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미국이 기독교국가라고 헛소리 하는 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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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실용주의... 미국이 기독교국가라고 헛소리 하는 넘들에게

몰러 0 2,706 2005.06.20 15:11
실용주의... 미국이 기독교국가라고 헛소리 하는 넘들에게    
  
 
 
작성일: 2001/12/14
작성자: 몰러




실용주의의 미국

* 미국이 실용주의에만 꼴아박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님.
*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똑한 미국 넘들의 사고방식 저변에는 실용주의가 깔려 있음. 교육학에서 프래그마티즘을 빼놓으면 엄청 허전할 정도라고 하더구먼...

유럽철학이 관념론과 유물론, 헤겔주의와 실증주의 등으로 분주하게 쪼개지고 있을 때, 미국 철학은 간신히 출발만 한 상태였다.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에게 빼앗고, 협잡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당연히 새로운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낡은 퓨리터니즘을 대체하고, 남북전쟁 때까지만 해도 지적인 식민지 상태였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욱 절실한 문제였다. 19세기에 출현한 그들의 중요한 공헌은 난폭한 빌 히코크가 대평원을 돌아다닐 때, C.S.퍼스(1839∼1914)는 그의 사상을 다듬고 있었으며, 1878년에 다음과 같은 사상을 내놓았다.

우리의 개념 대상이 지니고 있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결과 중에서 생각건대 실용적인 관계를 가졌음직도 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라. 그러면 이러한 결과들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개념의 전부인 것이다.

이 말은 단지 실제적 중요성에 따라 말과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논리적 격언이거나, 또는 달리 말하면 사상과 행동간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프래그마티즘은 그리스 철학에 대한 로마 철학의 차이점과 비견된다. 어떤 이는 철학으로 보지 않기도 한다.

황야에서 결투하는 두 건맨을 보자. 그들이 가진 총을 보고 우리는 말한다. "총은 치명적인 무기다". 여기에서 "나는 난폭한 서부정신이다"라는 말과 비교해보자.
우선, 무언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그 무언가의 지각 가능한 결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라고 해두자. 만일 낱말들이 뭔가를 의미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시험해 볼 수 있어야 한다.(총은 치명적인 무기이고, 총을 쏘면 누군가가 죽는다)
그러나 만일 낱말들이 우리가 아무런 실제적 결과도 찾아낼 수 없는 성질 등과 관계되어 있다면, 그런 낱말들은 무의미한 것이다.(승리자는 난폭한 서부정신이다)
정리하면, "악당이 죽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고 그 말은 시험해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정신이다"는 말은 그렇지가 않다.

얼마나 많은 철학적 논쟁이, 구체적인 결과를 추적하는 단순한 시험을 거치는 순간 무의미한 것으로 무너져 버리는지 알면 당신은 놀랄 것이다. 사실상 존재론적 형이상학의 거의 모든 명제는 무의미한 횡설수설이거나 그밖의 터무니없는 소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강성 무신론자는 종교에 대해 공격할 때 위의 말을 곧잘 이용/인용한다. 또한 실용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다른 방법으로 형이상학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퍼스의 사상을 빌어온 다음에 그것을 의미론에서 진리의 일반이론 또는 실용적 철학(글쎄...)으로 전환시켰다. 이런 사람들은 윌리엄 제임스, 페르디난드 실러, 존 듀이이다. 제임스는 그의 "프래그마티즘"에서 새로운 해석을 종합하였다.

관념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경험의 다른 부분들과 만족스런 관계를 갖도록 도와주는 그런 경우에만 참된 것이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경험적 용어들과의 관계에서 진리의 현금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나?

위의 말을 좀더 이해하기 쉽도록 신에 대한 제임스의 생각을 살펴보자. 또한 그럼으로써 프래그마티즘의 개념과 미국에서 종교가 쇠퇴하는 이유(절대성의 파괴와 유용성 강조… 결국 종교와는 크나 큰 갭이 생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의 의미는 그 대상이 초래하는 결과에 있으므로, 예를 들어 신(神)이라고 하는 관념도 신을 믿음으로써 용기가 생긴다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의 관념의 의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갖는 한도 내에서 신의 관념은 진리이며, 더욱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떠한 관념이라도 그것이 유용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관념은 진리이다. 이 주장이 전세계에 퍼지면서 프래그머티즘은 유용한 것이야말로 모두 진리라는, 즉 유용설(有用說)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정적 진리를 인정함으로써 설령 사실에 어긋나는 신앙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믿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일이며, 그리고 가령 “지금 몇 시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오늘은 일요일입니다.”라고 대답하였을 때, 그 대답이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진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진리가 진리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맞지 않으면 안 되며, 인간생활이나 행위에서의 유용성을 떠나서는 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래그마티즘에 대한 이런 해석은, 사상은 사물을 다루는 도구일 뿐이며, 진리는 실용적으로 유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아주 현실적인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프래그마티즘이 철학은 무조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프래그마티즘은 한 가지 방법일 뿐이며, 프래그마티즘도 구체적으로는 아무 것도 얘기해 주는 것은 없다고 보았다.
존 듀이(1859∼1952)는 이러한 프래그마티즘을 윤리적, 교육적 철학으로 전환시켰는데, 이는 미국의 사회 정책, 특히 법적.교육적 분야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듀이는 제임스와 퍼스의 저술을 종합했으며 도구주의라는 사상을 제시하였다. 이 도구주의는 대체로는 같은 것이며, 다만 사상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라고 하였다.

나의 친구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이 낡은 주관-객관의 이원론은 죽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과 환경간의 조정과정인 것이다. 진리는 경험을 통해, 삶을 통해 산출되는 상대적인 것이다.

긴 생애를 통해서 듀이는 지성과 행위와 지식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사회 형성에 결정적임을 믿고 있었다. 프래그마티즘은 실험적인 문제해결과 독선적이 아닌 가르침을 주장함으로써 교육 분야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프래그마티즘이 지닌 문제점은 진리와 같이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아무도 어떤 것을 철학적으로 결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프래그마티즘은 산업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아주 잘 들어맞으며, 미국인들이 이 철학을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그 점이라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후에 자아와 사회와의 관련성을 논함으로써 이론사회학의 길을 연 미드, 논리학의 영역에서 퍼스와 듀이의 영향하에 있는 콰인 등은 프래그마티즘을 다양화시킨 공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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