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과연 지옥을 만드셨을까?

하나님이 과연 지옥을 만드셨을까?

몰러 0 3,071 2005.06.20 15:24
하나님이 과연 지옥을 만드셨을까?    
  
 
 
작성일: 2002/01/09
작성자: 몰러



아니면, 하나님은 언제 지옥을 만드셨나?

구약(히브리 성서)시대의 내세관은 과연?

대부분의 목사들이 퍼질러 놓은 내세관, 그리고 개독들이 영역표시하듯 씨부리는 소리는 다음과 같다.

ㅇ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경을 믿지 않으면 불지옥을 면치 못한다.
ㅇ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천국에 들 수 있다.


물론 두번째 항목에 대해서는 선행이 뒤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없어도 되는가 하는 차이가 교파에 따라 다르게 주장(말 그대로 주장)되기도 한다. 하여간 예수의 보혈과 부활을 믿는 것은 천국에 들기 위한,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그럼 언제, 어떤 계기로 천국과 지옥이 히브리 민족에게 전파되었는가? 이 질문은 하나님의 의지와 예정이 아니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기독교인들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도대체 하나님은 지옥을 언제 만드셨나?”가 된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 10여 년 전 몰러가 교회에 다닌 몇 년 동안 한번도 들어보거나 토의된 적이 없다. 요즘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직접적인 물음에도 목사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못했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 회의(懷疑)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대다수의 교인들에게는 잘난 척 하는 소리가 되겠지만, 나는 교회를 그렇게 다녔었다. 물론 신학대를 나온 목사들은 분명히 신학생 시절에 교육받고, 연구했던 대목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목사들은 배운 것을 가르치지 않는가? 순진한 성도들의 영혼에 위험을 안겨줄 내용이라서? 웃기는 소리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의 무지를 먹고산다고 어느 현자가 일갈하지 않았나 싶다.
오강남 교수의 책 “예수는 없다”에 나온 신앙성장의 6단계도 결국은 개소리에 다름없다. 교인들이 신앙 3단계를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최소한 한국교회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정말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것이 안티들이 사람 또는 그의 행위가 아닌 기독교와 성경 자체를 부정하는 이유다. 사람이 잘못이지 기독교와 성서에 무슨 잘못이 있냐고 대드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옆길로 샜다. 각설하고...

지옥(이란 개념)이 유대민족에게 언제부터 있었느냐 하는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성경을 뒤져봐야 그런 내용이 안 나오므로... 바빌론 유수 이전에는 유대에 지옥(의 개념)이 있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점만 증명하기로 한다. 물론 성서적으로...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간다.(열왕기상2:2)
그러므로 너는 지혜롭게 행동을 하여, 그가 백발이 성성하게 살다가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지 말아라.(열왕기상2:6)
그러나 너는 그에게 죄가 없다고 여기지 말아라.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알 것이다. 너는 그의 백발에 피를 묻혀 스올로 내려가게 해야 한다.(열왕기상2:9)


위의 내용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으로,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는 보답하고, 자신을 핍박하고 해하였던 사람들을 곱게 살다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것이다. 내용상 지극히 인간적이다.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미덕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라 스올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덤이다, 지옥이다, 그냥 죽음이다, 등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무덤 또는 죽음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스올=지옥”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수는 지옥으로 보내야 할 것이며, 또 지옥 가는 길은 그 자체가 평안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한편 ‘스올이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 멍청이가 이 홈에도 몇 명 있다. 원수를 천국에 보낼 이유가 다윗에게는 없다.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사람(시므이)을 아들에게 대신 죽여달라고 유언한다는 것은 의도와 의미가 맞지 않다.

다윗파와 베냐민 지파의 갈등은 이때부터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예수(다윗파)와 바울(베냐민파)의 관계에 대해 의혹을 가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잠수함이 부상하여 하역하거나, 지기도사께서 지게로 져 날라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ㅋㅋㅋ

한편 기독교인들이 어떠한 고난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말자는 뜻으로 곧잘 인용하는 욥기를 살펴보자.
욥기는 정말 은혜로운 Text다. 다만, 하나님이 사탄과 같은 물에서 놀았다는 것, 그리고 욥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희생된 가족과 노예들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본의 아니게 욥의 믿음을 흔들어 보기 위해 이용당한 그의 친구들 등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욥이 믿음에 대한 시험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차라리 죽고 싶은 생각(이런 생각 자체가 이단이지만...)이 들어서 읊조렸던 죽음과 죽어서 갈 곳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자.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도(태어나서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내가 편히 누워서 잠들어 쉬고 있을 텐데, 지금은 폐허가 된 성읍이지만, 한때 그 성읍을 세우던 세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함께 잠들어 있을 텐데.(욥기3:13-14)
그 곳은 악한 사람들도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도 쉴 수 있는 곳인데, 그 곳은 갇힌 사람들도 함께 평화를 누리고, 노예를 부리는 감독관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인데, 그 곳은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구별이 없고, 종까지도 주인에게서 자유를 얻는 곳인데!(욥기3:17-19)
어둡고 캄캄한 땅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로 가기 전에 잠시 쉬게 해 주십시오. 그 땅은 흑암처럼 캄캄하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서 아무런 질서도 없고, 빛이 있다 해도 흑암과 같은 뿐입니다.(욥기10:21-22)
내 유일한 희망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거기 어둠 속에 잠자리를 펴고 눕는 것뿐이다.(욥기17:13)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개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ㅇ 죽음이란 잠드는 것이며, 죽음 후에 가는 곳은 편안하게 쉬는 곳
ㅇ 신분의 상하나 귀천이 없는 평등한 곳

그런데, 10장 21, 22절에 나오는 죽음 후에 갈 곳은 창조 이전의 카오스적인 상태와 비슷하다. 이것을 가지고 죽음 이후 영혼이 갈 곳이 머나 먼 우주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여간 조금 이상한 내세관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고통이 없고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 찬양하는 천국이나, 반면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는 불지옥/벌레지옥 등의 고통은 전혀 없다.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잠들거나 편히 쉬는 곳은 천국이고, 흑암처럼 캄캄하고 질서가 없는 곳은 지옥일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죽었다 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없어지면 없어질까, 죽은 사람이 눈을 뜨지는 못합니다.(욥기14:12)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사람은 다만 살덩어리,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신다.(시편78:39)
나에게 베푸시는 주의 사랑이 크시니, 스올의 깊은 곳에서, 주께서 내 목숨을 건져내셨습니다.(시편86:13)


고대 유대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주님의 은총을 받으면 다시 목숨이 붙을 수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지만... 여하간에 이 곳에도 천국과 지옥은 없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영혼에 대한 개념은 예수가 태어나기 수 백년 전에야 유대사상에 유입되었으며, 당시 그리스인들도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예전에 올라온 글이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단지 페르시아나 바빌론으로부터 그 관념이 차용/유입되었다는 결론만 이야기하겠다. 구약성서에서는 어디에도 구원이나 영생 등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없으며 관심도 없다. 영혼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불합리한 천국과 지옥의 개념, 그리고 그 불합리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연옥 등에 대하여 토론하자고 하면 유대인들은 비웃는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보다 똑똑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원전에 더 가까운 경전을 갖고 있는게 유대인들이다. 그렇다고 내가 유대인들의 사상을 옹호하거나 그들의 권위를 높이려는 것은 아니다. 지들끼리만 잘난 민족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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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면서 기독교인들은 구약에도 영혼에 대한 개념이 유대민족에게 있었다고 주장한다.

주님은 죽은 사람에게 기적을 베푸시렵니까? 혼백이 일어나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까? 무덤에서 주의 사랑을, 죽은 자의 세계에서 주의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흑암 속에서 주의 기적을 알 수나 있겠습니까? 망각의 땅에서 주의 정의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시편88:10-12)

공동번역판에도 혼백이라고 되어 있으며, 개역판을 보면 혼백 대신 영혼(쓰벌~)이라고 쓰고 있다. 한편 한글 KJV에는 유혼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럼 영어성경들을 찾아보자
shall the dead arise and praise thee? - The KJV Strong's Version
shall the dead arise [and] praise thee? - Webster's Bible Translation
Do the dead get up and praise you? - The New Living Translation
Do those who are dead rise up and praise you? – New International Version

한 단계 더 원전(KJV는 별개임)인 라틴 벌게이트는?
tu dominaris potestatis maris motum autem fluctuum eius tu mitigas
* 소사신부의 번역 : 주님은 죽은 사람에게 기적을 베푸시려 하는지요. 혼백...... (몰러의 째려보는 눈을 의식하고) 에라이 ~ 시체가 발딱 일어나서 찬양할까요?!!! 됐수? 곰패이 형제는 참 할일도 없수.

더 원전인 토라에는 어케 되어 있는지 모쉐이가 알려줄 것으로 기대하며...

어느 번역이 더 권위가 있는지는 따질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보면 죽은 사람 또는 시체라고 해석/번역해야 할 것이 왜 혼백이 되었는지, 같은 번판은 한 술 더 떠서 영혼이라고 했는지... the의 용법이 엄청나니까 뭐라고 번역해도 될 성 싶겠지만 바로 앞의 문맥을 보시라. 그냥 죽은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문자주의로 보든 의미주의로 보든... 헐~

* 혼백 = 영혼 + 육체(시체) = 사람
*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속으로
* 울 나라 전통에서 왜 고조부까정 제사 지내게 되어있게? 백이 없어져야만 혼이 저승으로 완전히 떠나거나 다른 이의 몸으로 환생을 한다. 백이 없어지려면 두 갑자(120년)가 걸리고 이때까지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혼이 엄청 섭섭해 하기 땜시 고조부까정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하여간 혼백은 잘못된 번역이고, 영혼은 더 웃기는 번역임을 알고 있을 것...

피에쑤) 주제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인 쓰레기 글을 내게 보낸 어느 개독 먹사에게 보낸 답변글을 모돌님의 검열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용어를 순화해서 재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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