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 하나도 모르지만...


불교에 대해 하나도 모르지만...

※※※ 0 2,403 2003.09.27 21:27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12월31일(일) 05시11분20초 KST
제 목(Title): 불교에 대해 하나도 모르지만...



불교를 공부하고 싶다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불교 특유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 이해 없이 절에 다니면서 '줏어듣는' 것으로부터 불교를 파악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특유의 세계관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이 성경을 읽는 것과 마찬

가지로 오해의 벽을 높이 쌓을 뿐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인간'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죄를 짊어지고 있으며 스스로는 그것을 벗을 능력이 없지요.

불교의 인간은 '깊고 큰 인간'입니다. 스스로 해탈에 이를 자질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운 대로,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대로.


힌두교의 신이 다수이며 인격보다는 우주의 여러가지 국면들을 하나씩 표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인격적이라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인격신에

비해 더 저열한 신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의 얕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슬람의 신과 기독교의 신은 같은 신인 만큼 하나이며 인격신이며

창조주라는 점에서 대등합니다. 불교의 신은 비인격적이고 창조주가 아니라는

식의 발언은 근본적으로 오류를 품고 있습니다. 불교의 초월자는 해탈한 인간이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신이 없다... 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요.


인간과 신에 대한 개념을 이쯤 정리해두면 불교 설화에서의 탕자가 왜 스스로

죄값을 치러야 하는지 자명해집니다. 불교에서의 인간은 초월자의 가르침을

얻을 망정 구원을 스스로 이루어내야 하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값은 자신이

치르는 것입니다.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불교의 '인과 응보'는 무자비한

보복의 개념이 아니라 '당당한 한 인격으로서의 몫'인 것입니다.

당연히 불교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보복이 없으니 용서 또한 무의미합니다.

스스로의 구원이 있을 뿐이며 그러한 구원의 길이 험난함을 측은히 여기는

'자비'가 있을 뿐입니다.


해탈에 이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 - 이것은

알고보면 같은 개념입니다. '진리를 알고 그것을 즐거워한다'라는 똑같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진리가 불교에서는 관념이며 기독교에서는 인격화된

신이라는 차이, 불교는 스스로 발견하며 기독교에서는 주어진다는 차이, 불교는

그 길의 발견을 위해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며 기독교는 밖에서 찾는다는 차이...

이 모든 차이는 실천적인 차이일 뿐 개념적인 차이가 아닙니다.


접시물과 바닷물의 비유 역시 어느 편이 우월하고 어느 편이 저열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철학이며 기독교는 믿음입니다. 인도인의 정교한

인식 철학과 유태인의 조악한 철학은 민족적 우열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인은 철학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무한계층철학을 택했고 유태인은 인식의

접근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신성한 문서'에 맡기는 자기완결철학을

택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일사불란한 체계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쟁론이 그치지 않은 상태이며 경전 또한 그 양과 다양성에서 기독교를 압도

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기독교의 경전은 매우 적은 양과 여러 차례의 편집을 거친

내용상의 일관성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방향이 달랐을 뿐 어느 쪽이 더 우월하고

저열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어느 편을 택하느냐의 문제가 있겠지요. 꼭 기독교와 불교

두 가지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메뉴가 우리 앞에 주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고유한 존엄을 전제하지만 구도의 길은 험난한 불교와 쉽게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절대자의 존엄의 반영으로서만의 존엄성을 인간에게 허락하는 기독교

사이에서 선택은 자유입니다. 취향에 따르겠지요. staire처럼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얻는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 선택은 어느 편이나 존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 모든 종교는 (무신론이나 불가지론, 우리가 '미신'이라고 함부로 부르는
        ~~~~~~~~~~~~~~~~~~~~~~~~~~~~~~~~~~~~~~~~~~~~~~~~~~~~~~~~~~~~~~~~~~~
것들까지 포함해서) 대등합니다. 불교와 기독교 두 가지만을 비교함으로써
~~~~~~~~~~~~~~~~~~~~~~~~~~~~~~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분명히 비약입니다만 저는 저의 접근이 허락된

모든 자료를 검토하여 이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지면에 모두 언급하기에는

길고 지루할 듯하여 생략할 뿐입니다.


* 보론 : 무슬림이 네 아내를 얻는 것과 기독교가 한 아내만을 허용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사회적인 배경이 있으며 각각의 종교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차이일 뿐입니다. 구약

  시대에 한 남자는 한 아내만을 얻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은 이것을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사회는 그 사회의 기본적인 규범을 무시하는
                                ~~~~~~~~~~~~~~~~~~~~~~~~~~~~~~~~~~~~~~~~~
  신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

* 끝으로 - 제목에서 밝혔듯이 staire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 오류에 대한

  지적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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