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바


가야바

※※※ 0 2,286 2003.09.27 20:55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1월16일(월) 18시56분12초 KST
제 목(Title): 가야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난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Ich, der Ueberlebende)



빌라도는 불쾌한 얼굴로 전령 사병을 노려보았다.

"가야바가 또 찾아왔다고?"

가야바... 무서운 사람... 빌라도는 작년의 기억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날도 오늘과 똑같았어... 저 웅성대는 사람들, 그 가운데에 바위처럼 서서 나를

노려보던 가야바...'


모든 로마의 속주에는 케사르의 동상을 세우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대에서만은

예외였다. 우상 숭배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은 케사르의 동상이라고 해서 예외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황제 티베리우스는 이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예루살렘에만은 동상 건립을 유보했다.

빌라도는 이것이 불만스러웠다. 여기에 케사르의 상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내

무능력의 반증일 뿐이다...

                                                    
빌라도는 야음을 틈타 병사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안토니아의 요새 망루에 케사르의

상을 세우게 하였다. 이 요새는 성전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므로 유대인들의 반발은

극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로마의 권위를 떨치기엔 안성맞춤이지... 그리고

그곳은 무장된 곳이니만큼 유대인들도 어쩔 수 없으리라...

빌라도는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빌라도의 계산 착오였다. 안나스의 사위 가야바의 지휘 아래 분노에

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집회를 가진 후

빌라도의 관저가 있는, 16마일 떨어진 가이사랴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열렬한

군중들이 속속 합세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행렬은 길고 두터워졌으며 가이사랴의

총독 관저 앞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7000명이 넘는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빌라도는 겁장이가 아니었다. 그는 빛나는 갑옷으로 제국의 위력과 자신의 결심을

과시했다. 그러나 6일이 지나도록 그들은 총독 관저에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다.

마침내 빌라도는 유대의 장로들을 불러 협상을 제의하고 군중들을 광장으로

모이도록 했다.

빌라도는 애초에 협상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시장에 모인 군중들은 빌라도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에게 포위되었다. 그 대다수는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에 눈을 빛내고

있는 사마리아 용병들이었다. 빌라도는 승리감에 찬 냉혹한 목소리로 곧 해산하지

않으면 대량 살륙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병사들의 창날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러나 결국 무릎을 꿇은 것은 빌라도였다. 한 발 앞으로 나선 가야바가 준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이 땅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유대 총독들을 알고

있지. 나는 암비비우스, 루퍼스, 그라투스(빌라도의 전임 총독들)와 힘겨루기를

하며 이 땅의 신앙을 지켜왔네. 로마는 이 땅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그렇지만

우리의 머릿속을 씻어 낼 수는 없네.

대량 살륙을 불사하겠다고? 그럼 나부터 찌르게. 그리고 나면 아마 자네는 온 유대

땅에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핏물을 뒤집어쓰게 될 걸세... 자네의

전임자들을 과소평가하지 말게..."

웃옷을 헤치고 드러낸 비쩍 마른 가야바의 맨가슴에 창을 들이댔으나 빌라도는

찌를 수 없었다.

마침내 빌라도는 케사르의 상을 다시 가이사랴의 총독 관저 안으로 철수시키고
                                                    
말았다.


'일 년 전의 그 치욕적인 날 이후 다시 그를 안 보기를 원했는데... 또 무슨

일이야... '

"가야바가 재촉하고 있습니다."

전령병의 목소리에 빌라도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가 보지. 가야바에게는 저항할 수 없어..."


그들은 어떤 사나이를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흔히 가야바는 음험하고 약삭빠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고대사
                                                    
중 한 장면으로부터 재구성한 이 사건은 그의 탁월한 정치 감각과 우직스러울 만큼

순수했던 그의 신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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