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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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님의 칼럼입니다

사람의 아들

쥐뿔! 0 2,539 2002.10.16 10:12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란 소설을 읽은지가 20년이 넘어가니 가물가물합니다.

그러나 그 주제를 지금 생각해보면
불완전한 신을 완전한 신으로
모순과 불안의 인생을 완벽한 신의 은총으로 의미부여를 하고자 하면
바로 허무적 신이 되어야 하고
신의 완벽한 창조와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신은 더 이상 인류역사와 현생에 개입할 필요가 없으며
인간은 또한 불완전한 신의 개입을 요하지도 않고
완벽의 신에 기대지도 않으니

온전하지 않은 실체의 신을 완벽으로 만들든
미완의 인생역정을 신의 완벽한 참자유로 만들든
어차피 불완전의 인생사는 없어지지 않으며
완전의 의미를 신에게 부여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허무적 신관과 인간의 행위 무의미함을
돌출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완벽한 인생이 없는한 완전한 신이 있을리 없고
완벽한 신이 불완의 인간세를 창출할리도 없으니
불완의 인간세를 주재하는 자가 완벽의 신일리도 없고
완전한 인간이 불완의 신을 섬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세상이 중심이 되어서 신의 경전을 만들려 하면
인간세가 완전하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고
그렇게 해서 완전한 신관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불완의 인간세를 운영하는 완전한 신은 없으니
그게 불완의 인간세와 불완의 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에서 가장큰 죄악은 온전한 신을
인간의 잣대와 의지로 새로운 신의 모습을 만들려한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과 이해와 희망은 완전한 신이 완전한 인간세를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시초는 불완의 인간세에 있는 것이고
신의 완전과 불완전은 인간세의 기준으로 만들자니
어느것 하나 완전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신과 그의 완벽한 피조물은 할일없는 실업자와 무직자가 될 뿐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동기부여인 삶의 불안을 가식적으로 해결해 줄 뿐이니
결국은 인간의 완벽한 무의미로 귀결될 뿐이고 허무로 인간세를 끌어갑니다.

기독교에서는 완벽한 신에 불완의 피조물인 인간이 더 안정스런 구조이고
동양의 하늘관은 하늘은 스스로 그러할뿐 인간세에 간여하지 않으니 신의 의미가 없습니다.

신의 의미를 새로운 경전으로써 완벽하게 만들고자 함은
기독교쪽으로는 <사람의 아들>이 되는 실패이며
동양에서는 기독교적 신관으로 돌아가게 함이니
신은 신의 세계에서 인간은 인간세에서 피차가 간여없이 하게 하거나
불완전한 삶의 문제를 신속에서 찾지 말도록 함이 더 타당하지 아니하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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