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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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님의 칼럼입니다

해적선

쥐뿔! 0 2,441 2003.01.04 15:41
이번 유치원 다니는 여섯살된 아들의 산타선물은 바로 조립식 해적선입니다. 유치원에서 원아들 몰래 부보님들한테 받아서 산타변장한 선생이 선물을 크리스마스 전에 나눠주는 프로그램이죠. 우리는 그래서 그놈을 데리고 그전에 뭐가 갖고 싶은지 장난감가게에서 물어보니 그 해적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사가지고 유치원에 전달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보던 책과 만화에 해적선 얘기가 많습니다. 아마도 그 해적선 이야기를 보고 많은 동경을 했겠지요. 칼과 총을 제맘대로 들고 다니고 쏘고, 럼주를 아무때나 마시며, 아무데서나 자고, 때로는 잡아온 여자들과 즐겁게 지내지요. 섬에 본거지가 있으니 지배하고 간섭하는 왕이 있을리 없고, 주변에서 야단치는 부모 어른도 없고, 괴롭히고 싸우던 친구도 없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해적생활이 좋은지 하나 하나 물어보죠.
해적은 누구랑 싸우는거니?
해적이 이기면 그냥 다 뺐는거지?
그리고 남자들은 다 죽이고, 예쁜 여자는 잡아오는 거지?
그리고 뺏은 보물로 마음껏 쓰고 놀고 마시고 여자들과 자는 거지?
좋은 해적이 쳐들어와서 죽여주니깐 그럼 해적이 공격한 사람들은 참 좋겠다 그지?
좋은 해적이 잡아간 여자도 좋겠다 자기 가족은 다죽고 자기만 붙잡혀 해적들과 좋은 생활을 하니깐?

이 정도가 되면 어린애라도 해적이 나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해적은 일단 다른 해적을 포함해서 무조건 남이면 다 공격하고 뺏고 죽이고 부려먹기 때문이죠. 이쯤되면 해적생활을 동경하지는 못하죠. 그런데도 왜 해적 생활을 동경하는가 하면 실상을 하나하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의적은 없습니다. 부자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도, 앞에 의로운 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도 여전히 도둑입니다. 하물며 그냥 도적질하는 거야 무슨 변명이 있겠습니까? 아이들 눈에는 해적선이라 또는 해적이라 말을 하지만 그 말뜻은 의적 또는 의적선으로 받아들입니다.

의로운 군대인 십자군을 보시면 그놈들이 하던 짓이 바로 해적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명분만 의로우면 모든게 다 용서가 되던 시절도 있었지요. 주님을 위한 군대는 화평과 사랑을 심어주는 평화군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지탈환이라는 종교의 명분에만 씌워진 해적군입니다.

종교전쟁이나 공산당 재판에서 보면 사람을 실제로 개개인의 실체로 보지 않습니다. 그 가치는 머리속에 든 종교 그리고, 가진 성분인 부르조아냐 노동자냐 하는 부류로 격상(?)을 시킵니다. 이른바 지금으로 보면 실체 전쟁이 아닌 영적 전쟁으로 전환되어 버리면, 실체적 존재인 같은 민족 구성원, 옆집 아저씨, 한 남편, 자식의 어머니, 친구 같은 그 사람의 관계적 실상을 제거해 버립니다.

그렇게 영적실상으로 전환되면 오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의로운 주님의 졸개와 사탄의 졸개 뿐입니다. 이 무대에서는 철저히 벗겨낸 실체적 실상을 이미 묻혀졌기 때문에 개인적 인격이나 개성은 아예 무시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부르조아라는 딱지나 사탄의 졸개로서만 인식되고,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나 주변의 관계는 다 무의미로 만듭니다. 그러니 오직 까부수고 죽이고 처치하는 이유는 그가 부르조아 이고 사탄의 졸개라는 이유 하나 뿐입니다.

이게 저 영적전쟁이라는 신종용어를 사용하는 현재의 개독십자군들의 정신상태입니다. 계시록에서 보여주는 것도 같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는 아버지도 아들도 어머니도 친척도 이웃도 국가도 세계도 없습니다. 오직 의로운 주님의 군대와 사악한 사탄의 군대 두개만 있습니다. 그 의로운 군대는 무조건 사탄의 군대를 쳐부술 수 있고 처형할 정당한 권한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과 진리, 그리고 선과 의로움을 주는 오직 주님의 군대가 되기 때문에 이와 대적하는 사탄의 졸개는 모두 멸하여야 하는 승리의 제물로서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영적 전쟁의 실상입니다. 영적 전쟁에서는 개인적 실체를 거두기 때문에 아버지가 샅의 졸개가 되기도 하고, 남편도 사탄의 졸개가 되고 부모도, 시아버지도, 옆집 인자한 아저씨, 산속 맑은 심성의 비구니도 모두 대적자가 됩니다.

감히 말하건대, 영적 전쟁이란 용어를 만들거나 사용하거나 주장하는 놈들은 저 공산당 인민재판하던 그놈과 다를바 없습니다. 그놈들은 일반 선량한 사람들을 종교를 이용해 쳐부수어야 하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놈들이 바로 사탄의 자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직 허울을 씌우기 위해 거짓을 만드는 교사자들입니다.

영적 전쟁을 운운하는 자는 모두 나쁜 놈들이라 단언합니다.
해적질을 찬양하든지 말든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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