇보다도 철학이 유용한 것이 되기를 바랐으며, 사람들이 행위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무식한 철학자”에서 그는 “만일 철학자가 자신이 사는 곳의 도덕에 대해서도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면 철학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라면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철학을 강조했다. 물론 실천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의도의 발언이었음을 명심하자.

자연과 악의 문제는 정통적인 사상에 대항해서 볼테르의 정신이 영향력을 보여준 문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라이프니츠나 다른 낙관주의자들에 반대해서, 그리고 파스칼처럼 인간의 박탈에 대한 비관주의적 신학을 주장했던 그런 사상가들에 반대해서, 볼테르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도덕적인 덕성을 발견하는 중도적인 과정을 찾으려고 하였다. 볼테르는 분명히 새로운 철학과 그 철학의 자연이라는 개념 사이에 도덕적인 딜레머를 초래하였다. 그가 1747년에 발생한 리스본의 대지진을 두고 한 말은 계몽주의에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고 말았던 것이다.

“만일 자연이 선한 것이라면 악이 없을 것이고, 만일 악이 존재한다면 자연은 본질적으로 선한 것일 수가 없다.”

그가 유신론자가 아니었다면, “자연” 대신 “신”, “하느님”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그것은 무신론자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결국 볼테르는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신이 져야할 책임을 자연의 책임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책임은 없다. 결국 이것은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 문제는 뒤에 잠깐 다루기로 한다.

볼테르는 장기투병 중에 신부에게 최후의 고해성사를 하기로 했다. 신부는 볼테르가 가톨릭 교회(헐~ 하느님도 아니고 교회라니...)를 무조건 신앙한다는 고백서에 서명하기 전에는 사면을 해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볼테르는 서명하는 대신 비서에게 다른 성명서를 남겼다.

“나는 신을 믿으며, 벗을 사랑하고, 적을 미워하지 않으며, 미신을 혐오하면서 죽을 것이다.”

* * * * *

과학과 자유사상의 발전 후, 관념적으로는 신이 가진 권한에 거의 육박한 인간은 마치 위험한 물건을 갖고 노는 어린이처럼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마구 훼손하고 말았다. 계몽주의의 맹점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신에게로 회귀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만 인식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편리”라는 마약에 빠진 인간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편리함”은 정말 마약처럼 더 큰 편리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게끔 만들었고, 더 많은 일은 더 많은 자원소비와 자연훼손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신에게 회귀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가 극한으로 치닫는 것을 신은 전혀 막아주지 못하였으며, 또 앞으로도 가능성은 제로다. 단지 우리에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계몽주의가 필요하다.

종교가 도덕과 정의의 표징이며 구심점이라고 보는 것은 큰 오해이다. 대다수의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보다 순종적이고 도덕적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기독교가 파멸에 대항하는 대안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계몽주의의 업적을 가로채고 책임만 떠넘기려는 것일 뿐이다. 기독교는 획기적인 인류사 발전의 계기가 있을 때마다 반대만을 일삼아 왔다. 나중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들은 교묘하게 변화의 파도타기를 하여왔을 뿐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효과, 즉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제국주의적 사고를 심어줌으로써 집단의 양심을 마비시켜왔다.

계몽주의 사상의 본질은 철저히 반신본주의적이다.
1. 인간은 선천적으로 저열하지는 않다.(원죄론 부정, 완전체로서의 신의 존재 부정)
2. 인생의 목표는 인생 그 자체이며, 사후의 생이 아니다.(당시의 정통적인 내세관 부정)
3. 지상에서의 훌륭한 삶을 위한 본질적인 조건은 인간 정신을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역으로 ‘무지는 신앙의 어머니’라고 함)
4. 무지와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에서 해방된 인간은 진보할 수도 있고 완전해질 수도 있다.(적응과 순종을 강조한 국가관/도덕관을 부정)
5.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자비로운 섭리라는 거대한 구도의 부분을 이루고 있다.(세상은 원인과 결과라는 편도차선이 아니라, 매트릭스화 되어 있다)

여기에 우리는 새로운 계몽주의를 보태야 한다.
6. 모든 일의 책임은 그 일의 주체가 져야한다.(아무 짓도 하지 않은 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직무유기일 뿐이다)
7. 모든 관점은 상대적이다. 웃는 자와 비슷한 수로 우는 자가 반드시 있다.
8. 당신은 9번부터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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